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속 동물들은 그럴듯한 의인화로 귀여운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풍자 및 비판을 빠뜨리지 않는다. 유재석의 더빙으로 눈길을 끌었던 꿀벌대소동도 마찬가지. 거의 집집마다 한 병 정도는 놓여있을 꿀. 게다가 우리는 꿀단지 껴안은 푸우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화학조미료 하나 첨가하지 않고 순수한 단맛을 제공하는 꿀벌들에게 아무런 감사의 말도 없이, 위기 상황에서 한방의 침으로 장렬히 전사하는 벌 앞에서 벌에 쏘였다고 징징거리면서. 이런 하찮은 인간들이란! 그뿐인가. 꽃가루특공대가 꿀 채집 이후 꽃가루를 여기저기 뿌려주지 않는 한 생태계가 파괴되는 건 시간 문제다. 인간과 말할 수 있지만 단지 말을 걸지 않았을 뿐인 놀라운 꿀벌들은, 자연의 섭리에 불응한 채 고마움에 대한 불감증을 겪고 있는 인간들을 비판하며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주인공 배리로 활약한 유재석은 평소 메뚜기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는 덕분에 줄무늬 스웨터와 더듬이도 무척 잘 어울렸다. 그러나 딱 이렇다 할만큼 어색한 부분은 없었음에도, 꿀벌 세계의 유머는 때로 너무 지루해서 인간세계의 유재석의 입담과는 비교가 안 되더라는. 두 마디 대사에는 까르르 박장대소하고 그에 이어지는 한두 마디에는 아까 웃었던 그 입모양을 유지만 하고 있는 상태랄까. 날개만 달렸지 까칠한 성격은 그대로인 래리 킹의 모습을 꿀벌 티비에서도 보는 건 흥미로웠지만 상대적으로는 작년에 보았던 라따뚜이가 좀더 구성지고 재미있는 듯.

 모든 꿀벌들이 대학 졸업 후 아무런 불평 없이 평생 한 가지 일만 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품은 배리. 그는 2억만년 넘게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반복되어 오던 꿀벌의 삶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프로메테우스적 꿀벌이랄까.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특공대를 따라 인간세계에 오게 된 배리. 그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살려준 이상형의 플로리스트, 바네사와 친구가 되고 그녀와 합심하여 인간이 공짜로 가져간 벌꿀과 꿀 관련 용어에 대한 로얄티를 요구하는 소송을 건다. "우리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허니~ 라는 말도 함부로 쓸 수 없었다구!" 팔짱을 끼고 당당히 외치는 배리는 배우 레이 리오타와 가수 스팅(Sting)까지 법정에 세우는 등, 무자비한 양봉으로 막대한 꿀을 얻고 있는 인간 전반을 비판한다. 마침내 소송에 승리한 꿀벌들. 그들은 인간 소유의 모든 꿀들을 수합해 꿀벌나라로 가져오고 더 이상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시간에 맞춰 다함께 돌아눕는 일 뿐.

 한편 꿀벌들이 활동을 멈추자 바네사의 꽃가게는 문을 닫아야 하고 아름다웠던 자연은 꽃 한 송이 피지 않은 채 잿빛으로 변해간다. 결국 마지막 남은 장미꽃들로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배리. 이 즈음에서 영화의 명장면이 연출된다. 말하는 꿀벌에 놀라 소동을 피우다 기절하고 만 기장과 부기장을 대신해서 배리와 바네사가 비행기를 조종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우리의 꿀벌들은 일사천리로 그들을 향해 날아가 비행기를 대신 조종한다. 노랑과 검정이 번갈이 피어나는 꿀벌들의 매스게임 덕분에 활주로를 찾은 비행기는 무사히 안착하고, 칙칙했던 인간 세상은 꽃가루특공대의 활약으로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는다는 애니다운 해피엔딩.

 감탄하고 소리 지르며 영화를 보는 어른은 나 이외엔 그다지 없는듯 했지만 아이들은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고, 영화가 주려는 교훈도 적절했다. 물론 아이들이 군데군데 양념처럼 등장하는 헐리웃 스타들을 알아보는 것 같진 않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미국의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재미를 위한 장치겠지. 하지만 친근한 유재석의 더빙과 더불어 마치 어느어느 어린이집의 원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랑과 검정이라는 꿀벌 색상도 귀와 눈을 따듯하게 만족시키더라는. 봄이 조금 일찍 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요즘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매우 즐거워할 것 같다. 어차피 원래대로 돌아갈 건데 재판은 왜 한거지? 요로코롬 매사에 시니컬한 타입의 아이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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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7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그 영악한 조카였나? 친척 동생이었나? 암튼 그 아이랑 본 거에요?

