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 춤 데생 -폴발레리

[ ] 우리 눈에 아주 익은 대상까지도 그걸 그리려 하면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정말로 그것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56

[ ] 사실상 어떤 것을 그리지 않고서 그것에 대한 나의 인지를 명확히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우선 내가 인지했고 잘 알았다고 믿은 것을 눈에 띄게 변형시키는 의지적인 주의력이 없다면 그것을 그릴 수가 없다. 57

[ ] 의지를 유지시키는 것이 그림에는 필수적이다...눈은 방황하려 한다. 손은 움츠러들어 슬그머니 도망가 버리려 한다. 그림의 자유를 확실히 하려면, 그래서 화가의 의지가 그 자유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국부적 자유에 이겨야 한다. 그것은 통치의 문제다. 57

[ ] 독립된 여러 기관, 그것들 자체의 경향과 이온, 그것들의 자유자재는 모든 의지적 일에 대립된다. 그래서 그림이 가능한 한 가장 가깝게 하나의 대상을 재현하려 할 때 그림은 가장 각성된 상태를 요구하는 결과가 생겨난다. 58

[ ] 예술은 나아가고, 물러나고, 몸을 기울이고, 눈을 깜빡거리며, 자기 눈의 부수물처럼 된 몸을 움직이며, 완전히 겨냥, 조준, 수정, 정리의 기관이 된다. 59

[ ] 형태의 최고의 정확성에 도달하려는 작가가 초고를 되풀이 쓰고 퇴고를 계속하는 것처럼, 그처럼 드가는 되풀이해서 나아가고 그의 예술 작품에 대해 사후에 발표해도 될 상태에 다다랐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한없이 그의 그림에 다시 달라붙어 그걸 한장한장 다시 모방하고, 다시 모방하여 더 심화시키고, 옥죄이고, 감싼다....드가는 형태를 색이나 재료와 구분한 추상화가에 속한다. 그가 화폭에 모험을 하고, 제작의 즐거움에 몸을 맡기는 것을 싫어했으리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는 말을 불신하는 뛰어난 기사였다. 60, 61

[ ] 점 상태와 사물 상태, 혹은 대상 상태 사이에 일련의 신비스러운 조작이 개입하여, 최선을 다해 통일성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여건을 정리함으로써 모순을 해결하고, 유아 시절부터 형성된 판단을 받아들이며, 우리에게 계속성, 연결, 변화 양태 등을 강요하는데, 그것들을 우리는 공간이나, 시간, 질료, 운동이라는 명칭으로 묶어 놓는다. 그래서 움직이고 있는 그 동물을 실제 본 것처럼 상상해낸다. 63

[ ] ˝대단해요. 하지만 이 잎을 그리느라고 얼마나 한심해 했을까요. ....정말 지겨운 일었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조용히 있게.˝ 드가가 나에게 말했다. ˝지겹지 않다면, 즐겁지 않을테니까.˝ 77

[ ] 그들은 시간과 의지를 늘려가는 노름꾼들이다. 78

[ ] 나는 그림보다 더 지성적인 예술을 알지 못한다. 복잡한 외관에서 새로운 묘선을 추출해내고, 구조를 요약하고, 손에 양보하지 않고, 형태를 쓰기 전에 그것을 읽고 또 자체로 말하게 한다. 혹은 발명이 순간을 지배하며, 생각이 눈 밑에서 종이 위에 드러나는 것에 복종하고 그것으로 정확해지고 부유해지건, 정신의 온갖 재능이 이 작업에 사용된다. 그 작업에서는 그 사람의 모든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90

[ ] 생각 안 해도 그것의 실체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림에 대해서 그게 형태를 보는 태도라고 말한 드가와, 시는 말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 말라르메는 저마다 자기 예술에서 ‘그걸 벌써 발견하지 못했으면‘ 완전히 그리고 유용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요약한 것이었다. 97

[ ] 70세 때에 그는 에른스트 루아르에게 말했다.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해야 할 것에 대해 높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게 없으면 일할 필요가 없다.˝ 99

