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 창비시선 453
이산하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60년 당시 지명으로 영일군 죽장면에서 태어난 시인. 부산의 혜광고등학교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이의 10년 직속 선배로 신춘문예 삼관왕, 경희대 국문과를 빛낸 동시 시인, 서정시인이자 소설가, 정호승이 있다. 지금은 공장 프레스로 찍어내듯 비슷한 시를 무한 복사하고 있지만 한때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렇게도 절절하게 공감을 했었다. 근데 이 유명짜 시인 정호승의 정반대 편에 본명 이상백, 필명 이륭이었다가 지금은 필명으로 이산하를 쓰는 시인이 있다. 정반대 편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검법은 달라도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이산하가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수배 4년 동안 자신을 ‘은닉’ 또는 ‘묵인’해준 119명의 명단 속에 선배 시인 정호승의 이름도 들어있다.
  정호승의 시가 서정적이고 따듯하고 깊은 감수성을 지녔다면, 이산하는 정 반대라고 했으니, 서사적이고, 냉철하며 뜨겁게 투쟁적이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조금 부담스럽다. 이산하의 《한라산》을 읽어보지 않았고, 그는 22년 동안 시집을 출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의 평범성》이 처음 읽는 이산하다. 그러니 그가 한라산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초를 겪었고, 이후 붓을 꺾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원시적일 때다. 그까짓 시 한 편, 시집 한 권 발표했다고 그걸 이유로 한 사람을 누더기로 만들다니. 안 그런가. 이산하는 22년 동안 그대로다. 아직도 그는 투쟁중이고 고문당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물방울이었다>에서;

 

  깊은 밤 내 이마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천장에서 약 2분 간격으로 일정하게 똑, 똑 떨어졌다.
  (중략)
  한 시간쯤 지나자 물방울의 강도가 바뀌었다.
  작은 돌이 이마에 떨어지는가 싶더니
  세 시간쯤 지나서는 망치로 못을 박았고
  다섯 시간쯤 지나서는 도끼로 이마를 꽝, 꽝 내리찍었다.
  이제 이마는 물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도끼에 찍혔다.
  이때부터 난 환청과 환시에 시달렸다.
  한 장수가 젊은 포로를 잡아 눈도 가리고 손발도 묶어
  적군의 매복지를 실토할 때까지 막사 추녀 밑에 세워놓았다.
  정수리에서 빗물이 일정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고문’이었다.
  (중략)
  그날 이후 세상의 모든 것들은 물방울로 보였다.
  자세히 보면 맑고 투명한 물방울 속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고요해지는 그 무엇이 숨어 있다.
  (중략)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계속 물방울을 맞으며 부서져야 했다.
  (하략)

 

  이런 미시적, 그러나 지속적인 고통은 시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비슷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직도 계속 물방울(고문)을 맞으며 부서지고 있으니. 이런 물방울 공포는 정말 물방울 고문이라는 것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본격적인 고문의 시작을 기다리는 예비적 공포심인지는 알 수 없고, 예비적 공포심 아닐까 싶긴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건 김사인의 시집에서도 경험해본 다가올 물고문에 대한 공포심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물방울이었다> 바로 다음에 실린 시 <욕조>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어렸을 때는 겨울 저수지에 빠져
  간신히 죽었다 살았고
  젊었을 때는 욕조에 빠져 평생 먹을 물을
  하루에 다 먹은 적이 있었다.
  헌법이 태어난 넓이 107x60cm, 깊이 50cm
  그 이후 이 세상은 작은 욕조였고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도 욕조였다.

 

  어느날 우연히 길거리 모조품 노점상에서
  내 영혼이 감전될 것 같은 게 눈에 띄었다.
  금방이라도 악의 평범성을 증명할 것 같은
  자코메티의 조각상 「걷는 사람」이었는데
  난 얼른 운구해 빈 욕조 안으로 입관했다.
  그때부터 욕조가 봉쇄수도원으로 바뀌었다. (전문)


  이 시집에서 “악의 평범성”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1연에는 이십여 년 전 자신이 당한 물고문을 묘사했다. 나는 이 시를 읽기 직전까지 이산하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1연이 물고문에 관한 것인지 1도 알지 못한 상태여서, 저 넓이와 깊이에 빠져 한도 없이 많은 물을 먹을 수 있는 젊은이가 있을까, 의심했으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두 번째 읽고, 앞의 시와 연계해보니까, 아, 이게 물고문 이야기였구나,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2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악의 평범성’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연이지만 빈 욕조, 고문대가 봉쇄수도원으로 바뀌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검색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철사 같이 가는 금속으로 만든 인간의 걷는 모습. 그게 뭐. So what. 그러나 내용을 알고나서는 왜 욕조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헌법이 태어났다고 했을까, 이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럼 현재의 헌법,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은 여기서 죽었다는 말이다.

