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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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문장이다


계엄과 탄핵, 슬픔과 분노, 다정함과 고마움

따뜻한 빛처럼 위로가 되는 황정은의 작고 단단한 기록들


#작은일기

#황정은

#창비


황정은의 문장을 소설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황정은에게 소설쓰기를 멈추게 했다. 2024년 12월 4일, 전국민에게 또다시 잊지 못한 하루를 만들어냈다. 권력에 미친 한 인간의 선택,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하면서 두려움에 떨게 했는 그 결정의 날을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다.

<작은 일기>는 소설가 황정은이 현직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에 대해 써내려간 글이다. 12월 3일 이후로 매일의 삶을 기록하며 광장에 나가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집안에서, 거리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기록했다. 함께 분노했고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한 피로감에도 광장으로 나갔다. 감히,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던 시간들. 우리가 모두 한마음이지 않다는 사실이 처참하면서도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지쳐버리기도 했다. 어떻게 법원에 쳐들어갈 수 있는지, 탄핵을 반대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폭설에도 밤새 자리를 지키는 키세스단이나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놀랐고 감동했으며 고마웠다. 극단적이면서 폭력적인 극우세력의 모습 앞에서 다른 의미로 놀라웠고 극우세력과 함께하는 언론, 정치인, 사법기관의 행태에는 씁쓸함을 넘어 참담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참담함을 딛고 평온함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 무모하고 끔찍했던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다. 여전히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윤씨의 태도는 꼴도 보기 싫지만 분명 우리에게 정의로운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에 동조했던 인간들의 이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P. 188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지귀연, 조희대

(더많은 인간들이 있겠지만)



P. 10 번역서 두권을 주문하는 김에 귤을 샀다. 지난달에 백두대간수목원을 방문하고 들은 이야기도 곧 원고로 정리해야 한다. 오늘은 원고지 다섯매를 썼는데 밤에 한번 더 보면서 다듬고 싶다.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

P. 13 국회의원이든 시민이든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절박하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나도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을 간절히 바라며 서 있었지만, 윤석열과 그가 초래한 국가 상태를 묘사하려고 ‘정상‘과 ‘비정상‘을 반복해 말하는 몇몇 연설은 집중해 듣기가 어려웠다. 이사회의 정상성 기준으로 불편과 부당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도 여기 있는데 별 조심성 없이 그 말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선 자리가 따끔했고, 뒤쪽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불편함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일까. 2016년 광화문에서 한 생각을 2024년 국회 앞에서도했다.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느꼈다.

P. 38-39 12월 3일,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고 새벽 네시 삼십분에 이를 때까지, 그리고 이후로 주말까지, 특수요원들을 동원한 국지전 위험이 있었다는 뉴스 보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국지전을 일으켜 계엄을 정당화하고 장기 집권으로.
2024년 12월 둘째 주, 지금으로선 이름도 붙이지 못할 이 기간의 불안과 울분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감히.
혼란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니 이 말만 입속에 줄곧 서 있다. 감히.

P. 43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P. 58 그 추운 밤을 그 자리에서 보낸 사람들도 놀랍고, 그들에게 난방 버스며 음식이며, 바람 넘는 고개에서 버티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즉시 보낸 사람들도 놀랍다. 그건 나라에서 받은 것이 없어도 위기가 닥치면 들불같이 일어난다는 어느 민족의 성격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는 없는 마음들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는 마음들.

P. 64-65 사람들의 악함을 마음에 들여 되짚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게도 그 싹이 무성하게 있으니까. 그런 것이 자신에겐 없을 거라고 믿는 얼굴 앞에 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내게는 그런 입장 역시 악함의 기반이 되는 약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의 약함에 내가 얼마나 분노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약함은 어느 정도 그의 탓일까. 그리고 권력 가진 이들의 혼돈 그 자체인 악함도 약함에서 그 탓을 찾을 수 있을까.

P. 85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슬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남아 밤샘 집회를 하고 있다.
눈 내린다.
파주에도 서울에도.

