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려고 나서는 길. 이따금 꽃다발을 든 아이들이 눈에 띈다. 졸업시즌인 것이다. 교복 입은 아이들도 있지만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 아이도 보이고 짧은 치마에 레깅스를 신은 여자 아이들도 보인다. 어른처럼 입을 만큼 몸은 다 자랐는데 십대는 어떻게든 티가 난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으련만 꾹꾹 참고, 혹은 참다못해 폭발해서 주위를 놀라게 했을지언정, 무사히 인생의 한 마디를 맺은 그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추억은 방울방울>, <귀를 기울이면>, <바다가 들린다>와 같은 서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개봉되거나 국내에 소개될 때 그 즉시 찾아볼 정도로 열정적인 편은 못 되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보거나, 영화정보를 훑어 본 후 괜찮겠다 싶으면 구해서 보곤 한다. 그러한 명작 애니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 서랍 속의 바다가 노래를 하고, 그 노래를 타고 지나간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심신이 정화되는 듯 수채화 같은 화면들에 반하는 한편, 일본 애니란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자극과 엽기, 그 대척점에 그처럼 오롯한 순진성과, 근사한 성찰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한 명작 애니 중의 한편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 소녀 마코토의 성장기. 한 번쯤 해봤음직한 상상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 그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철판구이가 먹고 싶어 며칠 전 저녁식사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든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실컷 부르려고 처음 그 타이밍으로 구르고 또 구르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공감백배라서 나두나두!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뿐인가. 새롭게 생긴 능력 덕분에 막막했던 쪽지시험은 가뿐히 백점을 기록하고 가사실습 시간에 불을 냈던 실수도 만회한다.

  그러나 마코토의 타임 립은 이렇듯 귀여운 변칙에서 그치지를 않는다. 어색해질까 두려워 절친이었던 치아키의 고백을 세 번씩이나 무마하고, 또 다른 절친인 고스케와 후배를 엮어주려다가 기차 사고의 위기를 맞는다. 이후에 밝혀지는 치아키의 비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코토는 스스로의 마음에 눈을 뜬다. 갑작스럽게 치아키를 잃어야만 하는 마코토는 목놓아 엉엉 울고 치아키는 다가와 말한다. “미래에서 기다릴게.” 사랑스런 마코토. “응! 금방 갈게. 뛰어 갈게.” 이 순간 눈물은 그렁그렁. 마음은 울렁울렁. 이제 치아키는 마코토에게 설레는 미래이자, 보고 싶은 희망이 된 셈이다.

  타임 립을 즐거워하는 마코토에게 어느 날 이모가 말한다. 네가 시간을 되돌리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겠냐고. 예전에 그런 콩트를 본 적이 있다. 돈이 없어지지 않는 지갑을 줍게 된 사람이 있었다. 한동안 돈을 펑펑 쓰며 행복에 겨워했는데 어느 날 잘 관찰해보니 자신의 지갑에서 만원이 나오는 순간 다른 사람 지갑 속 만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중에 그 사람은 지갑을 어떻게 했을까. 안타깝게도 기억이 안 난다.) 마코토 역시 그렇다. 자기 편의대로 타임 립을 사용하다 보니 의외의 피해자가 생기기도 하고, 이 순간을 막으려고 돌아가면 또 다른 돌발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타이밍을 조작한다고 해서 본래 품고 있던 마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닐뿐더러, 생각 없이 기회를 몽땅 써버린 탓에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리고는 신중하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통곡하는 것이다. 엉엉.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신기해하는 타임머신 류의 이야기가 아닌, 착하고 사랑스러운 성장영화였다. 언젠가는 선머슴 같은 마코토도 이모처럼 신중하고 차분한 숙녀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때로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진실이다. 사람이 우아하면 우아할수록 우악스런 과거를 보냈을 수도 있다. 스스로를 책망하고 아파하면서 즈믄밤을 보내 본 사람만이 마코토의 이모처럼 내용도, 타이밍도 모두 근사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건 아닐까.  

