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 시인선 58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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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진하는 밤, 김소연





어떤 시인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무엇이 좋으냐고 물으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좋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게 김소연시인을 좋아한다.


지치고 연약해진 마음을, 어둡고 축축한 마음을, 밤에 기대어 버티는 마음을, 그런 마음도 있으니까. 그런 마음을 시 한 구절, 꾹꾹 눌러쓰며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 있으니까.


깊고 깊은 그 방에서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뱅글뱅글 파고드는 시간, 그리고 '그것이 사랑을 시작하는 얼굴이란 걸 알아챌 때도 있었다'(이 느린 물 22-23p)


우리의 허약함을 아둔함을 지칠 줄 모름을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더딘 시간을(촉진하는 밤, 20p) 견디는 밤을 보낸다.


그러다가도 '등으로부터 체온이 전해질 때에 너의 따뜻함 역시 그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너는 알게 되었다(접시에 누운 사람 25p) 등으로부터 전해지는 따뜻함에 녹기는 하는 밤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 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만약에 만약에를 거듭하며 또다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가 내가 생각이 되어버린다'(2층 관객 라운지 30p) 내가 생각이 되어버려 다시 밤에 굴복하는 날이 오겠지. 


'않았을 것이라는, 익숙한 이 후회 역시 낮을 배웅하며 어딘가에 걸터앉아 밤을 기다리고 있군요'(비좁은 밤 116p) 그 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나의 동굴은 더러워서, 만질 수 조차 없는 곳이라서 너에게 보여줄 수 없는데, 나의 울음을, 나의 슬픔을 등에 업고 가슴에 안고 함께 떠오른다면 좋겠다. 밝고 고운 마음이 아니라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이 아니라 함께 더러워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여기에 있자

그래 그냥 그러자

그래야겠다

동굴 47-49p


그러기 위해서는 잘 버텨야지. '온갖 주의 사항들이 범람하는 밤에게 굴하지 않기(푸른얼음 71p)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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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이승희 지음 / 폭스코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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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이승희






이승희 시인의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라는 시집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시집 중 하나이고 아는 사람들에게 자주 추천하는 시집이다.


시인이 식물들과 함께하는 삶을 풀어낸 산문집을 냈다. 책을 산지 좀 됐는데 이제야 다 읽었다. 가끔씩 들여다보고 조금씩 읽다가 그렇게 옆에 두고 식물처럼 내내 함께하였던 책.


시인의 집은 오래된 주택으로 마당이 있는 집이다. 마당에도 집안에도 식물들이 있다. 외로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 꽃집에 가는 시인. 시인은 그렇게 외로움을 안고 세상 참 별거 아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우겨본다.


꽃보다 연두를 더 좋아하는 시인. 식물들에게 라디오를 들려주고 비내리는 풍경을 바라는 시간을 가장 사랑한다는 시인. 비오는 마당을 바라보는 시인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어쩐지 쓸쓸하고 외로워지지만 그것 역시 위로가 된다. 집안에는 빗소리가 가득차고 가만히 바라보는 식물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시인이 들려주는 혼잣말을 들으면서.


식물을 기르면서 내색없이 죽어가던 식물을 보면서 나를 버ㅣ다가 그만 툭 놓아버렸을 마음을 생각하는 마음. 아무것도 조준하지 않는 슬픔도 있다는 사실. 사람들은 마음을 다치면서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것. 마음을 다 주는 게 어려워 도망가고 싶어지는 마음. 내 마음이라고 다 내 마음은 아니라고, 흐지부지 늙어가는 일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그러면 지친다고 말해주는 시인에게 고맙다. 


시인의 시가 그랬던 것처럼, 무작정 위로하지도 않고 그저 마음을 그대로 풀어내며 토닥이거나 안아주지 않아도 다독임을 받은 것만 같은 그런 글을 읽었다.


