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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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랄하게 주고받는 핑퐁 같은 스토리. 상큼하고 바삭한 쿠키 같은 대화. 다소 허무한, 그럼에도 더 이상을 바라기도 뭣한 단출한 결말. 잘못 보낸 이메일 한통으로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에미와 레오의 러브스토리는 인터넷과 이메일이 보편화 되면서 여러 장르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고 참신했다. 한편, 읽는 동안 스쳐가는 기억들이 있었고, 그 순간 속에 머뭇대느라 책장을 잠시 덮어두기도 했고, 책을 고른 것은 나였지만 이 책이 왜 내게로 왔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분명코 추억으로 남을 독서였다.

  생활의 안녕을 위해 꼬박꼬박 살고 있다지만 우연하고도 모호한 비밀 하나 쯤 간직하지 않은 삶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단순히 일상의 습관이 주는 안락에만 기대어 사는 것이 아니다. 새로울 것 없는 생활회화의 세계에서 잠시잠깐 이탈하여 깊숙한 마음의 목소리와 목소리가 맞부딪쳐 불꽃이 일어 그 온기로 가슴을 촉촉이 데우고픈 열망.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는 그 비효율적 열망에 때때로 시간과 에너지와 영혼까지 내어바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우리에게 그처럼 흥미로운 대화에 동참할 할 수 있고, 다른 이의 매력을 상상하고 찬미할 줄 알며,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이 세상엔 아마 사랑도, 예술도 없었을 것이다. 에미의 남편 베른하르트와, 레오와, 작가는 결국 에미의 거침없는 행보에 제동을 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에미가 에미가 아닌 사람이 되거나, 진심이 사라지거나, 두 사람의 추억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만의 유일한 능력인 사랑은 때때로 현재의 인습 그 너머로 넘어선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시적이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유혹에 연연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도 그처럼 당장 움켜쥘 수 있는 것들이 결국, 보이지 않는 진실만큼 큰 공명을 일으키지는 못함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루시드 폴이 노래하듯 몸집만한 선물보다 더욱 컸던 내 마음, 그건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공명에 이끌려 발 디딘 현실로부터 둥둥 떠오를 수도 없는 일. 어쩌면 발칙한 상상과 평범한 일상이란 서로 맞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보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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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1-2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도 몇번씩 발칙한 상상이라도 하고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

깐따삐야 2009-01-24 11:06   좋아요 0 | URL
하루에도 몇번씩은 아니고 저도 그냥 아주 가아~끔만.^^

웽스북스 2009-01-2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깐따삐야님다운 리뷰. ^_^
이 책을 우리 회사 사람 몇에게 추천했는데, 다들 그저그런 유치한 사랑얘기라고만 하는 통에, 거의 너는 뭐 이런 유치한 러브스토리가 좋다고 난리니? 라는 말없는 압박을 받았던 마음을 깐따삐야님의 리뷰가 달래주어요. 흐흐. 깐따삐야님과 후버카페 만남을 해봤어도 좋았을텐데. 그러기엔 내 사진이 너무 많다. ㅜㅜ

다락방 2009-01-23 08:2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유치하다'는 평이 제 동생이 말한 '불륜소설'이란 것 보다는 훨씬 낫네요, 웬디양님. ㅜㅡ

깐따삐야 2009-01-24 11:12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스토리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안에 담긴 대화들이 알콩달콩 산뜻하고 재미나더라구요. 더 이상 특별한 소재도 아닌데 작가의 재주가 참 깜찍하단 느낌. 후버카페 만남은 안되겠지만 후진카페에서라도 만나 언젠간 즐거운 대화를.^^

다락방님- 흐업! 불륜소설. 바람이 부나요? 에서 바람은 그럼 그 바람이 아니고 그 바람이었단 말인가욥? ㅋㅋ

다락방 2009-01-2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깐따삐야님의 레오면, 깐따삐야님은 우리의 에미인거죠? ㅎㅎ
추천해드린 책을 재미있게 읽으셔서 급 방실방실이요. :)

깐따삐야 2009-01-24 11:15   좋아요 0 | URL
창밖으론 눈이 내리고 다락방님 댓글은 로맨틱하고 이 책은 참 재밌었고... 다락방님의 추천도서는 참말로 믿을만하고. 그래요. 감사합니다.^^

레와 2009-01-2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후버카페를 꼭 해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으흐~


깐따삐야 2009-01-24 11:16   좋아요 0 | URL
넘 재밌을 거 같죠? 으흐~

다락방 2009-01-25 20:30   좋아요 0 | URL
전 후버까페 해봤는데 말입니다. 므흣므흣 :)

깐따삐야 2009-01-27 13:06   좋아요 0 | URL
우왓! 정말요? 궁금궁금 :)
 
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을 만날 때가 있다.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거나 복잡한 구성이 아니어도 읽다가 자주 멈칫거리게 되는 소설. 『레이스 뜨는 여자』가 그랬다. 작가이면서 교사, 철학자이면서 사회학자이기도 하다는 파스칼 레네의 이력처럼 이 소설은 아주 진부한 연애 이야기 안에 중요한 성찰들을 함축하고 있다. 