  잊을 수 없는 장면. 노을 지는 강가. 자전거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치아키의 프로포즈는 완전 귀엽다. 나랑 사귈래? 나 그렇게 못생기지는 않았잖아. 마코토는 이 고마운 고백을 마다하느라 그토록 정신없이 헤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럴 땐 놀라지 말고 사겨야 한다는 게 이 영화의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이려나. 영화 중간중간 푯말처럼 지나가는 말, Time waits for no one이므로?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도 지나봐야만 보이는 진심이 있고 놓쳐봐야만 깨닫는 진가도 있다. 꼭 한발 늦게 찾아오는 진실이라니. 차~암 쉽졀하지 않다. 타임 립이 안 되는 우리는 그저 주어진 시간 꼬박꼬박 살아내고 무엇이 최선일까, 자신의 마음을 열심히 들여다 볼 수밖에. 혹시나... 치아키라는 꽃미래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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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12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들도 챙겨보시도록 하세요.
자세한 건 제 리뷰를 뒤져보면 대부분 나올 껍니다.^^

깐따삐야 2009-02-14 00:39   좋아요 0 | URL
옹? 애니의 지존인 메피님이 권해주시니 꼭 찾아보겠습니다!

2009-02-13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4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09-02-1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보고 싶게 만드는 깐따님표 리뷰~*


깐따삐야 2009-02-14 00:45   좋아요 0 | URL
이런 애니들은 레와님의 사진 같아요.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고! ^^

2009-02-13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4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9-02-13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산 CGV에서 이거 볼 때, 극장 안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듬뿍 가지고 보러온 듯한 관객들로 가득해서요.

깐따삐야 2009-02-14 00:49   좋아요 0 | URL
음~ 그랬군요.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친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급하기조차 꺼려지는 강호순 이름 석자가 인터넷이고 공중파고 도배를 할 즈음 엄마와 대화. 엄마, 어떻게 저 사람은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도 죄책감은커녕 반성의 기색조차 없을까? 처음에는 그랬겠지. 맨 처음 살인을 저질렀을 때는 자기도 괴롭고 죄책감도 느끼고 했겠지. 그런데 지금 와서 강호순한테 반성이니 죄책감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 그래서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거고 중요한 거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거고, 그래서 중요한 거다. 몇 년 전 초임 발령을 받았을 때 아이들한테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도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맞으면서 자랐고 시의적절한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의적절함에 대해 판단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리벙벙 초임 교사일수록 어찌나 권위적인지!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일 뿐인데 당시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을 나는 불가피한 도전쯤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결국 매를 들게 되었고 처음에는 체벌을 하면서도 이 방법은 아닌데 싶어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나 어느새 아이들이 반항만 할라치면 체벌로 위협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아프게 맞는 것 보다는 조용히 하는 편이 낫겠지? 매번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 같은 교사, 다시 말해 교육경력도 길지 않은데다 일상생활에서나 학교현장에서나 감정 조절이 미숙한 교사가 체벌을 하면 맞는 아이들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때리는 스스로도 마음만 불편하고 교육적인 효과는 더더군다나 없다. 그래서 조만간 학교로 복귀하면 아예 매를 들지 않을 생각이다. 더욱이 매는 처음 들기가 어렵지 한번 들기 시작하면 강도가 점점 세어지는 특성이 있지 않던가. 우리 엄마도 처음에는 자로 때리다가 그 다음 번에 또 다시 반항했을 때는 빗자루를 들고 쫓아오셨다. 한 대 맞던 것을 두 대 맞는다고 갑자기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점점 맷집만 좋아질 수도 있다.

  학교 후배 중에 J라는 후배가 있다. 언젠가부터 징글징글해져서 연락을 끊고 지낸다. 그 애는 어른스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한 번 가까워지면 그저 보는 사람마다 자기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만날 때마다 먹구름을 몰고 오는 사람을 반기는 이는 별로 없다. 처음에 그 애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때 나는 앞으로 이 딱한 아이를 잘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J의 푸념은 습관적이었다. 처음에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때는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점점 내성이 쌓여서 조금만 친분이 쌓이면 드러내놓고 눈물을 훔쳐대게 된 것이다. 그 아이를 만날 때마다 나는 깔때기 안의 거름종이가 된 기분이었다. 다 쏟아낸 J는 후련해졌는지 모르지만 매번 그 푸념을 걸러줘야 하는 나는 뭔가.

