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1.

[ ] 당신 잘못을 버리고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마세요. 아무도 이 법원에 맞서 싸울 수는 없어요. 반드시 고백을 해야 하니까요. 다음 기회에 고백하도록 하세요. 그런 다음에야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116

[ ] 이런 방식으로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변호사의 개인적인 연줄이며, 거기에 변호의 주용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카 당신도 몸소 체험해봐서 알겠지만 법원의 말단 조직이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며, 의무를 망각하고 매수당하는 직원들이 있고, 그로 인해서 법원의 엄격한 보안 상태가 어느 정도 구멍이 뚫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대다수의 변호사들이 비비고 들어가서 매수를 하고 비밀을 캐내는 거지요./실질적인 가치는 고위 관리들과의 신뢰할 만한 연줄에 있습니다. 물론 하급 재판소의 고위 관리들과의 연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렇게 함으로써 당장은 눈에 띄지 않지만 나중엔 재판 진행에 점점 더 분명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125

[ ] 그런 것은 기껏해야 다른 피고인들에게 약간 도움은 될지언정 당사자는 항상 복수만 생각하고 있는 관리들의 특별한 주의를 끌게 되어 너무나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의를 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에 거슬려도 그저 가만히 계십시요. 이 거대한 법원 조직은 어느 정도는 항상 떠 있는 상태라는 것,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위치에서 독자적으로 무엇인가를 변화시킨다면 발붙일 곳을 잃고 굴러 떨어지고 만다는 것, 한편 그 커다란 조직 자체는 그런 사소한 장애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전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보완을 하고, 더 잘 결속되든가 더 사악하게 되는 일은 없다 하더라도 본래대로 있는 것입니다. 129 여러 가지 면에서 관리들은 어린아이와 비슷합니다. 130

[ ]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들에게 제기된 소송 절차 때문일 수 있습니다. 198 그건 변호 의뢰인이 아니라 변호사의 개였다. 208

[ ] 임무가 끝나려면 시골 사람의 삶이 끝나야 하니까 그는 결국 그 마지막까지 시골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37/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문지기에 대해 판단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는 역시 법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법에 속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인간적인 판단을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238/ 모든 걸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그것을 단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39/당신은 교도소 신부이지요...그러니까 난 법원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요구할 게 뭐 있겠습니까. 법원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이 오면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면 내버려둘 뿐입니다. 240

[ ] 그 사람들을 애먹게 하고, 항거하면서 삶의 마지막 현상을 즐기려고 애써 보았자 그것은 결코 영웅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243 난 항상 스무 개의 손을 가지고 세상에 덤벼들려고 했으며, 더구나 인정할 만한 목적도 없이 그랬던 거야. 그건 옳지 않았지. 244 아무리 확고부동한 논리라 할지라도 그것은 살고자 하는 사람에겐 저항하지 못한다...카는 두 남자가 바로 자기 눈앞에서 뺨과 뺨을 맞대고 종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개 같군.˝ 그가 말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치욕만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247


2.

[ ] 인간은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지상의 시민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지상을 활보할 수 있는 길이의 쇠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상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는 길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역시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천상의 시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지상에서와 유사한 길이의 천상의 쇠사슬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제 지상으로 가려 한다면, 천상의 목걸이가 그를 죄어올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다. 비록 이 두 세계가 양극화된 모순 속에 있지만 인간들은 그 두 세계의 통합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고, 또 그것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느끼고 있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목적과 소유 관계만을 갈망하는 키클롭스적 인간들은 어느 순간엔가 자신도 모르게 그 가능성도, 그것에 대한 동경심도 상실하고 말았다. 285

[ ] ‘세인‘으로서의 인간에게는 정신, 영혼, 사랑, 아름다움 등은 거부된다. 즉 ‘세인‘ 들에게는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 정신적인 것은 일상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카프카에 따르면 이런 ‘세인‘에게도 가끔은 꿈과 잠을 통해서 혹은 고독한 명상의 순간이나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저 망각된 정신세계나 영혼의 세계가 유령처럼 찾아온다. 286 자신의 글 쓰기는 항상 꿈과 잠, 비몽사몽의 중간 상태에서 혹은 깊은 침잠의 순간에 많은 문학적 착상을 얻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꿈이나 잠 혹은 깊은 명상은 카프카에게 있어 신비적 체험과 성찰을 낳는 순간이며 그의 시적 상상력과 직관능력을 한층 고양시키는 창작적 계기이기도 하다. 287