  주인공 ‘뽐므’는 단순한 여자다. 불행이든 가난이든 주어진 상황에 자족하며 사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닮은 뽐므. 타고난 단순성에서 배어나오는 둥글고 매끈한 아름다움. 그러나 짐승처럼 순응하기만 하는 그녀에게 한 남자도, 독자도 그만 질려버리고 만다. 사랑의 기쁨을 상대를 위한 노동으로, 결별의 아픔을 거식증으로 표현하는 그녀. 소통과 교제의 가장 활발한 매개인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그녀는 존재하고는 있지만, 공존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뽐므와 같은 여성은 소설의 주인공으로 적합하지 못하다. 『이방인』의 뫼르소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충격보다 덜하긴 하나, 많은 부분 뫼르소의 누이처럼 느껴지는 그녀. 뽐므와 그녀의 어머니는 조잡한 궤변, 뒤이은 심리 묘사, 암시의 두께가 있는 소설 속에서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할 것이며, 아울러 그들을 무한히 능가하며 그들로서는 그 속의 깊이며 너비를 잴 길 없는 저희의 기쁨이나 괴로움의 거죽을 뚫고 들어갈 줄도 모르게 되리라. 그들은 자기네 이야기를 하는 책의 종이 위에서 아주 작은 벌레 두 마리처럼, 움직이는 게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짧은 거리를 달아난다(20-21). 작가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뽐므를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인식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능숙함과 서투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여건의 불평등으로 인해 교육과 사교로부터 애초에 배제된 사람들. 그 중에서도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는 하류 계급의 여성. 뽐므의 투명한 아름다움은 순수한 무지로부터 비롯되지만 무지가 더 이상 미지가 아닐 때, 사람들의 호기심이 채워질 대로 채워진 이후, 그녀는 쉽게 버려진다. 뽐므는 그 남자를 꼭 찾아가 보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 . . 그가 자기와 함께 있으면서 권태로워했다고, 자기가 자주 그를 성가시게 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로서는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지만, 일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자기와 얽힌 불쾌한 추억을 지니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133).  

  그러나 남자는 다른 꿈을 꾼다. 그는 뽐므를 자기가 꿈꾸어 오던 것, 즉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 것이다. . . . 아울러 자기가 그녀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몰랐음을 인정하면서 뿌듯해할 것이다. 지금 느끼는 수치심과 약간의 회한을 격에 맞게 변모시킬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약점은 ‘작품’으로 승화할 것이다. 독자는 감동하게 될 것이다(138). 이처럼 레이스 뜨는 여자는 언어라는 허영에 찬 직조물로 재탄생한다. 정당화되지 못할 것이 없는,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위선에 찬 폭력 앞에 무력하게 제조되는 존재, 뽐므.  

  당연의 세계라고 믿고 있는 세계를 낯설게 만드는, 오묘하고 특별한 책이었다. 파스칼 레네는 마치 스스로를 표현할 줄 모르는 뽐므들을 위해 이 소설을 헌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침묵 속에 갇혀버린 갖가지 비의들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언어에 도취되느라 그 '있음'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매우 인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메시지만으로도 참 귀한 작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처음의 밀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실을 비틀어 다시 진실을 보여주는 솜씨 또한 빼어나서 내겐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작가가 될 듯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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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결혼식 이후로 동기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H가 추수연수 차 고향에 왔고 고3 담임을 하느라 바빴던 S에게도 좀 여유가 생겨 이제야 한가하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보자마자 대뜸 질문공세를 퍼부어댔다. 방학 동안 깨소금 팍팍 볶고 있느냐는 둥, 이제 유부녀라 못 나올 줄 알았다는 둥, 주말인데 남편이 순순히 보내주더냐는 둥 농을 걸어오기도 했다. 실제로 육아에 바쁜 K와 성실히 시댁에 적응하고 있는 M은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모임을 잡아도 연락을 안 하게 되었다. 결혼했다고 제쳐놓으면 매우 섭섭할 거라는 의사표현을 하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싱글들끼리만 만나면 더 재밌어질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전부터 친구는 친구로밖에 안 보인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오고 있지만 남녀 간의 일이란 절대 모르는 거다. 머릿속으로 화살표를 그려본 결과 썩 괜찮은 커플도 있다. 이러다가 조만간 막무가내 뚜쟁이로 나서겠다.