  그러던 어느 날 참다못해 입바른 말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면 상황 탓만 하지 말고 네 생각을 변화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식의 말을 돌리고, 또 돌려서 해주었는데 돌아오는 말은 예상 밖이었다. 갑자기 발끈하더니만 자기를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가, 이런 식의 만남이라면 계속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했었는지를 갸웃갸웃. 지금의 나라면 조금 달랐겠지만 조용히 돌아와서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그 충격적인 만남에서 돌아오던 길, 절에서 나왔다는 두 여인이 내 얼굴의 수심을 알아보았는지 굿을 해야겠다고 말을 걸어왔다. 정말 푸닥거리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의 손바닥을 찰싹찰싹 때릴 적엔 그 소리에 맞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오히려 아이들의 표정은 덤덤한데 내 표정만 들쭉날쭉했다. 카리스마라고는 쥐뿔도 없었고 그 순간 아이가 정말로 미워 보이는 찌질한 경험을 하면서 아, 나는 매를 들면 안 되는 교사 중의 하나로구나 싶었다. 별다른 실효도 거두지 못한 채 아이들 앞에서 더 찌질해지기 전에 서로에게 아픈 짓이라도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나도 한 고집 하다 보니 숱하게 맞으며 자랐고 매우 따끔하게 맞고 잘못을 비는 일이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불가피하단 생각도 한다. 목이 쉬어라 호소를 해도 자꾸 엇나갈 때는 체벌에 대한 유혹도 없지 않다. 하지만 감정 덩어리인 내가 첫 발을 떼고 보니 자칫 습관이 되면 당위성을 잃고 패악질이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항상 평상심과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는 인간인지라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었다.

  J 같은 경우는 아무리 본인의 삶을 정당화하며 눈물로 호소를 해도 사람 자체가 참 없어 보였다. J가 부끄러워하던 J의 배경은 부끄러워할 게 없었다. 선택해서 타고 나는 것도 아닌데 부정하고 부끄러워해봤자 무슨 소용이냐 말이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은연중에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신, 그리고 습관적인 자기변명이었다. J는 얘기 중에 괴로움의 원인을 자신의 순수함 때문이라고 뜬금없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순수하다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아예 힘들지도 않다. 욕심이 없는데 뭐가 힘들고 못된 생각 자체를 안 하는데 괴로울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정말 힘들다면 덜 순수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러한 자기모순을 지적하면 변명 아니면 발끈이니 누가 과연 옳은 말을 해주겠는가. 변명도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 더욱이 아무리 도도한 자세를 취해도 사람이 아주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말들을 종종 듣는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힘도 없고 울림도 없는 문장인지 잘 안다. 언젠가 길을 가다 무심코 사탕껍데기를 버린 적이 있다. 길옆에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그거 누구보고 치우라고 거기다 버리는 거예요? 물으며 빤히 쳐다보셨다.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창피한 경험이다. (참고로, 평소에 그러지 않던 사람은 길가에 쓰레기 쉽게 못 버린다.) 차창 밖으로 훅~ 쓰레기를 던졌다가 기어가 나가서 창문이 안 닫히는 바람에 찬바람 쏠쏠 맞아가며 집에 온 적도 있다. 그때 그 아저씨가 보셨으면 고것 참 쌤통이라고 하셨을 게다. 처음에 망설이면서 몇 번 버렸을 때 주위에 뭐라는 사람도 없고 창문도 멀쩡했으니 어느덧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주변에 쓰레기통만 안 보이면 지금도 손이 움찔거려 에비에비! 하고 앉았으니 습관이란 건 참 무섭다.

