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발랄하게 주고받는 핑퐁 같은 스토리. 상큼하고 바삭한 쿠키 같은 대화. 다소 허무한, 그럼에도 더 이상을 바라기도 뭣한 단출한 결말. 잘못 보낸 이메일 한통으로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에미와 레오의 러브스토리는 인터넷과 이메일이 보편화 되면서 여러 장르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고 참신했다. 한편, 읽는 동안 스쳐가는 기억들이 있었고, 그 순간 속에 머뭇대느라 책장을 잠시 덮어두기도 했고, 책을 고른 것은 나였지만 이 책이 왜 내게로 왔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분명코 추억으로 남을 독서였다.
생활의 안녕을 위해 꼬박꼬박 살고 있다지만 우연하고도 모호한 비밀 하나 쯤 간직하지 않은 삶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단순히 일상의 습관이 주는 안락에만 기대어 사는 것이 아니다. 새로울 것 없는 생활회화의 세계에서 잠시잠깐 이탈하여 깊숙한 마음의 목소리와 목소리가 맞부딪쳐 불꽃이 일어 그 온기로 가슴을 촉촉이 데우고픈 열망.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되는 그 비효율적 열망에 때때로 시간과 에너지와 영혼까지 내어바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우리에게 그처럼 흥미로운 대화에 동참할 할 수 있고, 다른 이의 매력을 상상하고 찬미할 줄 알며,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이 세상엔 아마 사랑도, 예술도 없었을 것이다. 에미의 남편 베른하르트와, 레오와, 작가는 결국 에미의 거침없는 행보에 제동을 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에미가 에미가 아닌 사람이 되거나, 진심이 사라지거나, 두 사람의 추억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만의 유일한 능력인 사랑은 때때로 현재의 인습 그 너머로 넘어선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시적이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유혹에 연연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도 그처럼 당장 움켜쥘 수 있는 것들이 결국, 보이지 않는 진실만큼 큰 공명을 일으키지는 못함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루시드 폴이 노래하듯 몸집만한 선물보다 더욱 컸던 내 마음, 그건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공명에 이끌려 발 디딘 현실로부터 둥둥 떠오를 수도 없는 일. 어쩌면 발칙한 상상과 평범한 일상이란 서로 맞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보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