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의에 의하는 한 그것이 어떠한 세계이든 세계의 실상은 공-가-중이므로 이 같이 관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다. '공'을 떠나 '가'와 '중'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가'와 '중' 또한 그러하다. 앞서 말하였듯이 3제는 하나의 실상을 세가지 마음에 이미 세 측면이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차별의 현실은 본질적으로 공으로서 무차별[不二, 즉 中]이지만, 이 삼자는 혼연의 일체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완정한 이상적 형태로 여긴다. 이 때 일심동체란 어떠한 경지의 세계를 말함인가?

 

 남성과 여성, 남편과 아내는 각기 독린된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속성을 갖는 것인가?..... 즉 남편과 아내가 본질적으로 둘이 아님[空]은 영원한 진실이지만 그것은 현실의 차별[假]을 떠나 수립되는 진실이 아니다. 부부 일심동체라고 함은 아마도 둘이 아니면서 둘이며, 둘이면서 둘이 아닌 상태[中]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진실로 말을 능숙하게 타는 이를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는 어떤 자인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은 말을 부리는 자이며, 말은 이에 따라 달리는 동물이라는 주객분별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空觀]. 그렇다고 이것이 말타기를 그만두었다는 말은 아니다. 주객분별의 생각을 버리고 말과 하나가 되었을 때 바야흐로 기수와 말은 자유자재로 활동한다. 말은 바르게 달리고기 수는 교모하게 몬다[假觀]. 이때 주객분별을 버렸으므로 말과 기수는 둘이 아니지만 각기 서로의 활동을 다하기 때문에 둘이다[空假相卽의 中觀] (p.360)



 아비달마논사들의 입장은 자아는 없으나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구성요소[法]는 실재한다는 아공법유를, 대승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 다만 가설적 상태일뿐이라는 아공법공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의 차이를 종합하려는 것이  천태 지의대사였다. 위의 인용한 것은 지금 읽고 있는 11장 천태의 내용이다.


 누군가는 대승이 부파불교(아비달마)가 오염시킨 불교를 다시 근본불교로 되둘렸다고 판단하며 초기경전으로 대승경전을 읽는 시도를 하고 있다. 조만간 읽어보겠지만 언뜻 이해는 되지 않는다. 아비달마가 그냥 설명만 듣는 것으로도 너무 복잡하다는 건 알지만 대승의 중관과 유식도 그에 못지 않다. 양극단을 배제하는 것이[不二] 곧 중[中]라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것 또한 극단이 아닌가 싶기도. 


무아,윤희,업을 설명하고자 하는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했던 초기불교의 소박함이 더 좋으며, 대승이 내놓은 이야기 보다는 아비달마가 전반적으로 맞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견해가 생겼다.  단순히 입문서를 보고 생긴 견해이므로 언제라도 수정이 될 가능성은 다분하지만. 


쉬는 주말이라 어제까지 '2부 인도불교'편까지만 읽고 챙겨둔 다른 소설책을 잠사 읽으려고 했는데 계속 잡힌다. 11장만 마무리 하고 보고 싶은 소설을 집었다가 다음주에 이 책은 일독을 마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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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도 빠르게 읽는 편도 아니고(그렇다고 곱씹어 읽는 스타일도 아니다.) 책 자체도 그렇게 가볍지는 않아 거의 책의 1/2정도 읽고 있는 중이다.


아비달마를 다루는 장까지 다 읽었다. 예전에는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 ('부파불교'를 소승이라 폄하 하던)대승의 입장에서 아비달마를 보게 되어 아무래도 크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였다. 


책의 저자가 아비달마불교를 연구하기도 하여 그들의 입장에서 쓰여 졌다고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이토록 그들의 이론이 번잡한 듯 해버렸는지에 대한 배경은 이해가 되었다. 성문승인 그들은 스승의 부재로 인하여 그동안 스승이 설하였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대기설법이라 하여 그동안 스승은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조금씩 교설을 다르게 남겼으니 스승이

살아계실 적에는 부동의 표준이 되어 물어볼수나 있었지만 열반이 든 이후로는 그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여야 할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스승도 오로지 법과 자신에 의지하라 하지 않았던가. 


근데 좀 복잡하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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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권오민 교수의 <인도철학과 불교>를 읽고 있다. 저자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본 책은 입문서격의 서적이다. 물론 총서 자체가 입문을 위한 책들이니 더 말할 것은 없겠다.  다만 여전히 한자로 번역된 불교용어를 쓰고 있기에 완전히 처음 접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다.  하지만 이정도는 양호한 것이 예를 들어 <유식학입문>이라는 책은 한자로 번역된 불교용어가 한 페이지를 가득채우고 있으니 한글세대에게는 엄청 버거울 것이다(그래서 아직 못 읽었다.그 이유 뿐만은 아니나...).