P. 102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이삼십대 남성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같은 세대 여성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려고 추운 날 거리를 돌아다니고 서로를 돌보며 밤을 새우고는 할 때, 저들은 비틀린 세계인식과 자아 인식으로 국가기관인 사법부에서 난동을 부렸다. 대가를 치를 것이다. 동시에 이 광경을 봐야 하는 사회구성원들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쳐온 걸까. 1월 19일 새벽, 우리 사회가 그간 육성해온 일부가 크게 자라나 이 괴상망측한 열매를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이것도 과정이지, 결과도 아닐 것이다. - P102

P.102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립이 징그럽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으로 이 내란을 보면 윤석열이 그들의 일면이기도 할 테니까. - P102

P. 112 2월 27일 목요일 오후 여덟시 오분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탄핵 재판의 최후 변론이 있었다. 국회 측 대리인인 장순욱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내게무척 아름다웠다. "오염"이라는 말로 내 상처의 원인을 부드럽게 짚어주는 것 같았다. 말헌법의 오염. 바로 그것을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정확한 말이 건네는 위안을 받았다. - P112

"존경하는 재판관님, 피청구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언동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말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하루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 첫 단추가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과 함께 이 사건 탄핵 결정문에서피청구인이 오염시킨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이 제자리를찾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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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 핀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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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창작노트




🔖최진영이 소설을 쓸 때

‘최진영이라는 소설’도 함께 휘몰아친다!


🔖사랑이 필요한 순간 꺼내 읽는

최진영의 날카로운 통찰, 눈부신 사랑


#내주머니는맑고강풍

#최진영

#핀드


최진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책을 사야할 이유가 충분했다. 나에게 최진영은 그런 작가다.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알았다. 역시 나는 최진영을 사랑한다. 


#프롤로그 전문을 옮겨적어본다.


🔖매일 글을 쓴다.


앞의 문장은 나의 기도이며 다짐이다. 나의 상태이자 정의이다. 하루가 아무리 엉망이었더라도 글을 썼으면 됐다. 외로우면 외로운, 슬프면 슬픈, 우울하면 우울한, 화가 나면 화를 내는, 평온하면 평온한 글을 쓰고 싶다. 딱 그 정도만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생각을 문장에 담으면 어긋난다. 어떤 문장은 내가 신기에는 너무 큰 신발 같고 어떤 문장은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없는 좁은 방 같다. 그래도 나는 문장에 나를 구겨넣는다. 무거운 신발을 질질 끌며 걷는다. 왜냐하면 글은 나를 떠나지 않으니까. 글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비겁하고 치사한 나를, 옹졸한 겁쟁이인 나를, 괴팍하고 까다로운 나를 다 받아준다.


책과 노트와 펜만 있으면 나는 계속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사람에게는 절반만 의지하고 책과 글에 절반을 의탁하면서, 의젓하고 담대한 존재를 꿈꾸며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


여기 노트와 펜이 있다.

오늘을 쓸 수 있다.

하루를 살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쓴 글이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겠지만, 이제 다시 걸어보자고 말을 걸진 않겠지만, 늘 거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만들 것이다.


거듭 넘어질 나를 위해 매일 글을 쓴다. p.9


소설을 쓰는 동안에 행복했다는 최진영. 스스로를 잘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최진영. 소설쓰기 이외에는 서툴기만 한 최진영. 사랑을 모르고도 사랑을 한다는 최진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모두 떠날 거라고 믿었던 최진영.


🔖비겁하고 치사한 나를, 옹졸한 겁쟁이인 나를, 괴팍하고 까다로운 나를 다 받아준다. p.8


자주 비틀거리고 종종 우울했으며 가끔 기뻤던 나는 나 자신을 예뻐할 수가 없었다. 최진영이 스스로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문장을 만날 때면 그렇게 위로가 됐다. 그래서 자꾸만 울컥하는 마음이 다잡으면 읽곤 했다. 최진영은 스스로 약하고 서툴고 부족한 부분들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도 전혀 약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썼고, 또 썼고 계속 썼으니까. 쓰는 일이 괴로운 시간일 때도 있었겠지만 결국 최진영은 쓰는 사람이었다. 매일 쓰는 일이 매일 기쁘기만 했을까. 소설을 여러 권 출간한 작가임에에도 소설이 써지지 않아 고군분투했던 시간, 홀로 견뎠을 그 시간, 그렇게 최진영의 창작노트는 뭉클하고 애틋하게 다가왔다. 