  우리 동기들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목청을 조금이라도 높이면 온몸이 후덜덜덜 거릴 정도로 노쇠한 교수님이 한분 계셨다. 연구실에서 출발하여 강의실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라서 그냥 번쩍 안아오고 싶을 정도였는데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아주 따듯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은 어느 날 강의 중에 우리를 둘러보시며 그런 말씀을 하셨다. 원숭이띠는 머리가 좋고 재주가 많고 개성이 강하지요. 어린 세대들이 별자리나 혈액형을 과신하는 것처럼 그분도 십이지 같은 것을 맹신하는 편이었나 보다. 사실 우리 학번은 내가 기억하기로도 매사 열의가 있고 각자 개성이 강하기는 했다. 다만 열의는 있는데 어디에 열의를 쏟아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 헤매는 몇몇(나를 포함하여)이 있었다. 한편 교수님 말씀처럼 모두들 개성이 강하긴 했지만 무식할 정도는 아니어서 뭉칠 때 뭉치고 거리를 두어야 할 땐 적당히 거리를 둘 줄도 알았다. 과대표인 K의 포용력과 통솔력이 탁월해서이기도 했겠지만 대개 근본이 착실한, 좋은 아이들이었다.

  마침(?) 우리는 서른이 되었고 나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었는데 무려 십년을 함께 하고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별 느낌 없다가 대세인 반면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는 막막한 소감도 나왔다. S는 볕이 좋은 오후에 캠퍼스 잔디밭에 모여 과자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던 스무 살의 추억이 너무 그립다 했다. 날이 저물면 과자가 쥐포가 되고 콜라가 비어로 화하는 신기한 경험이 왜 아니 그립겠는가. 이젠 그렇게 밤을 새우기엔 저질 체력이 되어버린 우리는 힘을 내자고 두 주먹 불끈 쥐는 대신 유일한 자산이었던 열의와 개성이 바닥나고 있지는 않은가.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문득 내 앞의 동기들에 대해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젊은 그들을 기억 속에 활자로 새기고 싶어서다.

  E는 학부시절 나와 단짝이었다. (세상에, 우리는 어쩌자고 교환일기까지 썼었다.) 첫 강의 때 우연히 나란히 앉게 되었는데 그때 더듬더듬 수다 떨다가 친해졌던 기억. 김영하와 바나나의 소설을 맨 처음 내게 소개하고 권해준 것도 그녀였다. 뭐랄까. 다소 도도해 보이는 외모에 합리적이고 건조한 성격. 하지만 진짜배기는 그녀의 박학다식하고 엉뚱한 면이다. 삼라만상에 관심이 많고 보도 듣도 못한 이상한 책을 많이 읽는 한편 동방신기 광팬이다. 동방신기 때문에 만나던 남자랑 꽁한 적도 몇 차례. 여러모로 나와 다른 점이 많은 친구인데 차분한 매력이 있고 일단 입이 무거워 믿음이 간다. 나처럼 뜨거운 피를 가진 수다스런 연인을 찾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여자인데다 무려 결혼까지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거나 이해받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느끼기에 더욱 아끼게 되는, 그런 친구다.

  J는 ‘얍삽이’라는 별명을 그대로 삶 속에 구현하며 사는 친구인데 그렇다고 밉상은 아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공부하러 도서관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여자 동기들을 찾으러 도서관에 가던 녀석. 뒤통수만 보고도 우리들을 용케 찾아내 생글생글 웃으며 노트 필기 한 것 좀 빌려줘, 라고 당당히 요구하던 녀석. 그래도 시험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밥은 꼭 샀다. 그나저나 지난해 연애를 한 것 같은데 결과가 별로였던 모양이다. 녀석이 군대에 갔을 때 여자 동기들이 합동으로 편지를 써준 적이 있는데 답장을 받아보니 웬걸, 그토록 꼼꼼하고도 절절한 문체라니. 깔끔하고 알뜰한 녀석이라서 된통 멍청한 아가씨를 만날까봐 주의 요망되는 친구다.

  또 다른 J. 아랍삘의 외모에 고지식함이란 무엇인가를 라이브로 전해주는 친구. 좀 답답하고 지루한 면이 있긴 하지만 방학 때면 헌혈해서 영화티켓도 받고 자유이용권도 받아서 호혜를 베푸는 일면도 있었다. 우리는 피 같은 티켓이라면서 겁나게 놀고 다음번엔 다른 걸 타오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사실 J는 남의 말을 잘 듣기도 하고 부탁도 잘 들어준다. 그런데 안쓰럽게도 말을 되게 안 듣게 생긴 인상을 갖고 있다. 지난 해, 남편과 나를 연결해준 장본인이기도 한데 덕분에 나한테 쓸데없는 구박을 당하기도 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 지지부진한 잔티끌은 없는데 노련하지 못한 무매너가 살짝 에러다. 그래도 남편의 은인이므로 가까스로 특별해졌다.

