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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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돈, 하면 나는 2015년에 우리나라에 등장한 문학 집단이 떠오른다. 그 해에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정지돈을 필두로 오한기, 이상우, 황예인 등이 참여해 『후장사실주의』라는 잡지까지 내고, 자신들이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이들 집단의 작명을 보고,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야만스런 탐정들>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책 속에 스무 살 갓 넘은 문학청년들이 “내장 사실주의”라는 문학 집단이랄까 동아리를 만들어 전위문학을 추구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로베르토 볼라뇨는 내장 사실주의를 자신이 주도하던 문학 그룹인 “밑바닥 사실주의”를 패러디 한 것이라 하니, 어쨌든 후장 사실주의와 로베르토 볼라뇨를 따로 떼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이것이 여태까지 정지돈의 작품을 읽지도 않고 가졌던 그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모든 것이 영원했다>는 처음 읽은 정지돈이다. 이 책 말고도 몇 권의 책을 더 냈으니 독후감의 내용은 이 책, <모든 것이 영원했다>에 한정한다는 점을 먼저 밝혀야겠다. 괜히 그러하지도 않은데 적은 분량의 책 한 권으로 마치 이이의 모든 모습이 그러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변변치 않은 독후감을 읽고 계시는 분들도 꼭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한국의 볼라뇨, 라는 것. 단지 이이가 후장사실주의를 주창한 작가라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가져오는 방식부터가 볼라뇨와 매우 유사하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는 먼저 멕시코 안에서 활동했던 전위예술가(내장사실주의자)를 찾고, 이어서 약 20여 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의 내장사실주의자들에 대해, 이어서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 큰 전기를 맞는 것으로 어렴풋하게 기억하는데 읽은 지 좀 돼서 정확하지는 않다. 그럼 그건 넘어가고, 나치 공군 조종사 출신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살인 청부업을 하는 카를로스 비더의 행적을 추적하는 <먼별>, <2666>을 읽는 것처럼, 비록 볼라뇨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킨 반면, 정지돈은 실제 인물의 행적을 샅샅이 뒤졌지만, 특정인물의 수색 방식이 매우 유사하지 않은가, 싶게 읽혔다. 이렇게 얘기하면 정씨에게는 억울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위에서 말한 선입견에 너무 젖어 있어서 이런 감상을 내놓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정웰링턴, 넓게 이야기하면 한국 공산주의자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정웰링턴은 1903년에 시작한 하와이 이민 1세대 집안의 아들로 미국태생이며 시민권자로 1927년생 정도로 보인다. 이이는 1948년에 하와이를 출발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가, 열차로 뉘른베르크에 도착한 다음, 다시 국경을 넘어 헤프를 거쳐 프라하에 도착한다. 프라하에서 찰스 의대를 졸업하고 생화학과 유전학을 공부한 후, 벽지 보건소와 병원을 전전하다 연구소에 입소하게 되는데, 반공국가인 미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어서 당국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바람에 어떠한 연구 주제도 주어지지 않는다.
  정웰링턴은 태생부터 공산주의자로, 어머니 현앨리스는 상하이에 살 때부터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중국과 조선을 오가며 대단한 여성 스파이 활약을 했다. 어머니는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권유로 이경선 목사, 한흥수, 그리고 박헌영 본인과 함께 북한에 갔다가 한국전 후 1956년에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한다. 이런 내력을 가지고 있는 정웰링턴은 골수 공산주의자로 미국 공산당에 입당을 한 후, 공산주의자 지도자 훈련학교에서 2주간 특별교육도 이수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던 정웰링턴은 미국의 대학이 일본인이 아닌 동양인에게 학위를 주지 않으려는 것을 알기도 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화한 냉전시대와 미국 내 공산주의 말살정책 때문에 당시에 서방세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체코로 유학을 해 의사 면허증을 딴 것이다. 웰링턴, 윌리는 진지한 이상주의적 공산주의자로 굳이 구분을 하자면 조선의용대 계열의 좌익 파르티잔이지만 체코의 비밀경찰은 윌리가 공산주의자인 것을 믿지 못한 시절이 오래 있었다. 미국 국적이 곳곳에서 그를 의심받게 만들었던 것. 정작 윌리는, 소련이 이토록 망가진 것은 레닌이 공을 들여 잘 만들어 놓은 것을 스탈린이 엉망으로 망쳐버렸기 때문이며, 이제 다시 스탈린을 배격하는 흐루쇼프의 등장을 환영하기도 한 순진한 공산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로 정웰링턴의 고민은, 이제 혁명을 마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과 세계 공산주의를 관찰한 다음이다. 진정한 공산주의를 위해서는 현재의 공산주의 체제를 부정해야 하지만 1950년대 공산정권 아래에서 체제 부정행위는 곧바로 죽음, 숙청에 이은 처형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공산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고, 공산주의를 부정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자로 태어나고 자란 정웰링턴 본인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정웰링턴의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정반합, 변증법적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있던 때가 연구소에 근무할 당시인데, 같은 연구소에 나중에 아내가 될 안나와, 물리학을 공부하다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지 바차가 있었다. 의기투합한 세 명은 1957년 8월에 프라하 카를로비바리 연구소에서 처음 만나 일종의 세미나를 시작한다. 당시엔 불과 세 명이었지만 단 세 명이 모여도 당국으로부터 처벌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세 명이 있다면 한 명은 스파이던 시절에.
  하여튼 이상주의자 정웰링턴과 회의주의자 안나 사이에 토의는 심각해져 갔으니, 안나는 동일성에서 벗어나 차이를 획득하려 한 반면, 정웰링턴은 차이에서 벗어나 동일성을 획득하고자 했다. 이들의 결합은 누가 봐도 정상으로 볼 수 없었을 정도였지만 이지 바차가 유일하게 지지했다 한다. 하여튼 1958년에 둘 사이에 티비타라고 이름 지은 예쁜 개띠 딸이 태어난다. 백인 미국인으로 1947년에 벌써 추방당한 조지 휠러라는 이름의 거시경제학자가 체코에 있었다. 이이는 후에 체코로 망명한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초기 정착기간 동안 숙식 등의 도움을 주고, 문화를 비롯한 체코 각계의 지식인들의 회합을 주도하는 인물이 있다. 정웰링턴이 고민에 빠져 있던 시절,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 색출 작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져, 1956년에 곽정순, 이춘자 부부, 1957년에 전경준, 송안나 부부, 1962년에 김강, 파니아 굴위치 부부가 각각 미국에서 추방당해 체코로 망명하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에 등장하는 미스터 루다. 체코의 비밀경찰이다. 윌리가 이미 결혼해서 잘 살고 있던 1962년 초. 루다는 윌리를 찾아와 현재는 인터나시오날 호텔에 머물고 있으나 조만간에 조지 휠러의 집으로 들어가거나 왕래를 할 것으로 보이는 김강, 파니아 굴위치가 미국의 스파이가 아닌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평소에 친분이 있는 휠러의 집을 방문해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담배 한 보루를 건넨다. 정웰링턴은 1957년에 이미 전경준, 송안나 부부에 관해서도 같은 부탁, 이라기보다 요구를 받아들여 정보를 전해준 일이 있고, 이들은 1958년 12월, 북한 입국과 동시에 연락이 두절되고 생사를 확인하지도 못하게 된다. 안나와 결혼한 첫 해. 그는 안나를 얻기 위하여 (송)안나를 팔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58년에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체코시민권을 요청해서 59년 2월에 허락을 받은 이후에, 미스터 루다를 비롯한 체코 당국의 의심은 사라지고, 같은 해 4월 19일에 귀화 선서를 한다. 정작 안나를 얻기 위해 체코 시민이 되었으나,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러해서 안나와의 사이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그는 세상의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공산주의자들은 사라졌다. 남한에서는 학살당하거나, 북으로 넘어가거나, 전향했고, 북한에서는 숙청당해 처형이나 유배형에 처해졌다. 나머지 땅에서의 공산주의자는 혁명가, 투사, 성인의 반열에서 기꺼이 욕망이 가득한 야심가로 탈바꿈하여 사형당하는 것과 출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고, 두 가지를 선택하지 않은 많은 공산주의자들은 정웰링턴처럼, 어쨌거나 사라졌다.

