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문선명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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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위키백과(http://ko.wikipedia.org/wiki/%ED%86%B5%EC%9D%BC%EA%B5%90)에서 검색해보니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간략하게 나온다.

통일교회(統一敎會)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世界平和統一家庭聯合)이라고도 불리었으며, 194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教統一神霊協會)의 이름으로 문선명이 창시한 기독교계 신흥 종교이다. 주요 경전은 성경에 기초한《원리강론》,《천성경》 등이 있다.

1954년 단체의 설립 당시 정식 명칭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였고, 세간에는 약칭 '통일교회'로 알려졌다. 한편 1994년 대한민국에서 '세계평화가정연합회' 및 1996년 미국에서 '세계평화가정연합'을 창설하여, 1997년 기존의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세계평화가정연합'과 통합하며 공식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amily Federation for World Peace and Unification)'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기존과는 상이한 교리가 많은 신흥 종교였기에 배타적인 성향의 여러 기성 개신교 종파들로부터 초반부터 이단 논쟁이 발생했으며,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기독교계에서는 논란중인 상태이다.

뭐 통일교(이후 이렇게 부르겠다)에 대해서는 많건, 적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의 통일교에 대한 첫 접촉(?)이라고 한다면, 대학교 3학년때였을 것이다(안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해야 하나?). 모 대학 인문학과에 입학한 필자에게 '북한학과'라는 생소한 분반이 배정되었고, 거기에서 1년 여를 보냈던 필자는 군대를 전역한 후 고고미술사학과로 전공을 정했지만, 예전 학과 선배에 대한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예전 과 대학 선배 중에 평화자동차 회사에 취직한 사람이 있었고, 그 선배가 북한학과의 취업 문제와 관련된 앞으로의 미래성(장래성?)을 강의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한다는 플랜카드를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자동차가 뭔지 궁금해했던 기억이 났고, 누군가 옆에서 통일교에서 북한에 평화자동차 공장을 건립하고 휘파람이라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해 줬다. IMF 당시 한국의 국교를 통일교로 정해주면 문선명이라는 총재가 한국의 부채를 탕감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라는 얘기와 더불어 말이다(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경제 관련 잡지에서 문선명 총재에 대한 기사가 있어 읽게 되었다. '워싱턴 타임즈'가 통일교 꺼라니...와우...그리고 통일교에 대한 이야기가 주욱 나왔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종교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몇년 후 친한 친구의 졸업식때 학교를 찾아가보니 바로 선문대였다. 그렇게 통일교에 대해 알게 모르게 조금씩 알아가면서 어느덧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오랜만의 휴가를 맞아 집에서 쉬면서 시원한데서 공부나 하자~는 심정으로 학교 도서관을 며칠 찾았다. 그런데 학교 앞에서 누군가가 책을 나눠주는 것이었고, 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름, 연락처, 주소를 적고 받아가라는 얘기에 별 생각없이 책을 받아서 전철에서 읽어봤다. 한 이틀 정도 전철에서만 왔다 갔다 하면서(참고로 집에서 고대역까지는 전철로 40여분 정도가 걸린다) 읽었는데, 뭐 내용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분량이나 글자가 빼곡한 것도 아니라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농담조로 "너 통일교 들어오라고 전화오면 어떡하냐?"라고 해서 '설마? 그런가?' 싶었지만, 이내 신경끄고 책장을 넘겼다.

자서전이다 보니 약간의 과장된 내용과 각색된 내용이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나 이런 사람이요~'라고 나의 잘난 점을 소개하는 것도 자서전이라면 당연한 것이니 그냥 넘어갔다. 그냥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만 살펴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문선명이란 사람을 단순히 '이단'이라는 한 단어로 단정짓고 더 이상의 평가나 비평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은 다음, 인터넷 서점 싸이트의 서평들을 보니 극과 극의 평가가 확인되었다. 심지어 김영사(출판사)가 실망이라며 거기서 나온 책을 다 버려버리고 싶다는 분부터, 잘 몰랐는데 대단한 사람이라는 평가(필자와 뭐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역시 대단하신 분이라는 사람(아마 통일교를 믿으시는 분인 듯한 냄새가 났다) 등등 다양한 평가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단한 사람, 사이비 교주 뭐 이런 식의 양분된 평가였던 것 같다. 그래서 홈페이지가 있나 해서 한번 들어가 봤더니(http://www.tongilgyo.org/), 뭐 일반적인 종교집단과 큰 차이가 없는 것도 같았다. 그것이 신흥종교집단이냐,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종교집단이냐의 차이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신교나 카톨릭 뭐 상관없이.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로서 자신만이 최고고, 타종교에는 지극히 배타적인 그런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싫고 말이다(물론 기독교 집안의 친구말로는 그런 사람은 기독교라고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기독교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하는 이상 전적으로 책임이 없다 할 수 있을까?). 그럼 천국에는 전부 기독교인들만 있단 말인가? 필자는 그동안 통일교가 기독교의 탈을 쓴, 나만이 메시아요, 내가 새로운 신이다~라고 떠드는 그런 이상한 신흥종교인데 좀 잘 나가는 것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뭐 문선명 스스로 마호메트와 같은 메시아라고 얘기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까지 잘못이거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은 모르지만 가끔 聖靈의 신묘한 이치를 깨닫고 종교활동에 전념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은가? 마치 신내림으로 무속인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통일교의 이치가 참 재미있다. 전 세계는 하나가 되어야 하며, 종교나 인종의 구분이 없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설령 지금의 시각으로 봐서는 기독교의 교리나 구조와 비슷하지만, 기독교와는 다른 오직 하나님만을 모시고 경배하는 종교집단인 셈이었다.

