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그 여름

[ ] 이경은 서서히 이해하게 됐다. 수이가 자신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았던 건 수이의 그런 성향 때문이라고. 수이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에 대해 이경만큼의 생각을 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수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 것이 수이의 방식이었다. 35 수이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면서 그것이 자기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반면 이경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생각했고, 어떤 선택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했는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 후회가 더 크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36

[ ] 은지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한순간도 죄책감이나 불안함 없이 행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경은 인정했다. 은지의 말처럼 이경과 은지는 너무 비슷한 사람들이었고, 그 이유 때문에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들었지만 제대로 헤엄치지 못했으며 끝까지 허우적댔다. 누구든 먼저 그 심연에서 빠져나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순간이었다. 은지와 함께했던 기억은 하루하루 떨어지는 시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흘러가버렸고, 더는 이경을 괴롭힐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갔다. 58

볕뉘

삶의 나이테가 두터워진다. 두려워지지 않고 두터워진다라고 쓰고 있다. 어쩌면 실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 반복된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사람들 사이의 그 관계의 온도와 농도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미적지근한 온도도 때로 고맙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도, 너무 빨라 스스로 감당할 온도가 넘어서서 또 다시 추락하는 일이 두려워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단 하나의 선명한 밑줄은 그 다양한 농도와 밀도와 온도의 관계들을 수긍해낸다는 데 있다. 채근하지도 재촉하지도 않는 일. 그 다양한 결들을 살려내는 일. 그것의 우선 자신과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기도 하고 다양한 타자와 만남을 이뤄내는 일이기도 하다. 나 자신과 관계는 자신이 가장 잘 헤아린다는 점이고, 곁의 타자와 관계들을 잊지 않는다면 좀더 낫고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싶다. 많은 결들을 보이지 않지만 퀴어한 스토리의 특징있는 관계 서술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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