  저 뒤에 “악의 평범성”이란 제목의 시가 셋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것, <악의 평범성 2>를 인용한다.

 


  “불교 승려들이 숲을 지날 때 혹 밟을지도 모르는 풀벌레들에게
  미리 피할 기회를 주기 위해 방울을 달고 천천히 걷는다는 말에
  난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얼마나 많은 생물들을 밟아버렸던가.”

 

  득음의 경지에 이른 어느 고승이나 성자의 얘기가 아니다.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의 말이다.
  전 친위대원을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로 만들고
  가난하고 소박한 생을 최고의 삶으로 꿈꾼 사람이기도 했다.
  악의 비범성이 없는 것이 악의 평범성이다.
  우리의 혀는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전문)

 


  지독한 악행을 저지르는 평범한 사람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까, 젊은 시절의 시인에게 모진 물고문을 가해서 하루에 평생 먹을 만큼의 물을 먹이고, 그래서 머리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치 돌이 떨어지고, 망치로 머리에 못을 박고, 급기야 도끼로 꽝, 꽝 내리 찍히는 것 같았다가, 결국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게 만드는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하고. 이렇게 만든 사람이 집에,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 돌아가 소박하고 절제된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거다. 비단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나, 시인이 직접 답사를 한 아우슈비츠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광주시민항쟁과 세월호 희생자에 대해서도 적어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지만, 너무 가혹해 <악의 평범성 1>은 소개하지 않겠다.
  이 골수 진보 좌파가 보기에 21세기 우리의 혁명이었다고 주장하는 촛불도 죽어버렸다. 장렬하게 전사할 심지와 근육이 있던 아날로그 양초촛불은 노동자에서 소시민적 인텔리로 동력이 바뀌는 바람에 디지털 LED 촛불로 바뀌어버려, 박종철과 이한열의 시체를 거름으로 피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꽃은 피자마자 졌다. 박과 이의 희생이 있고 30년이 지나, 세월호 아이들과 백남기의 시체를 거름으로 피운 불꽃도, 피자마자 져버렸단다. 그리하여 비통에 싸인 이산하는 <촛불은 갇혀 있다>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앞으로도 우리의 입은 여전히 진보를 외칠 것이고
  발은 지폐가 깔린 안전한 길을 골라 걸을 것이다.
  촛불의 열매를 챙긴 소수 민주주의적 엘리트들 역시
  노동대중을 벌레처럼 털어내며 더욱 창대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의회공화국이며
  모든 권력도 국민이 아니라 자본과
  소수 좌우엘리트들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심지 없는 촛불이 아무리 타올라도
  우리의 비정규직 민주주의는 여전할 것이고
  세상도 기득권자들을 위해 적당하게만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난 촛불이 타오를수록 더욱 슬프다.  (부분)

 

  소위 진보 좌파진영이 180석을 장악한 의회민주주의의 2021년임에도 대한민국을 향한 이산하의 세계관은 밝은 전망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되풀이할 역사를 되풀이해야지, 혁명을 원하고 투쟁해서 쟁취한 혁명가들이 정작 혁명을 성취하자마자 권력투쟁에만 몰두하여 반동의 길을 걸었던 것을 우리는 20세기 내내 보아왔지 않은가. 진보. 현상을 지양Aufheben하지 않는 진보는 죽은 진보이며 이미 보수다. 이산하는 촛불혁명을 성취한 현 정권, 열매를 챙긴 소수 민주주의적, 좌파적 엘리트들, 너희들도 이미 기득권이 된 건 마찬가지라고 일갈한다.
  이산하의 시를 읽는 일은 힘들다. 시인이 지나온 여정과 시에서 쏟아내는 고통과, 고통스러움 속에도 여전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역시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이산하, 상처 입고 늙어가는 진짜 좌파 시인은 왜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 것일까. 전망을 보여줄 수 없는 혼돈 속에 현재가 있다고 보고 있을까. 지난 아픔과 남은 상처, 현재의 질곡과 오류에 대해 개탄을 해도 시는 시고, 어쨌든 시는 된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을 위해 적당하게만 바뀔 미래를, 다시 바꿀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는 결코 새로운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집 《악의 평범성》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1-12-03 09: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좋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들었기에 서점에 가서 슬쩍 들춰본적이 있어요. 제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꽂아놓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폴스타프 님의 이 리뷰를 읽고나니 이 시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폴스타프 님의 해설을 읽은 듯합니다. 저도 사서 읽을래요.

