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 산문시

[ ] 개- 방 안에는 우리 둘 - 개와 나. 밖에는 사나운 폭풍이 무섭게 울부짖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 지금 이 순간, 개도 나도 똑 같은 감정에 젖어 있다는 것을, 우리 둘 사이에는 어떠한 간격도 없다는 것을....우리 둘은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똑같이 전율에 떠는 불꽃이... 그렇다! 지금 시선을 교한하고 있는 것은 동물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서로 응시하고 있는 것은 동일한 두 쌍의 눈. 동물과 인간, 이 두 쌍의 어느 눈에도 동일한 생명이 서로를 의지하며 겁먹은 듯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 1 ] 거지 -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하고 그는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 - 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 2 ] 참새 - 어미새는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한 거다. ...그러나 그 조그만 몸뚱이는 온통 공표에 떨고 있었고...드디어 어미새는 실신하고 말았다.....나는 생각했다 - 사랑은 죽음보다도, 죽음의 공포보다도더 강하다고, 바로 그 사랑에 의해서만 삶은 유지되고 영위되어 나가는 것이다.

[ ] 검은 인부와 흰 손의 사나이 - 2년전 그 녀석이 드디어 오늘 교수형을 받는다는 거야. 포고문이 내렸어. 역시 폭동을 일으킨 게로군?..흐음....그런 그렇고, 이봐 그 녀석의 목을 맬 밧줄 조각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없을까...그게 있으면 굉장한 행운이 굴러 들어온다는 거야!

[ ] 부호 로스차일드가 그 거대한 수입 중 수만금을 할애하여 육영, 의료, 양로 등의 사업에 희사한 것을 남들이 칭찬할 때 - 나도 칭찬하고 감동한다...그러나 칭찬하고 감동하면서도 나는 가난에 쪼들리는 어느 한 시골 농부의 가정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골 부부는 사고무친의 고아가된 조카딸을 황폐한 자기 오막살이에 떠맡기로 했다....소금 없는 수프르 먹으면 돼잖아....로스차일드도 이 시골 농부를 따르려면 까마득한 것이다!

[ ] 신문기자 - 밖에 누가 매를 맞고 있군. 죄인인가 살인잔가?...그럼 도둑인가? 그럼 회계산가? 철도 종업원? 군납업자? 러시아 문예 보호자 변호사? 온건주의 편집자? 사회 봉사가?...어쨌든 가서 도와주도록 하세!.....아 신문기자가 맞고 있군 그래....신문기자? 그럼 우선 차나 마시고 보지 72

[ 3 ] 스핑크스 - 농부여, 나의 형제여, 어김없는 러시아의 형제여! 너는 언제부터 스핑크스가 되었던가....너의 오이디푸스는 어디 있느냐? 아아! 전 러시아의 스핑크스여! 농군 모자를 쓴다고 러시아의 오이디푸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슬라브주의자들)

[ 4 ] 자연 - 나는 어떻게 하면 벼룩의 다리 근육을 더 튼튼히 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거다. 자신의 적으로부터 좀더 수월하게 목숨을 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 세상의 창조물은 모두가 내 자식들이야.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똑같이 그들의 시중을 들어주고....또 똑같이 그들을 멸망시킬 뿐이지...나는 선도 악도 몰라. 이성이라는 것도 나하고는 인연이 멀고..게다가 그 정의라는 건 또 뭔가? 나는 너희들에게 생명을 주었어...나는 그걸 거둬들여 다른 생명체에게 주는 거야, 지렁이에게 주든 인간에게 주던.....94

[ ] 나는 가련히 여기노라....- 나는 가련히 여기노라, 살인자와 그 희생자를, 추악함과 아름다움을, 압제자와 학대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이 기련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가련함 때문에 살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가련함에 더하여 겹쳐드는 이 우수....내게도 부러워하는 것이 있기는 있다 - 나는 돌을 부러워한다, 돌을! 102