  그리고 H. 안목도 좋고 참을성도 많아서 남녀 불문하고 오래도록 무난한 벗으로 지낼 수 있는 친구다. 웬만한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아량도 갖췄다. 또한 많은 영화를 섭렵한 영화 마니아이기도 해서 함께 영화 이야기를 나눌만한 훌륭한 상대다. 남자 동기들 중에 유일하게 내 속내를 보여주었던 친구이기도 한데 하도 편해서 거의 동성 친구와 다름없이 생각했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실 때가 있었는데 이번에 만나서는 그 어머니가 노래자랑에 나가서 칠만원과 감자 한 박스를 타오셨다고 자랑하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멀리 발령이 나서 자주 볼 순 없지만 문득문득 스쳐가는 추억이 남다른 친구다.

  S는 아마 우리 가운데 가장 능력 있고 머리가 좋은 친구일 것이다. 학생 때부터 매사 준비성이 철저하고 실천력 또한 대단해서 항상 인생의 어느 단계마다 특출한 성과를 내곤 했다. 그녀의 에너지는 여전히 건재해서 사회에 나와서도 만날 때마다 수업에 대한 유용한 팁도 많이 주고 생활지도에 관한 조언도 열심히 해준다. 무엇보다 S가 지닌 최고의 매력은 불행마저 희화화시키는 묘한 재주를 가졌다는 점. 절망의 구렁텅이를 웃음의 도가니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주어졌다 해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다. S는 그런 면에서 절묘한 유머감각을 지녔다. 그러한 S가 올해부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여 백수와 돌싱만 아니라면 올인을 불사하겠단다. 내가 남자라면 정말 진심으로, 머리 좋고 재미있는 S 같은 여자를 사귀어보고 싶다.

  나오지 못한 동기들을 제외하면 끼리끼리 어울렸던 동기들 중 마지막으로 나. 나는 그들에게 어떤 친구일까. 이번에 그런 말을 들었을 땐 기분이 좀 묘했다. 우리 학번은 그래도 다들 잘 지내지 않았어? 별 문제도 없었고 두루두루 친했잖아. 그러자 좌중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S 왈. 깐따삐야, 너는 그랬지. 너는 정말 모두하고 잘 지냈어. 순간 내가 다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었다, 라는 느낌과 함께 조금 멋쩍어졌다. 어쩐지 과거의 내가 줏대 없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래도 너는 정말 누구하고나 문제를 일으켰어, 보다 낫지 않느냐고 간신히 위안했다. 그렇다. 매우 가깝게 어울리지 않고는, 혹은 그랬었다 하더라도 아무개와 아무개 사이의 불협화음 전부를 눈치 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과거란 제멋대로 윤색되기 일쑤이기에 꼬박꼬박 인지하며 되새김질 하지 않는 한 원래 그 인상 그대로이긴 어렵지 않던가. 한편으론 자의식 과잉이었던 내가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느라 그만큼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스미지 못했던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의 나는, 많이 어렸던 것이다.

  그처럼 지난 세월의 거울 같은 동기들을 보면서 성장한 모습에 장하기도 하고 그대로인 모습에는 가슴이 따듯해져 오는 흐뭇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보면, 학창시절의 우정이란 참 특별한 것이다. 이제는 서로의 뱃살과 탈모를 염려해줘야 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지만 인생의 어느 시기를 함께 출발했고 같은 길을 걷고 있어서인가. 늘 스무 살인 채로 머물러 경험만 차곡차곡 늘려가고 있는 듯한 탈(脫) 시간의 느낌. 건강하게 모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리 되길 바라고, 진정 살아있는 추억의 눈길과 몸짓들로 거기 그대로 있어줘서 소중한, 삼십세 99학번 동기들. 차를 마시고 왔는데도 무엇엔가 담뿍 취한 것만 같은, 그런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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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1-18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좋은데요.
뭐랄까..차분하면서도 감성적인.^^

그런데 '돌싱'이 무슨 뜻인가요? (긁적)

Mephistopheles 2009-01-18 09:46   좋아요 0 | URL
"돌아온 싱글"의 준말입니다.
(여기서 엘신님은 글쎄 대체 돌아온 싱글은 뭘 뜻하는 겁니까? 하면 찾아가서 한대 때려줘야지)

깐따삐야 2009-01-18 23:13   좋아요 0 | URL
엘신님- 술 마시고 썼으면 좋았을 텐데 차 마시고 써서 쫌...^^
메피님- 하핫! 정말 그러실 것 같아요. 엘신님은. 때린다고 맞을 엘신님도 아닐 것 같지만요.