Falstaff 2021-12-03 09:11   좋아요 2 | URL
어렵지 않은 시들이지만 짊어지기 힘들 만큼 무겁더라고요.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coolcat329 2021-12-03 0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악의 평범성. 정말 악은 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다 평범한 얼굴을 하고 숨어 있기에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도 모르는거같아요.
하인리리 힘러가 저런 말을 했다니...하긴 히틀러도 채식주의자에다 동물을 참 사랑했다죠.
이산하 시인이 긴 공백을 끝에 발표한 시집이라 시인의 시를 기다린 사람들에겐 반가운 소식이겠으나 시의 내용은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물고문, 욕조...저는 가끔 심신이 너무 피로할때 따뜻한 욕조물이 정말 큰 위안을 주는데, 시인은 그 엄마 자궁 속 같은 물이 지옥같을테니 얼마나 슬픈지요.ㅠ

Falstaff 2021-12-03 09:14   좋아요 2 | URL
평범하다못해 경건하고 독실한 종교인인 경우도 많았습지요.
하여튼 세상 사는 거 어려워서 조심조심 살아야 합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1-12-03 18: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두근두근했어요. 폴스타프님이 어떻게 읽으셨을까. 좋아했을까 엄~~~청 궁금했거든요. 역시, 넘 명품 리뷰에요. 짱이에요. 제 리뷰는 감성 위주였건만 폴스타프님은 평론을 쓰신 걸요. 해박함. 분석력. 으뜸이십니당~~~^^ 저는 이산하 시인의 세계관이 한편으로 부담스러우면서도, 찌잉~~~~큰 울림을 줬어요. 비판의 칼날이 매서운만큼 아프기도 했구요. 저는 일개 독자로서 이 시인이 트라우마에서 조금 벗어나 웃는 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바라게 되었어요.
폴스타프님 한라산도 읽어주세요. 저는 엄두가 안 나 리뷰 못썼어요. 폴스타프님이라면 잘 써주실 것 같아요. 말씀대로 이산하 시를 읽기란 힘들지만, 저는 올해 어떤 시집보다 좋았어요^^

Falstaff 2021-12-03 19:42   좋아요 1 | URL
에휴...제가 지금은 이거 말해야 하나 모르겠는데, 이른 시간에 엄청 취해서요... 댓글은 내일... 에휴... 제가이렇게 살아요.. ㅎㅎㅎ

Falstaff 2021-12-04 09:28   좋아요 1 | URL
에고. 맨 정신에 댓글 읽어보니까 이런 과찬의 말씀을 다 하시다니...
이 시집도 읽기가 힘겨웠는데 한라산까지 읽으라시면 우짭니까. ㅋㅋㅋ 읽더라도 나중에 읽어야지 싶습니다.
저도 이 양반이 얼른 회복해 평화로운 말년을 보낼 수 있기 희망합니다만 시 전편을 보니 그리 쉬워보이지 않아 안타깝군요. 트라우마가 그렇게 무서운 거란 걸 배웁니다.
휴일 편하게 쉬세요!
 
