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전쟁사 연구 - 약자가 선택한 전쟁
서영교 지음 / 아세아문화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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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서는 부제에도 드러나는 것처럼 약자로서의 신라를 강조한다.  신라는 외교적 노력으로 나당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 고구려를 차례 멸망시키지만 이후 당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 야욕으로 신라는 다시 한번 위기에 처하는데, 당대 최강국인 당에 군사적으로 반기를 들자니 너무 위험하고 이 상태로 지내자니 결국은 당의 하나의 성으로 전럭하고 말것이고 이래저래 고민이 있었는데, 당시 669년 9월에 토번이 천산남로를 급습하여 설인귀의 주력군이 서역으로 투입되어 서쪽에 신경 쓰는 가운데 670년 3월 당군에 대한 선제공격을 시작한다.

 

 약자인 신라가 그러한 국제상황을 참고하여 전쟁의 개시를 결정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전투에 대한 영향을  마찬가지로 서역의 상황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나당전쟁의 종결 역시 "나당전쟁 종결의 주된 원인은 실크로드의 이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 도번 전쟁(P.292)"에 있다고 하여 종결 역시 국제상황에 이유를 찾았다.  그런데 종결이라고 했지만 저자의 입장은 실질적인 종전은 당현종이 734년 평양 이남에 대한 땅의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난뒤로 잡는 것이 맞다고 하는 것 같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동의를 하는바,  일단 신라 내부의 모습만 보아도 신문왕대에만 5개나 되는 서당이 신설되는 등 군비의 증강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면 이건 평화기에 있는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676년이 나당전쟁의 종점시점이라면 이러한 군비가 증강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당시 불안한 진골귀족 사회도 당의 재침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본다.  신문왕의 장인 김흠돌의 반란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이다.  당시 친당적인 귀족들의 제어하는 것이 큰 과제 였을 것이라고 보는데, 과연 그런 생각도 곱씹을 만하다.  일신과 우리 가족 가문만을 위하여 신라를 배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녹읍혁파등의 조치도 다만 단순히 왕권의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보아왔던 것보다는 당시 상당히 군사적 긴장감에서 기인한 바가 있다고 한 것은 다시 되짚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혹시 모를 당과의 전쟁을 대비하여 국가 주도의 물적, 인적 자원의 수취체제 마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요즘에 나당전쟁의 종결의 원인으로 정도의 사이는 있으나, 토번의 천삼남로의 침공을 들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본서의 저자는 지나치게 국제상황만을 고려 하고 있다.  나당전쟁사에 신라가 안보인다.  그 점이 아쉽다.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인데...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재미있다.  무슨 연구서가 이렇게 재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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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8-04-18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너무 인상적이예요. 당장 읽어봐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