'흠. 정말 기성 교회집단에서 싫어할만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일단 문선명 개인의 삶은 굉장히 어렵고 고난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역경을 딛고 그는 자신의 어렸을 적 꿈인 세계 평화와 박애 등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신교 국가이자, 신교라는 독특한 신앙체계가 존재하는 일본에는 신흥 종교가 너무 많아서 하루에도 수십개가 나고 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말세기적 상황에서 몇몇 신흥종교가 크게 세를 얻어 전국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던 적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통일교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그런 모습은 크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통일그룹에는 (주)일화, (주)선원건설, 용평리조트, 세계일보 등 누구나 들었음직한 계열사들이 존재하며, UPI 통신, 워싱턴 타임즈, 뉴스 월드, 세까이니뽀 등 국제적인 언론회사들도 갖추고 있어 그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종교활동을 꾸준히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특이했다. 수익사업을 하는 종교집단이라. 불교나 대종교, 원불교, 기독교, 개신교, 이슬람교 등등 우리나라에 기존에 있던 종교집단과는 다른 형태였다. 언뜻 칼뱅(칼빈, 캘빈 등등)주의가 떠올랐다.

또한 리틀 엔젤스가 통일교와 관련되어 있는지 처음 알았으며, 북한에 평화자동차 말고 보통강호텔을 경영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브라질에 축구팀을 갖고 있는 것까지 말이다. 그나저나 구 소련의 고르바쵸프 대통령, 미국의 부시 대통령, 북한의 김일성 주석 등 정말 대단한 세계적 명사와 안면이 있고, 그들과 굵직굵직한 국제적 사건들을 벌였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소 국교 성립과 방북 후 북한의 핵사찰 합의, 펠레와의 만남 이후 창설한 피스컵 대회 등등 이 모든 것에 통일교와 문선명 총재가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사람이 이단이든, 아니든, 사리사욕을 위해서든 아니든 그가 한국사 혹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통일교에 대해서 이전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이 책을 읽은 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해서 별 4개를 주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예전에 문선명 총재에 대한 기사를 봤을때 그가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나이가 엄청 많은 지금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하루종일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거대 기업의 CEO들이 그렇게 지냈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한 종교 집단의 최고지도자의 일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바쁘고 빠듯한 일정이 아니었나~싶기도 했었다. 암튼 그의 사상이나 교리를 떠나서 그가 어렸을 때부터(아니면 적어도 청년 이상의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의 뜻을 위해 전진해 나갔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한 사람이 일생동안 이처럼 거대한 종교집단과 기업조직을 일궈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은 객관적으로 평가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와 종파, 교리와 사상을 떠나 통일교가 어떤 종교집단이며, 그 종교집단을 일궈내기까지 문선명 총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도 많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종교적인 이야기와 결부된 내용이 많다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참고로 필자는 불교이며, 타 종교에 관용적인 입장이다). 음. 이 정도면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으로는 충분한 듯 싶다. 개인적으로 사서 읽으라면 안 읽었겠지만, 우연한 기회에 좋은 책을 봤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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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로드: 사막을 넘은 모험자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4
장 피에르 드레주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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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총서의 주제는 실크로드다.
이제는 다들 아시겠지만, 또 한 번의 예비군 훈련과 함께 이 책을 완독했다.
마침 다리를 다친 덕분에 오후 훈련 열외를 할 수 있었고, 겸사겸사 책도 읽었다.
더운 날씨에 사막에 대한 내용이 나오니 더 더워졌다고나 할까?
암튼, 이 책에 대해서 몇 마디 적도록 하겠다.

일단 이 책의 원제목에 비해 번역된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사막을 넘은 모험자들...이라고 제목을 지었는데, 사실 원제를 보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프랑스 사람이기 때문에 제목은 당연 불어다.『Marco Polo et la route de la Soie』. 야후 바벨피쉬로 번역해보니『Marco Polo and the silk route』라고 한다. 즉, 이 책의 내용은 마르코 폴로와 실크로드(실크루트?)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긴이가 왜 이렇게 제목을 정했는지 모르겠다. 뭐 출판사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책의 내용과 맞지 않는 제목, 마치 독자의 관심을 확 끌만한 제목을 찾아 넣은 것만 같아서 책을 읽기 전부터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뭐랄까...독자를 기만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책의 목차를 보면 제 1장은 중국에서 로마로, 제 2장은 순례자의 시대, 제 3장 상인의 시대, 제 4장 마르코 폴로, 제 5장 선교사의 시대, 제 6장 항해사의 시대로 구분되어 있다. 언뜻 목차만 보면 상당히 재밌을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지금까지 실크로드에 대한 서적들이 국내에 적지 않게 소개되었지만, 순례자, 상인, 마르코 폴로, 선교사, 항해사 등 직업群으로 구분해서(물론 어느 정도 시기적인 구분도 이뤄졌지만) 이야기를 전개한 것은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흥미도 잠깐,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여담을 잠깐 하자면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는 항상 일관된 편집구성을 보이고 있어 상당히 눈에 익다. 맨 앞장은 컬러 도판과 함께 독자의 흥미를 끌만한 문학작품 등을 선보이고, 뒤이어 본문에는 화려한 도판들이 수도 없이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맨 뒤에 가면 흑백으로 몇몇 테마에 맞춰 문학작품이나 신문기사, 칼럼, 간단한 연구보고서 등을 자료형식으로 나열하고 끝을 맺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는데, 맨 앞에 표지에서부터 몇 페이지를 잡아먹는 부분이 모두 마르코 폴로의『동방견문록』중 일부를 인용한 내용이었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기 전 애피타이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지만, 이 책은 마르코 폴로를 소개하기 위한 책이었다. 그걸 제대로 밝히지 않은 점은 분명 잘못이라 하겠다.

제 1장에서 저자는 중국 문헌과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헌을 인용하여 아주 이른 시기 동-서양의 뜨뜻미지근한 교류 현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로마제국(大秦國이라고 불린)과 한 왕조와의 간헐적인 교류에 대해서는 이미 웬만한 실크로드 책에서 소개가 되어 있으니 스킵. 제 2장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순례자의 시대라고 쓴 만큼 이 부분에서는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불교나 네스토리우스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등등 오히려 실크로드 보다는 ‘초원의 길’을 통해 유목민족 사이에서 확산된 종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더 많았다. 엄밀히 말해 동-서양의 종교문화 교류에 있어 실크로드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을지도 솔직히 의문이었다. 현장의『대당서역기』내용이 간간히 언급이 되었지만, 혜초의『왕오천축국전』역시 당시의 종교문화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문헌인데(저자는 이 책은 언급도 안 하고 있다. 분명 이 책은 꼭 봐야할 텍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들이 모두 실크로드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때까지도 몰랐다. 그냥 제 1장과 제 2장의 내용이 조금 어설프다? 아니면 조금 모자란다? 라고 느끼고 말았다.

