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여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마시고 / 가윗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 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 감석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비 수북한 쇠전 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장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닮기만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려네
길은 아름답다 / 신경림
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서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답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 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서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배감독의 의도도 보았는데, 신경림 시인 시집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