
지워지는 것은 짓밟히는 것
지금도 그 거꾸로가 아니다
자동차 물결에
헤드라이트 불빛에
2001년 4월 어느 날 봉천동 밤거리
사람이 자동차에 지워진다
사람이 사는 집도
모두 떠난 건물 뿐이다, 레닌은어디에
오 그렇다, 자본주의는 불야성
IMF는 연필보다
일상적이고 전쟁보다 더 메마른 단어다
출근은 진한 화장 뿐
가장 솔직한 것은 퇴근하는 뒷모습의
어깨의 표정이다
생계와 화해한 만큼만
그것은 가난하고 안온하다
레닌은 어디에
그의 노래가 그 위로 겹쳐진다
지워지는, 짓밟히는, 메마른
풍경과 질문 위로
인간의 조직이 일순 너무나 아름다웠던
시절은 화음의 광채로만 남아
생애가 차라리 슬프다는 충문에 달한다
레닌은 어디에
레닌은 어디에
그의 슬픈 노래가 거리의 풍경에 겹치고
합쳐진다,그것만이 위로가 된다는 듯이
그때 우리는 모두 레닌이다 지워진 것들의
윤곽이 슬픔으로 명징해질 때
그때 우리는 모두 노래다
그리고 레닌이 된 우리 모두가 묻는다
레닌은 어디에, 레닌은 어디에?
그 질문은 결코 메마르지 않는다
마치 그가 울음의, 실종의, 그리고 질문의
보편이라는 듯이
그것 만이 법칙이라는 듯이
아직도 표정은 지워진다
물결도 지워진다
아직도 풍경은 지워진다
거리도 건물도 지워진다
밤도 낮도 지워진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리고 마침내
예감이 지워진다
남은 것은 슬픔이 촉촉한
질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