하지만 제 3장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짜증이 좀 났다. 저자는 신드바드의 모험과 천일야화 얘기를 살짝 언급하면서 이슬람 상인의 해상활동, 그리고 중국 남반구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무역활동에 대해 약간의 지면을 할애했다(물론 중간에 십자군 얘기도 나오고 했지만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용은 곧 마르코 폴로 이야기로 넘어갔다. 왜냐하면 이 책은 마르코 폴로에 대한 책이었으니까. 몽고 제국과 마르코 폴로에 대한 이야기가 뒤이어 제 4장에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세계를 통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몽고 제국 얘기가 계속 나오면서 마르코 폴로와 관련된 언급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마르코 폴로의 책보다 덜 알려지긴 했지만, 기욤 드 뤼브록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104쪽)’이라든가, ‘카타이는 중국과 다른 왕국이 아니다. 마르코 폴로가 얘기하는 大帝는 중국의 왕과 다른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중국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데도 타타르와 페르시아로 알려져 있다. 마테오 리지, 7세기 초(111쪽)’ 등과 같이 이야기의 주된 기준은 마르코 폴로였다.

아마 이 책에서 저자는 마르코 폴로에 대해 재조명(너무 거창한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마르코 폴로가『동방견문록』을 쓸 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전부 다 싣지 못 했으며, 기억나는 것만 전했기에(직접 경험했든, 보고 듣고 간접경험을 했든) 이 내용들의 신빙성에 대해 의심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서 성공적으로 활약한 것에 주목하면서, 그가 일개 상인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까지 원나라에서 활동했을까? 에 의문을 품었다. 물론 저자가 직접 이런 의문을 품고, 이의제기를 하면서 논지 전개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뒷부분(흑백으로 처리된 부분)을 보면 156~161쪽에 걸쳐 마르코 폴로에 대한 재조명을 의미하는 내용의 글들을 편집해서 싣고 있었다. 즉, 그는 단순한 상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교황의 사절단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는 내용들을 말이다. 그렇게 마르코 폴로에 대해 얘기를 하려다 보니 앞뒤로 시대적인 개괄이 조금씩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위와 같은 목차와 구성을 갖게 된 것이었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원제목을 다시 보니 맨 처음 언급했던 것처럼 역시나였다. 책 제목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책을 읽은 필자 자신에게 한심스러움을 보내면서 책장을 마저 넘겼다.

개인적으로는 유진 오닐이라는 사람이 마르코 폴로를 대상으로 쓴『백만장자 마르코』라는 책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162~167쪽). 마르코 폴로와 그의 아버지, 형이 교황의 서신을 들고 쿠빌라이 칸을 면담하는 내용인데, 쿠빌라이 칸 앞에서 당당히 할 말 다 하는 마르코 폴로를 영웅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실제 불가능한 일을 서양인의 눈으로 신기하고 재미있게 꾸며냈으니 당연히 인기도 많았으리라. 동-서양을 넘나드는 이야기임에도 결국에는 자기들이 보고 싶은 대로, 자기들 구미에 맞게 이런 내용들을 각색해 널리 유행시켰다는 것 자체가 조금 웃겼다. 개화기 일본에서도 포루투칼 사람들을 마치 코 큰 괴물처럼 묘사했었다는데, 고정관념 혹은 폐쇄적인 시각이 다른 문화를 얼마나 배타적으로 이해하게끔 하는지 다시금 느꼈다.

마지막으로 둔황 석굴의 고문서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실크로드를 중요시 하면서 대규모 국제학술조사가 이뤄졌다는 내용의 글을 싣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차라리 蛇足같아서 뺐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심지어는 국내 출판사에서 임의로 집어넣은 내용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별로 필요 없는 부분이었다. 번역된 제목이야 어떻든 저자가 마르코 폴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서술하려고 했다면 필요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정리 한번 해 보자.
저자는 마르코 폴로를 두고 당시 가장 많이, 가장 멀리까지 여행하면서 그 견문을 넓힌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의 관리로서 오래도록 활동하면서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얻었기에 그가 남긴『동방견문록』은 정말 주옥같은 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가 동-서 교류사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으며, 그가 남긴 영향이 적었다고 할 수도 없다. 아마 저자는 마르코 폴로를 실크로드,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동-서 교류사에 있어서 한 획기를 나눌만한 시점에 서 있는 사람으로 이해한 듯 하다. 즉, 마르코 폴로 이전의 동-서양과 이후의 동-서양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말이다. 물론 당시 몽고 제국(대원울루스와 四汗國)이라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제국이 존속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다시금 역사가 되돌아간다고 해도 마르코 폴로라는 사람이 또 있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기에 필자 역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다.

전체적으로 처음에는 멋모르고 읽었다가 중간쯤 짜증이 좀 났지만, 마지막에는 저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그 내용을 곱씹으며 즐길 수 있었던 책이었다. 실크로드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그리 추천해주고 싶지 않지만, 국내에 마르코 폴로에 대한 책이나 논고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마르코 폴로를 통해 본 당시 동-서 교류사를 가볍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이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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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남경태 옮김 / 예지(Wisdom)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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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 고고학, 역사학의 가장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저자의 솜씨가 놀랍다.
- 뉴 사이언티스트 - 

머나먼 과거가 지금 우리의 고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 흥미진진한 이 책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 네이처 - 

지난 2만 년 간의 기후 대변동의 역사를 펼쳐놓은 놀라운 책.
- 이콜로지스트 - 

감탄에 이은 감탄. 세계 유수의 과학 전문잡지들이 극찬하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기후와 문명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쓴 브라이언 페이건의 책이다. 