거듭 넘어질 나를 위해 매일 쓴다는 최진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맑고 강풍이 함께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마음 속은 언제나 맑음과 소용돌이가 공존했었다. 연약함과 강인함은 별개의 마음이 아니다. 주머니에 담아둔 마음을 꼬옥 안아본다. 그렇게 맑았다가 강풍이 풀었다가 비가 왔다가 다시 맑았지고, 그러다보면 넘어지고도 씩씩하게 일어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P. 23 사랑하는 사람이 외로워하면 미안하다고 말하자. 미안해. 내가 너와 다른 사람이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와 내가 다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어.

사랑이 자취를 감추면 기다리자. 사랑도 지겨워져 바깥으로 나가고 싶을 때가 있겠지. 고치는 대신 새로운 에피소드를 쓰고 싶을 때가.


🔖P. 145 나에게는 그 세계가 있으니까 현실에서 쓸쓸해도,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현실의 인물과 상황에 상처받거나 외면당하더라도 소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내가 쓰고있는 소설이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 돌아갈 곳이 있었다. 소설이 나의 집이었다. 그 감각이 그립다. 그런데 나의 집은 어디로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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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읽고 매일 필사하는 #하리의서재 📚

✒️ 읽고 필사한 후 늦은 리뷰를 써요.

📖 오늘 당신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 책에 밑줄을 긋고 문장을 수집합니다.

✨️ 당신에게 책과 문장을 배달합니다.


#필사하리 #하리그라피 #하리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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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의 지식 -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윤수용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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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도서제공




당신이 보고 있는 세상은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세상을 둘러싼 껍질을 벗겨내라!

9가지 질문으로 읽는 숨겨진 세계

#시선너머의지식

#용수용

#용두사미

#북플레져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지식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모습은 일부분이다. 수없이 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알고리즘에 따라 치우친 정보에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시야를 더욱 넓혀 줄 책이 나타났다!

역사, 사회, 문화, 자본을 아우르는 다양하고 깊이있는 지식의 세계로 가보자!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고, 익숙한 시선이 아니라 시선 너머의 지식을 보게 하는 책을 만났다. 용두사미라는 유튜브채널은 모르지만 이 책을 일고나니 용두사미가 궁금해질 지경.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구나. 왜? 라는 질문이나 궁금증, 호기심이 사라진 것만 같은 요즘, 사소해보이지만 그 안에 엄청난 이야기가 담겨있는 9가지 질문을 들여다보았다.


싱가포르 뉴스에는 왜 이렇게 자주 무례한 행동이 보도되고 있을까? 아이슬란드에는 맥도날드가 없다고? 일본방송에는 어째서 서양인뿐일까? 존경받던 프랑스 흙수저 총리는 왜 권총으로 자살을 했을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어쩌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버린건지?


흥미진진한 질문들을 눈길을 끈다. 왜라는 물음표가 자꾸만 떠오른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국가들의 숨은 이면을 들여다 볼 기회다. 




이것이 바로 《시선 너머의 지식》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평가하고, 우리는 왜 그 평가를 내면화하는가?”, “선진국이라는 기준은 누구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그 시선을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시선을 낯설게 바라보게 합니다. 표면적인 평가와 이미지를 넘어, 그 이면의 역사적 맥락과 본질을 파악하려는 태도를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 나와 세계를 새롭게 연결하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는 깊은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동시에 지식이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틀이며, 기존의 인식 구조를 재구성하는 힘임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프롤로그

웡 전 부총리가 말한 이 대목은 왠지 키아수로 상징되는 싱가포르 사회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것 같이 들립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마인드셋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내뱉은 허울 좋은 말들은, 이미 깊숙이 뿌리박힌 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싱가포르 국민들에게는 그저 허공을 맴도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웡 전 부총리가 속해 있는 인민행동당이야말로 그런 무한 경쟁의 마인드셋을 싱가포르에 이식한 장본인들이니 말이지요. - P80