L.SHIN 2009-01-19 06:20   좋아요 0 | URL
헹-!
그 정도는 알아요!
그러니까, 애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싱글? 그런 뜻이죠! (히죽)

아니요, 깐따님,
저 맞을거에요. 얼굴에 시멘트 처발라서 딱딱하게 만든 후에.ㅡ_ㅡ(훗)

Mephistopheles 2009-01-19 10:20   좋아요 0 | URL
땡! 이혼남 이혼녀를 지칭하는 겁니다. 시멘트를 얼굴에 직접 바르고 굳히기까지 하신다는데..일부러 때릴 필요는 없죠. 굳어가며 변하는 얼굴표정 관람이나..하면서..으흐흐=3=3=3=3

L.SHIN 2009-01-21 05:42   좋아요 0 | URL
반드시, 무슨 약을 올려서라도, 메피님으로 하여금 딱딱한 시멘트를...
맨 주먹으로 때리게 만들겁니다.ㅡ.,ㅡ

Mephistopheles 2009-01-21 11:42   좋아요 0 | URL
입이 굳었을텐데 무슨 수로 약을 올려요? 메롱

L.SHIN 2009-01-22 05:45   좋아요 0 | URL
입은 뚫어놓을거에요!!! ㅡ_ㅡ (훗)

Mephistopheles 2009-01-22 09:45   좋아요 0 | URL
그럼 입만 때리면 되겠네..ㅋㅋ

깐따삐야 2009-01-22 18:34   좋아요 0 | URL
두분, 요기서 아주 판타지 어드벤처 호러 무비를 찍고 계시는군요!! ㅋㅋ

L.SHIN 2009-01-23 05:32   좋아요 0 | URL
그럴 땐, 입술을 안으로 살짝 말아주면 되지롱~ 메롱.

앗,깐따님. 이번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저 응원할거죠? 히죽)

Mephistopheles 2009-01-23 09:32   좋아요 0 | URL
엘신님도 참....2009년을 맞이하여 어떻하든지 저를 한 번 이겨보고 싶으신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옛다..님이 이겼습니다. =3=3=3=3=3

L.SHIN 2009-01-24 06:35   좋아요 0 | URL
싫어!
이런식으로 이기는건 싫어! ㅡ.,ㅡ^

뭐..아직 2009년이 많이 남았으니까요,ㅎㅎㅎ

깐따삐야 2009-01-24 11:18   좋아요 0 | URL
흐음. 메피님이 결국 홀라당 내빼셨으니 형님 WIN!

L.SHIN 2009-01-25 06:55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흐 ㅡ_ㅡ (히죽)

Mephistopheles 2009-01-18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드~럽게 까칠하고 변화무쌍하며 지X맞은 M추가요~~=3=3=3=3=3
(서른이 부러운 40대 개봉박두 예정인 메피스토)

깐따삐야 2009-01-18 23:15   좋아요 0 | URL
메피님의 강점은 주제 파악을 잘하신다는 거에요. 정말 멋져요. ㅋㅋ
서른을 뭘 부러워하시고 그러셔요. 제 느낌엔 서른 이후는 그냥 다 도찐개찐 인 것 같아요. 왠지. 흑흑.

L.SHIN 2009-01-19 06:21   좋아요 0 | URL
푸하하핫, 깐따님 댓글에 추천 ㅡ_ㅡb

그런데, '도찐개찐'은..뭔 뜻인가요? (긁적)

깐따삐야 2009-01-20 21:03   좋아요 0 | URL
도찐개찐은 그게 그거임~ 이란 말이에요. 지구말은 참 재밌죠? ^^

L.SHIN 2009-01-21 05:43   좋아요 0 | URL
아항~^^

마늘빵 2009-01-1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자리에서 깐따삐야님이 느꼈던 것들이 제게도 느껴지네요. ^^ 동기들하고 그다지 어울려 놀았던 적이 없는데, 그들은 지금 뭘하고 있나, 어떻게 변했나 궁금하기도 하네요.

깐따삐야 2009-01-18 23:21   좋아요 0 | URL
스무살의 경험치는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봤자 다들 비슷한 것 같아요. 조금씩 어설프고 어리석고 그랬던 시기니까요. 동기들은 모두 변했는데, 어디 한 구석 그대로인 면을 발견하면 재밌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프레이야 2009-01-18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 그땐 뭐하고 살았더라, 생각해보게 되네요.
돌아갈 수 있다면...ㅎㅎ
삐야님 좋은 시간 나눴군요. 참 좋아보여요.

깐따삐야 2009-01-18 23:23   좋아요 0 | URL
저도 스물, 그땐 뭐하고 살았더라, 생각해 보기도 하고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아쉬워 한다는. 히힛.^^
즐거웠어요.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잘 되어서 평생 얼굴 보며 살았음 좋겠답니다.

가시장미 2009-01-18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홍삼좀 먹어야 할까봐요. 크크

깐따삐야 2009-01-18 23:24   좋아요 0 | URL
이제 우리도 건강보조식품 하나쯤은 챙겨먹는 센스가 필요한 연령인가 보아요. 홍삼은 체질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좋은 식품이래요. 한번 드셔 보시와요.^^

레와 2009-01-1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나도 우리 구찌들 보고잡아요.
문자나 날려볼까..하고 불현듯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뜬금없이 보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요상한 생각도 드네요.

