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변신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엿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방향으로) 몸을 틀고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무슨 말을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청중을 감동시킬까?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
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 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인간의 두부류
공격수는 골대를 향해,
수비수는 골대를 등지며 서 있고
공격수는 한 골로는 부족하지만
수비수는 득점을 못해도 실점이 없으면 만족한다.
먼저 경기장에 나서지 않지만, 때가 되면 나는
전 세계와도 맞서 싸우는 수비수가 되련다.
시대의 우울
그처럼 당연한 일을 하는데
그렇게 많은 말들이 필요했던가
박정희가 유신을 거대하게 포장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과대포장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이
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
종이에 인쇄되어 팔리는
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
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
눈 감고 헤엄치기
세상이 아름답다 말한다고
지구가 더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간판들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큰 글씨로
꽃과 나무와 더불어 숲을, 숲에 묻혀 사는 낭만을
예쁘게 찬미할 수 없는 나는--
밖에서 더 잘 보이게 만들어진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눈을 감고 헤엄치는 나의 언어들은--
요리사 마음대로 요리하기 쉬운, 도마 위에 오른 생선.
솜씨 없이 무딘 칼에도 무방비일지언정
내 시에 향수와 방부제를 뿌리지는 않겠다.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시를 나는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