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실험

[ ] 카프카와 죄의식의 생산: 사회보험은 노동운동으로부터 태어났다. 진보의 빛나는 정신은 따라서 사회보험 안에 거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이 제도는 관료들의 어두운 둥지일 뿐이다.(카프카) 268 [성]의 연락비서인 뷔르겔은 말한다. ˝우리는 시간, 시간 그 자체와 노동 시간 사이에 어떤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이런 구별들은 우리에게 낯선 것입니다.˝/˝K는 행정과 삶이 이 정도로 겹쳐지는 것을 결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었다. 너무 겹쳐져서 사람들은 때때로 행정이 삶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느낄 정도였다.˝ 268 [소송]에서, 고발은 절대로 명확히 진술되지 않는다. 실업은 네 잘못이야라고 암시하려고 시도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업이라는 잘못은 모호하고 불확정적이고 부정확한 윤곽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고발은 점차 어떤 것에 대해 죄를 지었다는, 잘못을 했다는 의심과 느낌을 정착시킨다. 269 삶에 있어 실제적 석방은 단지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 표면적 석방은 사람들이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군대로, 군대에서 공장으로, 하나의 감금에서 다른 감금으로, 하나의 유죄에서 다른 유죄로 옮겨가는 규율 사회들에 속한다. 그리고 각각의 옮김은 판단/평가에 의해 표시된다. 사람들은 하나의 석방 - 너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너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등-에서 다른 서류-너는 군인이다. 너는 노동자이다. 너는 은퇴자이다 등-를 심리하는 다른 소송으로 옮겨간다. 무한한 석방유예는 반대로 결백과 유죄의 추정에 동시에 무한히 속하는 상황으로 유지한다. 271 소송의 첫 번째 단계의 무한한 연장은 끝이 없는 추적조사를 포함한다. 피고소인의 시간표와 추적조사의 시간표는 서로를 따른다. 272

[ ] 카프카, 예술, 작품, 예술가 그리고 공중: 카프카는 그의 마지막 단편소설(1924) [여가수 조제피네, 또는 쥐들의 인민]에서 마르셀 뒤샹과 원거리 대화를 시작한다. 274 쥐들의 종족은 음악에 재능이 없고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 걱정에 사로잡힌 쥐들은 ˝음악처럼 자신들의 삶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에 다다를 수 없을 것이다.˝ 조제피네는 인민 안에 음악에 대한 사랑을 유발할 줄 아는 유일한 자이다. 275 하지만 하찮은 막노동꾼들도 휘파람소리를 힘들이지 않고 내지만 조제피네는 그 소리도 간신히 내는 정도이다. 276

[ ] 호두를 깨는 것은 정말로 전혀 예술이 아니다. 아무도 공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그의 눈앞에서 호두를 깨기 위해 관객을 소집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런데도 그것을 한다면, 그리고 그의 목적에 도달한다면, 그렇다면 호두를 깨는 것만이 관건이 아니다. 아니면, 실제로 그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너무 잘할 줄 알다 보니 그것이 예술이었다는 것을 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을, 그리고 이 새로운 호두 깨기가 그것의 진짜 속성을 폭로하기 위해 출현해야만 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예술가가 우리들 대부분보다는 호두를 약간 덜 잘 깬다면, 생산된 효과는 아마도 더 클 수가 있기 때문이다. 277

[ ] 뒤샹에게서처럼 레디메이드는 ˝실재˝를 생각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정신의 기술이다. 왜냐하면, 이 이상한 휘파람 불기를 경험한 두에 쥐들은 이렇게 확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서는 전혀 감탄하지 않는 것을 그녀에게서 감탄한다.˝ 바로 보통이고 평범한 활동 안에, 모든 사람이 할 줄 아는 것 안에 낯선 자, 이방인, 친숙하지 않은 자가 거주한다. 278 조제피네의 예술은 아름답지 않고 비범하지 않고 숭고하지 않은 기술들을 통해 일상의 평범함의 시공간을 중지하면서 예술이 말, 취향, 의견, 평가로 고정되기 전에 아동기의 순수함을 향해, 아동기의 전언어적이고 전인식적인 세계를 향해 열린다. 278 비 기교와 재료의 빈약함은 공중에 대한 전통의, 저자의, 작품의 권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민주적˝ 기술들이다. 279 모든 교란은 환영이다. 바깥으로부터 온 모든 것은 노래의 순수함을 해친다. 그리고 ˝군중을 깨우는 데˝ 기여한다. 가장 평범하고 가장 보통인 활동들의 가장 작은 것 안에서 ˝비가시적인 것˝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279 그녀는 일종의 보장된 소득을 요구한다.조제피네에 따르면 노래가 초래하는 피로가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한 노동의 피로가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쥐들은 그녀가 말하게 내버려두고 무시한다. 282, 283

[ ] 조제피네가 그녀의 노래가 야기하는 피로의 ˝인정˝을 위해 여러 형태로 투쟁할 때 바로 그 대립 자체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술의 지위와 노동의 지위라는 두 개의 지위 모두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것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이고 미적인 새로운 체계의 발명을 초래할 것이다.....화자가 보기에 ‘조제피네는 쇠퇴와 잊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권위적으로 주권을 가진˝ 인민은...˝자신의 길을 계속 간다.˝..만약 우리가 우리의 해석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이 새로운 미적 실천들과 이 새로운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조건들을 통합하는 것에 대한 인민/계급의 거부가 우선은 인민/계급의 쇠퇴를, 다음에는 인민/계급의 소멸을 이끌어낸다고 확언할 수 있을 것이다. 284

볕뉘.

0. 말미 부록이다. 오히려 이 부분부터 거꾸로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올해 초 벗에게 받은 카프카 책이 떠오른다. 단편집은 살펴보지 못한 것 같은데 호기심이 생긴다.

1. 저자는 시간이 회색톤으로 균질화되는 것을 되살핀다. 그에 앞서 대부분의 삶이 저당잡혀있다는 것을 문제삼는다. 빚.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정해놓는 일상. 무섭도록 획일화된 진한 회색빛. 그 나날이다. 시간은 차곡차곡 쌓이지도,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내는 모태가 되지 않는다. 기다리거나, 여물거나, 꽃잎이 벌어지는 시간을 달리보지 않는다. 텅 빈 시간. 멍 한 시간들.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시간만을 환산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사회의 기준에는 약한자나 기울어지거나 아픈 자나 아플 자는 그 성원이 될 수 없다.

2. 희귀한 조제피네. 그녀를 위해 말을 만들어내고, 삶의 시간을 찾아내고, 무색하기만 한 행정에 그라비티를 해야할 지경일 것이다. 하물며 정치는 행정의 뒷짐을 진 채, 새로운 것이라면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바보임을 명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는 사실. 하나 하나 아둔을 풀어헤치고 다시 맞추어나가야 할 것이다.

3. 심정적인 것들이 다시 확연해지거나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더 위태로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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