맥도날드라는 프랜차이즈 하나가 없어졌다고 해서 이런 아이슬란드가 선진국에서 탈락되는 것도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는 오랜 시간 지배당하며 타자화 되어온 역사와 더 강한 국가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맞물린 나머지 ‘맥도날드가 없는 국가들’ 대열에 합류한 것에 불안과 상실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맥도날드 부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아이러니합니다. - P171

프로그램은 일본 문화에 감탄하는 미국인의 시선을 통해 일본인의 자긍심을 확인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회에 깊숙이 내재한 서구 중심적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단면일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일본적인 것’은, 사라진 정신적 정체성을 메우기 위해 외부로부터 차용되고 구성된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국체로 표상되던 과거의 일본 정신은 군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매장되었지만, 그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착한 국민’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강요받았습니다. - P219

오늘날 프랑스는 혁명 정신의 본산임에도 불구하고, ‘법 앞의 평등’을 내세우는 공화국이라는 이상과 실제 사회구조 간의 괴리 속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는 여전히 국가의 상징으로 남아 있지만, 그 이상이 상류층의 문화와 제도에 의해 독점되는 현실은, 프랑스가 아직도 구 제제의 모순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엘리트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봉건제도를 떠안고 있는 한, 프랑스 사회는 과연 그 슬픈 반복의 운명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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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아이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8
김혜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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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도서제공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는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다

단, 고통 어린 기억을 망각의 숲에 가둬두고서


#돌아온아이들

#김혜정

#현대문학


폭염이 지속되는 한여름 어느날, 상백산에서 아이들이 발견됐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아이들과 관련된 정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 노인이 경찰서에 찾아와 말했다.


“60년 전 잃어버린 제 딸이 분명해요.”


이 아이들의 정체가 뭘까?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만 살아남은 후 말을 잃어버린 '담희' 

30년만에 나타나 담희의 고모라고 말하지만 어린이의 모습인 '민진' 

담희의 미술심리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보경'


이야기는 담희와 민진의 만남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대체 30년 동안 민진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상처입고 외로웠던 담희는 있는 그대로 봐주는 민진과 함께하면서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런데 다시 사라져버린 민진, 민진이 꿈에서 봤다던 숲의 모습이 미술치료 선생님 ‘보경’의 교실에서 보았던 그림과 비슷하다?


흥미진진하지만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성장 멈춘 아이들이 다녀왔던 또 다른 세계 역시 신비롭고 아름답다. 도망친 아이들, 스스로 선택했지만 갇혀버린 아이들, 자라지 않는 아이들.


그러나 민진을 구하려는 담희의 용기와 의지는 분명했다. 그 열쇠를 쥐고 있던 보경과 민진과 보경의 아미, 모모와 진설까지. 다정하고 따뜻한 아미(친구)가 있기에 결국 우리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힘, 더 이상 머물러 있고 싶지 않은 마음, 우리는 함께, 더불어, 같이 나아가야 함을 깨닫는다. 손 내밀고 손 잡아주며 그렇게.





“나는 이제 자라고 싶어요. 나의 시간은 흐를 거예요.” p.142


#책속한문장





30년 전 사라진 고모가 돌아오다니. 그것도 사라졌던 그 모습 그대로. 어쩌면 그래서 담희는 말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삶에서 자꾸만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기니까. 담희는 옆자리에 있는 돌아온 고모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p.26-27




“영랑, 너는 나의 아미야.”

“아미가 뭐야?”

영랑은 아미라는 말이 뭔지 몰랐다. 아미는 마인계 말로 ‘옆에 서 있는 사람’, 친구를 뜻한다. 진설이 설명해주자 영랑도 “너도 나의 아미야”라고 말해주었다. p.71-72


‘슬픔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p.82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뿐이다. 진설과 손을 잡은 순간 보경의 흐릿했던 기억들에 색이 입혀지며 총천연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p.122


모모는 민진이 마력 없이도 나무를 잘 타고, 민진이 노래를 부를 때면 음색이 무척이나 맑아 풀과 꽃마저도 조용히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민진이 가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을 때가 있고 그때 민진의 눈동자 안이 텅 비어 있어 그걸 보는 모모마저 슬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해줄 때 담희는 마음이 꼬집히는 것 같았다.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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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슬픔 안에서
소운 지음 / 여름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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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에세이 #독립출판

작고 여린 동물들에 대한 사랑
나를 눈감게 하는 조용한 위로
만질 수 있는 행복과 맡을 수 있는 마음

#싱그러운슬픔안에서
#소운
#여름섬

작은 일상 속의 따뜻한 순간들을 다정하게 그려낸 『다정한 건 오래 머무르고』의 소운 작가의 새로운 에세이!