몇년전까진 꼬박꼬박 안부문자도 날리고 했었는데 말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불필요한 생각이 많아진건지 모르겠어요.

또 하나,
친구 하나하나를 생각하는 깐따삐야님 마음이 이뻐요. 사실 부럽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강렬한 단편 이미지말고, 슬며시 스며드는 어떤 느낌하나 남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어요.


아흥. 홍삼이나 사러가야지~

깐따삐야 2009-01-20 21:08   좋아요 0 | URL
저희 동기들은 아무래도 같은 직업을 갖고 있다보니 더 자주 보게 되고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고 그런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하고 바라게 되네요.

저도 요즘 홍삼 먹고 있어요. 원기회복엔 최고인듯. 레와님도 어서.^^

 
압록강은 흐른다 범우 사르비아 총서 301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범우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륵’이란 이름을 처음 안 것은 전혜린의 에세이집에서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그녀가 이미륵 씨의 무덤에 찾아가 추모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당시 나의 호기심은 이름이 참 특이한 사람이구나, 정도로 그쳤었다. 이십대 초반에 대면했던 전혜린이 너무도 강렬하고 찬란했던 탓에 이미륵이란 작가는 그저 묻혀 버린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찾아 읽은『압록강은 흐른다』는 참 좋은 책이었다. 앞선 시대의 어린이가 놀고, 배우고, 사색하며 성장해가는 풍경이 심상한 듯 솔직한 필치로 잔잔하게 담겨 있었다. 일제 침략과 더불어 신구 문화가 교체되던 혼란한 시기, 아이다운 면모를 잃지 않으면서도 배움에 재능이 있고 자부심 강한 이미륵 소년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당시 독일사회에서 큰 호평을 받았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이방인인 그가 우리들에게 외계와의 이해에 있어서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것을 더욱 더 깊이 파고 또 깊이 실천해 나가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209). 이러한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 독일인들에겐 동양의 소년들이 제기를 차고, 연을 만들고, 서당에 모여 공부를 하고, 베개를 쌓아놓고 꿀을 훔쳐 먹다 들켜 매 맞았던 일 등 유년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특히 그 색다른 체험 안에 녹아있는 정직과 겸손, 가족애와 우애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닌 한국적인 미덕들에 반했으리라 생각된다.

  전에 동료 선생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인들은 값비싼 선물보다 깨진 도자기 조각 하나에 더 환호한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함께 근무하던 원어민 교사들도 대개는 익숙한 서구식 보다는 지극히 한국적인 장소와 음식, 물건들을 더 좋아하곤 했다. 특히 대표적 회식 메뉴인 소주와 삼겹살은 연령과 국적을 불문하고 환영 받았다. 그들은 양반다리와 젓가락질을 힘들어하고 마시던 잔을 톡톡 털어 다시 내미는 행동 등을 낯설어하면서도, 동시에 즐기는 모습이었다. 사계절 내내 지나치리만치 수수한 차림의 그들은 미지의 것, 독특한 것을 향한 호기심만큼은 열렬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서구 문화를 대함에 있어 우리가 간과하거나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또한『압록강은 흐른다』는 청소년 권장도서를 넘어 어른들에게도 두루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매사 균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부심과 자애심을 두루 갖춘 부모가 등장한다. “네가 자주 말한 것처럼 시대가 변하였다. 과거는 새 문화에 앞서 갔다. 새 문화는 자주 분수를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든지 그것이 생소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하며, 또 언제나 온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144) 소년 이미륵은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무엇보다 그의 부모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는 마땅히 추구해야 할 본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처럼 아이들이 막대한 자본으로 양육되는 시대, 올곧게 중심을 지키는 어른의 모습은 더욱 절실해졌다.

  내 또래의 어른 중에 015B의 노래 한편 따라 부르지 않고 서른이 된 청춘은 없을 것이다. 세련된 청승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그들은 ‘수필과 자동차’라는 예쁜 제목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가 이젠 없는 건 옛 친구만은 아닐 거야. 더 큰 것을 바래도 많은 꿈마저 잊고 살지. 우리가 여태 잃은 건 작은 것만은 아닐 거야. 세월이 흘러갈수록 소중한 것을 잊고 살잖아. 잊혀져가는 시대의 소중한 보고서이자 사랑스런 일기장인 이 책은, 담담하지만 기품 있는 어조로, 유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책과 정드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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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9-01-1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0년에 나온 요런책 소식은 우째 아시는거래요?!
그져 신기합니다. ^^
덕분에 또 훌륭한 책 한권 추천받아 좋으네요~
보관함으로 쓩~

아, 제가 깐따삐야님 리뷰를 보고 읽었던 '대ㅎ"나 "연ㅁ"은 정말 정말 좋았습니다.
물론 땡스투도 날려 드리고 있다지요!
여기저기 선물하느라.. 이히힛~


다음책 리뷰도 기대합니다.