나도 어떤 날엔 비가 오는 마당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어진다. 슬프고 울고 싶고 외롭고 괴로운 밤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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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11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펄잉크라서 그런지 색이 반짝반짝 예쁘게 보여요. 손글씨인데도 인쇄처럼 깨끗하게 쓰셨어요. 큰 글씨처럼 보였는데 그리드 간격을 생각하면 또 다를 수도 있겠어요.
사진 잘 봤습니다.
하리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하리 2023-12-11 21:39   좋아요 1 | URL
실제로도 큰 글씨예요. 제가 글씨를 크게 쓰는 편이라😅😅 서니데이님은 언제나 다정합니다💕 오늘 평온한 밤 되시길요🥰
 
그 책은 - 13일 동안 이어지는 책에 대한 책 이야기
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지연 옮김 / 김영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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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요시타케 신스케&마타요시 나오키





13일 동안 이어지는 책에 대한 책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책을 사랑한 왕이 나이가 많이 들어 더는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자, 두 사람을 불러 ‘세상을 돌아다니며 진귀한 책 이야기를 듣고 오라’고 명한다. 그 이야기들을 모아 자신에게 들려주길 바란다고. 두 사람은 왕에게서 여행 경비를 받아 길을 떠나고, 1년 후 다시 왕에게 돌아온다. 『그 책은』의 작가를 대변하는 두 사람은 하룻밤씩 번갈아 가며 왕에게 자신이 듣고 온 진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13일 동안, 밤마다 책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소개



두 사람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그 책은, 으로 시작되는 책 이야기는 기발하고 재미있다. 큭큭거리며 웃으면서 보다가도 아버지의 이야기에 잠시 뭉클해지기도 하고, 끄덕끄덕, 맞아맞아 공감하게 되기도 한다.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는 이미 있으려나 서점과 나만 이런 게 아니었어로 그 명성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마타요시 나오키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두 작가의  상상력과 글빨에 홀랑 빠지고 말았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정말 센스와 기발함이 넘치는 천재들이다. 시작부터 결말까지 완벽하다.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책은 실망하는 법이 없다. 매번 놀라고 웃기며 뭉클하다. 책은 역시 재미있어야 한다. 즐거운 독서를 찾고 있다면 이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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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
김민희 지음 / 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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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 김민희


불시에 찾아오는 인연이 소중하고 귀한 도시

살아가듯 머무르는 ‘게으른 여행자’의 생활 여행





2014년 12월 31일.

삿포로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4년 마무리는 홋카이도에서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미니언니, 미니짱이 있었다.

미니언니를 알게 된 건 시인과 함께하는 태백여행에서였다. 시인을 좋아하는 우리가 모였고 그곳에서 우리는 인연이 되었다. 시인의 사인이었던 인연이네요가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순간. 그렇게 언니는 진짜 여행자가 되었다. 언니를 보러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언니를 부추겼던 사람들 안에 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감사하게도 나의 이야기가 한 챕터 실렸다.(나 책에 나온 사람이야!!! 꺄~~)


오타루는 그런 곳이었다. 눈으로 뒤덮힌 하얀 세상. 러브레터의 바로 그 곳. 그리고 언니가 있는 곳. 언니가 핼퍼로 있던 모리노키에서 2014년의 마지막과 2015년의 시작을 보냈다. 언니가 특별하다고 했던 그 새해의 오치세를 나도 맛볼 수 있었다. 그 후로 하지 않았다고 하니 단 한번뿐인 그 새해가 나에게 두번다시 없을 특별한 새해였던 것이다. 물론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지만 그래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타루비루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했던 일, 새해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고 일본의 새해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일, 사람이 아무도 없던 테미야공원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걸었던 일, 나홀로 걷던 러브레터의 장소들, 지브리 오르골과 버터샌드, 덴구야마에서 보던 야경, 바다가 보이는 전철, 일본인뿐이던 징기즈칸 가게. 어느 하나 설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에겐 그저 3박 4일의 시간이었지만 그후로도 언니는 홋카이도사랑에 헤어나오지 못했다. 언니가 계속 여행자의 길을, 사랑하는 오타루를 더더 사랑하는 사이, 이렇게 멋진 책을 내게 되었다. 나는 언니가 부러워죽겠다. 언니는 2014년부터 느리지만 천천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 저 멀리에 있다. 나는 그때의 추억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샘난다. 오타루에 다녀온 후 <윤희에게>를 보고 다시 오타루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책에도 나오듯이 <윤희에게>는 오타루를 사랑하게 되는 영화니까. 이 책을 읽고나면 <러브레터>와 <윤희에게>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도 <윤희에게>에서 고모가 편지를 부치던 그 우체국에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결국엔 무언가를 이루게 된다. 여행하듯 살고, 살아가듯 여행하던 언니가, 게으른 여행자로 꾸준히 살아온 언니의 삶이 이 책에 있다. 혼자여도 좋은 여행, 그 곳 오타루에, 홋카이도에. 그렇게 사랑에 빠진 언니를 응원한다. 그리고 또다시 그 옆에 내가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언니에게도 2024년 10년 후이겠지만 나에게 2024년이 10년 후다. 우리가 모리노키에서 다시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도록 나도 부지런히 준비해야겠다. 


