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 ] 브리세, 로트레아몽, 말라르메 등. 루셀은 내게 길을 보여주었다. 나의 정신적 도서관에는 루셀의 모든 작품을 소장할 것이다. 말라르메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동물적인 표현보다는 지성적인 표현으로, 이것이 예술이 가야할 방향이다. 나는 ‘화가처럼 바보스럽다‘는 표현은 신물이 난다. 29
[ ] 예술가의 기량과 기교, 생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상물은 캔버스 위에서 생명을 얻으며, 그것은 넓거나 좁은 의미의 ‘회화‘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캔버스 위에 있는 모든 것의 조화가 예술작품에 이르는 행로 범주에 속하게 된다. 33
[ ] 1912년에 페르낭 레제가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콘스탄티 브랑쿠시, 뒤샹과 함께 항공 공학 박람회에 다녀왔는데, 뒤샹이 친한 친구인 브랑쿠시를 돌아보며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낼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넨 할 수 있나˝라고 했다고 한다.....아폴리네르는 피카비아, 뒤샹과 함께 했던 자동차 여행 끝에 이렇게 적는다. ˝치마부에의 그림이 거리에 도열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는 루이 블레리오의 비행기를 보았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인류는 지난 천 년 동안 영광스러운 인문 과학(아카데미)의 호위를 받으며 고민해왔던 것이다. 어쩌면 마르셀 뒤샹처럼 미학적 편견에서 자유롭고 열성적인 예술가에게는 예술과 사람을 융화시키는 것이 책무일 것이다.˝...그리고 어느 면에서 아폴리네르가 옳았다. 뒤샹이 회화를 20세기 사회상의 산물로 변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1
[ ] 푸엥카레..˝과학은 사물 그 자체에 다다를 수 없다. 단지 사물간의 관계에만 닿을 수 있는 것이다...이 관계의 외부에는 인식할 수 있는 실재가 없다.˝ 뒤샹 자신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푸앵카레의 이런 생각들이 이후 작품 중심사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점부터 그가 제작한 모든 작품은 개별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마치 루셀의 동음이자처럼 서로를 반영한다. 43 나중에 그는 장난감 인형의 집처럼 펼쳐볼 수 있는 형식으로 자신의 주요 작품 여러 점을 복제해서 상자 안에 넣음으로써, 서로 근접한 맥락으로 다루고 검토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보통 완성과 함께 작품이 끝난다는 생각을 급진적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44
[ ] 그는 그림과 회화의 전통을 모욕할 만한 새로운 공식을 찾는 데 흥미가 있었다. 그는 냉혹한 염세주의였지만 자신의 아이러니를 즐겼다. 그가 술을 마시면서 보여준 모든 것을 버리려는 매력적인 태도, 그가 공들여 만들어낸 말장난, 감상마저도 포함한 모든 가치에 대한 경멸만이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 매력과 그에 대한 궁금증의 이유는 아니었다.˝ 51
[ ] ˝작가는 자신의 영혼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그 영혼은 작품으로 흡수되어야 해. 그게 중요한 거야˝ 뒤샹이 지각 없는 예술형식을 혐오했던 데서 시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볼 수 있다. 76
[ ] 섹슈얼리티는 뒤샹에게 일차적이고 핵심적인 요소였고, 그것은 20세기 초에 모든 진보적인 에술가들이 추구했던 존재의 합리성이었다. 뒤샹은 가장 진솔하게 대했던 미술사가 로렌스 스티펠에게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난, 페니스가 여자의 질에 의해 꽉 조여지는 것처럼 정신적인 문제를 움켜잡고 싶소˝ 스티펠은 다음과 같이 썼다.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뒤샹은 비애를 쾌락으로 감정을 사고로 전환하는 방법을 추구했다. 그 전환의 과정은 괴상했지만, 그 본질은 대립과 증류된 자극을 대리물인 오브제에 투영하는 ‘바꿔놓기 게임‘을 발명하는 데 있었다. 그것이 아니었으면 뒤샹은 정신적 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샹은 스티펠에게 ˝난 사실 기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오. 하지만 나 자신이나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기계를 상대하는 것이 더 나았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티펠은 ˝기계나 메커니즘이 고통받도록 만드는 것을 통해 뒤샹은 시를 연구하고 생존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뒤샹의 시는 마치 ‘행간‘처럼, 입 밖으로 말해지는 것이 아니고, 항상 형식과 아이디어, 그리고 감정을 뒤섞어서 재창조하는 과정에 존재하는 것이다. 84
[ ] 아폴리네르는 뒤샹이 ˝보편화된 지성이 아닌, 집합적인 형태와 색채, 그 지각이 아직 지식이 되지 않은 자연과 씨름하는 예술을 창조하려고 노력한다˝라고 쓴 바 있다. 93
볕뉘
0. 정작 앞에서 장황하게 언급한 뒤샹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찾아보고 있다.
0.1 외할아버지가 사업가이자 판화가였고 아버지는 공증인이었고 노르망디 블랭빌의 시장이기도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형 두명도 미술을 하였고 여동생도 회화와 드로잉을 하였다고 한다.
1. 읽는 내내 말라르메를 보는 듯했는데, 아니 오히려 더 한 것 같다. 아직도 그의 작품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은 듯싶다.
2. 푸엥카레의 코멘트처럼 이 분야도 좀더 살펴봐야할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