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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과 예(禮), 그리고 중화(中華) ㅣ 한국연구총서 96
허태구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4월
평점 :
병자호란은. 조선을 청이 침략했던 사건이며, 조선 국왕이 출성 하여 직접 항복하기도 했던 전쟁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홍타이지의 전쟁이기도 하다. 홍타이지에 의하여 기획되었고, 실행된 전쟁이기도 때문이다. 홍타이지가 전쟁을 겸실함 이유는 당시 경제난(식량난등?)과 명과의 결전을 대비한 후방의 안전이기도 하겠으나,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함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속도전을 낸 것이며, 국왕이 직접 나와 항복을 하였으나 나라의 명맥이 이어진 것이다(항복을 받는 것과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이런 병자호란을 두고 당시 조선 지배층의 국제정세에 대한 오판과 군사지휘관들의 무능을 이유로 비난하는데, 요근래에 들어 당시 지배층을 구명하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고, 이 저서도 그러한 경향에 놓여 있다. 일단 당시 지배층들이 완전히 국제정세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가, 충분한 대책을 세우기에는 당시의 정치,사회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렵지 않았는가를 살펴본다. 본서에서 실록 등 공적기록에서 비롯한 것을 살펴보기에는 당시 국왕을 포함한 지배층들이 전쟁이 일으킬 가능성도 이미 타진하고 있었고, 당시 군역의 문란등에 기인하는 군사력의 열세로 필패의 기운이 이미 감지되고 있었다. 거기다 이번에는 명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받지 못하리는 것도 알고 있었다.(병자호란 당시에 조선과 명의 육로는 청의 요양의 획득으로 군사적 지원이 어려웠다.). 나름의 외교적 해결책도 모색하기 위하여 사신을 파견 했으나, 도리어 홍타이지의 친정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남한산성에 피난한 국왕을 비롯한 대신들은 통렬한 사자후를 내뱉었지만, 그뿐이었고, 딱히 군사적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풍전등화의 앞에서도 대명의리론에 기반한 척화론은 가라앉지 않았으니, 전후 조선의 정치의 흐름 역시 예견되는 바였다.
그것은 당시 보편적 문명이라 인식하였던 중화문명 가치를 더 중시했던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고, 거기에 그 세계관 내에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거나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면피용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 지배층들의 세게관이 안착이 된 계기와 동인을 연구한. 한명기, 계승범에 대한 연구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선행연구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내는 지점을, 나로서는 크게 공감하기는 어렵다.
두 개의 대명인식(실체적 존재로의 '명' 및 중화로서의 '명')을 그렇게 딱 구별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재조지은이 중화로서의 명에 대한 의리를 강화 했다는 내용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당시 세계관(중화에대한 흠모)이 내부적으로 수용, 전개되는 과정도 있겠지만 대명의리론이 가지는 외교/군사적인 측면에서의 필요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불안정한 당시에도 여전히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던 명의 실제적 위험 가능성 같은?....
이렇게 몇권의 책을 읽으며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에 대한 이해에는 조금의 수정이 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무능하고 잔악한 무리들이라는 인식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 정묘호란 이후에 군역의 문란이 주는 폐해를 극복하고자 호패법을 실시하였지만 사족들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하였고, 전화를 입을 평범한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이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에 갇혀 있었던 자들을 어떻게 하여야 변호를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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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전반적으로 병자호란의 전의 조선의 국방태세, 전개과정(특히 강화협상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기는 하지만, 병자호란이라는 참화 이후에도 척화론이 조선의 정론이 되었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은 것 같다. 내가 이 책에 바란 건 후자인데 아쉬운 면이 있다. 더 충실했다면 페이지가 더 늘었나기는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