 

  이게 책의 앞부분이다. 뒷부분은 작가 정지돈이라고 보이는 화자 ‘나’가 체코를 방문해 마르크스를 추앙하는 한국의 젊은 여성 맑시스트를 만나 함께 정웰링턴의 흔적을 추적한다.
  글쎄, <모든 것은 영원했다>를 읽어본 당신이 이 작품이 로베르토 볼라뇨에서 여러 가지를 가져와 효과적으로 변주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정지돈이 정웰링턴의 자료를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는 형식은, 내가 읽기에, 유사하다. 오히려 더 미학적이기도 하다. 만일 볼라뇨가 더 철학적이라고 하는 의견을 받아줄 수 있다면.
  정웰링턴의 한 살이를 파헤치기 위해 전 세계, 특히 미국 내 조선출신 공산주의자들의 운동사도 슬쩍 넘겨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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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12-01 1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이 아닌>만 읽어봤는데 색다르고 좋았어요. 이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정지돈 작가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흐릿하더라고요. 실명의 동료 작가들이 나와서 더 재미있더라고요.

Falstaff 2021-12-01 10:08   좋아요 1 | URL
예. 아주 독특했습니다. 실명과 픽션, 가명과 논픽션의 흐릿한 경계, 이것도 제가 느낀 볼라뇨하고 비슷한 측면이었습니다.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9
스탕달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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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교열 좀 잘 해보슈. 이게 뭐여.
앞날개엔 마리앙리 벨. 마리 (떼고) 앙리 벨.
가계도 ˝13명의 딸을 둠˝ 해놓고 10명의 딸, 3명의 아들, 이중 1명 생존 스탕달의 어머니와 결혼.
아직 본문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을매나 더 심각헐꼬?
본문은 다행히 괜찮네. 근데 이게 소설? 주제 분류 다시 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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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11-30 16: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하는 게 다 그렇긴 허지. 새삼스레 뭐. 이젠 욕도 안 나와. 걍 귀여워.

coolcat329 2021-11-30 16: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신간인데 처음부터 이런 아마추어같은 티를 내면 참 김빠집니다.ㅠ

Falstaff 2021-11-30 16:29   좋아요 4 | URL
읽기 전에 김 빠져서 이러는 거 아닙니까. ㅎㅎㅎ

그레이스 2021-11-30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장바구니에 넣어놓구만 있었는데 안사길 잘했나요?^^

Falstaff 2021-11-30 19:13   좋아요 3 | URL
아이고, 아직 본문 읽기 전입니다.
(사실은 3장 까지 읽었습지요.)
두고 봐야겠습니다. ^^

새파랑 2021-11-30 17: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의 엄청난 카리스마~!전 파르마 수도원을 읽고 도전해야 할거 같아요 ㅋ

Falstaff 2021-11-30 19:13   좋아요 5 | URL
초반이라서 확실한 건 아직인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닌 거 같아요.
저도 지금 어리둥절...입니다. ㅋㅋㅋ

dollC 2021-11-30 19: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날개부터 저러면 김빠지죠...
폴스타프님 초탈하신 듯ㅋㅋ

Falstaff 2021-11-30 20:10   좋아요 4 | URL
ㅋㅋㅋ 초탈 맞습니다. 그래도 민음사 미운 정이 많이 들어 제낄 수가 없어서 염병입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1-11-30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 빡침이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2-01 07:31   좋아요 2 | URL
몇십 쪽 읽었는데 본문은 또 괜찮군요.
하여튼 민음사 얘네들, 개구쟁이라니까요. ㅋㅋㅋㅋ

scott 2021-12-02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퐐스타프님 별점 궁금 🖐^^


