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할 때 보면 성격이 보인다고 나와 남편은 참 다르다. 남편이 옆에 탄 사람을 어느 순간 곤히 잠들 수 있게 하는 마일드한 드라이버라면, 나는 일주일 꼬박 불면으로 보낸 사람조차 절대 잠들 수 없게끔 만드는, 터프하기 짝이 없는 드라이버다. 아빠는 예전에 내게 운전을 가르치시다 포기할 지경에 이르러서는 얘는 면허를 야매로 딴 것 같다고까지 하셨다. 물론 나는 그 어렵다는(!) 국가고시를 필기, 실기 모두 한 번에 패스했다. 그러나 암기력으로 승부한 테스트란 실전에 직면해서는 힘을 잃기 일쑤다. 돌발 상황에서 잽싸게 비상 버튼을 누르는 일은 운전 학원에서나 가능한 일.

  예전에 한 번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순간에 엑셀을 밟았다가 스쿠터와 충돌할 뻔 한 적도 있었고 얼마 전에는 공사 현장에 쌓아놓은 모래더미 위로 차가 막 등산도 했다. 그뿐인가. 아파트 단지 내의 턱을 넘어보겠다고 부르릉거리다가 웬만해선 터질 일 없는 타이어까지 해먹었다. 덕분에 빨간 견인차가 와서 나와 내 차를 질질 끌고 가는 이색 체험을 했다. 급기야 면허 딴 지 몇 년씩이나 지난 마당에 남편은 굵고 진하게 프린트를 해서는 ‘초보운전’ 이라고 붙여주었다. 운전 초기에 그렇게 써 붙이고 다녔다가 빵빵거리며 놀려먹는 불량 운전자들 때문에 짜증이 났었다고 했더니 남편 왈. 요즘은 그런 사람들 별로 없어요. 그리고 저렇게라도 해놓아야 알아서들 피해가지. 남편은 이렇듯 나를 특별관리대상 드라이버로 낙인찍어 버렸다.

  사실 술을 마시고 운전한 적도 물론 없고 운전을 하면서 되도록 딴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편인데 성격이 좀 급하다는 게 문제다. 처음 도로에 나왔을 땐 어차피 신호에 걸릴 텐데 속도를 내거나 추월하는 차들을 이해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러고 있다. 연애 시절, 드라이브를 하던 중에 남편한테 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면서 못 들은 척 하는 거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운전 중에는 봐야 할 것도 많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아서 그렇다고 변명 했었다. 나는 괜히 둘러다대지 말고 솔직하게 다른 생각 하고 있었다고 이실직고하라고 했는데 사실은 부러 억지를 써 본 것일 뿐. 운전할 때는 항상 긴장을 하고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특히 낯선 길을 갈 때는 더욱 그렇다. 또한 아무리 익숙한 길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어쨌든 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날이면 남편 얼굴이 금세 핼쑥해진다. 내가 운전하니까 편하지! 편하지! 아무 걱정 말고 자요! 남편 왈. 잠이 와야 잠을 자죠... 만만한 길이 나왔을 때 언제 또 속도를 낼지도 모르는데다 무슨 말이라도 시키면 대답할 것을 생각하느라 좌회전해야 할 타이밍에 직진을 하는 등 마구잡이로 운전을 해대니 불안할 수밖에. 남편은 안전벨트를 꼭 쥐고 옆에 손잡이까지 붙든 채로 조심스럽게 말하곤 한다. 이러다 부산까지 가겠어요. 운전할 때는 제발 운전만 생각해요. 에이그~ 다 알아서 집에 모시고 갈 테니까 걱정 마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고집을 부리지 않는 한 남편은 가급적 자기 차로 이동을 하는데 나는 하루빨리 능숙한 드라이버가 되어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기동력을 갖추고 싶다. 조심 운전은 필수지만 너무 겁을 내다보면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다. 범퍼를 긁히고 타이어를 교체하면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경험도 해봤지만 세상에 공짜 수업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운전은 많이 해봐야 는다. 그런 고로, 영화 상영 시간을 기다리다가 잠깐 오락실에 들러 하는 게임도 무조건 운전이다. 남편은 이러한 나의 질긴 의지에 공포 가득한 눈빛으로 응원을 보낸다. 나는 신나게 엑셀을 밟고 점점 커지는 남편의 목소리. 좀더! 좀더 밟아! 이러한 외침은 안타깝게도 오락실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오늘도 베스트 드라이버를 꿈꾼다. 주변의 이야길 들어보니 운전에 익숙해지고 잘한다 싶을 때 사고가 생긴단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처음 핸들을 잡았을 때는 60 이상 속도를 내는 것도 겁이 났었는데 이제는 옆의 자동차들과 레이싱이라도 할 것처럼 밟아댄다. 이러시면 아니 된다. 아니 돼. 베스트 드라이버는 빨리 달리는 운전자가 아니라 안전에 주의하는 운전자라는 것을 늘 염두해야겠다. 험한 드라이버를 만난 탓에 거의 연습용 차량처럼 되어버린 가엾은 나의 꼬마자동차. 붕붕. 너와 함께 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내 머잖아 너를 능숙하게 다뤄 줄지어다. 남편이 조수석에서 곤히 잠드는 그날까지.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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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0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1 레이서의 전설이라고 불리우는 마이클 슈마허도 공공도로에선 절대 과속 안하며 신호를 꼬박꼬박 지킨답니다..^^ 사고는 자신이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을 시기인 3~4년에 제일 많이 일어난데요 아무쪼록 운전할때만큼은 남편분 말 잘듣는 순한 깐따삐야님이 되시길..^^
(그나저나 운전하는 남편에게 따지는 모습을 보니..모뙤꾸나 깐따님!!=3=3=3)

깐따삐야 2009-02-02 12:04   좋아요 0 | URL
역시 달인은 달려서 달인이 아니라 달라서 달인이구나. 이제 운전할 땐 고분고분하겠사와요. 과연? ㅋㅋ
(아녜요. 진짜 딴 생각하는 줄 알고 승질이 났던 거에요. 가끔 그럴 때 있다니깐요. 중얼중얼.)

레와 2009-02-0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때 이런 질문을 했더랬습니다.
'언제쯤이면 운전에 익숙해질까요?'
'운전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아요.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우문현답, 부끄러웠습니다.으..;;

안전운전하세요! ^^

깐따삐야 2009-02-02 18:43   좋아요 0 | URL
'운전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아요' '당황하면 가끔 후진합니다' 이래로 가장 와닿는 명언이네요.

레와님도 안전운전이요! ^^

웽스북스 2009-02-0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벼랑위의 포뇨에서 소스케 엄마같아요 ㅋㅋㅋ

깐따삐야 2009-02-02 18:44   좋아요 0 | URL
앗! 꼭 보고 싶었던 애니인데. 그나저나 소스케 엄마도 좀 막무가내인 모양이네염.ㅋㅋ

Mephistopheles 2009-02-03 00:47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하하..이렇게 적절한 비유라니..!!!

웽스북스 2009-02-03 01:23   좋아요 0 | URL
제가 쫌 한비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