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1년 광주 태생으로 조선대학 러시아어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는다. 이어 고려대학에서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나 학위를 땄다는 정보는 없다. 웃긴 건, 문예창작을 하는데 무슨 석사가 필요하고 박사가 필요한가, 하는 거. 물론 내가 이 방면에 아는 것이 없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엔 그렇다. 하여튼 정용준은 2009년, 스물아홉 살 때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이후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문학상을 휩쓸더니, 서른아홉 살인 2018년에 문단에 무수한 별을 생산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임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나무위키’를 보면 학생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교수로 이름이 났고, 실제로 생김생김이 귀염성스럽기도 하다, 소위 과잠을 입어보고 싶은 마음에 서울예대 문창과 후드짐업을 입고 다니기도 했으며, 두 딸을 유난히 예뻐하는 딸바보라고도 한다. 교수가 주책없이 수업시간에 자기 딸 자랑한다니 참, 세상 많이 변했다. 아, 문창과라서, 사람과 삶을 다루는 학문이라 그런가?
  정용준, 하면 올해 출간한 단편집 《선릉 산책》만 알고 있었다. 선릉. 나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릉, 당시 이름으로 선정릉 근방은 인적이 교교한 외진 농촌이었다. 아마 11번 버스가 다녔을 거다. 슬슬 강남 개발을 시작해 잠실에 형우네하고 숙명여고 다니다가 뉴욕으로 이민간 숙란이네 살던 주공 5단지가 막 들어설 즈음, 선릉 근방에 새로 멋지게 이층 양옥집을 짓고 살았던 응식이네 집에서 새우깡에 소주도 나눠 마시고 선릉에 몰려가 놀기도 했다. 그러다 동네 논두렁 양아치들을 두드려 패서 응식이 엄마가 대표로 파출소 가서 치료비 물어주고 그랬었나보다. 그땐 몰랐다. 십여 년 후에 길 건너 샹젤리제 센터 빌딩과 옆 동네 공항터미널에 있던 서울사무실에서 공장 완공까지 한두 해 일하게 될지는. 인생이 웃겨서 살다 보니 응식이는 지금 우리 동네 근방의 대학교수로 있고, 살기도 같은 동네 다른 아파트 살고, 당시 연세대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을 아내로 삼았는데, 내가 그 새끼 휴대전화 차단한 지 삼 년 됐다.

 

  왜 쓸데없는 얘기만 하고 책 읽고 난 소감, 독후감은 쓰지 않느냐고? 뭐 별로 쓸 얘기가 없어서 그렇다. 한 홀어멈이 열네 살 먹은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114 전화번호 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면 한 마흔 살 이쪽저쪽 되겠지. 아범이 죽었는지, 아니면 못살아, 못살아, 하고 이혼을 해버렸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마흔 살이면 한창때라 어찌 여자 홀로 아들 하나만 보고 살기가 쉽겠는가. 그래 솔찮게 연애도 하고 그랬는데, 열네 살 먹은 아들은 기특하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만했지만, 아쉽게도 독한 말더듬이였다. 이 말을 더듬는 아들이 화자 ‘나’이며 주인공이다. 왜소하고 말도 더듬고, 그렇게 좋은 외모도 아니어서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학교면 학교, 동네면 동네에서 괜한 따돌림과 짓궂은 장난의 대상이 되거나 아예 투명인간이 되어버려 그게 이젠 익숙하게 몸에 배어버린 상태. 대강 짐작하실 듯.
  이 아이, ‘나’가 말더듬이를 위시한 모든 잘못된 언어습관을 대상으로 하는 왕십리 부근 언어교정학원인 “스프링”에 다니는 이야기다. 물론 스프링에서 하루 종일 있는 건 아니니까, 학교, 집이라는 이름의 지옥, 거리, 동네 등등의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집이라는 이름의 지옥’인가 하면, 엄마의 많고 많았던 애인 중, 물론 주로 집 밖에서 연애하는 편이었지만, 가끔은 만나는 남자가 집으로 올 때가 있었고, 이때마다 엄마는 때도 안 된 저녁밥을 잘 차려 얼른 먹이고는 등을 떼밀어 학원으로 보내버리고는 했다. 딱 요즘이 그랬다. 몇 달은 밤마다 술에 절어 철퍼덕 쓰러져 자던 엄마한테 갑자기 생기가 나더니, 한 일 년이나 됐을까, 엄마하고 대판 싸운 다음에 집을 나가버린 키 크고 잘 생기고 무좀이 있는 쓰레기가 다시 집에 들어와 안방이자 엄마 방을 차지하고 누워버린 거였다. 근데 ‘나’가 보기에 정말로 인간쓰레기 가운데서도 쓰레기. ‘나’는 실제로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흔히 하는 말로 “죽었으면 좋겠다. 죽여 버리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스프링 학원의 원장이 말하는 것이 어려우면 글로 써 버릇하라고 준 공책에 그걸 ‘문자로’ 죽이겠다고, 죽여 버리고 싶다고 써버린 것. 아시겠지? 이게 언젠가는 문제가 되리라는 예감도 드시겠지? 이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는 소설작법 2조 3항도 기억하시지?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용준은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출간한 2020년에 동화책 <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를 냈다. 이걸 계기로 동화작가로 데뷔하게 되나? 아니면 소설가가 쓴 동화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동화책을 준비하던 시기에 쓴 소설작품이라서, 아니면 동화를 쓰는 심성을 가진 소설가라서? 하여튼 이랬거나 저랬거나 다른 작품은 별개로 하고, 동화를 쓰던 때에 만든 이 책도 역시 예쁘게 꾸며진 해피엔드가 마련되어 있다는 거. 굳이 억지로 말하자면, 성인이 읽는 동화책 수준의 결말. 그래서 하여튼 따듯하게 마무리한다.
  아주 널럴한(두음법칙) 편집에 160쪽도 안 되는 본문. 그리하여 딱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 좀 빡빡하게 글자들을 모아 비슷한 분량의 작품과 합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라고 하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지 얼마 안 된 민음사가 싫어하겠지?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2021-12-02 09: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뉘신지 모르겠사오나 응식님이 잘못하셨네요. 왜 퐐님이 차단하게 만들었대?