Falstaff 2021-12-02 08: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12월 7일에 공개합니다. 개봉박두? ㅋㅋㅋㅋ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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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에 발표한 <올리브 키터리지>의 오지랖 넓고 무뚝뚝하게 친절한 올리브 할머니는 2019년, 여태까지 생존해 있어서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로 하여금 올리브 할머니의 74세부터 84세까지 노년의 십년 동안을 독자에게 다시 보고하게 했다. 그동안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이 두 번 연임을 했고, 오렌지 껍질 색깔의 머리카락이 두드러지는 거구의 백인 대통령이 새로 집권을 했다. 전편 마지막쯤에서 올리브가 가슴에 머리를 뉘고 언젠가는 멈출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던 두 개의 하버드 박사 타이틀 소유자이자, 재수없는 공화당 지지자이자, 배불뚝이에다가 매사 조롱조로 말하는 것이 습관이어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별로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부자인 잭 케니슨과의 두 번째 결혼도, 올리브가 입방정을 떤 대로 드디어 심장이 멈춘 순간이 도래해 두 번째 과부가 되었다. 아들 크리스토퍼를 보자 하면, 각기 아비가 다른 큰아들과 큰딸을 데리고 들어온 며느리 앤이 올리브의 친손자 리틀 헨리에 이어 한 번 사산을 하고 딸을 낳았는데, 또다시 임신할 계획을 세우는 중이며, 이번엔 욕조에서 출산할 계획이었지만, 이유는 모르겠고 단산을 하고 만다.
  올리브 키터리지 여사는, 큰 키에 건장한 체구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했던 몸이 나이가 들면서 척추 사이도 좁아지고, 무릎도 뭐 그렇고 그런, 노화현상으로 인해 조금쯤 쪼그라들어가는 것을 스스로도 알았다. 인생이 뭐 다 그런 거지 별거 있나. 근육의 탄력이 없어져 많은 나이든 여성에게 요실금이 찾아와 삶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올리브 할머니는 조금 더 실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지만 사실은 그리 드물지 않은 질병인 변실금 증세가 있어 여든이 넘어서는 일회용 시니어 언더웨어인 디펜더를 착용해야 외출이 가능한 형편이 된다. 노인의 몸으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직접 차를 몰고 다니던 미용실 앞에서 하루는 고개를 푹 수그려 경적을 계속 울리기에 미장원 여사님이 냅다 달려가 봤더니, 졸지에 심장마비가 와서 심 정지, 죽음의 상태를 거쳐, 집중치료실 신세를 지기도 하고,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생활이 매우 불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헨리와 함께 지은 집은 벌써 팔았고, 이제 다시 잭 케니슨의 집도 팔아 실버타운인 메이플트리 아파트에 입주해 노인들의 공동생활로 편입된다. 크리스토퍼만 신났겠지? 잭 케니슨의 집을 판 돈을 포함한 잭의 모든 동산과 부동산은 당연히 법적 배우자인 엄마가 갖고, 엄마 돌아가시면 그게 누구 거? 살아있는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겠어, 죽은 잭의 외동딸 캐시겠어. 이런 망할 생각은 하지 말자, 이거다. (나는 그런 복도 읎어요 글쎄.)
  그런데 여기서 스트라우트는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에피소드가 좀 모자란다 싶었나보다. 그래서 그랬는지 올리브 할머니와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도 책에 포함시켰다. 과부 엄마와 함께 사는 8학년 여자아이 케일리 캘러헌의 에피소드 <청소>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남편에게 이실직고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현직 검사 수잰의 이야기를 그린 <도움>은 올리브 이야기와 지극히 독립적이다. 완벽하게 한 작품으로 출간해도 좋은 단편소설이 될 <망명자들>은 2013년 출간한 장편소설 <버지스 형제>를 이어서 쓴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에피소드 <친구>는 1998년 작 <에이미와 이저벨>의 뒷이야기가 상당부분 포함되었을 것이다. 역자 해설을 보고 짐작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올리브>가 품은 열세 가지 에피소드의 공통점은 무대가 메인주의 크로스비 타운에서 벌어진다는 점. 포틀랜드에서 차를 몰고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가상의 공간으로, 스트라우트의 대학시절 룸메이트 엘런 크로스비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 에피소드와 공간을 섞어 제목을 <크로스비의 올리브> 정도로 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어디까지나 제목 짓는 건 작가의 권리니까 독자가 왈가왈부하는 것이 마땅하지 못하긴 하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이제 막 노년으로 행사하는 건장한 할머니의 따뜻한 좌충우돌, 그래서 젊은 시절의 찬란했던 사랑과, 불륜과, 열정과, 외로움을(하긴 열거하는 네 단어는 사실 같은 뜻의 말이긴 하지만) 추억하면서, 이제 노년에 이르러 그런 거 다 지나가는 거야, 달래기도 하고, 또는 지금 옆에 누워있는 원수 같은 배우자가 죽은 다음에 도사리고 있는 고독함이라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하면, <다시, 올리브>는 여든을 좌우한 나이에 이르러서 과거의 폭풍 같던 단어들이 이젠 더 이상 상처로 와 닿지 않은 지경에 도달한다. 원수 같은 배우자를 정말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매장하는 경험 끝에 실제로 다가온 외로움이란 지옥을 체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완전히 타인의 경지에 이른 친자식과의 교류는 여전히 모래뿌린 아교 위 같았지만 그래도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최후의 방법이 남아 있었으니, 부모가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는 일이다. 그리하여 자식이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확인하지만, 아쉽게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밖에 없고, 부모의 가슴 속엔 저 먼 예전의 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식에게 행했던 모진 일이 자식의 기억은 물론이고 부모의 심장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되살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올리브 키터리지는 자식이란 부모의 심장의 바늘이라고 정의한다.
  삼십여 년 전에는 학생들을 질리게 만들었던 위풍당당했던 올리브 키터리지는 과거의 학생 앞에서 이제 스스로 질려, 노인이 젊은이를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훨씬 상세하고 정확하게 젊은이가 노인을 해석하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질리게’ 인식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늙어버린 올리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심장마비, 사실은 심근경색이었겠지만, 심 정지 경험을 통해 죽음 이후의 상태가 생각한 것보다 그리 나쁘지 않으며, 다시 살아난 것이 아쉬울 정도로 나쁘지 않으며, 노화에 이르러 인간이 약해지고, 추레해지고, 보잘 것 없어진다는 것, 심지어 변실금으로 인해 악취를 풍기는 일이 자연스럽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물론 아직 진짜 노년에 이르지 못한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선의에 입각해 묘사를 해서 그렇겠지만 이 조마조마한 늙음의 상태, 언제 죽음이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태를 지극히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 역시 허튼 죽음의 침상이 아니라 지팡이를 짚고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권유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겠지. (독후감을 다 쓰고 보니 역자 정연희도 역자해설을 이 장면으로 끝내고 있다.)
  물론 미국의 부르주아 노인 이야기다. 이 가운데서도 바다가 면한 아름다운 가상의 도시 크로스비 타운의 돈 많은 늙은 과부. 노르웨이 관광을 위해 아낌없이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할 수 있는 재력이라면, 세상 어디서도 주변에 친절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는 한다. 그러나 일반 가정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이가 서른 살이 되자 부엌에서 총으로 자신을 쏘아 자살에 성공한 아버지를 둔 전직 중학교 수학교사 올리브 키터리지는 인생의 거의 모든 시기를 크로스비 타운의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간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는.
  <다시, 올리브>는 처음부터, 아니 앞부분에서 예일을 나와 하버드에서 최연소 테뉴어를 역임한데다 돈도 무척 많은 부르주아 잭 캐니슨과 결혼을 해서인지, 아니면 나이 들어 운동능력이 현저히 떨어서인지, 전작과 비교해 보통의 사람들과 그리 많은 교류를 갖지는 않는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버지가 오늘 내일 하는 바람에 고향에 들른 옛 제자, 미국의 계관시인이란 영광을 딴 앤드리아 르리외와, 실버타운 메이플트리 아파트에 입주한 후 친하게 지내게 되는 ‘바지 입은 쥐 면상’ 이저벨 정도가 스스럼없이 올리브와 대화한다. 이게 전작과 가장 다른 점이다.
  그래도 죽음에 임박한 노인들이 자주 선택하는 형식. 삶의 달관, 초월, 안식. 이딴 것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늙음과 죽음과 죽음의 공포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외로움 같은 실제적 모습에 집중하는 편이, 나는 훨씬, 훨씬,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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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30 08: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