깐따삐야 2008-01-07 00:35   좋아요 0 | URL
네.^^ 애니는 아이들 틈에 섞여서 같이 소리지르며 봐야 제맛이라는. ㅋㅋ

웽스북스 2008-01-07 00:39   좋아요 0 | URL
교회 아그들 데리고 볼 영화 고민중이었는데 이거 볼까봐요 흐흐흐
근데 다 컸다고 싫어하면 어쩌지? 흠흠
내가 애들보다 더 수준이 유아틱한가봐

깐따삐야 2008-01-07 00:46   좋아요 0 | URL
왠만큼 성격 까칠한 애 아니라면 좋아할 거여요.^^
근데 나는 지금까지 괜히 봤다 싶은 애니메이션은 하나도 없었어요.
모든 애니는 나름 다 재밌달까. ㅋㅋ

2008-01-07 0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7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8-01-07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너무 보고싶은 영화인데 더빙되어서 안본다지요~.ㅜ
배리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남편이 넘 좋아하는 배우라서
그의 목소리로 꼭 봐야 한데나 뭐라나,,,쩝
그래서 저흰 DVD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근데 저두 애니보면서 살짝 울다 웃다 잘한답니당~.ㅎㅎ

깐따삐야 2008-01-07 11:55   좋아요 0 | URL
남편분이 제리 세인펠드인가 하는 그 배우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저는 유재석이 더 좋은뎅.^^
나비님도 애니를 아주 지대루 즐기실 것 같아요!


이잘코군 2008-01-0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첨 보는 애니인데...?

깐따삐야 2008-01-07 11:57   좋아요 0 | URL
요즘 한창 개봉 중인 애니인데 모르셨구나.
하긴 아프님은 애니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아요. 왠지.

네꼬 2008-01-0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보고 싶어요. (실은 유재석 더빙 때문에요.) -_-;;

"꿀벌 세계의 유머는 때로 너무 지루해서 인간세계의 유재석의 입담과는 비교가 안 되더라는."

한 줄에서, 깐따삐야님과 저의 공통분모를 (멋대로) 짐작합니다. 반가워요.
: )

깐따삐야 2008-01-07 17:01   좋아요 0 | URL
저도 반가워요!
유재석 더빙 때문에 보고싶으시단 말씀이 확 와닿네요. 그냥.^^
 
카뮈를 추억하며 ㅣ 그르니에 선집 2
장 그르니에 지음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이 알베르 카뮈의 기일이란다. 비교적 짧은 인생을 살다갔지만 그가 이십대 초엽의 젊은이들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가끔 카뮈의 책을 다시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곤 한다. 강요하는 것이 없는데도 조용히 복종하고 싶어지는 느낌. 카뮈는 깊고 진실하여 말수가 없어뵈는 얼굴을 하고 있다.

 한때 이 핸섬한 작가에게 끌려 학부 시절, 도서관에서 카뮈의 기름하고도 잘생긴 얼굴을 들여다보다 사진이 실린 그 페이지를 살그머니 찢어서 도망온 적이 있다. 다시 구할 수 있는 책이었지만 그 날은 문득 그러고 싶었다. 오래된 책 속의 흑백 사진을 찢어 내 소유로 하고 싶었다. 스무살엔 그런 아무것도 아닌 도발들이 재미있었나 보다. 담배를 입에 문 채 코트깃을 올린 그의 옆얼굴은 반항아 제임스 딘 보다도 훨씬 더 근사했다. 지중해의 이방인이자, 알제리의 반항인. 나는 지상에 없는 카뮈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붙이며 그를 좋아했다.

 내가 갖고 있는 '카뮈를 추억하며'는 위에 걸어놓은 민음사판이 아니라 87년에 발행, 96년에 9쇄 발간, 청하에서 나오고 서정기가 번역한 조금 오래된 책이다. 아마 지금은 절판이 됐는지 검색 자체가 안 되더라. 번역자인 서정기가 책 첫머리에 쓴 옮긴이의 글이 참 좋다.