[ ] 변신된 갑충의 시각에서 보면, 가족들이나 직장동료들이 그에게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잠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직장생활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희생적이었으며 비인간적인 것, 폭력적인 것이었는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잠자‘는 이중의 시각으로 조망되고 이중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바로 여기에 카프카 작품의 난해성이 있다. 289

[ ] 사냥꾼 그라투스: 그라쿠스는 세계를 떠돌면서 이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 이전의 세계, 즉 정신과 자연, 죽음과 삶, 영혼과 육체가 하나였던 저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 두 세계가 붕괴되어져 간 과정을 파편화된 이야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들은 그를 ˝고의적으로˝ 회피한다. 그라쿠스는 처음에 바랐던 영혼의 세계로의 귀의를 스스로 포기한다..그는 지상적인 것에 매달려 있는 ˝세인˝들인 인간들에게 잃어버린 ˝아름다운 세계˝를 전달하려는 중재자로 남기를 원한다....그라쿠스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카프카와 같은 뜻인 까마귀를 의미한다. 290

[ ] 법 앞에서: 한 시골 남자가 법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법문 앞을 지키는 문지기는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법에로의 입장이 후에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시골 남자는 법에로 입장하기 위해서 값진 물건들을 써가며 법에로 들어가지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문지기가 하는 말은 언제나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시골 남자는 첫 번째 문지기의 무서운 외양과 태도에 질려 내부에 있는 법에 대해 전혀 물으려 하지 않은 채 그의 입장 허락만을 한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죽고 만다. (성담)

[ ] 문지기는 알 수도 없고 도달 할 수도 없는 법을 수호하는 ˝법원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법에 속해 있다고는 하나, 실상은 그들 자신도 알 수 없는 절대적인 법(그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형이상학적 종교적으로 이념, 신, 율법, 진리, 존재 등등으로 해석될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절대적인 관료주의 제도나 혹은 전체주의적 체제로, 그리고 사회철학적으로는 ‘권력과 욕망의 상관구조‘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을 전제로 했다고 생각되는 현실적인 제도나 체제에 속한, 즉 구체적인 인간 법제도에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293 요제프 K를 대변하는 인물인 시골남자(원래 히브리어로 무지자)의 법에로의 입문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알 수 없는 절대적인 법에 대해서는 완전히 망각한 채 오직 현상적인 것에만 매달려 있는 세인인 것이다. 294

[ ] 신부 말대로 문지기가 시골 남자를 속인 것이 아니라, 시골 남자가 문지기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제프가 자신의 재판 과정에 대해 묻자 ˝그대의 소송은 하급법원을 전혀 넘지 못할 것˝이라고 신부는 대답하는 것이다. 그 법이 진리이건, 율법이건, 존재의 세계이건, 신의 세계이건 혹은 초자아의 세게이건, 그것은 언제나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다. 그리고 그 법에로 이르는 길은 사람마다 작자 다 다르다. ..카프카에게 있어 진리에로 이르는 길은 언제나 각각의 개인에게만 열려 있고 또 각자의 실존적 선택에 달려 있다. 각 개인의 고유한 삶과 죽음이 있듯이 진리에로의 길 역시 각자 다른 것이다...진리의 세계는 오직 각 개인의 고유한 ‘직접적인 체험과 직관‘에 의해서만 인식이 가능하다. 295

[ ] 영원한 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을 포기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그의 잠언이 말해주듯이 저 알 수 없는 법, 저 초법적인 법에로 귀의는 인간 각자의 그 어떤 결단적인 도약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295

볕뉘.

왜 죽이거나 슬며시 잠적하게 했을까. 그래. 약간의 해답. 하지만 삶을 기울여 그 짧은 소설들 사이 행간에 부어야...그리고 그것이 책장에 적셔질 때만 제대로 읽힐 수 있다. 어쩌면 제대로 된 독해는 당신의 삶을 걸 각오가 먼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야만 아주 조금 잠적하지 않거나 죽지 않을 수도 있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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