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냄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9
김지연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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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냄새, 김지연


어쩔 수 없이 악취가 되어버린,

불가해에 압도당한 인물의 불가해한 삶을 이해하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갑자기 후각을 잃어버린 K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기억의 냄새들이, 일상 속 주변의 모든 것이 악취로 변하는 불가해에 압도당한 인물의 초상을 그린 소설이다


K는 더위도 추위도 잘 타지 않고, 맛에 관대한 편이라 맛없는 음식이 거의 없으며 비염인데다 후각도 예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후에 갑자기 후각을 잃어버렸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맡았던 바다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자 어쩐지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후각이 돌아왔지만 악취가 딸려왔다. 악취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집에서 가장 많이 맡을 정로도 집조차 악취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향기보다는 냄새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오감중에 시각적인 것이 가장 강하겠지만 난 냄새에 민감하다.(하지만 오감 중에 단 하나 고르라고 하면 시각) 아주 예민해서 어떤 냄새를 못 맡고 구역질을 하거나 그 정도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무래도 채취에 가깝다.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좋은 냄새가 나기도 하고 좋은 냄새가 나서 좋아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만이 풍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고유한 채취. 얼굴이나 지문, 목소리처럼 어떤 사람만이 풍기는 고유한 냄새.p.105)'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품 안이나 아기냄새, 뽀송뽀송한 빨래냄새, 좋아하는 섬유유연제나 향수 냄새 등등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에는 애정이 묻어 있다.


K의 코로나바이러스 후유증이 무향에서 악취로 변하는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매우 와닿았다. 냄새를 맡지 못할 때는 바다냄새부터 그동안 향으로 마셨다는 걸 깨닫게 된 차, 사랑하는 P의 냄새까지 자신의 좋아했던 것들을 잃어버린 것이 괴로웠다. 그러나 악취를 맡게 된 후로 일상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시도때도없이 음식을 버리고 악취가 났던 곳에서 있을 수 없다. P는 자신은 맡을 수도 없고 나지도 않는 악취때문에 K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만약 K의 후각이 영영 회복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K는 점점 더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대화주제는 온통 오늘 악취를 맡은 장소와 횟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이 아프다는 건 일상생활을 완전히 다 장악해버리는 일이었다. p.99'


천희란 소설의 해설에 따르면 <태초의 냄새>는 후각이라는 감각을 경유해 기억과 상실, 계급과 혐오, 이해와 몰이해, 직면과 회의 순간들을 촘촘하게 그려냈다고 한다.

K가 결국 더이상 악취를 맡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왔을까. 잘 모르겠다. 악취는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K가 냄새를 맡고 또 맡으며 악취와 함께 살아간다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삶은 이해하기 애쓰는 거라고.


번외로 P의 질문이 인상깊어서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죽었어. 근데 유품 두 가지 중에 딱 하나만 골라서 가져갈 수 있대. 내 비밀 일기가 든 메모리카드랑 내가 자주 입어서 내 냄새가 밴 셔츠. 넌 뭘 가져갈래?" p.104


나는 셔츠를 선택할 것이다. 냄새는 기억을 불러오는 장치다. 셔츠만 있다면 너를 만날 수 있으니까. K의 상상처럼 일기를 읽고 배신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글은 언제든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언제나 나만의 것이므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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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1-09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사진도 예쁘고, 그리고 필사한 페이지도 참 좋네요.
하리님의 캘리그라피 글씨는 예쁘고 깔끔한 느낌이 들어요.
손글씨 잘 쓰기가 어렵다는 걸 알아서인지,
부러운 마음으로 사진 한번 더 봤습니다.^^
하리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리 2023-12-08 21:31   좋아요 1 | URL
이제서야 댓글을 달아요. 서니데이님의 한결같이 다정한 댓글, 늘 감사해요!
무척 추웠다가 겨울인가 싶게 또 따뜻해요. 이럴 때 오히려 감기걸리기 쉬운 거 같아요.
감기 조심하시고, 늘 무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