 반항, 혁명가적 기질의 힘, 그러나 내향성의, 내부의 긴장으로 다스려질, 인류에 대한 사랑이라는 덕으로 길러져 이상화될 에너지. 한, 자신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전혀 길러주지 못하는 환경. 더구나 병으로 인한 좌절 사이에 찢겨 있는, 그것을 선생 앞에서 냉담함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던 어린 고등학생의 짐짓 꾸민 듯한 오만함. 그것을 선생은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고결한 혼들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라고.

 이렇듯 집약적으로 어린시절의 카뮈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카뮈의 스승이자 이 책의 저자인 장 그르니에는, 어색한 첫만남에서 카뮈에 대한 인상을 놓치지 않는다. 수줍음 속에 가려진 도도한 자존심, 선생으로 대표되는 사회에 대한 적의 앞에서 쉽사리 속내를 내비치지 않으려는 과묵함에 대해 너그럽게 공감한다. 위대한 영혼끼리는 아마도 필연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되어있으므로.

 저 너머의 세계를 갈망했던 스승과는 달리, 카뮈는 지상 너머의 세상과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 독자적인 휴머니스트로서의 길을 걸어가게 되지만, 그렇듯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이들의 인연은 카뮈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동안 지속된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그 이해가 사랑과 신의로 확장되는 순간,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초월한 인생의 친구가 된다.

 카뮈는 예상컨대 그 성품 상,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작가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르니에가 살려놓은 카뮈를 읽으며 더 감동에 젖는 것도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수줍어할 이 작가를, 그의 가장 신실한 친구가 대신하여 드러내고 있다는, 그 간접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르니에는 이 책 속에서 작가이자 철학자로서, 레지스탕스로서, 연극인으로서, 동료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카뮈의 행로를 되새기며 때론 감회에 젖고 때론 경의를 표하며 그의 제자를 오롯히 부활시켜 놓았다.

 <최초의 인간>은 아마도 원시인이며, 미개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이 준 원초적 힘을 소유한 순수한 인간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가장 최고의 선과 어쩌면 가장 커다란 악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인간이다. 어쨌든 평범한 데라곤 전혀 없는 인간이다.

 카뮈 최후의 작품이었던 최초의 인간에 대한 그르니에의 평. 최초의 인간은 이방인 뫼르소의 선조이자 후예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선악의 관습과 동떨어진, 순수한 인간으로서 미완성 원고 속에 영원히 모호한 상태로 남게 된다. 알제리의 정열과 프랑스의 지성이라는 간극 사이에서 모호한 균형을 견지하고 있는 카뮈의 자화상처럼 보이기도. 

 그는 적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가 무엇인가를 좋아했다면, 그것은 그에게 <반대되는> 것을 상정하지 않은 채로였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돋보이게 하는 그 반대의 것과, 그가 좋아하는 사물을 대조시켜 볼 필요 없이 그저 좋아할 줄 알았다.

 최초의 인간은, 곧 행복한 인간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부분. 가난과 폐결핵이라는 지병으로 일생을 불안정하게 살아갔던 카뮈이지만 그는 지중해의 태양,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고 그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알았다. 지중해의 대척점을 空으로 남겨두고, 무엇과도 비교하지 않은 채, 그러므로 실망 없이, 오직 내면의 목소리에 의지하여 순수한 열망과 신념으로 가득찬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처럼 성실하고 정직한 인간을 좋아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는 없다.

 보다 많은 글을 발췌하여 옮겨놓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한편으론, 이미 오래전 내면 안으로 녹아들었던 카뮈에 대한 특별한 이미지와 사상들을 몇편의 파편적인 글들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미흡하단 생각이 든다. 침묵하고 읽을 것. 카뮈라면 그렇게 말하리라. 알고 싶다면 읽을 것. 그리고 행동할 것.

 아이고, 아니지요, 만일 카뮈가 천당에 가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판이지요.

 나도 그러겠사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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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0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뮈, 많은이들의 청춘과 함께 했던 책. 추억속의 까뮈를 불러내는 글이군요.
이제는 까뮈보다 장 그르니에가 더 땡겨서 5년 전인가 '섬'을 끼고 살았죠.

깐따삐야 2008-01-05 08:42   좋아요 0 | URL
저번에 순오기님이 말씀하셨던 루 살로메와 카뮈는 스무살 무렵의 저를 사로잡았던 대표적인 지성인들이에요.
'섬'은 저도 가지고 있어요! 민음사에서 나온 김화영 번역본으로요. 저는 본문보다 카뮈가 쓴 서문을 더 좋아한다죠. :)

비로그인 2008-01-0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카뮈를 마흔 넘어서 읽었어요.
그래도 좋더군요.
한 6개월은 그에 관해 생각했답니다.
리뷰...좋아요.