  대개의 모든 습관들이 그렇다. 영 아니다 싶은 일도 처음 한 번이 어려울 뿐. 어찌어찌하여 한두 번 그러다보면 주구장창 막장으로 내달리는 건 일도 아니다. 나도 처음 꼬깃꼬깃 호주머니 속 쓰레기를 길가에 털어놓을 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길가에 쓰레기를 가장 많이 버린 교사가 되었다. 참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이건 아니지 싶은 행동들도 점점 익숙해지다 보면 처음의 망설임이나 죄책감은 무딜 때로 무디어져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리는 순간이 온다. 눈앞의 욕망, 코앞의 편리 때문에 애초에 찌질한 짓을 시작하지를 말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삶을 향한 내공이지 몹쓸 습관에 대한 내성이 아니다. 막장으로 가는 건 정말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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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2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2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소한의 유머조차 구사할 수 없는 날이 있다. 나와 나 이외의 것들이 유리벽 하나로 분리되어 소통은 고사하고 맥없는 정적만이 흐르는, 그런 날. 수세미로 베란다를 밀어본다. 아직 차지도 않은 쓰레기통을 비운다. 두 번 털어 널던 빨래를 세 번 쯤 털어본다. 걸레를 새 수건처럼 깨끗이 빨아본다. 손을 벨 듯 빳빳하게 깃을 세워 다림질도 해본다. 그렇듯 부지런히 움직이는 와중에도 고민한다. 이 따위 잠시잠깐 도피로서의 노동이 무슨 해결책이 될 수 있으랴. 마음은 뒤숭숭한데 어쩐지 꼼짝할 수조차 없어 뚱뚱하고 기름진 도넛 안에 감금된 듯한 그런 날이 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함으로써 물리적으로는 편해졌는지 모른다. 나는 손발이 부지런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란 여자는 머리와 마음 또한 참 부지런해서 그를 미궁에 빠뜨리는 일이 잦다. 평소에 그는 나를 무슨 지식IN 언니쯤으로 생각한다. 지금 다른 거 하는 거 안 보이냐고 신경질을 부리면 빙글빙글 웃으며 당신은 모르는 게 없잖아, 라고 말한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배우 이름은 늘 헛갈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 좀 누가 읽어줬음 좋겠다, 라고 느물거리는 그를 어쩌면 좋을까. 처음에는 참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 앞에서 마구 잘난 체를 해왔다. 그것도 몰라? 저것도 몰라!

  그런데 살다보니 내가 참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씩 나는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스스로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에게 묻는다. 나 왜 이렇지? 나 왜 이런 것 같아요? 그럼 그는 각설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당신은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래요. 노인네처럼 말한다고 구박을 하면 자기도 나 같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잘 기억도 안 난다고 심상하게 대꾸한다. 그리고는 그 조그만 머릿속에 그 숱한 생각들을 담고 살아가는 게 신기하다며 걱정스러운 듯 바라본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내가 아무리 잘난 체를 해봤자 그에게는 그저 다루기 힘든, 걱정스러운 반쪽이구나 싶어진다. 종종 알 수 없는 조울 증세에 시달리고, 머릿속에 잡동사니 사념들을 그득 구겨 넣고는 안 해도 되는 고민들을 하고 사는, 아직 철이 덜 든 마누라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방긋거리며 일상을 잘 꾸려나가다가도 어느 날 문득, 거대 도넛 안에 갇혀버리면 그걸로 끝장이다. 중대사에 있어서는 매우 담대한 반면 아주 사소한 일로 기분이 상해서는 몸져눕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한 공간에서 그 이물스러운 공기를 함께 마셔야 하는 남편으로서는 참 황당하고 갑갑하겠지만 이제는 이골이 났는지, 아니면 그럴수록 자기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감각 잃은 봉제인형 같은 나를 마냥 기다리고 또 기다려준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에 식당 주인인 사치에가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싫어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거예요.” 생끗 웃으며 담담하게 말하는데 그야말로 간지 좔좔 흐르는 대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핀란드 헬싱키든, 베트남의 하노이든, 우리나라의 서울이든, 그 어디서든 자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쉬다가 출근하려니까 싫지? 라고 묻는 내게 남편이 그랬다. 이게 내 일인 걸 싫다고 생각하면 되나. 아무리 책을 많이 보고 배우 이름만 외우고 있으면 뭐하나. 그는 훨씬 고수다. 까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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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1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부터 남편이 온갖 잡스러운 걸 물어 볼땐 생긋 웃으면 "검색창에 ooo을 쳐 보아요" 대꾸해버리세요..^^ (좋은 것 가르쳐 준다 칫)

카모메 식당에 가면 전 환영받을 꺼에요. 우주과학닌자단갓차만(우리나라명 독수리 오형제) 노래를 다 부를 수 있거든요..다레다 다레다 다레다~~!!

