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계의 물리학

[ ] 관계의 우주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사귄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고, 친하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닮아가는 일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에 스며드는 일이다. 어떤 물리적 관계는 우아하게 도약해서 관계의 화학으로 나아간다. 24

[ ] 사람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이면서도 가장 잘 찾아가지 않는 곳, 그곳에 천국을 숨겨놓았을 거다. 그곳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천국과의 거리는 영이다. 35

[ ] 관계는 수제품이다. 수공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지는 것, 그것이 관계를 대하는 안목이다...내가 아는 관계에는 공짜도 일시불도 없다. 오늘의 관계는 오늘의 성실을 요구한다. 44

[ ] 거리를 두지 않고 거리를 준다는 것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서로에게 마음의 곡률반경과 자유로운 선택의 권한을 늘려준다는 것은 사랑의 본질을 이해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거리를 주면 관계의 너비와 둘레가 확장된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 생동하는 자유의 거리를 내준다. 당신의 원심력이 커질수록 나의 구심력도 커진다. 그리움의 힘은 믿음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50

[ ] 우리는 동사의 시대에 태어났는데 어느새 명사의 시대가 삶을 접수해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부가 배움을 잃고, 만남이 사귐을 잃고, 노동이 땀을 잃고, 삶이 쓸모를 잃어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발효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54

[ ] 자기 자신과 사귀는 법을 모르고 사는 어른이 의외로 많다. 자신의 어떤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고 어떤 감정을 보살펴야 할지 몰라 온갖 감정을 다 끌어안고 살거나, 모든 감정을 내보내버리고 감정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감정에 끌려다니며 사는 사람도 있다.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감정, 건강, 관계, 돈, 섹스, 배움, 영성의 범주에 들어가 있다. 물론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감정을 밑절미로 서로 영향을 미친다....감정은 애완견의 산책과 같다. 내가 어디로 갈지는 애완견이 아니라 목줄을 쥔 내가 정하는 것이다. 202, 203

[ ] 나와 놀아주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책 보고, 혼자 여행하고, 혼자 말하고, 혼자 사랑하고, 혼자 떠나는 일들을. 너무나 오랫동안 여럿이 하는 일에 길들여졌다. 이제는 혼자서도 나를 잘 돌봐야 한다. 잘하는 방법을 배워서 능숙해질때까지 혹독하게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 외로원도 덜 외롭다. 아름답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다. 237

2.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34

[ ] 가정과 학교의 보호 속에서 제대로 된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자신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자신이 실패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 하지만 세상은 당신과 그런 방식으로 관계 맺으려 하지 않는다....당신이 제대로 된 선택으로 시작하지 못할 것임을. 따라서 다른 길과 다른 가능성을 마음에 품은 채 느슨하게 출발해야 한다....세상은 한 번도 당신에게 단 한 가지만을 골라 그것에만 매진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83, 84

[ ]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고 어쩔 수 없이 자기만의 시간을 고스란히 지내야만 한다. 그것은 가르쳐준다고, 알려준다고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세상을 살아가며 얻게 된 소중한 경험과 이해는 오래 산 존재들과 함께 침묵 속으로 사라지고, 세상은 이 세상이 처음인 싱싱한 존재들이 장악한다. 90

[ ] 우리가 세계에 던져졌다고 할 때, 그 세계는 지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 던져졌다. 당신은 당신에게, 나는 나에게, 그래서 그것은 신비한 일이다. 왜 나는 당신이 아니라 나에게 던져졌고, 당신은 내가 아니라 당신에게 던져졌는가? 93

[ ] 자아의 내면세계에서 시간은 우리의 상식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사람은 자기만의 시간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이는 현재에 살지만 다른 이는 과거에 살고, 또 다른 이는 미래에 산다. 99

[ ]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자신의 삶을 순례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게 된다. 현실과 일상의 고통을 인내하며 자기 안에 숨겨진 내면의 빛을 키워나가는 사람들. 그들이 현실을 걷는 건 한 발 한 발이 오체투지의 눈부신 절정이다. 112

[ ] 운명이라거나 의무라거나 책임이라거나, 그런 것들은 생각처럼 무겁거나 슬픈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128

[ ] 통증은 자아와 신체가 관계 맺고 있는 방식이고, 동시에 자아와 신체는 통증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통증을 통해 비로소 내 신체의 내면을 보고, 신체는 통증을 통해 내면을 보는 나를 본다...내가 타자과 관계 맺는 방식도 넓은 의미에서의 통증인 것이다. 나와 나의 신체가 그러하듯, 나와 타인도 통증을 통해 관계를 맺고 통증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는 통증을 통해 비로소 신체의 껍질 안쪽으로 펼쳐진 타인의 내면을 보고, 타인은 통증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보는 나를 본다. 136,137 ‘이야기‘는 통증의 다른 이름이다. 139

[ ] A의 여집합: A가 진리이고 보편이면 전체이기 위해 A가 아닌 것들에 대한 제거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폭력은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회유, 유인, 강제, 억압. 이 와중에 A의 감정 상태는 흥미롭다. 분노와 연민, 우월감과 초조함. 이것은 스스로 진리 집단이 된 존재가 진리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느끼기에 적합한 감정 상태이다. 156

[ ] 자본주의는 곁과 일상의 춤과 노래, 말과 대화, 사유와 지식을 빼앗아 가고 소비자로 지위만 갖게 만든다. 160-161 네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라. 우리는 결국 놀지도 관계도 맺지도 못하고 생각할 줄도 모르는 다만 소비해야 하는 존재로 밀려나 버렸다. 163

[ ] 당신이 충분히 나이 들었다는 것은,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넘기고, 노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의 부조리와 대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이별하고, 삶의 누추함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당신이 이제야 비로소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남겨온 보석 같은 고전들을 읽을 준비가 끝났음을 뜻한다. 181

[ ] 허망함은 존재론적이고 본질적이다. 꿈은 매일 우리를 가르친다. 아무것도 없음을. 실체도, 기반도,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삶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곳과는 다른 곳에서 꿈은 또 다시 이어진다. 203

[ ] 나는 무엇인가: 내 앞에 펼쳐진 빛으로서의 세계가 곧 나 자신이라는 진실. 이 심오한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서구철학은 이를 ‘현상‘이라 부르고, 고대 인도에서는 이를 ‘마야‘라고 부르며, 불교에서는 이를 ‘색‘이라고 말한다. 240

볕뉘

1. ‘관계‘에 관한 책들을 살펴본다. 처세가 아닌 좀더 깊이 들여다보는 글들이면 좋겠는데 하다가 미덥지 못해 속는 셈치고 보자구 해본다. 보통씨와 비고츠키의 관계관련 책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도착한 두권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판단이나 사족은 당분간 미뤄보기로 한다.

2. 마저 읽다. 저자들의 사유가 책 보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낮은 별점을 준다. 관계의 물리학보다는 화학이나 생태학이었으면 더 좋겠다 싶다. 날씨나 중력, 우주에 대한 비유 역시 예상하는 수준이었음이 아쉽다. 채사장의 사유 역시 특별히 튀는 것도 없이 평이한 수준, 사유했던 비유도 겹쳤다. 여집합이나 팔라우에 대한 시도 써볼까 했지만.....그렇게 당연한 이야기들이 회자되면 좋겠다. 멀리 잔잔하게 시간에 굴곡을 갖지 않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