깐따삐야 2008-01-05 09:05   좋아요 0 | URL
승연님. 좋은 아침이에요. 반갑습니다.^^
저도 서른 이후, 마흔 이후에 읽어도 여전히 좋을 것 같아요. 카뮈는.
그런 작가 만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밤에 졸면서 쓴 리뷰인데 카뮈의 외모에만 너무 치중한 것 같아요. 흐흐.

2008-01-05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6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08-01-0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읽고 싶어지게 리뷰를 쓰셔놓고, 책은 검색 조차 안된다니, 흑.

깐따삐야 2008-01-06 09:00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청하판으론 검색이 안 되지만 위에 걸어놓은 민음사판 책은 지금도 구입할 수 있어요.^^

개츠비 2008-01-07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정기판으로 그 책을 갖고 있습니다. 제목이 약간 다르게 `카뮈를 추억함'이죠. 깐따삐야님의 서평으로 그 책을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카뮈, 언제나 다시 돌아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깐따삐야님의 글속에서 만난 카뮈는 특히 더 그래요..멋진글입니다^^

깐따삐야 2008-01-07 21: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카뮈를 추억함. 서정기가 쓴 옮긴이의 말을 참 좋아했어요.
학부시절에 카뮈홈에서 얻은 자양분들이 참 많았는데 언제 들러봐도 좋은 음악과 함께 그대로여서 행복합니다.^^
 

 알라딘의 홍보 문구를 보고 내용 면에서나 의도 면에서도 꽤 유익할 것 같아 구입한 책이다. 작가 나딘 고디머가 추진, 유명 작가들이 스스로 선정한 단편소설들을 엮은 책인데 판매수익금 모두가 에이즈예방협회에 기부된다고. 

 아서 밀러와 마르케스의 첫 두 작품부터 읽은 상태다.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단편들. 읽다보면 엉성한 번역 때문에 짜증날 때가 있는데 오, 번역도 훌륭하다. 재미있게 읽고 있다. 작품들이 많아서 리뷰를 쓸 수 있을까는 모르겠다.

 

 장정일이 희곡집을 냈다길래 벼르고 있다가 새해맞이 도서 쇼핑 리스트에 올렸다. 세 작품 중에 처음 실린 '일월'부터 차례로 읽어나가고 있는데 작품작품마다 작가의 해설이 달려 있다는 게 사뭇 의아하다. 한편으론 과잉친절로 보여지기도 하고.

 나의 못 말리는 직관에 의하자면 장정일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의 글에 실망했을 때가 있을지라도. 천재라기 보다는 자신의 역사에 스스로 획을 그어나가는 주체적인 사람이랄까. 모든 작가가 그런 건 아니니깐. 더 읽어봐야겠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웬모양님의 이벤트 덕분에 수중에 들어왔고 일단 작가의 외모에서 남다른 고집이 느껴지더라는. 누군가랑 분명히 닮았는데 그게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는구나.

 한동안 최근 등장하고 있는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을 잘 읽지 않았었다. 읽는 중에는 독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술술 빠져나가 듯 내 기억 속에서도 술술 사라지더라구. 이 작품집을 시작으로 다시 관심을 가져봐야지.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는가' 라는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리는 희대의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거침없는 욕설을 퍼부으며 열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작품.

 사실은 원서를 사놓곤 고로코롬 깨알 같은 글씨에 막막해서 dvd부터 보고나서, 독서를 시작해야겠다는 얍삽한 마음에서 구입한 결과물이다. 얼른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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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인생 단 한번뿐인 이야기, 너무 작가들 리스트가 대단해서 또 선뜻 안사지더라구요- 깐따삐야님의 글을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된달까. 사육장 이야기는 읽고 싶었다니 다행이에요 흐흐

깐따삐야 2008-01-04 01:02   좋아요 0 | URL
책 재밌어요. 그리고 읽다가 지치더라도 판매수익금이 좋은 일에 쓰인다니 질러댄 것을 후회하진 않을 것 같아요.
웬디양님의 이벤트 선물을 시작으로 젊은 소설들에 다시 재미를 붙여볼까 생각 중이에요.^^

Mephistopheles 2008-01-04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젊은 작가의 부류를 놓고 봤을 때.(많이 읽은 책은 아니지만 작년에 읽었나 제작년에 읽었던 "고래"라는 소설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어요.^^)

깐따삐야 2008-01-04 01:21   좋아요 0 | URL
천명관의 고래 말씀인가요? 저 그것도 제목만 기억하고 못 읽어봤는데.
레폿질 한답시고 소설과 넘흐 멀어졌어요. 흑흑.

