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를 나서니 눈발이 굵어지고 있었다. 차창에 달려들 듯 내리는 눈은 예쁘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올 겨울 이 도시엔 눈이 적어 그런가. 집으로 곧장 오기 아쉬워 일부러 돌아서 왔다.

지나가는 길, 왼편으로 우리가 결혼했던 웨딩홀이 보였고...

집에 도착하니 벌써 주변은 어둑어둑해져 먹고 남은 콩나물국을 육수로 만두라면을 끓이는데.... 그렇다. 이제 난 저녁에 뭐 먹을까, 를 생각하는 아줌마가 되었을 뿐이고!

작년 겨울, 요 모습 요대로 썰매타며 신나하던 철딱서니 아가씨는...

몇개월에 걸쳐 아무개 총각이 권해주는 많은 차를 홀짝홀짝 마시고는(저 안에 대체 뭐를 넣었길래),

거의 제정신, 제모습(?)이 아닌 채로 결혼식을 치른 바.

놀러가서도 레포트 걱정에 셰익스피어 하르방한테 니뿡~이나 날려주셨는데,

언젠간 바삐 학교로 향하던 다정한 느티나무길이 그리워지겠지. 올봄에도 개나리는 옹긋봉긋 피어날 텐데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남루하도록 진실하여 키 크고, 밝고, 늘 한 곳만을 바라봐주는... 가로등 같은 남자가 되려다 만 그이랑 오늘도 투닥거리며 살고 있다.
되도록 무심한 편이었고, 오히려 머릿속 잔상들을 편애하는 쪽이었는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일까. 사진을 정리하는 동안, 계절에 어울리는 추억 몇 컷 쯤은 '갖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에 다행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
어쩌면 점점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줄어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 나와, 내가 보낸 시간들을 응시하는 순간. 그 순간은 내가 보았던 책과 내가 썼던 글처럼, 내게 말을 걸어온다. 스쳐가는 시간 속에서 그러한 순간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바람. 낭만백수, 라는 로망까지는 아니어도 그 쯤의 여유는 내내 잃지 않았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