Falstaff 2021-11-30 08:52   좋아요 3 | URL
얼른 읽고 올려주셔요. ^^

다락방 2021-11-30 0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는 이 리뷰 읽는데 왜 자꾼 눈물이 나려고 할까요. 저는 아시다시피 올리브 키터리지를 좋아햇지만 다시 올리브는 훨씬 더 좋았습니다. 특히나 요양원에서 다른 노인과 함께 서로의 무사함을 들여다보아주는 것도 와닿았고요. 어휴 왜케 눈물이 나죠 ㅠㅠ

Falstaff 2021-11-30 10:24   좋아요 3 | URL
전 키터리지와는 차이가 그리 많지 않아서 좀 냉정하게 읽었던 거 같아요.
다시 올리브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세계더라고요. 장수 집안이 아니라 나이 많은 분들을 가까이 해본 적도 없고 해서, 이게 오히려 더 감정을 이끌었던 거 같습니다.
하여튼 노인들도 다시 밥을 먹고 힘을 내야 합니다!!!

잠자냥 2021-11-30 0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얼, 이건 별 다섯이네요?! 폴님 리뷰나 다부장님 댓글 반응을 보니 저도 이쪽을 더 좋아할 것 같기는 합니다. ㅎㅎㅎ

Falstaff 2021-11-30 10:24   좋아요 3 | URL
착 감기는 건 키터리지가 더 감기고, 다시 올리브는 거 뭐라 그래야 하나, 하여튼 한숨을 폭 쉬어야할 때가 잦더라고요. ㅎㅎㅎ 재미나게 읽으셔요!!

coolcat329 2021-11-30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 책 ㅠㅠ 벌써부터 슬퍼집니다. 사야겠습니다.

Falstaff 2021-12-01 07:30   좋아요 1 | URL
이 책 좋습니다. 즐기시기 바랍니다. ^^
 
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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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사샤 스타니시치를 알기 위해서는 굳이 구글링을 할 필요가 없다. <출신>이라는,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한 가장 상세한 자기소개서가 있음에야. <출신>을 통해 소개한 사샤 스타니시치의 가계를 한 번 보자.

 

  할아버지 페로 스타니시치. 용을 퇴치한 전설의 용사 성 게오르기우스를 숭배하는 세르비아의 산골 마을 출신으로 마음씨 좋은 공산주의자였다. 1986년에 비셰그라드의 집에서 TV 앞에 앉은 채로 운명한다. 할머니 크리스티나 역시 세르비아 출신으로 책이 끝날 때까지 거의 주인공 역할을 한다. 할머니에겐 2009년이 생애 마지막으로 보낸 좋은 해로 손자 사샤와 함께 페로 할아버지의 고향인 오스코루샤 마을에 들러 그곳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남편 페로의 산소에 헌화한다. 이후 치매기가 조금씩 도져 2016년부터 치매 투병을 시작해, 책을 처음 시작하는 2018년 3월 7일에는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비셰그라드의 공동주택에 홀로 거주하는 여든일곱 살 노인인 동시에 열한 살 소녀이기도 하다.
  보스니아 출신인 외할머니 네나 메즈레마는 콩알을 카펫에 뿌려 작가의 미래를 예언해주는 능력이 있어 사샤로 하여금 콩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게 만들었다. 외할아버지는 낚시광이며 무슬림이니, 어머니는 보스니아-무슬림이다.
  그러니까 작가 사샤 스타니시치는 세르비아, 보스니아, 무슬림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 사샤의 혈통 말고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마케도니아, 터키, 그리스, 이란, 심지어 아프가니스탄까지 온갖 문화권이 합해진 멜팅 폿 melting-pot, 용광로와 비슷한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야말로 다민족 국가인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붉은 별이라는 의미의 베오그라드 연고 축구팀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열성 팬이었다. 지금은 유로파 컵으로 명칭을 바꾼 유러피언 챔피언스 클럽 컵 대회가 1991년에 열렸는데, 8강전에서 독일의 뒤나모 드레스덴을 꺾고(홈 1차전 3:0, 방문 2차전 몰수 승), 4월 24일에 있었던 4강전 2차전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붙었을 때(방문 1차전 2:1, 홈 2차전 2:2) 아버지와 한 약속대로 베오그라드까지 가서 직접 관전을 한 적이 있다. 이때까지도 유고슬라비아라는 다민족 국가의 정체성으로 모든 관중들이 흰색과 빨간색 줄무늬 머플러를 흔들며 한 목소리로 소리치고, 상대팀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폭죽을 터뜨리는 일체감을 보여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 해 유러피언 챔피언스 클럽 컵 대회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했으나 6월 27일 슬로베니아에 의하여 첫 번째 적대행위가 일어난다.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것. 이어서 소규모 전투 끝에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이어 보스니아 전쟁이 발발한다.
  사샤의 집안에서도 외할머니가 보스니아 출신이다. 게다가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는 낚시광 외할아버지는 무슬림이기도 하다. 그대로 비셰그라드에 앉아 있다가는 살육을 면치 못할 어머니는 비 내리는 1992년 8월 24일, 사샤와 함께 국경을 넘어 난민 신분으로 하이델베르그에 정착한다. 전쟁이 끝나고 안정이 된 후에 가족 모두는 다시 드리나 강이 흐르는 비셰그라드로 돌아가지만 사샤 스타니시치는 이제 함부르크에 살고 독일 여권을 소지했으며, 함부르크 스포츠클럽 HSV의 팬인 동시에 세 살 먹은 아들을 두었는데 이 아이도 함부르크 출생이다.
  사샤 스타니시치가 1978년생. 열네 살까지 살았던 “드리나 강의 다리” 가까이에 있는 도시 비셰그라드의 모습을 잊지 못했을 터(이 책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출신의 세계적 소설가 이보 안드리치와 그의 대표작 <드리나 강의 다리>가 한 백 번쯤 나온다). 그는 비록 독일인으로 살고 있으나 잃어버린 조국,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자신의 정확한 정체성에 혼동을 느끼면서도 특히 할머니와의 유대를 결코 놓으려 하지 않는다. 나하고는 좀 다르다. 많은 사람들과 비슷하게 나도 은퇴하면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 낙엽이 잔뜩 떨어진 창경궁과 비원의 궁궐 담을 ‘호젓하게’ 걷고 싶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교통량 때문에 70년대 중반까지만 가능했던 꿈)도 있다. 그러나 갈 수 없다. 염병할 집값이 보통 올랐어야지. 절대 갈 수 없다. 그러나 독일에 살고 있는 사샤 스타니시치는 최상의 문화와 편의시설이 있는 독일을 떠나고 싶지는 않다. 하긴. 더 살아봐야 아는 일이지만. 그리하여 그는 소년시절의 유고슬라비아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하이델베르크에서 보냈던 난민시절 풍경, 2009년 마지막 좋은 시간을 보낸 할머니와의 오스코루샤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 이제 2018년이 되어 치매가 악화된 할머니를 결국 요양원에 보내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가의 주특기라고 스스로 고백하듯, 산만하게 풀어내고 있다.