깐따삐야 2009-01-15 22:47   좋아요 0 | URL
좋아하던 걸 계속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작가나 책을 발견하는 건 정말 반갑고 설레는 일이지요? ^^

언젠가부터 읽고나서 별로였던 책은 리뷰를 잘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른데 레와님이 좋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땡스투도 감사해요.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아주아주 재밌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책 있음 꼭 알려주세요. 책을 읽고 있는데도 책이 고파요. 요새는.

다락방 2009-01-16 08:45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살짝 끼어들어서 더 살짝 추천해드리자면,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아주아주 재미있는 책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추천해요. 깐따삐야님의 취향을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서 어쩌면 영 어긋나버릴지도 모르지만, 암튼 그 책 추천해요.
그리고 혹시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도 추천해요.
새벽 세시, 는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으실 거예요. 엄청나게~는 벌써 읽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

깐따삐야 2009-01-16 16:1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추천 고맙습니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알라딘 내의 입소문이 하도 무성해서 지금 배송을 기다리는 중이구요. '엄청나게...'는 아직 못 읽었어요. 다락방님 소개를 받고 찾아봤는데 분명히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꼭 일어볼래요! 앞으로도 재밌게 보신 책 있음 마구마구 추천 부탁드릴게요.

웽스북스 2009-01-14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혜린 책에서 이미륵 처음 봤던 것 같아요. 전혜린은.. 이십대 초반이나 십대 후반쯤 만났음 좀 더 인상적이었을 것 같은데 스물 다섯 넘어서 만나니 그다지 와닿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구, 오히려 이미륵에게 더 관심이 갔었으나, 찾아보지 않았던 게으른 영혼! 흐흣

깐따삐야 2009-01-15 22:55   좋아요 0 | URL
그쵸? 웬디양님. 전혜린 에세이집을 두 권 모두 갖고 있는데 이십대 초엽만 해도 감탄하며 읽던 문장들이 어느 순간부터 답답해지더라구요. 그래도 나름 삶의 부조리에 눈뜰(!) 무렵 위안과 더불어 길잡이가 되어줬던 책이라 애착을 갖고 있어요.

이 책은 전혜린의 에세이와는 분위기가 달라서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럽고, 재밌었어요.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순오기 2009-01-1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어린이용으로 나와 7차 교육과정에선 6학년 읽기에 수록되었어요.
어린이용은 상.하로 나누어 있지요. 아름다운 리뷰예요~~~~ ^^

깐따삐야 2009-01-15 22:5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론 지금의 어린이들보다 지난 시대의 어린이들, 그러니깐 요즘 어른들이 읽어야 더 공감이 가고 재밌을 것 같단 생각도 들지만요.^^
 

 마트를 나서니 눈발이 굵어지고 있었다. 차창에 달려들 듯 내리는 눈은 예쁘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올 겨울 이 도시엔 눈이 적어 그런가. 집으로 곧장 오기 아쉬워 일부러 돌아서 왔다.  


 지나가는 길, 왼편으로 우리가 결혼했던 웨딩홀이 보였고...


 집에 도착하니 벌써 주변은 어둑어둑해져 먹고 남은 콩나물국을 육수로 만두라면을 끓이는데.... 그렇다. 이제 난 저녁에 뭐 먹을까, 를 생각하는 아줌마가 되었을 뿐이고!


 작년 겨울, 요 모습 요대로 썰매타며 신나하던 철딱서니 아가씨는...   


 몇개월에 걸쳐 아무개 총각이 권해주는 많은 차를 홀짝홀짝 마시고는(저 안에 대체 뭐를 넣었길래),   


  거의 제정신, 제모습(?)이 아닌 채로 결혼식을 치른 바. 


 놀러가서도 레포트 걱정에 셰익스피어 하르방한테 니뿡~이나 날려주셨는데, 


 언젠간 바삐 학교로 향하던 다정한 느티나무길이 그리워지겠지. 올봄에도 개나리는 옹긋봉긋 피어날 텐데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남루하도록 진실하여 키 크고, 밝고, 늘 한 곳만을 바라봐주는... 가로등 같은 남자가 되려다 만 그이랑 오늘도 투닥거리며 살고 있다.  

