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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책에 대한 이야기는 책의 내용을 말하는 것 뿐 아니라 그런 책을 탐독하고 애정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일화도 좋아한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비슷한 성향이 아닐까 싶은데(물론 실용적인 이유에서 크게 좋아하지 않는 분도 보았지만.) 이 책도 그런 기대에 어느정도 부응하는 책이다. 다만 이 책에 평을 남긴 다른 알라디너 분의 이야기 처럼 나도 정민 교수의 이런 류(연구하다가 곁가지로 나온 책)의 책이 좀 지겨워서 정색하고 집필한 연구서나 교양서가 아니면 읽지 않을 것 같다.
책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이 맥망에 대한 이야기 였다. 책벌레가 책 속의 글자 중 신선이란 단어를 세번 먹으면 된다고 하는 것인데, 그 맥망을 밤중에 하늘의 별에 비추면 별이 내려와 환단약을 구할 수 있게 되고 이 약을 물에 타서 먹으면 환골달태하여 그 자리에서 하늘을 오른다고 하였다. <유양잡조>라는 책에서 나오는 고사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하는 책벌레도 먼지다듬이를 이야기 하는 건지 모르겠다. 먼지다듬이가 책을 직접 갉아 먹기도 하나? 또 저자가 옌칭연구소에 방문교수(맞나>) 자격으로 가서 한창 도서관에서 고서를 뒤적일때 보았던 은행잎을 본 이야기도 짤막하게 들어 있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몇번 책벌레를 예방한다고 넣었두었던 게 기억나서 뒤적여 보니 아직 있다. 고등학생때 그랬던 것 같은데 그 밤색으로 변해 버린 은행잎을 보니 문득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나갔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꼼꼼하게 읽는 기분은 베껴쓰기라는 걸 다시 확인한다. 다산도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것도 하나가 그것이고 그의 제자들이면 베껴쓴 책들이 총서라고 하여 몇개나 있었다고. 그리고 베껴쓰기를 위한 책을 선정하는 것부터 공부라고 한다. 1년전부터 한번 시도 해보려고 했었는데 나의 나태함은 너무 큰 듯 하다. 난 간서 수준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첫 장부터 나오는 한중일 사람들의 장서인에 대한 태도도 재미있게 읽었다. 뭐 어차피 결론을 생각하면 책이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장서인을 찍지 않는게 좋을 것 같지만 욕심이란게 그런가. 중국 사람들은 보통 이전 주인의 장서인을 둔 채로 옆에 자신의 장서인을 찍었고, 일본인은 이전 주인의 장서인 위에 소消라고 찍어 놓고 옆에 자신의 장서인을 찍었다고.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예 절취하는 방식으로 없애 버렸다고. 뭐 이걸로 중국 사람은 어떻고 일본 사람은 어떻고 한국 사람들을 어떻다... 라고 하는 것도 우습긴 하겠다. 하지만 대충 어떤 나라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일본인의 장서인을 찍는 모습을 보면 좀 냉정하고 사람다운 맛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 사람들 처럼 절취하는 모양새도 아니지만. 그런 것 좀...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저서를 동료교수께 '존경을 담아'라는 헌사를 담아 드린 적이 있다고 하는데 마침 그 교수가 퇴직하면서 무신경하게 화장실 앞에 버려두고 간 것을 보고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 교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가 되었지만 썩 감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중고도서를 많이 구입하는 건 아니지만 구한 도서 중에 저자의 서명이 있는 책이 있었는데 <백제정치사연구>였고 <조선시대 정치권력과 환관>이라는 책이었다. 그런데 느낌 상으로는 <백제정치사연구>는 출간된 연도도 오래되었고, 허름한 채이라 짐작으로는 그 책의 주인이 세상을 등지고 나서 그 유족되는 이들이 정리하다가 무신경하게 내다 판 것이 아닌 짐작이고, 후자인 <조선시대 정치권력과 환관>는 받았던 이가 직접 정리하면서 팔은 것 같다. 책장을 여니 신간도서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빽빽했다. 그런데 정리하면서 그 부분은 좀 잘라버리기라도 하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헌사하면서 그 대상의 이름도 적혀져 있어 정말 무신경했다는 점도 느낀다. 정민 교수도 공간 정리의 필요 때문에 이런 책들이 처지 곤란일때가 있어 자신은 아예 서명을 할때 길쭉하게 된 종이를 들어 거기게 서명을 하고 책 위쪽에 살짝 붙여 준다고. 센스 있는 부분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