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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박경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 안 먹었다
인명제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박경리
#박경리유고시집
#버리고갈것만남아서참홀가분하다
#마로니에북스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청춘을 보내야지.
다 지나갔으려나..😂😂

#당신에게들려주고싶은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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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지문, 이은규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 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인다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인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장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그 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멀리 있을까,
멀리 와 있을까

 

_ 시는 왜 읽으면 마음이 두근거리거나 시큰하게 하는걸까요.

일요일 밤이라 그런건지, 비오기 전에라 그런건지 녹신녹신한 새벽이네요.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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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힌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 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일찌기나는
#최승자
#이시대의사랑

#문학과지성시인선


최승자 시인을 이제서야 접했다.
첫 시부터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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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1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시들이었어요...ㅠ

하리 2016-05-21 21: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빠져들 수 밖에..!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 김남조,「 설일(雪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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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허기를 지극히 사랑하였다, 이승희

먼 불빛 같은 얼굴로
흘러든 당신의 허기 앞에서
나는 공손한 한 마리의 뱀
사막을 걸어온 듯
당신 발가락 사이에서 모래가
별처럼 쏟아졌다
나는 별 사이를 쏘다니다가
당신의 반짝이는 허기 속으로
귀가한다

살 속이 따뜻하다

#거짓말처럼맨드라미가
#이승희
#문학동네시인선

이승희 시인이 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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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6-05-14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야~~시도 좋았지만 글씨도 참 이쁘네요 ㅎ 제가 악필이라서 그런지 참 부럽습니다^~^

하리 2016-05-15 01:53   좋아요 0 | URL
어머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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