웽스북스 2008-01-04 01:23   좋아요 0 | URL
고래는 참 순식간에 읽어내려가게 되는 소설이죠- 일단 이야기가 참 재밌어요 ㅎㅎ 근데 천명관의 신작에는 또 손이 안가더라는 ㅋㅋ

깐따삐야 2008-01-04 01:34   좋아요 0 | URL
메피님 뇌리에 박혀있구 웬디양님도 재밌었다면 제가 안 볼 수가 없군요.
태그도 아니면서 꼭 따라해. ㅋㅋ

순오기 2008-01-04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젊은 사람들 소설은 별로 안 본 거 같아요~~~ 작년엔 '아내가 결혼했다'뿐?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도 리즈 테일러만 생각나고욧!

깐따삐야 2008-01-04 02:0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이야 훌륭한 동화책들을 비롯해서 다른 분야의 책들 읽기에도 넘흐 바쁘시잖아요.^^
방금 dvd 봤는데 부부가 으찌나 서로 으르렁대는지 결혼하고픈 마음이 싸악 가시는 거 있죠. 단순한 저에게 크나큰 위안을 주는 영화였어요. ㅋㅋㅋㅋ

순오기 2008-01-05 09:2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결혼하고픈 마음이 싸악 가시는 영화 많아요~ 추천할까요?^^
이런 이런~ 깐따님 신랑감, 전국수배령 내린 사람이 이러면 안 되잖아~~

깐따삐야 2008-01-05 09:28   좋아요 0 | URL
신랑감 잡히는대로 연락주세요. 오바. ㅋㅋ
 

 읽은 책들의 리스트를 따로 작성하지 않는 대신 갈피접기란 카테고리를 통해서 독서 과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대개 리뷰를 쓰지 않고 지나친 책들은 눈에 띄지 않거나 다시 읽게 되지 않는 한 기억에서 사라져 갈 때도 많다.

 날이 갈수록 퇴화되는 기억력을 감안하여 서재에 새겨놓는 방법을 쓴 것. 제대로 기록해 갈 수 있을까 벌써부터 자신은 없지만 연말에는 이 카테고리를 통해 몇 권을 읽었는지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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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1-0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나두나두 가능한한 어떻게든 좀 기록을 남겨보려 생각중이에요 ^^

깐따삐야 2008-01-04 01:05   좋아요 0 | URL
근데 기록을 안 하면 머 올해도 많이 읽었으려니, 하는데 요로코롬 기록으로 남기면 진짜 안 읽었다는 게 더 눈에 확 들어올까봐 걱정이에요. 흐흐.^^
 


  지방에 사는 이유로 개봉관을 찾기 어려웠기에 아쉽게 스쳤던 영화였다. 주워들은 풍문만으로도 분명히 좋아할거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글렌 한사드 분)'에게 말을 거는 '그녀(마르게타 이글로바 분)'의 연기가 영 어색해서 잠시 비포선라이즈의 줄리 델피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 우유처럼 뽀얀 미소의 셀린느는 얼마나 싱그러웠던가.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묘한 분위기의 아가씨에게 점점 집중하게 되더라는. For what? 하며 되묻던 눈빛과는 달리 피아노 선율에 녹아드는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바다처럼 짙푸르고 아련했다. 낙천적이고 다정다감한 아일랜드 청년. 속을 잘 내비치지 않는 당찬 체코 아가씨.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우연히 조우하게 된 두 사람은 생에 단 한번, 바로 그 사람과 반짝이는 합일을 경험한다.

 밀루유 떼베(Miluiu teve). 별거 중인 남편을 사랑하느냐는 그의 질문에 그녀는 체코어로 대답한다. 밀루유 떼베. 무슨 뜻인지 말해달라고 보채지만 그녀는 끝내 그를 향해서도, 관객을 향해서도 입을 다문다. 막연히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궁금했기에 뜻을 찾아봤고 그 결과는? I love you. 살짜쿵 찬바람은 이는데 아쉽거나 슬프지는 않더라. 거기까지만. 그것으로 족하다는 느낌. 비포선라이즈의 대학생들은 언어로, 장 자끄 아노의 연인들은 몸으로, 그리고 원스의 청춘들은 음악으로 대화한다. 사랑을 말하기 전. 두 사람은 이미 사랑을 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는 말, 보이는 소리인 음악이라는 신비로운 매개를 통해.