댓글뱀꼬리 : 아주 잠깐 0.01초 페이퍼를 읽기 전 제목만 보고 깐따삐아님과 문근영양을 오버랩 시켜볼 뻔 했다는..=3=3=3=3

깐따삐야 2009-02-10 15:19   좋아요 0 | URL
이혼한 지 한참 된 배우가 나와서 이혼 어쩌구 하면 언제 이혼했냐고 물은 다음, 그 이혼사유를 저한테 묻는다니깐요.ㅠ

다레다 다레다 다레다... 하핫. 생각나요. 저는 거기 가면 따끈한 시나몬롤하고 코피 루왁! 하면 급맛있어지는 커피 한 잔 하고파욥.

근데요, 아사다 마오가 문근영 쫌 닮지 않았어요? 문근영+이미연 짬뽕 같애. 그래도 우리 김연아가 쵝오! 댓글은 방향을 잃고... 흠흠.

웽스북스 2009-02-10 15:23   좋아요 0 | URL
저도저도저도요!

웽스북스 2009-02-10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깐따삐야님. 저 완전 공감이요.
저는 신부는 아니지만, 가끔 저보다 연륜 있으신 분들 앞에서 좀 잘난척 하다 보면 막 자각과 반성의 물결에 마음에서 메아리치곤해요. 흑흑.

그런데 방긋거리며 살림하는 깐따삐야님은 완전 사랑스러움 ^-^
문근영 저리가라! 훠이훠이!

깐따삐야 2009-02-10 15:30   좋아요 0 | URL
그쵸! 자각과 반성의 물결이 쓰나미로 밀려오는 퐝당부끄한 경험. 웬디양님도 그랬군요. 페퍼민트의 이하나처럼 우리가 아직 쫌 어설퍼서 그래요. 그걸 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서로 토닥토닥.^^

방긋거리다가도 곧잘 할매가 뿔났다, 로 변해요. 세상 모든 것들이 둘째 며느리 고것처럼 적대적으로 보인다니깐요. ㅋㅋ

레와 2009-02-10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오니기리!!

저도 '하기싫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그 담백하게 생긴 여배우의 말에 쿵-했어요.


배고파.ㅡ.ㅜ

깐따삐야 2009-02-10 22:48   좋아요 0 | URL
레와님도 보셨군요. 근데요, 그 여배우 은근 자우림의 김윤아 닮지 않았어요? 느낌이 분명 다른데도 계속 오버랩 되는 이유는 뭘까요. 흠.

프레이야 2009-02-10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야님 왜 제 생각이 나며 웃음이 나죠.
충분히 사랑스러운 어린신부에요.^^
님 말이에요.

깐따삐야 2009-02-10 22:49   좋아요 0 | URL
혜경님도? ^^ 너무 사랑스러워서 막 죽이고 싶죠? ㅋㅋ

비로그인 2009-02-10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금만 더 단단해지고, 깐따삐야 님은 조금만 더 느슨해지면 어떨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서로가 서로가 아닌 게 되겠지요.

깐따삐야 2009-02-10 22:54   좋아요 0 | URL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면도 많아요. 우리는.^^ Jude님도 저도 자아가 견고하지만 그만큼 가슴에 사랑도 많은 사람들이라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에요~

이잘코군 2009-02-1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그러니깐 '우리 신혼이에요' 라고 알리는 페이퍼에요. 숨겨도 소용없어, 그런거야, 중얼중얼.

깐따삐야 2009-02-10 22:57   좋아요 0 | URL
낯선 두 남녀가 만나 함께 살다보면 다~ 이런 겁니다. 에헴! ㅋㅋ

2009-02-11 0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1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2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2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2-1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 앞에선 팍 숙이고 살아야죠~~ ㅋㅋㅋ

깐따삐야 2009-02-16 00:06   좋아요 0 | URL
^^;
 

  매주 금요일 밤이면 KBS에서는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방송한다.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초로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이어지는 음악토크쇼이다. 늦은 시간에 방송을 해서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잠이 안 오거나 관심 가는 가수들이 나오면 즐겨보곤 한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역대 진행자들 중 노영심과 이소라가 출연해서 뜻밖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노영심의 시골아이 같은 표정은 여전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말을 거는 듯 경쾌한 피아노 선율을 들려주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페퍼민트 워킹’이라는 예쁜 곡명을 짓는다. 순간 내가 직접 음악 선물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환해졌다. 그녀가 만든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와 ‘그리움만 쌓이네’는 한때 나의 노래방 애창곡이었다. 학창 시절 내 기억 속 노영심은 머리 좋고 피아노 잘 치는 대학생 언니이자, 빨강머리 앤의 주제곡 마냥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피아니스트였다.