[ 5 ] 쌍둥이 - 차라리 이 거울 앞에서 욕설을 퍼붓게나.....어차피 자네에겐 마찬가질 테니까......하지만 내가 볼 때는 이쪽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니 말이네. 104

[ ] 둥지도 없이 - 드디어 새는 날개를 접었다....그러고는 외마디 소리를 길게 끌며 바다 위에 떨어졌다...파도는 새를 삼키고...여전히 무의미하게 철썩이며 앞으로 내닫는다. 나는 어디다 몸을 둘 것인가? 나도 바다에 떨어질 때가 온 것 아닐까 108

[ 6 ] 사랑에의 길 - 모든 감정은 사랑으로, 정열로 이끌어질 수 있다. 증오도, 연민도, 냉담도, 존경도, 우정도, 공포도 - 그리고 멸시까지도. 그렇다,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단 하나 감사만을 빼놓고. 감사는 - 부채. 사람은 누구나 부채를 갚는다....그러나 사랑은 - 돈이 아니다. 116

[ ] 소박 - 소박이여! 소박이여!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성스럽다고 한다. 그러나 성스럽다는 것은 - 이미 인간 세상의 일이 아니다. 겸손 - 이것이라면 좋다. 겸손은 오만을 짓눌러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명심하라. 바로 그 승리의 감정 속에는 벌써 오만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118

볕뉘

0. 아카데미 미학모임 텍스트를 챙겨보고 있다. 말년에 쓴 산문시들이라고 한다. 보들레르의 영향으로 썼다고 하는데 80여편 가운데 30여편을 추수린 것이다.

1. 그는 이 산문시를 한꺼번에 읽지 않기를 권한다. 조금씩 천천히 읽어볼 것을 주문한다. 그러며 어느 한 편, 한 구절이 마음에 걸릴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을 읽은 지도 한참을 지났다. 러시아의 일상이 선명히도 잡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기에 이 산문시를 읽으면서 그의 마음 깊이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술잔]이란 시에서 그가 얼마나 문장을 갈고 다듬는지...결국 황금세공사 같이 갈고 닦고 만들지만 결국 독을 마실 잔을 만들고 있다......어쩌면 산문보다 쉬이 읽힌다. 그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가져오기 위해 수 많은 삶들이나 인상을 관찰하고 다시 보고 쓰기를 반복한 듯싶다. 거기에 그이 세상을 보는 눈까지 말이다.....

2. 그는 소박이나 겸손, 감사를 모든 열정이나 감정보다 높은 반열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삶에서 실현하기 쉽지 않은 경지이다. 오히려 그 감정이 닿지 못하는 감사를 사랑과 같이, 어미참새의 새끼를 향한 갈급함처럼....그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의 시에는 사랑에의 길이 곳곳에 스며있다. 윤동주의 거지. 나는 가련히 여기노라는 백석을... 자연이란 시는 벼룩의 근육을 걱정하는데 이는 루쉰을 생각나게 한다.

3.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는 늘 [쌍둥이]를 닮았다. 서로 똑같이 싸운다. 지금 스러져가는 벼룩의 근육을 키워주지도 않고, 정의와 이성을 외친다. 그저 사멸해가는 사고무친의 조카딸을 거두는 것은 스러져가는 시골부부일 뿐이다. 이렇게 쳇바퀴를 돌며 선거는 돌고 돈다. 정당이 해주는 역할이 그저그러할 뿐인데 때가 되면 잊는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드새다. 그러는 사이 벼룩들은 간도 쓸개도 다 빠져버렸다. 자기만이 오이디푸스라고 주장한다.

4. 겸손이 오만을 짓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승리의 감정 속에는 오만이 깃들여 있다는 그 말을. 제도와 국가와 정당이 뭘 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하는 지도 모른다. 가련히 여긴다는 말. 정말 가련하다. 희망은 희망이란 말에 있지 않다. 행위에 있다는 말. 스스로 바꿀 수 없다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말. 오로지 움직이는 것에 조금 깃들여있다는 말. 투르게네프의 사랑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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