브라이언 페이건의 책은 뭐랄까?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그러면서 대중성에 조금 더 치우친) 고고 · 역사책이어서 늘 읽는데 부담도 없고, 재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책은 조금 더 전문성을 강조한 책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기후’라고 하는 테마는 우리 주변에서 책으로 상당히 많이 다뤄지고 있는데(교보문고 싸이트에서 기후를 검색하니 1,500여 건이 검색된다), 그 중에는 기후가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개설서도 물론 있지만 기후 변화와 온난화, 인간사회와 기후와의 관계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이 주로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자연지리와의 상관성이 중요함은 재삼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며, 그 중에서 특히 기후와의 상관성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브라이언 페이건의 이번 책은 기후와 문명, 더 나아가 기후와 인간사회의 역사가 어떤 관계 속에서 유지되어 왔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몇 가지 충고성 멘트를 계속 남기고 있다(특히 360~364p에 있는 내용들은 상당히 충고성이 강한 내용들이다). 예를 들면 지금의 기나긴 온난화가 인류 문명 발달의 좋은 배경이 되고 있지만, 곧 기후가 변화하면 인류 문명은 이에 잘 대처하지 못 하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의 인류 문명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자그마한 나룻배가 아니라 거대한 유조선이기 때문에 거친 풍랑에 휩쓸리면 오히려 더 쉽게 난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개인적으로 이 비유 참 괜찮은 것 같다). 그래서 지난 인류 역사에서도 거대한 유조선처럼 몸집을 불린 문명들은 모두 그 한계점을 넘지 못 하고 멸망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또한 조금 더 나아가 현재 인류 문명 역시 지난 문명들처럼 될 것인지, 아닌지 혹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는 뭐 그런 바람까지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 재밌는 것 하나는 지구 온난화, 혹은 지금의 이상 기후가 인류 문명이 뱉어내는 나쁜 것들(환경오염과 관련된)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 식의 내용이었다(물론 상관은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고 말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환경오염과 관련된 가벼운 토론이 있었다. 인간의 환경오염이 지금의 이상기후, 기상이변 등과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뭐 한쪽은 인간의 환경오염이 지금의 기상이변을 야기했다, 다른 한쪽은 그것과 상관없이 지금까지의 기후 변동주기에 맞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뭐 이렇게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을 간략하게 적자면,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이 분명히 지금의 지구를 병들게 하는데 일조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의 엄청난 자정능력을 살펴봤을 때(얼마 전 히스토리채널에서 방영한 ‘인류 멸망, 그 후’라는 방송을 봤는데 지금의 인류가 멸망하고 1만년만 지나면 인류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질 정도란다), 오히려 지금의 지구온난화라든가, 라니뇨 · 엘니뇨 등의 기상이변은 늘 그래왔듯이 지구의 기후 변동주기와 맞춰 벌어지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프레드 싱거 · 데니스 에이버리가 쓴『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일본 뉴턴프레스의『지구 온난화』, 로이 W. 스펜서의『기후 커넥션』등을 보면 더 자세한 지식들을 알 수 있는데 뭐 지금 이 책과는 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도록 하겠다(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사족이 너무 길었는데, 사족 몇 개만 더 달고 이 책에 대해 몇 마디 더 적도록 하겠다. ^^ 

최근 한국학계(고고학계나 역사학계 모두)에서도 기후나 천체와 관련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고고학계야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변동을 문화전파(특히 농경문화), 유적의 입지 등과 설명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역사학계에서도 암각화에 새겨진 문양 등을 외계충격설이라는 이론과 맞물려 해석하는 일이 얼마 전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로 넘어오는 선사시대에 생업경제가 바뀌고, 주민이 바뀌고, 그에 따라 주거지의 형태나 입지, 사회구조 등이 바뀌는 이유를 지형 및 기후의 변화와 찾으려는 연구자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에서는 ‘古環境 복원’에 적지 않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실제 발굴을 통해서 그러한 연구 성과들이 입증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지금 모두 개간되어 논으로 사용되는 땅도 그 아래로 5~6m 이상 파 내려가면 구석기시대 이래로 자연스레 형성된 고지형에 맞춰 형성된 취락유적이 존재할 수 있으며(현재 행복도시 대평리에서 그러한 대규모 취락유적들이 속속들이 확인되고 있다. 지금의 땅 밑으로 최대 7m 이상 파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구릉 혹은 강이었는데 지금은 지형이 변화되어 있을 것 같지 않은 유구들이 확인되는 경우가 있다. 이 모두 지리학적인 개념과 이론을 고고학에 도입한 것인데, 그 결과는 충분히 만족할 만 하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필자 역시 최근 기후 혹은 고지형에 대해 이전보다 관심이 많이 늘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어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래서 필자의 서평을 읽은 분들 중 몇몇은 이 책을 읽고 필자처럼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하는 강제 아닌 강제적인 바람도 든다. 

그럼 이제 정말 본론으로 넘어가서 지루한 사족을 마무리 짓도록 하자. 

