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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문가의 일생 ㅣ 규장각 교양총서 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전문가' 이들은 누구인가?... 어떤 분야에 대하여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그러나 유학과 왕과 사대부들을 정점으로 하는 조선사회에서는 조선'전문가'들은 분명히 "조선을 살만한 곳으로 윤기 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비천한 대우를 받았다.
이 책은 책 제목과 같이 조선전문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개하는 전문가들은 훈장,천문역산가,의관,광대,승려,음악가,궁녀,목장,화원,역관,책쾌,금융업자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궁녀였다. 궁녀는 일반적으로(어쩌면 나 혼자만의 편견) 후궁이거나 성적인 대상에 불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지배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나의 무식의 소치이며, 악랄한 수컷의 냄새나는 생각일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궁녀는 일반적으로 궐안에서 살았으며 내명부라 하여 일반 관원의 품계체계와 같이 정과 종으로 나뉘벼 18계로 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후궁은 종4품까지이며, 정5품 부터는 궁인직에 해당된다 한다. 정 5품을 받은 이를 상궁이라 부른다. 이가 아래 직급의 궁인들을 통솔하였다.
이들이 하는 일은 일반 관서가 하는 일과 많은 부분이 같았다. 왕비의 측근에서 명령을 하달하고 문서 출납을 담당하기도 하고, 각종 손님을 맞이하거나 잔치를 차리는 일등 일상생활을 돕기도 하였으며, 복식,음식접대,직물과 의복을 생산, 그리고 사헌부와 형조 등과 같이 왕비의 영을 세우고 이를 어긴 궁녀들을 적발하여 처리하는 것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것들을 직접 만들고 한 것은 아니며 일종의 중간관리직에 속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나라는 한 인간이 궁녀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어느정도 벗어났다고 하여도 이들에게 가한 폭력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였다. 궁녀들은 일반적으로 국왕에 예속되는 존재로 결혼을 허용치 않았다. 궁녀 신분에서 벗어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런 법이 있다고 하여도 이성관계가 쉬운 일이던가? 정을 통하다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주로 궐을 출입하던 종친들이였는데,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그 문제의 궁녀는 죽임까지 당하고 종친은 그럭저럭 풀려나 버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법이 이러하니 궐을 나간 궁녀들은 자기네들낄 '정업원이라는 곳에 僧도 아니고 俗도 아닌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도 결국은 남성적은 시선으로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마지막 구절이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이 궁녀들을 一生외에도 이런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전문가들은 많았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고, 이들은 천인이거나 그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훈장들도 마찬가지다. 흔히 성리학이 지배이념으로 있었던 조선조에서 교육과 교육자에 대한 중요성은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괘나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런 것도 아니라 하니 얼마나 이율배반적 상황인지. 심지어 이들은 설경이라하여 혀로 밭갈이를 하는 이들이라고 하여 스스로는 자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스스로 자신들의 영역을 열어나가기도 했다. 역관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비록 사대부의 보조적 역할에 불과하였으나, 국제적인 감각에 따라 문화의 선봉장에 서는 등 시대적 변화를 주도해 나가기도 하였다. 물론 역관이 아니더라도 다른 전문가들 모두 자신의 '신분'이자 '직업'이자 '일'이자 '삶'인 이 운명 앞에 서서 묵묵히 조선을 닦아 나갔다. 비록 그 당시의 기록에는 드러나지 못했으나, 오늘날 와서 그들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니 애달프면서도(그들이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겠다) 기쁘다.
*12명의 전문가들을 다루며 12명의 필자가 존재하므로 당연히 글의 편차가 존재한다. 그리고 다소 아쉬운 부분은 용어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다는 점. 주석으로 달아주면 좋았을 텐데... 물룬 기본상식에 부족한 나만의 문제점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