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삶과 죽음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
이브 코아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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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벌써 1년이 지나 올해에도 어김없이 예비군 훈련은 돌아왔고, 건빵 주머니 한켠에 잘 담아갔던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를 또 한 번 펼쳐봤다. 3권은『고래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인데 고래에 대한 백과 사전류의 책임이 짐작되었다. 그런데 첫 장부터 참 재밌다. 저자는 나다니엘 필브릭의『바다 한가운데서 : 포경선 에식스 호의 비극』이라는 책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유명한 ‘백경’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을 그리고 있는 책이었다. 19세기 초반 미국은 포경산업으로 큰 호황을 이뤘는데 그 중심에 낸터킷 섬이 있었다. 1820년, 낸터킷 섬의 포경선 에식스호가 21명의 선원을 태우고 출항했다가 이듬해 태평양 먼 바다에서 성난 향유고래에 받혀 난파하고, 그 후 근 100일간의 사투 끝에 단 8명의 백인 선원만이 구조되었는데 저자는 책 첫머리를 이 이야기로 시작했다. 

책 첫머리에 기록된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고래 사냥의 위험성과 바다라고 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공포와 두려움이 잘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첫 장은 바로 ‘고래의 전설’이다. 고래의 거대한 몸집은 사람들에게 항상 두려움과 경외심을 안겨줄만한데 이는 마치 코끼리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우리가 흔히 상상(想像)이라고 하는 것 역시 코끼리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저자는 성경의「시편」과 플리니우스의『박물지』등을 언급하며 고래가 아주 오래전부터 상상 속의 생물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에스키모와 노르웨이인, 북아메리카 인디언, 바스크인과 일본인들 고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고래를 어떻게 사냥했는지 등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걸 보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래에 대해 언제부터 인식하고 있었는지, 고래 사냥은 언제부터 제대로 했는지(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 사냥에 대한 내용이 있으니 이른 시기부터 했겠지만, 역사시대 이후에도 그랬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궁금해졌다.

이후 저자는 고래 사냥, 즉 포경 산업의 역사에 대해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얼마 전 종이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숲을 파괴하는 거대 제지회사들의 횡포를 책으로 읽어 자연파괴가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는지 절실히 느꼈는데, 이번에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사라져 갔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9세기부터 바스크인들은 고래 사냥을 시작했지만, 점차 도를 넘어서는 사냥으로 인해 고래들은 예전에 자주 찾던 바다를 찾지 않았고, 포경 산업은 점점 더 조직적으로, 더 원양해양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19세기가 되면서 포경 산업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나다니엘 필브릭의 소설 속에 나오는 낸터킷 항과 뉴베드퍼드 항이 이 당시 떠오르는 포경산업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될 공간적 배경이었다.

전반부에서 고래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포경 산업에 대한 개략적인 역사를 서술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약간 생활사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제5장에서 저자는 포경선원의 생활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었는데, 문화사적인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어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니 ‘아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자는 사학과 민족학을 연구했으며, 현재는 어로 기술과 전략 어촌의 관습 등이 어촌의 사회, 경제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즉, 단순히 고래에 대한 연구만 하는 사람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니었으며, 역사학과 민족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고래가 나오는 여러 문헌들을 검토하고 그에 대한 전설과 사람들의 인식을 1장에서 소개한 다음, 고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고래 사냥이 어떤 식으로 전개됐는지 순차적으로 나열한 것이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쓴 글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제5장을 보면, 고래 사냥이 큰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사업이지만 그만큼 목숨 걸고 덤벼들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수년간 이어지는 바다 위에서의 생활, 향유고래와 같은 공격성이 강한 육식고래와의 사투, 생사를 알 수 없는 하루하루, 비위생적이면서 건강을 쉽게 해칠 수 있는 생활, 고독함과 외로움 등등 저자는 고래 사냥이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6장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바로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1864년 바다표범의 명사냥꾼이었던 노르웨이의 스벤드 포윈 선장은 포를 이용해서 사정거리 50m 이내의 고래를 공격할 수 있는 작살을 고안해 냈다. 이 혁신적인 방법은 고래 사냥에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켰는데, 작살이 고래 살에 박히면 작살 끝이 별 모양으로 깨지면서 그와 동시에 황산을 채운 작은 유리병이 깨지고 이어 화약에 불이 붙어 그 폭발로 인해 고래가 죽게 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때까지 덩치도 크고 너무 빨리 잡지 못 했던 대왕고래들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19세기 말에는 노르웨이의 포경기업 5개 사가 아이슬란드에 설립되었는데, 하나의 포경기지에는 200~300명의 인원이 고용되어 이전 시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조직적으로 고래 사냥을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남극에서의 고래 사냥이 재개되고, 엄청난 수의 가공선(포경선과 공장선을 포함하여)이 개발되어 아예 정박지에서 조업을 계속 함으로써 고래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게 되었다.

국제 포경위원회에서는 오늘날 고래 포획 할당량을 정해 놓고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양떼를 지키는 늑대’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회원국의 대표들은 대개가 포경회사의 대주주들이기 때문이다. 즉, 위원회는 고래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관리할 뿐이지, 진정으로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그린피스에서는 이 위원회를 국제연합 환경계획기구의 관할 아래 두고, 책임감 있는 과학위원회로 대체할 것은 제안하기도 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은 것 같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역시 참고래를 매년 160마리씩 잡겠다고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야 우리나라에서도 고래 사냥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이 책의 초판 1쇄가 1995년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예전 내용이 바뀌지 않고 계속 실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필리핀 같은 국가에서는 과학적인 포경을 계속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한다(연구를 목적으로 잡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많이 잡을 필요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즉, 고래들의 운명은 앞으로도 그렇게 밝지만은 못 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고래에 대한 여러 소설 작품이나 고래에 대한 국제기구의 대응, 고래의 종류 등을 설명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고래라고 하면 일반인과 쉽게 접하기도 어려운 동물인데다가 그들의 삶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이렇게 책을 통해서 보니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자연이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는 생각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포경 산업의 역사와 현주소를 살펴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백만 마리의 고래들이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었다니 말이다.

고래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 것뿐만 아니라 포경 산업에 대한 진실을 깨우쳐줬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우리 주변의 자연 환경이 자꾸 변화를 겪고 파괴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그런 시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지극히 만족스럽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아!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늘 그렇듯이 다양한 도판과 삽화들이 실려 있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던 독자들도 책을 읽다 보면 흥미를 갖고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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