책 첫머리를 보면 ‘옮긴이의 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역사를 움직이는 진짜 힘’ 정말? 기후가 정말 그렇단 말인가? 옮긴이는 그렇게 쇼킹한 얘기를 하나 한다. 지금은 바다인 ‘흑해’는 당시에 ‘에욱시네’라는 이름의 호수였단다. 이 에욱시네는 원래 빙하가 물러난 자리에 생겨난 호수인데 전 지구적 온난화에 따라 빙하가 멀리 북쪽으로 물러가면서, 호수로 유입되는 물의 양이 점점 줄어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호수 바깥족의 물, 지중해의 수위는 온난화에 따라 점차 높아지게 되었고 결국 지중해의 수위보다 에욱시네 호수의 수위가 150m나 낮아졌을 때 마침내 둑이 터졌다. B.C 5,600년경에 지중해의 물은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저지대로 흘러넘쳐 흑해로 들어갔고, 양자의 수위가 같아질 때까지는 무려 2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 2년간의 인류의 기억이 곧 고대 세계 각지에 퍼진 대홍수 이야기의 모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잉?! 이런 쇼킹한 일이?!’ 뭐 여기에서 그럼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도 그 당시 우연히(!) 발생한 이러한 기상이변이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구의 무시무시한 힘이 인간의 기억인자 속에 엄청난 공포를 안겨줬고, 그것이 종교적으로,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이제 브라이언 페이건이 어떤 말을 했는지 살펴보자. 그는 책 첫머리에서 ‘기후에 관한 소중한 기억’이라는 문구로 운을 떼고 있다. 그리고 ‘취약성의 문턱’이라는 내용을 짧게 서술하고 본론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취약성의 문턱’이라...앞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는 비유를 언급했는데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저자는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한 급속한 도시화와 문명의 탄생(한때 메소포타미아의 너무 빠른 문명화와 도시화를 두고 외계인의 소행이라고까지 떠들었다. 이집트도 마찬가지고)은 기후 덕분이었다. B.C 6,000년경 홍수가 빈번하고 강우량이 많았던 시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수많은 촌락이 생겨났고, 그것들은 곧 수천 명 규모의 주민이 사는 도시로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했다. B.C 3,600년경 기후가 변화하면서 변화 양상은 더 가속화되었으며, B.C 3,100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각 도시국가들은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리고 B.C 2,200년경 북쪽지역이 화산이 폭발하면서 이후 300여 년간 기나긴 가뭄이 시작되었다. 비는 내리지 않고 강은 범람하지 않았다. 비옥한 평원은 사막으로 바뀌었으며, 도시 경제는 붕괴되고 유목민의 침입이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를 무너뜨렸다. 도시국가 우르는 붕괴되었고, 도시에 살던 사람은 도시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작은 촌락단위로 살던가, 고지대로 피하던가, 굶어죽던가...). 저자는 얘기한다. 생존에서 중요한 것은 ‘규모’라고 말이다. 우르는 대도시였기 때문에 혹독한 가뭄의 파급 효과로 인해 꼼짝없이 대규모 탈주와 기근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며, 적응이나 회복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붕괴했다고 말이다. 소규모 재앙은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커졌지만 그만큼 대규모 재앙에 대해서는 더 취약해졌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취약성의 문턱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리고 덧붙인다. 우르가 작은 무역선이라면 오늘날의 산업문명은 대형 유조선이라고 말이다. 점증하는 자연재해에 대해 문명 역시 취약성이 점증하고 있다고 말이다.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이런 경고(?)는 그간 많이 있어왔으며 그에 대한 상상도 어느 정도 이뤄졌던 것 같다. ‘2012’라는 재난영화가 얼마 전 개봉해서 화제가 됐었는데, 그때 인류 문명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정치체가 멸망하고 수십억의 인구가 사라지는 대신 5개(7개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의 방주(우주선같이 생긴)만 남겨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방법을 택했다. 즉, 우르의 붕괴와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방법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 밖에 ‘더 로드’, ‘일라이’와 같은 인류 멸망 이후의 상황을 그린 영화를 보면 거대한 정치체(국가)가 사라진 다음, 인류 문명은 소규모 촌락을 중심으로 아옹다옹 권력을 탐하며 유지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양태만 달랐을 뿐, 과거에도 문명이 붕괴될 때마다 이런 현상은 계속 됐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렇게 무서운 말 같다는 생각은 안 들게 되었다. 암튼 책을 읽으면서, 혹은 책을 읽기 전이나 후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 잡생각이라면 잡생각일 수 있겠지만 암튼 그만큼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목차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빙하기의 오케스트라 / B.C 18,000~B.C 13,500년
신대륙 / B.C 15,000~B.C 11,000년
대온난화 시기의 유럽 / B.C 15,000~B.C 11,000년
천년의 가뭄 / B.c 11,000~B.C 10,000년
대홍수 / B.C 10,000~B.C 4,000년
가뭄과 도시 / B.C 6,200~B.C 1,900년
사막의 선물 / B.C 6,000~B.C 3,100년
엘니뇨, 대기와 대양의 춤 / B.C 2,200~B.C 1,200년
켈트족과 로마인 / B.C 1,200~B.C 900
대가뭄 / A.D 1~1,200년
웅장한 잔해 / A.D 1~1,200년
부록 : 1,200년~현대 : 불안한 지구의 여름 