 홍상수 감독이 그의 영화들 속에서 누누히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언어란 사람과 사람의 간극 사이에서 번번히 미끄러질 뿐.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속일 때도 많다. 알면서 속아주는 경우까지 보태자면 더더욱 부질없고. 그러나 음악 앞에선 누구나 정직해진다. 눈으로는 악보를 읽고, 손으로는 악기를 만지고, 혀로는 노래를 부르고, 귀로 그 소리를 들으며, 음악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는다. 이처럼 오감의 이탈을 허락하지 않는 음악은 순식간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시에 때론 사람의 틈과 틈 사이를 느슨하게 유영하며 눈치채지 못한 사이, 우리를 고요히 매혹시킬 때도 있다. 악보를 읽지 못하는 나로선 악보란 그저 새카만 콩나물의 나열일 뿐이지만 음악피스에 그려진 음표들의 움직임을 보며 아름답다, 고 느껴본 적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소리로 화할 때 그 신비로운 매력은 배가 되었다.

 원스에서 음악과 영화는 서로의 기운을 온건하게 조화시키며 담백한 뮤지컬 한편으로 승화했다. 예상 외의 많은 관객들이 이 구태의연한 음악 영화 한편에 열광했던 건, 아마 영화라는 취미가 제공하는 수수한 담백함이 그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장미꽃을 파는 처녀와 우연히 사랑에 빠진다면? 꽃 파는 오후, 어젯밤 그 기타리스트가 다가와 반갑게 말을 걸어준다면? 이러한 소박한 상상에서 출발해 사람들은 각자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음악처럼 그저 흘러가는대로. 마음이 이끄는대로. 단, 방종이 아닌 자유를 위해.

 진하고 뜨거운 에스프레소 커피 같은 일상. 누군가 끼어든다. 오늘은 요로코롬 허브차 한번 드셔보시와요. 옥수수수염차는 없나요? 텁텁한 일상의 당신, 원스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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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았어요. 안 그래도 아까 청소하면서 원스의 노래들을 다시 들었답니다.
깐따삐아님의 리뷰를 보면서도 '언어의 힘'을 느꼈어요. 원래도 아름다웠지만 그 영화를 더 아름답게 추억하게 만들어 주셨거든요^^

깐따삐야 2008-01-03 15:51   좋아요 0 | URL
우앙~ 원스 OST를 갖고 계신가 보죠?
저도 오늘 다시 듣고싶어서 남들 블로그 돌아다니며 찾아듣곤 했어요.
제 리뷰가 영화에 누가 되지만 않아도 다행이죠. 감사합니다.^^

치니 2008-01-0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원스>만큼 담담하고도 수려한 리뷰입니다. ^-^

깐따삐야 2008-01-03 15:5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당. 치니언니도 옥수수수염차를 좋아하시는 게 틀림없군요! 흐흐.

이잘코군 2008-01-0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원스 좋아해요. 바로 오에스티 사고, 영화두 극장서 두 번이나 보고. :)

깐따삐야 2008-01-04 01:07   좋아요 0 | URL
두 번이나 보셨다니! 정말로 좋으셨나부다.
저는 dvd로 구입했으니 텁텁한 날마다 꺼내봐야죠. :)

웽스북스 2008-01-0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의 리뷰는 정말 영화를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 원스를 보시라~

깐따삐야 2008-01-04 01:10   좋아요 0 | URL
우리 웬디양님 식기 전에 드시라구 영화 보자마자 후다다다닥 써재꼈다는.^^

미미달 2008-01-04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파욥

깐따삐야 2008-01-04 01:24   좋아요 0 | URL
미미달님은 이 영화 보구나서 이럴 것 같아요. "내용도 퐝당하구 결말도 넘흐 욱껴요. 대체 왜들 이러는 거죠? ㅋㅋㅋㅋ"
농담(?)이구요. 한번 보세요. 원스지만 두 번 봐도 좋은가봐요.^^

2008-01-04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04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애 2009-01-06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원스의 그녀를 보면서...선라이즈의 셀린을 생각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