Falstaff 2021-12-02 09:48   좋아요 4 | URL
맞아요, 맞아. 그 새끼가 잘못 했어요. 이젠 완전히 자기 중심적 공리주의자(속칭 꼰대)로 변한 데다가 특정 종교를 광신하지 않으면 친구도 필요 없는 편벽증 적 쓰레기가 됐답니다. 그래서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몰라요. 다 인생입죠. 지 예쁜 마누라한테 옮았어요. ㅋㅋㅋㅋ

- 2021-12-02 12:22   좋아요 2 | URL
역시 응식님이 잘못하셨네요.. 흥 놀지마요. 우리랑 놀자...ㅋㅋㅋ

새파랑 2021-12-02 0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폴스타프님이 읽은 책이랑 겹치는 군요 ㅋ 성인이 읽는 동화책 결말 평에 공감이 갑니다. 출판사의 소개글과 내용이 좀 괴리가 있더라구요 😅

Falstaff 2021-12-02 09:47   좋아요 4 | URL
출판사 소개글을 읽으셔요? 오호...
그거 읽으면 세상의 모든 책이 명작, 걸작 아녜요? ㅎㅎㅎ

잠자냥 2021-12-02 09: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선릉 산책> 정도만 읽었는데, 그 작품 하나만 읽고도 착한 작가인가 보구나 싶어서 그 후로 손이 안 가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아, 전 그 착한 세계에 물들기에는 너무 악해서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2-02 09:58   좋아요 3 | URL
저요, 저요!!
착한 동화는 읽겠는데요, (너무)착한 소설책은 재미 없고, 이 책이 바로 딱 그래요!

- 2021-12-02 12:52   좋아요 4 | URL
자냥님 착한 사람이잖아… 저한테 1원 주려고 안보는 유튜브도 본… 착한 소설 싫어하는 그대 나에게 착한 사람..*

잠자냥 2021-12-02 14:07   좋아요 1 | URL
아 나 이것참..... 나 사실 아직 쟝쟝 유튜브 5분 넘게 보지 않았어.....; ㅋㅋ 주말에 볼게;; 난 착하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1-12-02 20:17   좋아요 1 | URL
안봐도 돼… 나쁜 사람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12-02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표지와 소개글에 혹해서 샀는데요???
(정말 멍청한 댓글이군요)

Falstaff 2021-12-02 10:42   좋아요 2 | URL
ㅋㅋㅋ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잘 읽으시기만 했으면 장땡입지요.