한형조 교수의 말처럼 이제 불교도 산속에서 벗어나 속세의 민중에게로 더 다가올때가 되었다. 다른 것보다도 한자로 범벅이 되어 있는 불교의 언어를 다시 한글로 옮기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입문의 상황에 있는 (한글세대에 속하는)본인의 입장에서 투덜 거려 본 것이다.

책은 제목과 같이 인도철학과의 불교의 관계를 밝히기 위하여 쓴 것이다.  인도철학과 불교는 인도라는 지리환경적 공간과 그에 기반한 사유 속에서 나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둘은 전통과 反전통의 관계이긴 하나 공유된 것들도 많다.  삶이란 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이 그런 기본적 인식이다. 그에 대한 벗어남에 대한 방법은 차이가 있지만. 

아주 어렵지는 않으나 쉽지는 않아서 100여페이지를 읽고 있다.  현재는 <우파니샤드>를 다루는데, 살짝 지겹다. 존재에서 존재가 나올 수 있지 비존재에서 어떻게 존재가 나오냐는 물음은 여전히 물음표다. <우파니샤드>에서 나오는 한 구절은 마치 진화생물학에서 하나의 생명이 어떻게 무수한 생명으로 나뉘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연상시켰다.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도 어서 읽고 싶은데.  이럴때면 시간이 아쉽다.

 

 

 

 

 

 

 

 

 

 

 어제 막 주문한 <대지도론> 세트를 받았다. 어제 밤에 잠들기 전 1권을 잠시 열어보았다. 익히 알았던 것처럼 반야부의 <대품반야경>에 대한 나가르주나 보살의 주석서이다.  생각보다는 재미있다.  문답식으로 되어 있어 틈틈히 읽어도 상관은 없겠다. 한 30분이나 1시간 정도?  매일 이러다 보면 1년 동안은 읽으려나.  

 

 시작은 부처님이 마하반야밀다경을 설하시게 된 연유에 대한 답을 하는데, 뭐 부처님에 대한 깨달음에 의문을 가진자가 있어서,  삿된/거짓된 깨달음으로 이끄는 자가 있어서 뭐 블라블라... 이어지고, 중간에 부처님이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나와 일곱 걸음을 걸은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선언한 것에 대한 변명? 정당화하는 답을 내놓고 있다. 뭐 요약하자면 이미 태어날때부터 깨달은 사람이었으나, 그렇게 되면 근기가 모자란 사람이 '저 분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 그런거고 나같은 범부 어렵겠구나'라는 마음에 지레짐작으로 깨달음에 대한 정진을 포기할까봐 일반 대중처럼 성장과정을 보낸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 신학에서  악이 존재하는것에 대한 독특한 변명 내지 정당화 설명을 들었던 것이 순간 생각이 났다(아마 지의 정원이란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이전에 읽은 <불교의 탄생>에서는  이와 같은 설화를 실제로 부처님이 깨닫고 난 이후 처음 설법하려는 과정에서 했던 선언인데 전승되어 오면서 이런 형태가된 거라고 주장했던 것을 읽었는데...  잘 모르겠다. 이런 변명, 정당화에 대한 내용이 흥미롭기는 해도 종국에는 내 관심사는 크게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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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1~8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전정은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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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연휴동안 김용 선생의 <소오강호>을 읽었다. 사조삼부곡을 읽은 이후로 저자의 다른 저서를 읽고자 했으나 정식계약본은 없어 이전에 좋은 번역으로 거론 되고는 번역본을 구할 궁리를 하다가 마침 정식계약본이 나와 기뻐했다.

물론 기대한 건 천룡팔부였으나 나온건 소오강호라 아쉬움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신조협려 만큼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있지 않고, 의천도룡기만큼 주인공의 주요한 결투 장면에서 통쾌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주요 악인이 너무 허무하게 죽어가니 별로... 사실 김용 선생의 작품은 소설보다 만화, 드라마로 접했는데 초기작과 이 소오강호는 의도적으로 피했던 걸 봐서는 작품의 스토리가 영 마음에 안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제일 기억에 남은 캐릭터가 개그캐인 도곡육선이니 말은 다 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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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2 - 독고구검
김용 지음, 전정은 옮김 / 김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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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부터 영호충의 실연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둘 커플의 이야기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애정이 가는 건 아니지만 면벽의 기간 동안 영호충이 가지는 내적불안은 공감이 가는 구나. 하하.

그리고, 영호충이 독고구패의 삼초식을 전수 받는 장면도 나온다. 또한 화산파 내에서의 기종과 검종의 대립의 이야기도 언급이 된다.

이제 슬슬 재미가 있어지려고 하니 뒷 권이 더욱 기대 된다. 권말에 기종과 검종의 대립에 의한 인연이 재등장하니 어찌 될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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