  그리고 이소라. 나는 사춘기의 한 시절을 ‘이소라의 음악도시’를 들으면서 보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함께 그녀의 느릿느릿 굵직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지난밤 들었던 음악도시를 재현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머리를 짧게 자른 채 7집을 들고 나온 그녀.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를 때는 오래된 카페의 베테랑 재즈 가수처럼 보이는데 인터뷰를 할 때의 모습은 음악도시 DJ 시절의 그 모습이다. 그녀는 짐짓 엉뚱하고 둔감해 보인다. 하지만 근래의 무식한 아이들이 너도나도 표방하는 무개념과 무배려의 4차원이 아니다.

  분위기가 뭔가 어색해지면 그것은 나 때문일 거라고 말하는 그녀. 꽃분홍색을 입고 나오고 싶었지만 오늘도 검정색 옷을 입고 나왔다며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고 말한다. 본인의 진행 솜씨에 대해 걱정하는 이하나에게는 그것이 노래든, 연기든, 진행이든, 기다리면 저절로 되는 때가 있다고 조언한다. 진행자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면서 솔직하되, 세심한 배려를 가득 담아 대답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주변이 맑게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오래 고독하고 깊게 상처 받았던 이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초연함, 그럼에도 울퉁불퉁 옹이진 마음 없이 착한 웃음소리를 간직한 그녀. 이소라는 의젓하게도, 오직 자신의 노래 속에서만 운다.

  금요일 밤을 불면으로 보낸 것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이 두 여인 때문이다. 특히 세월이 흐를수록 초라해지기는커녕 노래는 무르익고 마음은 깊어지는 진짜 뮤지션, 이소라와 재회한 것이 반갑고 기뻤다. 마음이 쉬이 늙어버린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페퍼민트 워킹이라는 고운 음악을 선물할 수 없다. 또한 각자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추어둔 그리움을 끌어올리는 절절한 노래를 부를 수도 없다.

  사랑에 대해 묻는 이하나에게, 내게 이제 사랑은 유리 같다,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고 말하기까지 이소라, 그녀가 지나온 시간은 어떠했을까 나 혼자 상상이 되어 마음이 조금 아팠다. 사치스러운 고독이 판을 치는 작금의 세태에 단연 돋보이는 리얼 고독이다. 난 새롭거나 모나지 않은 말 주워 좀 외롭거나 생각이 많은 날 누워 내 음을 실어 내 말을 빌어서 부른다 Track 5의 가사다. 이소라는 외롭고, 참 착한 뮤지션이다. 사랑과 일과 음악에 있어 내내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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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08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녀를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만납니다..^^
M본부 FM에서 DJ 하고 있지요..^^

깐따삐야 2009-02-10 15:02   좋아요 0 | URL
앗! 근데 여기는 그 시간대에 지방방송 하거든요. 흑흑.

Mephistopheles 2009-02-10 15:04   좋아요 0 | URL
안타깝군요....정말 재미있게 방송하는데..^^

노이에자이트 2009-02-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하나 누나...노래도 잘하고 목소리도 이쁘고 몸매도 이쁘고...다 이쁜 누나...

깐따삐야 2009-02-10 15: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노이에자이트님에겐 이하나 누나야말로 착한 누나네염.^^

프레이야 2009-02-0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랜만에 봤어요. 이하나가 노래부를 때 찬찬히 얼굴을 살피며 최대한 배려하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노영심, 여전히 착하더군요. 이소라도 오랜만에 티비에서 반가웠구요.
삐야님도 이소라 팬이군요. 그런데 전 그녀가 노래할 때 어찌나 지독한지(고독한지) 그만
다 듣지 못하고 티비를 꺼버렸네요.

깐따삐야 2009-02-10 15:07   좋아요 0 | URL
혜경님도 보셨군요! 노영심은 어디 한 구석 예쁘지 않은데도 참 예뻐 보이더라구요. 그녀의 연주 속에 따듯하고 섬세한 마음씀이 드러나서 그렇겠죠? ^^

티비를 꺼버리신 그 심정 알 것 같아요. 그날 노래하는 이소라의 모습은 검고 지독한 고독, 그 자체였어요. 잠이 확 달아나는 것 같았어요.