 

  산만하다고? 그렇다.
  먼저 시간이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많은 소설작품이 현재를 이야기하고, 갑자기 저 먼 과거로 돌아가 왜 현재와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출신>은 2018년 3월 7일 크리스티나 할머니가 3층 창문을 통해 도로에 서 있는 소녀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 소녀가 크리스티나 할머니 본인일 수도 있고, 할머니의 언니인 자고르카일 수도 있고, 열한 살 시절에 함께 소년기를 보낸 동무일 수도 있다. 그러다가 3월 7일은 3월 7일이지만, 1978년 3월 7일, 드리나 강이 흐르는 비셰그라드에서 태어난 자기 얘기를 좀 하다가, 또다시 2008년 3월에 독일 국적을 획득하기 위한 자필이력서를 써야 하는데, 비셰그라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슬라브 학을 전공했다고 쓰고 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는 또다시 위에서 이야기한 1991년 유러피언 챔피언스 클럽 컵 축구시합에 이어, 전쟁. 이어지는 2009년 할아버지가 태어난 오스코루샤 방문. 이어서 곳곳에 우화와 은유를 숨겨놓은 장치 속에서 이렇게 때와 장소가 섞여버리니 양심이 있는 작가라면 스스로 산만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물론 성공적으로 정리해가며 앞부분을 읽어냈다면 뒤는 속도를 낼 수 있지만, 하여튼 그렇다는 말이다.
  하여간 2018년에 커튼을 뜯어 빨래를 하려던 크리스티나 할머니가 높은 곳에서 낙상을 해 팔이 부러지고 치매도 심해 더 이상 가족이 관리할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해 요양원에 보내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사샤 스타니시치가 <출신>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벌써 끝난 상태다. 책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렇지 않은가. 자기 출신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작가 입장에서 할 이야기는 다 한 것은. 유고슬라비아 출신이지만, 이젠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하는데 그러면 어디 출신이라 해야 하나. 세르비아? 보스니아? 아니면 할아버지가 태어난 오스코루샤? 그것도 아니라면 하이델베르크? 할 말 다 하고 이제 남은 것은 결론이다.

 

  출신에 대해 할 말을 다 했으니 이제 첫 장면, 크리스티나 할머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남았다. 사샤 스타니시치는 잡지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독자의 의견을 요구한다. 즉, 열린 결말이기는 하지만 이 속에 독자의 판단을 적극적으로 포함시켜버린다. 예를 들어, 할머니를 안전한 요양원에 계속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423쪽으로, 자유를 찾아 요양원을 탈출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409쪽으로. 이런 거 많이 보셨으리라. 정말이다. 이렇게 여섯 가지의 결말을 마련해놓고, 독자의 취향대로 결론으로 향하게 해놓았다.
  독서모임이 있다면 참가자들이 서로 자기가 만든 결론을 비교해가며 어떤 것이 다른지 토의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내 의견? 방법 또는 발상이 참신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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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11-29 09: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작가님. 일단 찜해요.^^ 참신하나 좋지만은 않았다는 거죠. ㅋ 저는 요즘 책도 플친들 글 읽기도 만만찮네요. 삶이 산만의 극치에요^^;;; 폴스타프님 글이 딱 위에 걸려 있어 휘리릭 눈팅만 하고 물러갑니다. 굿데이~~~~^^

Falstaff 2021-11-29 09:27   좋아요 3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월요일, 즐거운 한 주 만드시기 바랍니다. ^^

파이버 2021-11-29 1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뒷장면이 게임북을 읽는 듯해 참신했습니다ㅎㅎ 산만하다는 말씀에는 100번 동의합니다

Falstaff 2021-11-29 11:11   좋아요 3 | URL
사실 저는 사샤 스타니시치를.... 다른 작가인줄 알고 얼른 읽은 거였답니다.
ㅋㅋㅋ 인생이 다 그렇지요 뭐.

다락방 2021-11-29 10: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사샤 스타니시치 의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도 다소 산만했는데 저는 이 산만함의 시작이 조너선 사프런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저는 엄청나게~를 엄청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그 후에 군인은~을 읽었는데 형식이 닮아 있더라고요.
저는 시간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그렇지만 책 속에서 화자가 여러명인 것도 좋진 않더라고요.

저 이 책 읽고 리뷰까지 썼는데 폴스타프 님 리뷰 읽으면서 내용이 너무 생각 안나서 와 .. 도대체 나는 독서를 왜하는가... 하다가 마지막에 이러면 저쪽으로 가고 저러면 고기로 가라~ 하는 거 보고 살짝 기억나네요 ㅋㅋㅋㅋㅋ 그랬어요, 그랬어. 이 책은 그런 책이었어요.