물감 2021-12-02 11: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이야기 말고 개인이야기가 더 재밌어요 ㅋㅋㅋㅋ 과거썰 많이 써주세요 ㅋㅋㅋ

Falstaff 2021-12-02 12:09   좋아요 2 | URL
앗, 그렇습니까! ㅋㅋㅋㅋ
하여튼 독후감 틈새가 열렸다 하면 옛 이야기 디밀어 보겠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21-12-02 20:20   좋아요 0 | URL
저두요~~

mini74 2021-12-02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시간을 살려야 합니다. 골든타임안에 ㅎㅎ 예쁜건 중요하지 않다는게 이렇게 또 증명이 되는군요 ㅎㅎㅎ

Falstaff 2021-12-02 12:12   좋아요 3 | URL
잘 생기고 잘 빠지고, 설대 나오고, 좋은 집안 부잣집 출신, 뭐 이런 것들 보면 재수없잖아요. 같은 의미에서 무조건 착하고 예쁜 작품은 별로 땡기지 않는 건가....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몰겄습니다.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12-02 12: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볼일은 없을듯한 책인데 폴스타프님의 글이 더 재밌어요. ㅎㅎ
아 친군데 거기에 종교가 끼어들면 음..... 손절하는게 맞을듯합니다. 이 나이에 남의 종교에 맞춰서 살고싶지는 않잖아요. ㅎㅎ

Falstaff 2021-12-02 12:25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죠, 친구 만나서 정치얘기, 종교얘기 하면 안 되는 거 맞죠? ㅋㅋㅋㅋ
 