[ ] ˝그림이란 잘 모를 때면 그리 어렵지 않지. 하지만 알게 되면, 오, 그때는 다른 거야!˝ 106

[ ] 풍경에 대한 관심은 점차로 방향을 바꾼다. 행동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의 종속물로서, 풍경은 멋있는 것이 있는 장소, 몽상의 거주지, 방심한 눈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는 인상이 승리한다. 질료와 빛이 지배한다.....113/미술계에서 내가 말한 모든 것은 문학계에서도 멋진 유사성을 갖고 있다. 묘사가 문학을 침범한 것은 풍경이 미술을 침범한 것과 비슷했다. 116/ 이 대중은 세련되면 될수록, 더 나아가며 다시 말해, 내가 말한 옛날의 이상에서 더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완전인에게서도 멀어진다. 완전인은 죽는다. 117 정치, 경제, 삶의 방법, 오락 방법, 움직임의 방법이 문제될 때 나는 현대성의 모습이 정신적 중독의 그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관찰한다. 우리로선 양을 늘리거나 다른 독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게 법칙이다. 더 나아가고, 더 격렬해지고, 더 커지고, 더 빨라지고, 언제나 더 새롭다 - 그게 바로 감수성이 무뎌지는 데 대응하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가 살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 우리에게는 육체적 동인이 더 격렬하게 증가하고 계속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옛날의 예술에서 지속에 대한 생각이 맡고 있던 역할은 거의 없어졌다. 이백 년 동안 감식되도록 하는 자는 오늘날 없다고 생각한다. 117,118

[ ] 변화를 위한 변화의 악마는 많은 것의 진정한 아버지이다. 그 악마는 우리로 하여금 미를 진 속에, 진을 순수 속에, 순수를 부조리 속에, 부조리를 평범 속에 던지게 한다. 그는 세기마다, 적어도 한 세기에 한 번은 자연에의 기원이라는 큰 노래를 부른다. 120 그들 중에서 한 세기가 지나도 그 영광이 줄어들지 않은 자들은 역시 노력에의 의지, 일 자체에 대한 열정, 점점 더 단단하고 섬세한 방법의 과학을 얻으려는 열망이 무시되지 않고, 자기 시대의 오류 때문에 희생되지 않은 자들이다. 122

[ ] 나는 그에게 말했다. ˝도대체 데생이 뭘 의미하는 겁니까?˝ 그는 그의 유명한 공리로 대답했다. ˝데생은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형태를 보는 방법이다.˝ 123 예술가의 가치는 같은 방향의, 혹은 같은 경향의 어떤 불균등성에 매달려 있는데, 그것은 어떤 모습, 어떤 장면, 어떤 풍경에 관해, 어떤 사람의 능력, 의지, 요구, 도치와 재구성능력 들을 다 드러내 준다. 이 모든 것의 그 어느 것도 사물에는 없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125

[ ] 항해술의 언어나 수렵의 언어보다 더 아름답고 더 실제적인 것이 또 있으랴....왜냐하면 이 예술에서는, 아주 다양한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실행에 이르는 것만이 문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알고 있는 것이다 128/화가라면, 언제나 분절 언어의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자를 위해 그리기를 꿈꾸어야만 하리라. 아주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우리들을 찬탄 때문에 입을 다물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129

볕뉘

0. 에드먼드 윌슨 [악셀의 성] 폴발레리 편에 이어지는 독서이다. 여기서 폴발레리는 테스트씨의 작품이 초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과 연관된 작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1. 드가.춤.데생이라는 작품 속에는 드가가 얼핏 테스트씨란 작품 롤모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라는 대목이 나오긴 한다. 장 주네의 자코메티 비평보다 어쩌면 더 진솔하면서 더 시공간의 확장을 담은 예술비평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2. 위 흔적들은 평이하지만, 어떤 시선으로, 어떤 방법으로 예술이 감수성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는지, 예술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상징주의라고 폄훼하는 비평에는 그들의 삶과 예술관, 인생에 대한 논의가 빠져있다. 그들은 나름 삶을 걸었고, 작품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에게는 진정 말년이라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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