Falstaff 2021-11-29 11:14   좋아요 4 | URL
저도 <엄청나게...> 재미나게 읽은 1인입니다! 별 다섯 개 줬습지요! ㅋㅋㅋ
다락방 님도 책 많이 읽으시잖아요. 그래서 그럴 겁니다. 저도 무지하게 헷갈려요. 책 읽으면 독후감 꼭 써놓는 게 다 이유가 있어서거든요.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11-29 13: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청나게...> 사놓긴 했는데...산만하다는 얘기들어서 읽기 싫었거든요. 근데 재밌다고들 하시니 기쁘네요😚

Falstaff 2021-11-29 13:54   좋아요 3 | URL
와... 읽으셔요, 읽으셔요!!! 재미납니다!!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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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초반에 무크지가 유행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은 어엿한 메이저 출판사로 성장한 『실천문학』. 1년에 한 권씩 게릴라처럼 출판하고 싹 사라진 다음에 다시 1년 후에 2호를 펴내고 잠적한다. 이 실천문학 2호 “이 땅에 살기 위하여”가 내가 제일 처음 읽은 무크지다. 문익환 목사가 ‘늘봄’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발표했고, 김정환의 <황색예수전>도 2호에서 처음 읽었다. 아, 그리고 시의 제목(<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은 아니다.)은 잊었지만, 양성우! 1982년,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낭유리 군부대 막사에서 이 책 읽다가 고참한테 들킨다. ‘쫄따구 새끼’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내무반에서 책을 읽는다는 명목으로 새벽 두 시에 취침인원 전원을 깨워 곡괭이 자루로 줄빠따를 치고, 치사하게 원인제공자인 나는 쫄병이라 탈영할까 겁나서 안 때리겠단다. 책 읽는 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맞을 정도의 죄가 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첫 연인이 보내준 무크지 실천문학은 그래서 이래저래 잊지 못한다. 5호까지 나오고 이후에 베트남 국기처럼 사각형 안에 검은 별 하나가 그려진 로고의 실천문학사가 생겨 이후 계간지로 탈바꿈한다.
  복학을 하고나서 특히 무크지에 관심이 생겼다. 이때 실천문학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다른 무크지 가운데 『시와 경제』가 있었다. 당시에 나오는 모든 무크지는 하나같이 운동문학에 복무했다. 『시와 경제』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복학생이 사는 책이라곤 최인훈 전집을 한 권씩 모으고 오정희의 단행본을 사는 것으로도 빡빡해 주로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을 찾아야 했지만 무크지는 말 그대로 비정기 간행물이라 읽어보기도 힘들었다. 어렵게 구해서 본 『시와 경제』의 발행인이 김사인金思寅이었다. 1호가 나온 것이 1981년이라 한다. 김사인이 1956년 원숭이띠니까 당시 스물여섯 살의 청년. 시대는 잔인한 전두환 정권시절이었다. 이때의 기억은 김사인으로 하여금 이런 시를 쓰게 했다.

 


  일기장 악몽

 


  또 잡아갈라 또 탈탈 털어가서는
  시월 이십구일 다섯시부터 일곱시 사이에 뭘 했는지
  시월 한달 뭘 했는지 하나도 빼지 말고 전부 쓰라고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 무엇을 육하원칙대로 다 쓰라고

 

  속을 들여다보는 눈빛을 하고 다 안다는 눈빛을 하고
  때가 되면 육개장을 된장국을 먹여가며 을러가며
  다시 쓰라고
  또 다시 쓰라고

 

  콧속으로 물이 입으로도, 비명을, 숨이……비명을, …… 컥!
  칠성판에 묶여 개구리처럼 빠둥거리다
  넙치처럼 도다리처럼
  오줌을 싸며 기절하는 거 아닐까
  모를 리 없다고 모를 리가 없다고
  잘 생각해보라고
  친구 꾐에 빠졌을 뿐
  너는 억울한 줄 우리가 잘 안다고
  그러니 솔직히 그놈이 뭐라고 했는지
  그놈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말해보라고

 

  식은땀 흘리며 벌떡 깨네 벌써 삼십년
  말발타 살발타!  (전문)

 

 

  나는 군대생활이 유독 맞지 않아서 그런가 모르겠는데, 아직도, 이 나이에 무슨 얼토당토 않는 서류가 잘못된 것이 밝혀져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꾼다. 그러면 제대한 지 40년이 가까운데도 속이 상해서 미치겠다. 여태 꿈을 꾸는 것 가운데 하나 더, 내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 해서 학사경고를 두 번 받았음에도 8학기 만에 졸업을 했다. 그러니 당연히 4학년 2학기에 21학점을 꽉 채워 신청을 하고, 한 학점이라도 F가 나오면 졸업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이게 가끔 꿈에 나온다. 시험시간에 교실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은 벌써 시험이 끝나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고,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역임한 완고하기 짝이 없는 한필하 교수는 절대 시험에 응해줄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미 취업을 한 나는 발만 동동 구르다가 새벽을 맞는 거, 이거 정말 유쾌하지 않지만 가끔 겪는 일이다. 한 가지 경험이 더 있지만 김사인이 당한 물고문 앞에선 입도 벙긋하기 창피한 사소한 경험이라 입 꾹.
  김사인과 비교하면, 아니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일천한 경험이지만, 오래된 일이라도 그게 당사자한테 큰 충격이었다면 언젠가는, 언젠가가 아니고 상당히 잦은 비율로 꿈을 꾸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에 젖어 벌떡 일어나, 아이고 세상에나, 말발타 살발타, 주문을 외우게 만들면서.
  김사인이 역경을 치룬 것이 『시와 경제』 한 번이 아니다. 『시와 경제』 이후 몇 년이 흐르고 노태우 정권 초기, 조금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한 철권통치의 시절에 이번엔 『노동해방문학』이라는 무크지의 발행인이 된다. 말부터 심상치 않다. 당시에도 반공을 국시로 하는 육군 장군 출신이 대통령을 하던 때인데 잡지의 제목에 ‘노동해방’을 붙여? 이거야말로 간이 배 밖으로 탈출한 일이었을 터.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읽어보려고 한 권 샀으나, 술 마시는 일 하나만 가지고도 공사가 다망해 몇 쪽 펴보지도 않고 흐지부지 없어졌다. 하여간 내가 김사인의 시를 집중해 읽은 시기가 『실천문학』과 『노동해방문학』의 사이다.
  그런데, 이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펼치니 처음 실린 시가 눈에 익다.

 


  달팽이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 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길이 무너지고
  모근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표장(標章)처럼
  네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전문. 띄어쓰기는 원문에 따름. 이하 같음.)

 


  김사인의 시 같지 않다. 어떻게 읽으면 모던하면서도, 진중하게 느리더라도 꾸준히 배밀이로 먼 길을 가겠다는 의지처럼도 읽힌다. 분명 이거 전에 어디서 얽었는데, 어딘지 모르겠다. 김사인의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이야기하자면, 책동무가 있다면 정말 이 시집이야말로, 다른 술은 안 되고 막걸리 마시면서 밤을 새워서라도 소리 내 읊어보고,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독후감이 너무 길면 욕먹는다. 그래서 하고 싶은 여러 마디 말 가운데 딱 한 가지만 하고 마치자.