빙하기와 간빙기가 거듭되면서, 온난화와 홍수, 가뭄과 온난화가 되풀이되는 지구의 역사를 저자는 약 300여 쪽에 달하는 분량 안에 잘 정리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단 몇 줄에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만, 세부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B.C 16,000년 마지막 빙하기가 지구를 찾아오고, 이후 B.C 11,000년 영거 드리아스기(많이 들어봤을 것이다)가 찾아오기까지 지구는 급속하게 온난화된다. 유럽에 숲이 확산되고, 시베리아 북동부까지 구석기인이 확산된다. 아메리카 대륙에 최초로 인류가 거주하게 되고, 프랑스 니오에서 동굴벽화가 확인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이후 영거 드리아스기를 넘어서면 다시 온난화가 재개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농경이 시작되고, B.C 9,000년에는 예리코를 건설하고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다. B.C 6,000년경에 소빙하기(한랭건조)가 잠깐 찾아오지만 이내 지구는 온난 다습화되고,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 싹트게 된다(예전에 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문명이 그렇게 빨리 발생했을까? 에 대해 고민하다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를 보고 어느 정도 해소가 됐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한층 이해가 쉬워졌다). 여기까지는 뭐 기존에도 이미 알려진 내용이고, 더 새로울 것이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하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이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일단,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넘어가고 히타이트와 제국 이집트에 대한 설명, 미케네와 그리스에 대한 설명은 참신했다. 히타이트가 그렇게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음에도 순식간에 붕괴되어 멸망해버릴 수밖에 없던 이유와 파라오의 권위가 점점 위축되고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일대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등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주로 정치적인)의 나열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다른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어 그런 부분들이 읽는 내내 필자를 흥분하게 했다. 이러한 집필 방식은 뒤로 갈수록 필자를 더욱 빠져들게 했는데, 평소 쉽게 접하지 못 했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이야기에서 빛을 발했다. 푸에블로 인디언에 대해서는 소략하게 밖에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마야 · 잉카와 같은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의 白眉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저자는 과감히 말한다. 마야인들의 근거지는 혹독한 환경으로서 마야 농부들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고. 그 지역은 숲을 개간하면 땅바닥이 드러나 빗물을 받을 수는 있었으나 열대의 강렬한 햇빛을 같이 받았으며, 그렇게 드러난 지표면은 금새 거북등처럼 갈라져 경작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순간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봤던 갈라지고 푸석푸석해서 마른 먼지만 나풀거리던 메마른 경작지가 떠올랐다(어떤 미친 어린 소녀가 예언을 하는 장면). 하지만 마야 농부들은 그러한 기후와 지리를 극복하고 이후 1500년 동안이나 번영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 고왕국시대의 이집트, 인더스 강 유역의 하라파보다도 더 오래 말이다. 이러한 마야의 번영을 기후에 대한 설명 없이 일반적인 문명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혹은 군사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마야 문명이 갑자기 몰락한 것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단연코 아니라고 하고 있다. 마야 문명은 결국 취약성의 문턱을 넘어서 그만 붕괴되고 말았다. 자연재해를 극복하고 가뭄이나 기아를 극복할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아주 먼 과거의 거대 제국의 종말을 이처럼 제3자의 입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가 그런 심정을 다시금 느꼈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느낌은 예전에『총, 균, 쇠』를 읽으면서 한번 느꼈다. 사정이 있어 그에 대한 서평은 아직 못 올렸지만 이 부분은 그만 스킵!).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고고학 이외에도 다양한 인접 학문(천문학, 기후학, 지리학, 역사학, 금석학, 인류학을 비롯한 각종 자연과학적 분석방법)의 인용이다. 브라이언 페이건이 이 모든 연구를 혼자 일궈내 책을 쓴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일관된 주제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작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하게 해석을 하면서도 늘 최종 종착점은 하나다. 즉, 지난 수천 년의 인류사는 지구라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했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간간히(정말 간간히) 제시되는 각종 지도들도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뭐 그러한 시각자료가 별로 없다는 점이 이 책의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지만, 반대로 딱히 어려운 표나 그래프 따위를 잔뜩 실을 요량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필자의 관심사가 이쪽으로 쏠려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요즘 들어 읽은 책 중에서(그것도 전공서적 혹은 전공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볼만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잘 안 하는 추천도 곁들이면서 이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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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삶과 죽음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
이브 코아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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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지나 올해에도 어김없이 예비군 훈련은 돌아왔고, 건빵 주머니 한켠에 잘 담아갔던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를 또 한 번 펼쳐봤다. 3권은『고래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인데 고래에 대한 백과 사전류의 책임이 짐작되었다. 그런데 첫 장부터 참 재밌다. 저자는 나다니엘 필브릭의『바다 한가운데서 : 포경선 에식스 호의 비극』이라는 책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유명한 ‘백경’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을 그리고 있는 책이었다. 19세기 초반 미국은 포경산업으로 큰 호황을 이뤘는데 그 중심에 낸터킷 섬이 있었다. 1820년, 낸터킷 섬의 포경선 에식스호가 21명의 선원을 태우고 출항했다가 이듬해 태평양 먼 바다에서 성난 향유고래에 받혀 난파하고, 그 후 근 100일간의 사투 끝에 단 8명의 백인 선원만이 구조되었는데 저자는 책 첫머리를 이 이야기로 시작했다. 

책 첫머리에 기록된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고래 사냥의 위험성과 바다라고 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공포와 두려움이 잘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첫 장은 바로 ‘고래의 전설’이다. 고래의 거대한 몸집은 사람들에게 항상 두려움과 경외심을 안겨줄만한데 이는 마치 코끼리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우리가 흔히 상상(想像)이라고 하는 것 역시 코끼리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저자는 성경의「시편」과 플리니우스의『박물지』등을 언급하며 고래가 아주 오래전부터 상상 속의 생물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에스키모와 노르웨이인, 북아메리카 인디언, 바스크인과 일본인들 고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고래를 어떻게 사냥했는지 등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래에 대해 언제부터 인식하고 있었는지, 고래 사냥은 언제부터 제대로 했는지(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 사냥에 대한 내용이 있으니 이른 시기부터 했겠지만, 역사시대 이후에도 그랬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궁금해졌다.

이후 저자는 고래 사냥, 즉 포경 산업의 역사에 대해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얼마 전 종이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숲을 파괴하는 거대 제지회사들의 횡포를 책으로 읽어 자연파괴가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는지 절실히 느꼈는데, 이번에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사라져 갔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9세기부터 바스크인들은 고래 사냥을 시작했지만, 점차 도를 넘어서는 사냥으로 인해 고래들은 예전에 자주 찾던 바다를 찾지 않았고, 포경 산업은 점점 더 조직적으로, 더 원양해양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19세기가 되면서 포경 산업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나다니엘 필브릭의 소설 속에 나오는 낸터킷 항과 뉴베드퍼드 항이 이 당시 떠오르는 포경산업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될 공간적 배경이었다.

전반부에서 고래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포경 산업에 대한 개략적인 역사를 서술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약간 생활사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제5장에서 저자는 포경선원의 생활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었는데, 문화사적인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어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아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자는 사학과 민족학을 연구했으며, 현재는 어로 기술과 전략 어촌의 관습 등이 어촌의 사회, 경제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즉, 단순히 고래에 대한 연구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니었으며, 역사학과 민족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고래가 나오는 여러 문헌들을 검토하고 그에 대한 전설과 사람들의 인식을 1장에서 소개한 다음, 고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고래 사냥이 어떤 식으로 전개됐는지 순차적으로 나열한 것이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쓴 글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제5장을 보면, 고래 사냥이 큰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사업이지만 그만큼 목숨 걸고 덤벼들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수년간 이어지는 바다 위에서의 생활, 향유고래와 같은 공격성이 강한 육식고래와의 사투, 생사를 알 수 없는 하루하루, 비위생적이면서 건강을 쉽게 해칠 수 있는 생활, 고독함과 외로움 등등 저자는 고래 사냥이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6장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바로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1864년 바다표범의 명사냥꾼이었던 노르웨이의 스벤드 포윈 선장은 포를 이용해서 사정거리 50m 이내의 고래를 공격할 수 있는 작살을 고안해 냈다. 이 혁신적인 방법은 고래 사냥에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켰는데, 작살이 고래 살에 박히면 작살 끝이 별 모양으로 깨지면서 그와 동시에 황산을 채운 작은 유리병이 깨지고 이어 화약에 불이 붙어 그 폭발로 인해 고래가 죽게 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때까지 덩치도 크고 너무 빨리 잡지 못 했던 대왕고래들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19세기 말에는 노르웨이의 포경기업 5개 사가 아이슬란드에 설립되었는데, 하나의 포경기지에는 200~300명의 인원이 고용되어 이전 시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조직적으로 고래 사냥을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남극에서의 고래 사냥이 재개되고, 엄청난 수의 가공선(포경선과 공장선을 포함하여)이 개발되어 아예 정박지에서 조업을 계속 함으로써 고래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게 되었다.