웽스북스 2009-02-0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처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전에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가 있었지요. 그랬지요 ^_^ 전 이하나 좋아해요. (이건 연애시대에서 깐따삐야님 동생으로 나왔을 때부터 ㅋ) 페퍼민트를 본 적은 없지만, 진행을 잘 못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진행을 꼭 잘해야되나 싶어요. 출연자들에게 적절한 말을 건네며 빛나게 해줄 수 있는. 그게 이하나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한번도 안봐놓고 잘도 말한다는 ㅋ)

깐따삐야 2009-02-10 15:12   좋아요 0 | URL
연애시대의 이하나는 정말 엽기였죠. 참하게 생겨가지고는 꼬물꼬물 발가락 만지던 손으로 뭐 먹고.ㅋㅋ 페퍼민트 진행자로서는 저도 좋은 점수 못 주겠어요. 큰 키가 부끄러운 듯 너무 겸손하게 진행을 해서 좀 안쓰럽더라구요. 연기할 때 보여주던 톡톡 튀는 발랄함과 엉뚱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래도 신선한 마스크에 노래도 잘하고 재주 많은 츠자라서 기대를 갖고 있어요.^^

레와 2009-02-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욕심이 강하게 생겼어요!
가수든 배우든 알라디너든(^^) 할 것 없이,
'아.. 저 사람, 사람냄새 나서 참 좋다.
언제한번 만나서 밥도 좋고 술도 좋고 차도 좋고..
마주 앉아보고 싶다..'라는.. 요런 생각이 왕왕 들어요.

깐따삐야님 글속에 가수 이소라도 그렇고, 깐따삐야님도 그렇고.. ^^

깐따삐야 2009-02-10 15:15   좋아요 0 | URL
이런이런 레와님! 제가 오늘 딱 그 기분이어요. 가까이 살면 전화해가지고 낮술 한잔 어때염? 막 이러고 싶다니깐요. 레와님이 카메라 안 들고 오신다는 조건 하에 막 꼬장 부리고 싶은. ㅋㅋ ^^

레와 2009-02-11 21:42   좋아요 0 | URL
아... 아깝다..;; ㅎㅎ
 


  얼마 전에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EBS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약육강식의 공룡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점박이’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였다. CG와 시나리오가 훌륭해서 웬만한 영화보다도 훨씬 나았다. 돌이켜보면 인상에 남는 다큐들이 꽤 있다. EBS의 <명의>도 좋았고 MBC의 <타샤의 정원>도 좋았다.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다큐멘터리만큼은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사느라 상영시간에 딱 맞추다시피 입장했는데 예상보다 관객이 많아 깜짝 놀랐다. 극장 맨 구석의 비좁은 개봉관으로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old partner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체인질링>이나 <워낭소리>를 볼 때 곁에 앉은 관객들은 서로 은밀한 공모라도 한 것처럼 반갑다.

  이 다큐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삶 그 자체로 말을 거는 작품에 대해서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아픈 머리를 싸매고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도 소 먹일 꼴을 베러 가는 할아버지, 9남매를 공부시키고도 모자라서 일어서지 못하는 그날까지 노부부를 위해 땔감을 잔뜩 실어다 준 소,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질투하고 염려하면서도 할아버지 없으면 못 산다고 고백하는 할머니. 그렇게 동고동락한 40년의 세월 앞에서는 가타부타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서도 소를 키웠었다. 중3때까지 살았던 고향집.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편으로 우리 집이 있었고, 가운데 마당에는 누렁이집, 오른편에 외양간이 있었다. 외양간 안에는 조그맣게 토끼장이 있었고 그 옆으로 여물을 써는 작두와 사료포대들이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큰 눈을 껌벅거리며 밥 달라고 음메 거리는 소들이 보인다.

  그때는 소를 키운다고 하지 않고 ‘소를 먹인다’는 표현을 썼다. 그 집은 소를 몇 마리나 먹여? 동네에 일소로 직접 논이나 밭을 가는 할아버지도 계셨지만 대부분의 집은 목돈을 마련할 목적으로 소를 먹였다. 암소는 송아지를 낳게 할 목적으로, 황소는 잘 먹여서 내다 팔 목적으로 키우곤 했던 것이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 날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점심을 챙겨 먹기 전에 소밥부터 주었던 기억도 난다. 어렸지만 어렴풋이나마 소가 얼마나 중요한 구성원인지 느꼈었나 보다.