모든 것은 영원했다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지돈, 하면 나는 2015년에 우리나라에 등장한 문학 집단이 떠오른다. 그 해에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정지돈을 필두로 오한기, 이상우, 황예인 등이 참여해 『후장사실주의』라는 잡지까지 내고, 자신들이 쓰고 싶은 대로 썼다. 이들 집단의 작명을 보고,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야만스런 탐정들>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책 속에 스무 살 갓 넘은 문학청년들이 “내장 사실주의”라는 문학 집단이랄까 동아리를 만들어 전위문학을 추구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로베르토 볼라뇨는 내장 사실주의를 자신이 주도하던 문학 그룹인 “밑바닥 사실주의”를 패러디 한 것이라 하니, 어쨌든 후장 사실주의와 로베르토 볼라뇨를 따로 떼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이것이 여태까지 정지돈의 작품을 읽지도 않고 가졌던 그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모든 것이 영원했다>는 처음 읽은 정지돈이다. 이 책 말고도 몇 권의 책을 더 냈으니 독후감의 내용은 이 책, <모든 것이 영원했다>에 한정한다는 점을 먼저 밝혀야겠다. 괜히 그러하지도 않은데 적은 분량의 책 한 권으로 마치 이이의 모든 모습이 그러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변변치 않은 독후감을 읽고 계시는 분들도 꼭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한국의 볼라뇨, 라는 것. 단지 이이가 후장사실주의를 주창한 작가라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가져오는 방식부터가 볼라뇨와 매우 유사하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는 먼저 멕시코 안에서 활동했던 전위예술가(내장사실주의자)를 찾고, 이어서 약 20여 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의 내장사실주의자들에 대해, 이어서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 큰 전기를 맞는 것으로 어렴풋하게 기억하는데 읽은 지 좀 돼서 정확하지는 않다. 그럼 그건 넘어가고, 나치 공군 조종사 출신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살인 청부업을 하는 카를로스 비더의 행적을 추적하는 <먼별>, <2666>을 읽는 것처럼, 비록 볼라뇨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킨 반면, 정지돈은 실제 인물의 행적을 샅샅이 뒤졌지만, 특정인물의 수색 방식이 매우 유사하지 않은가, 싶게 읽혔다. 이렇게 얘기하면 정씨에게는 억울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위에서 말한 선입견에 너무 젖어 있어서 이런 감상을 내놓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정웰링턴, 넓게 이야기하면 한국 공산주의자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정웰링턴은 1903년에 시작한 하와이 이민 1세대 집안의 아들로 미국태생이며 시민권자로 1927년생 정도로 보인다. 이이는 1948년에 하와이를 출발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가, 열차로 뉘른베르크에 도착한 다음, 다시 국경을 넘어 헤프를 거쳐 프라하에 도착한다. 프라하에서 찰스 의대를 졸업하고 생화학과 유전학을 공부한 후, 벽지 보건소와 병원을 전전하다 연구소에 입소하게 되는데, 반공국가인 미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어서 당국으로부터 의심을 받는 바람에 어떠한 연구 주제도 주어지지 않는다.
  정웰링턴은 태생부터 공산주의자로, 어머니 현앨리스는 상하이에 살 때부터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중국과 조선을 오가며 대단한 여성 스파이 활약을 했다. 어머니는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권유로 이경선 목사, 한흥수, 그리고 박헌영 본인과 함께 북한에 갔다가 한국전 후 1956년에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한다. 이런 내력을 가지고 있는 정웰링턴은 골수 공산주의자로 미국 공산당에 입당을 한 후, 공산주의자 지도자 훈련학교에서 2주간 특별교육도 이수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던 정웰링턴은 미국의 대학이 일본인이 아닌 동양인에게 학위를 주지 않으려는 것을 알기도 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화한 냉전시대와 미국 내 공산주의 말살정책 때문에 당시에 서방세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체코로 유학을 해 의사 면허증을 딴 것이다. 웰링턴, 윌리는 진지한 이상주의적 공산주의자로 굳이 구분을 하자면 조선의용대 계열의 좌익 파르티잔이지만 체코의 비밀경찰은 윌리가 공산주의자인 것을 믿지 못한 시절이 오래 있었다. 미국 국적이 곳곳에서 그를 의심받게 만들었던 것. 정작 윌리는, 소련이 이토록 망가진 것은 레닌이 공을 들여 잘 만들어 놓은 것을 스탈린이 엉망으로 망쳐버렸기 때문이며, 이제 다시 스탈린을 배격하는 흐루쇼프의 등장을 환영하기도 한 순진한 공산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로 정웰링턴의 고민은, 이제 혁명을 마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과 세계 공산주의를 관찰한 다음이다. 진정한 공산주의를 위해서는 현재의 공산주의 체제를 부정해야 하지만 1950년대 공산정권 아래에서 체제 부정행위는 곧바로 죽음, 숙청에 이은 처형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공산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고, 공산주의를 부정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자로 태어나고 자란 정웰링턴 본인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정웰링턴의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정반합, 변증법적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있던 때가 연구소에 근무할 당시인데, 같은 연구소에 나중에 아내가 될 안나와, 물리학을 공부하다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지 바차가 있었다. 의기투합한 세 명은 1957년 8월에 프라하 카를로비바리 연구소에서 처음 만나 일종의 세미나를 시작한다. 당시엔 불과 세 명이었지만 단 세 명이 모여도 당국으로부터 처벌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세 명이 있다면 한 명은 스파이던 시절에.
  하여튼 이상주의자 정웰링턴과 회의주의자 안나 사이에 토의는 심각해져 갔으니, 안나는 동일성에서 벗어나 차이를 획득하려 한 반면, 정웰링턴은 차이에서 벗어나 동일성을 획득하고자 했다. 이들의 결합은 누가 봐도 정상으로 볼 수 없었을 정도였지만 이지 바차가 유일하게 지지했다 한다. 하여튼 1958년에 둘 사이에 티비타라고 이름 지은 예쁜 개띠 딸이 태어난다. 백인 미국인으로 1947년에 벌써 추방당한 조지 휠러라는 이름의 거시경제학자가 체코에 있었다. 이이는 후에 체코로 망명한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초기 정착기간 동안 숙식 등의 도움을 주고, 문화를 비롯한 체코 각계의 지식인들의 회합을 주도하는 인물이 있다. 정웰링턴이 고민에 빠져 있던 시절,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 색출 작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져, 1956년에 곽정순, 이춘자 부부, 1957년에 전경준, 송안나 부부, 1962년에 김강, 파니아 굴위치 부부가 각각 미국에서 추방당해 체코로 망명하는 일이 벌어진다.
  여기에 등장하는 미스터 루다. 체코의 비밀경찰이다. 윌리가 이미 결혼해서 잘 살고 있던 1962년 초. 루다는 윌리를 찾아와 현재는 인터나시오날 호텔에 머물고 있으나 조만간에 조지 휠러의 집으로 들어가거나 왕래를 할 것으로 보이는 김강, 파니아 굴위치가 미국의 스파이가 아닌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평소에 친분이 있는 휠러의 집을 방문해 알려달라고 부탁하면서 담배 한 보루를 건넨다. 정웰링턴은 1957년에 이미 전경준, 송안나 부부에 관해서도 같은 부탁, 이라기보다 요구를 받아들여 정보를 전해준 일이 있고, 이들은 1958년 12월, 북한 입국과 동시에 연락이 두절되고 생사를 확인하지도 못하게 된다. 안나와 결혼한 첫 해. 그는 안나를 얻기 위하여 (송)안나를 팔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58년에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체코시민권을 요청해서 59년 2월에 허락을 받은 이후에, 미스터 루다를 비롯한 체코 당국의 의심은 사라지고, 같은 해 4월 19일에 귀화 선서를 한다. 정작 안나를 얻기 위해 체코 시민이 되었으나,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러해서 안나와의 사이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그는 세상의 모든 공산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공산주의자들은 사라졌다. 남한에서는 학살당하거나, 북으로 넘어가거나, 전향했고, 북한에서는 숙청당해 처형이나 유배형에 처해졌다. 나머지 땅에서의 공산주의자는 혁명가, 투사, 성인의 반열에서 기꺼이 욕망이 가득한 야심가로 탈바꿈하여 사형당하는 것과 출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고, 두 가지를 선택하지 않은 많은 공산주의자들은 정웰링턴처럼, 어쨌거나 사라졌다.