국제 포경위원회에서는 오늘날 고래 포획 할당량을 정해 놓고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양떼를 지키는 늑대’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회원국의 대표들은 대개가 포경회사의 대주주들이기 때문이다. 즉, 위원회는 고래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관리할 뿐이지, 진정으로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그린피스에서는 이 위원회를 국제연합 환경계획기구의 관할 아래 두고, 책임감 있는 과학위원회로 대체할 것은 제안하기도 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은 것 같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역시 참고래를 매년 160마리씩 잡겠다고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야 우리나라에서도 고래 사냥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이 책의 초판 1쇄가 1995년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예전 내용이 바뀌지 않고 계속 실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필리핀 같은 국가에서는 과학적인 포경을 계속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한다(연구를 목적으로 잡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많이 잡을 필요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즉, 고래들의 운명은 앞으로도 그렇게 밝지만은 못 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고래에 대한 여러 소설 작품이나 고래에 대한 국제기구의 대응, 고래의 종류 등을 설명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고래라고 하면 일반인과 쉽게 접하기도 어려운 동물인데다가 그들의 삶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이렇게 책을 통해서 보니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자연이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는 생각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포경 산업의 역사와 현주소를 살펴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백만 마리의 고래들이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다니 말이다.

고래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 것뿐만 아니라 포경 산업에 대한 진실을 깨우쳐줬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우리 주변의 자연 환경이 자꾸 변화를 겪고 파괴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그런 시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지극히 만족스럽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아!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늘 그렇듯이 다양한 도판과 삽화들이 실려 있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던 독자들도 책을 읽다 보면 흥미를 갖고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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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 종이, 자연 친화적일까? 세계를 누비며 밝혀 낸 우리가 알아야 할 종이의 비밀!
맨디 하기스 지음, 이경아 외 옮김 / 상상의숲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전공서적 이외의 좋은 책을 읽어 기분좋게 서평을 하나 쓴다.

이 책은 종이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 버려지는 과정, 다시 수집되어 재활용되는 과정은 물론이요, 그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집단, 종이로 인해 변화하는 세상 등등 종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종이야말로 엄청난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종이 1장, 1장이 탄생하기까지 정말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하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인 맨디 하기스는 토지와 산림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전 세계의 숲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다. 그리고 2006년 1월 스코틀랜드를 출발해 핀란드,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과 북미 전역의 종이 생산지들을 여행하면서 직접 목격하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해 이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도 대단하게 느꼈지만, 저자가 밝히는 사실 하나하나가 정말 충격적이어서 전혀 딴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 인류의 먼 조상은 기록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 꿈과 희망을 품었고, 먼 후손은 그 기술을 지금까지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후손의 지혜는 조상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

대체 종이가 어떻기에 이렇게 현대인의 미련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했을까? (사실 플라스틱이나 일회용 용기 등에 의한 환경파괴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이 접했지만 종이는 처음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이미 책을 읽기 전부터 이 책에 완전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종이라고 하면 채륜이라는 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한때 중국에서 처음으로 종이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기원전후에 중국에서는 종이를 만들어 썼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에 채륜은 당시 더 좋은 양질의 종이를 생산한 사람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싶다(저자는 이 책에서 종이를 처음 나든 것은 인도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했지만 일단은 상식적인 선에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암튼 그렇게 만든 종이는 이후 글자의 사용과 함께 이후 수천 년간 도래할 중국의 관료 제도를 발전시키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가 이끄는 당군이 패함으로써 중국의 제지기술은 유럽으로까지 전파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는 수제품이었던 종이가 이제는 최첨단 기계식 설비를 갖춘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주변에서 엄청나게 많이 소비되고 있는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당장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의 책상 위에는 종이로 만든 ‘책’과 종이로 만든 ‘다이어리’, 종이로 만든 ‘휴지’, 종이로 만든 ‘연필통’, 종이로 만든 ‘봉투’와 ‘논문’, 종이로 만든 ‘상자’ 등이 놓여 있다. 어느 것 하나 종이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다보니 종이는 너무 흔해서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물품이 아닐까 싶다. 마치 평상시에는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종이 때문에 전 세계의 숲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상당히 분개하고 있고, 또 온 열정을 다해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문장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차근차근, 이성을 잃지 않고 조목조목 종이산업의 음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었다. 이는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1장 종이의 과거와 현재
2장 얼마나 많은 종이를 쓰고 있는가?
3장 세계의 종이 산업
4장 얼마나 많은 나무로 종이를 만드나?
5장 벌목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6장 나무농장은 숲이 아니다
7장 종이는 기후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
8장 종이는 천연제품이 아니다?
9장 종이의 미래, 희망적인가?  