<다정한 건 오래 머무르고>를 읽고 소운 작가님을 알게 되었어요. 아프고 슬픈 마음, 상처입고 괴로운 시간, 사람이 싫고 사람이 미운 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남는다고. 그렇게 다정한 마음으로 뭉클하게 만들었던 에세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어요. 작년 가을, 작가님이 대전북페어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따로 구매하지 않고 북페어만을 기다렸지요. 작가님께 직접 사인을 받고 구매한 이 책은 지난 겨울을 함께했습니다. 오래 읽었고 오래 필사했어요.

싱그러운 것은 슬픔이 될 수 있을까요? 싱그러운 계절은 여름인데 커버는 왜 크리스마스 트리일까요? 여름과 겨울, 기쁨과 슬픔. 슬픔도 싱그러울 수 있고 계절이 흐르듯 겨울을 건너 여름으로 가고,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크리스마스같은 따뜻한 순간이 있으니까요.

작가가 작고 여린 존재로 위로받고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크고 대단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내 곁에 있는 존재의 작은 온기가 있다면 분명 우리는 괜찮아질 거라고 믿게 되었어요. 슬픔이 슬픔이라서 힘든 게 아니라 이 슬픈 시간도 지나가잖아요. 지금은 아플지라도. 슬픔을 품에 안고서도 우리는 마음이 벅판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지금 살고 있고, 살아 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작가님의 문장이 있어 지난 겨울을 버티고 이겨내고 살아 낼 수 있었습니다. 문장으로 분명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무리 비워 내도 차오르는 슬픔을 가득 안고도 마음이 벅찬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된다. 어쩔 수 없이 내일을 마주하는 게 아닌 것만으로도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살고 싶다. 살아 내고 싶다. 29

필사한 문장이 무척 많았습니다. 겨울이 되면 또 생각이 나겠지요.

주머니가 좋아졌다. 갈 곳 없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으면 한동안 안정감을 느꼈다. 사람이 쏟아지는 거리에서는 주머니에 머리를 박고 숨고 싶을 때도 있었다. 오늘이 그랬다. 헝클어진 마음은 얽힐 대로 얽혀 있고 입안이 자꾸 말랐다. 온갖 기분을 안고 집에 오니 강아지가 나를 반겨 주었다. 고작 두 시간 집을 비웠을 뿐인데도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래, 너는 내가 만질 수 있는 행복이었지.

고마워.
나 반겨 줘서 고마워.
내가 뭐라고.

꽉 채운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어 감기 걸린 마음을 하나씩 꺼낸다. 베개만 한 몸으로 이런 간절한 사랑 줄 거면, 너 무지 오래 살아야 해. 냄새로 내 발자국을 세어 보는 작은 몸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구멍 난 마음은 이렇게 또 채워진다. 11

집으로 오는 길에 앞서 걸어가는 솜이의 뒷머리에 대고 말했다.
누나도 내심 네가 낯선 사람들을 좋아하길 바랐던 적 있어. 그게 얼마나 너에게 미안한 욕심인지 이제는 알게 되었지…. 네가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았더라면 여기저기 꼬리 흔들면서 산책했을 거야. 네가 귀여움받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괜찮아. 성격 바꾸지 않아도 돼. 사람이 이렇게 만들었는데 네가 왜 변해야 해? 내가 조금 더 조심하면 되지. 그러니까 새로운 사람 손길 싫어해도 되고, 우리만 좋아해도 돼. 네가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살아도 괜찮아. 우리 그렇게 오래도록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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