 

  시집에서는 그동안 숨을 거둔 시인들에 관한 시가 세 편이 나온다. 먼저 내가 2018년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을 쓴 김태정, 그리고 박영근과 신현정. 오늘 우연히 회사의 동갑나기 박영근과 일과 후에 북어탕 안주에 쐬주 한 병씩 하기로 했는데 그것 참. 김태정을 기리는 시는 제목 자체가 <김태정>이다.

 


  1
  울 밑의 봄동이나 겨울 갓들에게도 이제 그만 자라라고 전해주세요.
  기둥이며 서까래 들도 그렇게 너무 뻣뻣하게 서 있지 않아도 돼요, 좀 구부정하세요.
  쪽마루도 그래요,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천장의 쥐들도 대거리할 사람 없다고 너무 외로워 마세요.
  자라는 이빨이 성가시겠지만 어쩌겠어요.
  살 부러진 검정 우산에게도 이제 걱정 말고 편히 쉬라고
  귀 어두운 옆집 할머니와 잘 지내라고 전해주세요.
  더는 널어 말릴 양말도 속옷 빨래도 없으니 늦여름 햇살들은 고추 말리는 데나 거들어드리세요.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미황사 앞. (부분)

 


  저 세상으로 간 김태정이 자기가 마지막 숨을 쉰 해남 미황사 앞마을에서 늘 가까이 하고 살았던 미물과 자연에게 당부하는 걸 그리고 있다. 다음엔 죽음이란, 죽는다는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역시 고인의 말로 전하고, 이어서 김사인의 기억 속 김태정을 소환한다.

 


  3
  슬픔 너머로 다시 쓸쓸한
  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
  한없히 처량한 그림자 덮어쓰고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듯 다닌
  소설 공부 다니는 구로동 아무개네 젖먹이를 맡아 봐주던
  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
  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
  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던
  그 말 너무 선선하고 환해서
  자는 게 뭔지 알기나 하는지 되레 못 미덥던
  눈길 피하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기나 잘하던
  살림 솜씨도 음식 솜씨도 별로 없던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부분)

 


  그리고 나서 이젠 김태정을 위한 조의. “이제라도 가만히 조문해야 한다. / 새삼 슬픈 시늉을 하지 않겠다.”라고.
  김사인의 각주에 의하면 시인 박영근은 부안 사람으로 2006년에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고, 눈물과 노래가 일품이었다고 한다.

 


  박영근

 


  너무 무서워서 자꾸만 자꾸만 술을 마시는 것.
  그렇게 술에 절어 손도 발도 얼굴도 나날이 늙은 거미같이 까맣게 타고 말라서 모두 잠든 어느 시간 짚검불처럼 바람에 불려 세상 바깥으로 가고 싶은 것.

 

  그 적의 어느 느슥한 밤 쪽으로
  선운사 동백 몇송이도 눈 가리고 떨어졌으리.

 

  받아주세요 두 손으로 고이
  어디 죄짓지 않은 마른땅 있거든 잠시 쉬어가게 해주세요.
  젊은 스님의 애잔한 뒤통수와 어린 연둣빛 잎들과 살구꽃 지는 봄밤 같은 것을
  어떻게든 견뎌보려는 것이니까요.  (전문)

 


  신현정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색해 찾아보니 이런, 낯익은 얼굴이다. 이이 이름이 신현정이었구나. 아직 생존했다면 여든넷. 서라벌 고등학교 교사였다지만, 내가 서라벌 중학교 다닐 때는 중대 문창과를 아직 졸업하지 않았거나 갓 졸업해 부임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교생실습을 왔었을까? 그래서 얼굴이 익었나? 아이고, 그럴 리가. 그때가 언젠데. 이이가 재미있는, 그러니까 유쾌한 성격이었나보다. 좀 길더라도 시 전문을 올려보겠다. 신현정의 네 번째 시집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시의 제목으로 썼다.
  시인 세 명 말고도, 돌아간 부모는 당연하고, 화백 여운을 비롯해 자기가 여태 살면서 주위 배경으로 또 다른 삶을 살았던 보통의 사람들과 키우던 개까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모더니즘 시들이 흘러넘치는 요즘에 서정시의 맥을 달팽이처럼 지켜나가는 김사인의 시를 읽는 건 얼마나 개운한 일인지. 그의 초기시에서 익숙했던 투쟁과 혁명은, 내 경우에 국한해 말하자면, 서정 앞에서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신현정을 기리는 시를 옮기며 독후감을 마친다.

 

 

  바보사막

 


  눈부신 가을볕 더는 성가셔 슬쩍 피해 가셨단 말이지.
  헌 우체부 자전거는 훔쳐 타고
  달밤 무지개 길을 씽씽 달려
  (야호! 엉덩이 높이 들고 오두방정도 떠시면서)
  술벌갱이라고들 소문이 도는 하늘님 영감네 동네로 마실가셨단 말이지.
  볼록볼록 보드라운 보도블록 길 걸어
  흰 구레나룻으로 한몫 먹고 드는 그 심술 영감한테로
  내기 장기나 한판 두러 가셨단 말씀이지.

 

  달무리 같은 터번을 쓰고 어린 하마와 고슴도치와 염소와 늙은 낙타를 업고 걸리고
  바보 같은 사막 천치처럼 건너서
  그대는 왕자같이 잘도 가셨나본데,
  가을햇살 속은 조용히 환한데,
  (귓속말인데, 김종삼 천상병 박용래 같은 프로들은 거기 다 계시지요? 한편 부러워요. 혹 채광석 박영근 같은 이들이 왈왈거리며 말 트자고 덤비더라도 속상해 마세요. 괜히 그러지 속은 여린 사람들이에요. 하기야 든든한 이문구 성님이 통반장 한 구찌쯤은 맡아보고 계시겠군요.)

 

  그런데 누구일까 저 백수광부(白首狂夫)
  앞자락 풀어헤치고 광화문 네거리 둥둥 떠 흘러가는 저 사내.
  검붉게 술에 탄 얼굴 다복솔 머리 헐렁한 바지
  이 슬픈 시간에.  (전문)

 


* 근데 꼭 한 마디만 더 해야겠다. “아직도 나는 시 가운데서 서정시가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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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26 08: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시절 꿈을 자주 꿔요. 저도 대학시절 학사경고 받고 4학년 2학기 때 21학점 풀로 채워 들어 졸업 간신히 했거든요. 졸업할 때 학점 평점은 2.0
.
.
꿈에서 다시 대학을 다니면 강의실은 어디인지, 언제 수업을 듣고 언제 과제를 제출하고 나는 언제 졸업할지.. 되게 답답해해요. 그러다 꿈에서 깨면 아 다행이다, 나는 이미 졸업해서 다행이야, 합니다. 휴.. 대학은 공부하기 가장 좋은 환경인데 저는 왜그렇게 공부를 안했는지 후회가 되거든요? 그런데 막상 꿈에서 대학생이 되면 막 답답하고 초조해서 미치려고 하더라고요. 휴..