 되도록 무심한 편이었고, 오히려 머릿속 잔상들을 편애하는 쪽이었는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일까. 사진을 정리하는 동안, 계절에 어울리는 추억 몇 컷 쯤은 '갖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에 다행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  

 어쩌면 점점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줄어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 나와, 내가 보낸 시간들을 응시하는 순간. 그 순간은 내가 보았던 책과 내가 썼던 글처럼, 내게 말을 걸어온다. 스쳐가는 시간 속에서 그러한 순간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바람. 낭만백수, 라는 로망까지는 아니어도 그 쯤의 여유는 내내 잃지 않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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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1-1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비록 사진은 나의 기억력을 왜곡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왜곡이 아닌 망각의 늪으로 건너가 버리는 게 기억인 것 같아요. 얼마전에는 대학교 1학년 때 사람들이랑 놀러갔던 얘기를 막 하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는 거에요. 아무래도 사진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아직도 혼자 기억 못했어요)

그리고 저 오늘 막 깐따삐야님한테 문자 보내고 싶었는데. ㅎㅎㅎ 왜냐면, 오늘 체크목도리를 샀거든요- (배터리가 없어서 못보냈어요. 흐흐) 사면서 어찌나 깐따삐야님 생각이 나던지 말이죠. ㅋㅋㅋ

깐따삐야 2009-01-13 00:25   좋아요 0 | URL
그쵸? 예전엔 사진 찍히는 것을 되게 어색해했는데 이제는 남겨야겠다는 의무감 비슷한 게 생겨서 그냥 찍히도록 놔두는 편이에요. 나이 먹으니깐 얼굴은 두꺼워지고, 기억력은 감퇴하고, 없던 욕심 생기고... 왜 이래. ㅋㅋ

으흐흐. 그랬군요! 오늘은 눈도 오고 해서 반가운 문자 받으면 기분 좋았을 텐데.^^ 그나저나 곧 체크목도리를 따듯하게 두른 웬디양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죠?!

라로 2009-01-1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여기서 축하드려도 되는건가요????^^;;;
축하해요~. 차를 타주는 섬세한 남자라면(뭘 넣었든~ㅋㅋ)
가로등이 되실것 같은데요!!!!ㅎㅎ
오랫만에 딴따삐아님의 여러모습 반갑기 그지 없습니당~.ㅎㅎ

깐따삐야 2009-01-13 15:08   좋아요 0 | URL
축하 감사합니다. 이젠 차 보다는 밥을 해주는 편이 더 좋다는. ㅎㅎ
nabi님의 가족분들도 안녕하시지요? ^^

조선인 2009-01-13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깐따삐야님의 결혼사진도 보네요. *^^*

깐따삐야 2009-01-13 15:09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오랜만이에요. 그 날 사진을 이 사람, 저 사람이 많이 찍어 주었는데 부끄부끄해서 한 장만 올려보았어요.^^

레와 2009-01-13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놀.! +_+

쇠골뼈도 보이고, 막~ 우후훗 ^^
사진에 대고 '하이' 요라고 있어요. 으흐흐~

깐따삐야 2009-01-13 15:10   좋아요 0 | URL
하핫. 레와님의 댓글에 저야말로 깜놀! 제가 원래는 저렇다구요. (정말?)

마늘빵 2009-01-1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제가 봤던 그 분이 맞나요? ^^ 위에 최근 사진은 맞는거 같은데, 결혼식 사진은 와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깐따삐야 2009-01-13 15:14   좋아요 0 | URL
아프님의 반응은 제 남자 동기들의 반응과 비슷하네요. 메이크업을 넘 과하게 안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길 망정이지, 아니면 다들 식장이 바뀐 줄 알고 나가버렸을까나요. 평소에 좀 잘하고 다녀야지 이거야 원.-_-

Alicia 2009-01-13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뻐요. :)

깐따삐야 2009-01-13 15:15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댓글은 10점 만점에 10점~! ㅋㅋ

개츠비 2009-01-1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눈이 부시네요...^^

깐따삐야 2009-01-15 22:40   좋아요 0 | URL
오우 별 말씀을...^^

순오기 2009-01-14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런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뒷북이야요.ㅋㅋ
셰익스피어 하르방은 뿡야를 발사해도 잘 계시던가요?^^

깐따삐야 2009-01-15 22:42   좋아요 0 | URL
유명인사들이 잔뜩이었는데 셰익스피어 하르방을 보고는 반가운 맘에 니뿡!
쟤 뭐니... 하는 표정 같지요.-_-

미미달 2009-01-16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웨딩드레스 입으신 모습 완전 아름다우세요 ㅇㅅㅇ

깐따삐야 2009-01-16 16:18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모든 신부는 다 아름답죠.
미미달님도 결혼식 때는 더더더 예쁠 거에요.^^

다락방 2009-01-16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 사진이 여기 올라와 있었다니!!
처음 사진은 얼굴이 잘 안보여서 모르겠구요,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을 보니 어쩐지 아, 깐따삐야님 답다, 싶어져요. 음 따뜻하고 밝은 성격과 살짝 새침한 모습이 동시에 들어있는 얼굴이에요. 예뻐요.
:)

깐따삐야 2009-01-16 16:24   좋아요 0 | URL
처음 사진은 주변에서 장난으로 덮어 씌운 모자 때문에 당최 컨셉이 없죠.
그나저나 사진에서만 새침하네요. ㅋㅋ 저는 다락방님을 뵌 적이 없어서 다락방님은 어떤 모습이실까,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