1장에서 종이가 어떤 것인지 간단히 언급한 저자는 2~4장에 걸쳐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종이가 소비되고 있으며, 그 종이 사용량을 감당하기 위해 다국적기업이 얼마나 많은 파괴를 자행하며 종이를 생산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1톤의 종이를 만들기 위해 3톤의 나무가 파괴된다는 대목에서는 필자도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나머지 2톤의 나무는 그냥 연료로 소모되고 마는 것인가? 전 세계의 나무를 다 잘라버리면 그 1/3에 해당하는 종이밖에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종이는 순식간에 만들 수 있지만 나무는 수십 년 혹은 100년 이상을 자라야만 그 거대한 풍체를 자랑하지 않는가? 그럼 정말 그 나무를 잘라 종이를 만드는 것이 이로운 것일까? 정말 엄청난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도 모른 채 그렇게 만들어진 종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 저자는 벌목지에서 행해지는 무차별적인 벌목에 분개하고 또 분개한다. 1~4장에 대한 내용은 어느 정도 필자가 예상하고, 또 인식하고 있었던 내용이라면 5~8장은 전혀 몰랐던 내용이어서 색다른데다가 놀랍기까지 했다. 전 세계의 원시림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곳이 러시아의 타이가 지역과 캐나다뿐인데, 그곳마저도 최근에는 거대 자본을 앞세운 다국적기업이 진출함에 따라 나무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경우, 예전에는 적정 수량만 벌목하는 식으로 꾸준히 일정 규모 이상의 숲을 보존했었는데, 최근에는 전부 벌목해버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캐나다의 파괴적인 벌목 역시 저자는 소리 높여 규탄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나무농장은 숲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였지? 했는데 실상을 알고 보니 그동안 필자가 알고 있던 상식이 엄청나게 잘못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00년엔가? 한솔제지와 같은 국내 기업들이 해외의 다른 기업들과 경쟁적으로 성장하면서 동남아시아에 해외조림지를 확보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회사의 사장 사진이 박혀 있었고, 이제는 나무를 베기만 할 것이 아니라 심으면서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갖춰야만 한다는 식의 인터뷰를 잔뜩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그딴 것(!)들이 다 필요 없는 짓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기업들은 펄프를 생산하기 위한, 더 효율성이 높은 나무만을 의무적으로 심고, 어느 정도 자라면 잘라 내버리기 때문에 그 안에는 숲이 조성될 수 없고, 단순히 나무가 자라는 농장만 형성될 뿐이라고 말한다. 즉, 다양한 나무들이 공존하며 천연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등의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숲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많은 원주민들의 삶 역시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읽으면서 정말 아차! 싶었다.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카시아 나무의 무차별적인 생장속도를 언급하고 있었다. 펄프를 만들 때 유용한 아카시아 나무를 만들면서 조림지 이외의 생태계까지 바뀌고(더 정확히는 파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가시도 많고 뿌리도 질긴 아카시아 나무는 국내에서도 산에 나무를 늘린다고 잔뜩 심어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종종 무덤을 파괴하거나 무덤 주변의 경관을 헤쳐서 문제가 많이 되고 있다. 필자 역시 성묘를 하러 가면 아카시아 나무 때문에 애먹은 적이 많아 저자가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말한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가 사라지면서 기후가 바뀌고, 종이를 만들면서 나오는 엄청난 화학 폐기물들이 공기와 물, 그 터전에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을 병들게 하며, 종이를 폐기시킬 때도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지출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지공장에 가 본적이 없는 필자로서는(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종이라고 하면 한지를 제작할 때, 그 풍경을 기억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필자를 꾸짖듯이 말한다. 펄프 폐수는 엄청난 환경파괴를 야기하며, 종이는 천연제품이 아닌 순수한 ‘화학공학’의 산물이라고 말이다. 갈색 나무에서 하얀색 종이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겠나? 간단하다~눈부시게 하얀 종이를 만들기 위해 염소 표백을 하면 되니 말이다. 아마 8장까지 읽으면 독자는 암담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언제 지구가 종이 때문에 엉망진창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질지도 모르고 말이다. 거대 다국적기업의 욕심은 끝도 없을 테고 원시림은 더 이상 남아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순간 요즘 인기리에 상영 중인 <아바타>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숲을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숲을 파괴하고 개발하기 위한 사람들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9장에서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말이다. 그것은 종이를 적게 쓰고 아껴 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으니깐 재생 종이를 많이 사용하자는 말을 한다. 재생종이 하면 아마 대부분 기억날 것이다. 갈색 빛깔이 뻣뻣한 종이를 말이다. 화장지에서도 쓰기 힘든 그런 재질의 종이. 물론 필자는 고전적인 그런 종이들이 좋아 가끔 재생종이로 만든 노트를 일부러 구입해서 쓰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희고 매끄러운 종이를 사용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저자는 재생종이 제작 기술이 계속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편견은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재생 종이에 대한 인식이 자꾸 좋아져서 재생종이 시장이 더 커져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범국민적인 인식의 변화는 특정 법규로 제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재생종이로 찍어 판매한 몇몇 사례를 들기도 했다. 이는 단 1명의 사람이 세상을 바꾼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예전에 어떤 영화를 봤는데 한 아이가 주변에 있는 3명의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고, 그 각각의 사람이 또 3명씩에게 좋은 일을 하자 결국 전 세계 사람들이 서로서로 좋은 일을 하면서 행복해졌다는 식의 내용이 나온 것이 기억났다. 나비효과처럼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한 일은 때때로 큰 결과물을 갖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생종이 사용을 장려하는 것 이외에도 종이 외적인 기록수단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 역시 저자는 추천하고 있다. 이메일과 같은 전자통신수단이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런 규제를 아무리 새롭게 정비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 역시 빼놓지 않고 있었다. 필자도 가끔 쓸데없이 출력해놓고 읽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있었으며, 글을 쓰면서 수정할 부분을 찾기 위해 비슷한 내용을 여러 번 출력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무관심한 부분들에 대해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책은 활자도 크고, 중간에 사진도 들어가 있는데다가 문체 자체가 저자가 여행하면서 겪은 것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기 때문에 읽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다. 260쪽이 넘는 책을 1시간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읽었으니 아무리 집중력 있게 읽었다 하더라도 쉽게 읽히는 책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교훈적인 내용과 필자를 훈계하는 내용이 가득한지라 더 긴장해서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목차나 내용, 구성 등등 짜임새 있게 잘 쓰인 책이구나~하는 생각이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필자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만 필자가 언급한 현장을 찍은 사진들을 책 중간 부분에 한데 모아 놓지 말고 그 내용이 있는 부분에 바로바로 소개해줬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할 만한 현장 방문이라면 분명 사진도 많이 찍었을 텐데 왜 사진이 1장도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뭐 결국 중간 부분에 사진이 왕창 모여 있어 기억을 더듬으며 그 사진의 내용을 곱씹어볼 수 있었긴 했지만 말이다. 그것 말고는 전반적으로 미흡한 부분들은 없었던 것 같다.

종이 1장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품은 다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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