  낮부터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합기도장을 운영하던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다큐 속 할머니처럼 우리 엄마도 소가 황송아지를 낳으면 더 좋아하셨다. 노루 새끼처럼 연약해 보이는 송아지는 몇 번 비틀거리다가는 벌떡 일어선다. 어미 소는 송아지를 핥아주며 모두를 경계하고 엄마는 솥에 정성껏 국을 끓이셨다. 동네 아저씨들이 마실을 왔다가 외양간에 들러 송아지를 구경했고 그땐 나도 왠지 뿌듯한 기분이었다. 그 송아지가 자라 어디론가 팔려가고 외양간의 한 자리가 텅 비었을 땐 막연히 슬프고 아쉽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마침 소띠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소띠였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처럼 우리 할아버지도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다. 막걸리를 마시며 힘을 내는 소처럼 할아버지도 술기운으로 고된 농사일을 견뎌내시곤 했다. 내가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항상 네가 선희냐?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물론 내가 선희가 아니란 걸 알고 계셨다. 선희는 나와 자주 다투던 이웃집 여자애였다. 할아버지식 애정표현이었다. 할아버지, 점심 드시고 하세요, 라고 말하면 먹고 싶어도 먹을 새가 없다, 라며 바쁘게 일하시던 모습. <워낭소리>의 할아버지가 머리가 아파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 할아버지가 떠올라서 조금 짠했다. 나는 사실 살아생전 할아버지의 모든 면을 다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쉼 없이 참 성실히 사신 분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난 지금, 그 무던한 성실함이 할아버지의 특별했던 손재주나 유머감각보다 훨씬 더 큰 재능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이 한 편의 엉성한 다큐는 이렇듯 나를 유년기로 천천히 몰고 가더니 가슴에 송아지 눈망울 같은 물여울을 하나 만들었다. 

  그나저나 소식을 듣자하니 다큐 속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괴롭히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하여간 요즘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나 죄의식이 없었던 시절도 드물 것이다. 무턱대고 남의 터전에 쳐들어가서는 말 시키고 사진 찍고. 그리고는 뭐 느리게 살자는 둥 식상한 수다를 늘어놓겠지. 제 손으로 폭우에 쓰러진 벼 한번 묶어보지도, 뙤약볕 아래서 콩밭 한번 매 보지도 않은 것들이 살아보지도 않은 삶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며 쌩쇼를 하는 것이다. 그렇듯 개인적으로 지분대는 것을 넘어서 이런저런 언론사가 작당을 해서 범국민적 지분댐으로 나아가면 그만한 꼴불견도 없을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에 순응하며 열심히 사시는 분들을 괴롭힐 게 아니라, 사흘이 멀다 하고 열받게 하는 그치들한테나 가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캐물어라. 왜 그렇게 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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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0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만든 다큐 하나는 열 블럭버스터 부럽지 않는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다큐였어요..^^

깐따삐야 2009-02-06 17:08   좋아요 0 | URL
메피님 말씀이 아주 딱입니다요! ^^

L.SHIN 2009-02-07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우연히 EBS의 공룡, '점박이'의 다큐를 재밌게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워낭소리> 였군요. 왜 제목이 워낭소리일까는 나중에 보면 알겠죠.
전에 이 영화가 제작되고 개봉된다, 내용은 이렇다..라고 들었을 때 눈물이 날 것 같았죠.
왠지 저는 보면 많이 울 것 같습니다. (웃음)

깐따삐야 2009-02-08 14:31   좋아요 0 | URL
'한반도의 공룡' 보셨군요. 참 잘 만들었더라구요. 한층 업그레이드 된 라이온 킹의 공룡 버전이랄까. 아주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왜 워낭소리인지는...^^ 직접 보세요. 형님은 분명 우실 거에요. 저도 숨을 못 쉬었어요. 잠시.

순오기 2009-02-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가까운 극장에서는 이런 영화를 안 걸어요~ ㅠㅜ

깐따삐야 2009-02-16 00:07   좋아요 0 | URL
안타까워요. 순오기님도 정말 좋아하실 영화인데 말이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