그러니,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응, 10년 후에!

p.81





일단 눈물부터 닦고 돈벌러 가야지.



그해 겨울, 눈이 미친 듯이 내리던 설국에서 만났음을 모두 기억하길. 또 언젠가 다시 그곳에 우리 파묻힐 수 있기를. p.50


'여행하듯 살아가고, 살아가듯 여행하자'라는 생각을 늘 해요. 꼭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우리 동네를 걷더라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고, 비행기를 타고 낯선 땅에 내리더라도, 동네 산책하듯 걸음걸음 여유롭게 내딛기를 바랍니다. p.100






사람은 이렇게 평생 배우는 것 같다. 책상에 앉아 배우는 것도 값지지만 살면서 누군가에게 스미듯 배우는 것들이 있다. 그 사람의 생각에서, 행동에서, 마루에서 느껴지는 마음들이 좋아, 어느덧 나도 따라 하게 되는 그런 것들. p.227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을 거란 예감.

하지만 그 모두의 방향은 좋은 쪽일 거라는 것.

잘했고, 잘할 것이고, 그래서 또한 잘될, 내 인생.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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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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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건너기, 천선란


천선란(지은이)의 말

모두가 각자 품고 있는 그 노을을,

무사히 건너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천선란 작가의 북토크를 갔다가 팬이 되었다. 주변에서 천선란 작가를 좋아하고 적극 추천하는 일이 많았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SF라는 장르가 자꾸만 나를 머뭇거리게 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익숙한 감정을 낯설게 표현 할 수 있어서 SF소설을 쓴다고 했다. 외로움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을 낯설게 그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읽게 된 책들은 다르게 다가왔다. 작가가 그리는 미래 속에도 우리의 현재가 있다.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이 내 옆에 있다. 그들과 함께 느끼고 외로워하고 그리워하면서. 외로움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가장 외로웠던 나를 만나러 간다.


이 말에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비행사인 공효는 자아 안정 훈련을 위해 무의식으로 들어가 어린 날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


노을이 침범해 붉게 변한 집에 홀로 있는 것을, 어린 공효는 참 싫어했다. 아득히 멀어진 기억이지만 그 감정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p.09


노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어린 왕자가 노을을 마흔 네 번이나 보았던 일을 말해주었던 그 순간을 좋아한다. 노을을 보고 있으면 오롯이 혼자였고 아름다웠고 쓸쓸했으며 외로웠다. 공효에게도 노을이 지는 시간은 홀로 견뎌야 했던 외로운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지난 날들을 떠올려보면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도 있고, 숨겨두거나 회피하기도 했을 것이다. 공효역시 매달려 그것을 딛고 나아가는 길보다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시간이 흐르고나면 나아지리란 생각으로. 그러나 어린 공효와 마주하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타란튤라를 다시 마주하면서 깨닫게 된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은 매달리기보다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란, 기록이나 시험 통과가 아니라 엄마의 기일이 오면 찾아오는 무기력함, 예고도 없이 밀어닥치는 자기혐오, 앞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 따위였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공효는 도망쳤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직면해야 하는지, 무엇을 감싸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짚기에는 삶이 너무 바빴다. 공효는 해야 할 게 많았다. 당장 눈앞의 것들을 잘 해 내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알아서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그런 믿음은 틀렸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로 죽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p.47


어린 날의 나는 온전히 행복했던 기억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어떤 기억은 상처이고 아픔이며 슬픔이다. 그 외로운 시간 속에 어린 날의 내가 웅크리고 있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못했다. 꾸준히 미워하고 싫어하는 내가 싫어서 또 그렇게 가장 먼저 나를 상처주는 사람이었다. 


“응. 나는 네가 보는 시선의 처음이고, 네가 느끼는 감정의 중심이고, 네가 선택하는 모든 순간의 기준이야. 내가 없으면 너는 안이 텅 빌 거야.” p.62


그 때의 나를 빼고는 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아키나는 공효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건 외로운 자기 자신이야! 네가 달래주지 않은 너라고! p.30' 그러니 잘 만나고 오라고, 한 번은 꼭 끌어안아 주(p.59)라고, 말이다.


이십대 청춘도 아닌데 여전히 나는 나약하고 예민하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그 어린 날의 나도 나라고, 괜찮다고 오래오래 안아주고 싶다. 울면서 소리치는 내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겠지만, 살아가는 동안 내내 그렇게 내가 먼저 나를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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