그리고 이건 좀 사적인 질문인데요,

폴스타프 님 전공이.. 국문학.. 이었나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질문하지만 대답을 꼭 해주셔야 되는건 아닙니다. :)

Falstaff 2021-11-26 08:57   좋아요 3 | URL
다락방 님은 좋은 학교를 다니셨나봅니다. 설대 같은 곳이 F 받으면 0점, 60점? 처리한다고 들었거든요.
저 나온 학교는 F 받으면요, 수강을 아예 하지 않은 것으로 성적표에 표시됩니다. 요즘엔 모르겠고요. C 받기 싫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의도적으로 F를 받기도 한답니다. 덕분에 경고 두 번 받고도 학점은 거의 3.0에 근접할 수 있었습지요.

ㅋㅋㅋㅋ 전공은, 하여튼 이과 출신입니다. 고딩시절부터 물리, 화학, 수학 이런 거에 바짝 흥미를 느껴 20년 후, 그러니까 30대 후반 부터는 연구실에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입학하자마자, 으악, 최악의 선택이란 걸 알아차렸습니다. 이어서, 전공 공부 포기. 너무 늦은 거죠. 당시엔 전과 같은 것도 없었으니. ㅎㅎㅎ 다 인생입니다.

다락방 2021-11-26 09:04   좋아요 4 | URL
제 동기들 중에도 c 받으면 재수강이 아예 안된다고 부러 재수강 하려고 f 받는 친구들 있었어요. 저는 d 나 f 가 수두룩한 가운데 a 는 받아본 기억이 없어서 당시에는 저런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아니, 굳이 왜?) 나중에야 그것이 학점 관리라는 것을, 학점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저는 사실 대학원이나 혹은 대학에 다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요즘에도 종종 생각하는데요, 이 댓글 쓰다 보니까 역시 대학은 다시 안가는 걸로..그냥 이렇게 사는 걸로 해야겠어요. ㅋㅋㅋㅋ

이과 출신이시군요!! 물리, 화학, 수학에 흥미를 느끼는 이과출신인데 세계문학도 다 뿌셔버리시다니. 크- 멋집니다!

Falstaff 2021-11-26 09:12   좋아요 3 | URL
같은 성적 처리 기준이면 제가 다락방 님보다 공부는 잘 했던 걸로....
아휴, 저는 대학 다시 가는 거, 학을 뗍니다. 정말 싫어요.
사실은 고등학교 졸업식 날, 세상에 대고 외쳤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공부는 없다!˝
뭣도 모르는 열여덟 살짜리가 웃겼습죠.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11-26 09: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늘 적어주신 시는 천천히 읽으면 다 이해가 가서 좋습니다. 폴스타프님의 여러가지 꿈 이야기도 공감 가고 재미 있습니다. 제가 대학 1학년때 첫 미팅한 사람이 서라벌고등학교 출신이었어요.
그 사람이 저의 첫사랑인데 덕분에 그때 생각났어요~~

Falstaff 2021-11-26 09:31   좋아요 5 | URL
그죠, 이런 게 시 아녀요? 읽으면 읽기를 마치는 순간 탁, 무슨 뜻인지 즉각 알 수 있는 서정시. ㅎㅎㅎ
크, 서라벌고 졸업생과.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북향의 서라벌고에서 북악을 향해 서서 10시 반 방향에 있는 ‘언덕 위의 하얀 집‘ 대일고였습니다. 당시엔 두 학교가 신흥명문으로 전국 1, 2등을 겨루던 때이기도 하는군요. 아, 정말 오래 전입니다. 심지어 전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으아.....

잠자냥 2021-11-26 09:5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여러분 오늘 밑줄 그을 부분은 바로 이 구절입니다.

˝첫 연인이 보내준 무크지 실천문학은 그래서 이래저래 잊지 못한다.˝

대치동 1타 강사 올림-

Falstaff 2021-11-26 09:59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 지금 뭐 하는지 몰라요. 잘 살고 있을 겁니다.
절대 만나고 싶지 않고, 꿈에서라도 부르고 싶지 않은 이.
심장에 그은 먹줄 같은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 시를 쓴다, 시를 써. ㅋㅋㅋㅋ)

* 오늘 페이퍼 아내가 보면 퇴직금 갈라서 이혼하자 할 거 같은데 이걸 어쩌나...

다락방 2021-11-26 10:01   좋아요 3 | URL
심장에 그은 먹줄...

피 땀 눈물..

아 촉촉한 감성 터지네요 ...

Falstaff 2021-11-26 10:03   좋아요 2 | URL
깊고 깊은 가을 아닙니까.

페넬로페 2021-11-26 10:10   좋아요 4 | URL
잠자냥님, 역시 대치동 1타 강사답게 족집게 시네요^^
밑줄 쫙 입니다 ㅋㅋ

coolcat329 2021-11-26 16:5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이게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ㅋㅋ

잠자냥 2021-11-26 0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정시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게 이 험한 세상에 시가 있어야 할 이유라고도 생각하고요.

Falstaff 2022-01-22 22:00   좋아요 3 | URL
옳은 얘기만 하시는 잠자냥 님.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11-26 1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사인 시인의 시 읽으면서 아픔을 느꼈어요. 단지 아프다기 보다는 분노와 슬픔과 함께 부채의식마저 느꼈어요

Falstaff 2021-11-26 10:56   좋아요 4 | URL
화내지 마세요. 슬퍼하지도 마세요.
김사인 또래의 사람들은 대가로 여러가지를 성취하고, 누렸잖아요. 오히려 이제 투쟁할 것도, 그래서 성취할 것도 별로 없는 무담론 시절을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더 가여울 때도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1-11-26 11:29   좋아요 5 | URL
일반화해서 모두를 그렇게 말할수는 없겠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도 그 담론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들도 있었고,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도 담론을 형성해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죠.

그레이스 2021-12-09 16:45   좋아요 1 | URL
이 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쎄인트 2021-12-09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mini74 2021-12-09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축하드려요 ~

독서괭 2021-12-09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님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12-0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