 

  이게 책의 앞부분이다. 뒷부분은 작가 정지돈이라고 보이는 화자 ‘나’가 체코를 방문해 마르크스를 추앙하는 한국의 젊은 여성 맑시스트를 만나 함께 정웰링턴의 흔적을 추적한다.
  글쎄, <모든 것은 영원했다>를 읽어본 당신이 이 작품이 로베르토 볼라뇨에서 여러 가지를 가져와 효과적으로 변주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정지돈이 정웰링턴의 자료를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는 형식은, 내가 읽기에, 유사하다. 오히려 더 미학적이기도 하다. 만일 볼라뇨가 더 철학적이라고 하는 의견을 받아줄 수 있다면.
  정웰링턴의 한 살이를 파헤치기 위해 전 세계, 특히 미국 내 조선출신 공산주의자들의 운동사도 슬쩍 넘겨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1-12-01 1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이 아닌>만 읽어봤는데 색다르고 좋았어요. 이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정지돈 작가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흐릿하더라고요. 실명의 동료 작가들이 나와서 더 재미있더라고요.

Falstaff 2021-12-01 10:08   좋아요 1 | URL
예. 아주 독특했습니다. 실명과 픽션, 가명과 논픽션의 흐릿한 경계, 이것도 제가 느낀 볼라뇨하고 비슷한 측면이었습니다.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9
스탕달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정교열 좀 잘 해보슈. 이게 뭐여.
앞날개엔 마리앙리 벨. 마리 (떼고) 앙리 벨.
가계도 ˝13명의 딸을 둠˝ 해놓고 10명의 딸, 3명의 아들, 이중 1명 생존 스탕달의 어머니와 결혼.
아직 본문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을매나 더 심각헐꼬?
본문은 다행히 괜찮네. 근데 이게 소설? 주제 분류 다시 하시지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1-11-30 16: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하는 게 다 그렇긴 허지. 새삼스레 뭐. 이젠 욕도 안 나와. 걍 귀여워.

coolcat329 2021-11-30 16: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신간인데 처음부터 이런 아마추어같은 티를 내면 참 김빠집니다.ㅠ

Falstaff 2021-11-30 16:29   좋아요 4 | URL
읽기 전에 김 빠져서 이러는 거 아닙니까. ㅎㅎㅎ

그레이스 2021-11-30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장바구니에 넣어놓구만 있었는데 안사길 잘했나요?^^

Falstaff 2021-11-30 19:13   좋아요 3 | URL
아이고, 아직 본문 읽기 전입니다.
(사실은 3장 까지 읽었습지요.)
두고 봐야겠습니다. ^^

새파랑 2021-11-30 17: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의 엄청난 카리스마~!전 파르마 수도원을 읽고 도전해야 할거 같아요 ㅋ

Falstaff 2021-11-30 19:13   좋아요 5 | URL
초반이라서 확실한 건 아직인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닌 거 같아요.
저도 지금 어리둥절...입니다. ㅋㅋㅋ

dollC 2021-11-30 19: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날개부터 저러면 김빠지죠...
폴스타프님 초탈하신 듯ㅋㅋ

Falstaff 2021-11-30 20:10   좋아요 4 | URL
ㅋㅋㅋ 초탈 맞습니다. 그래도 민음사 미운 정이 많이 들어 제낄 수가 없어서 염병입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1-11-30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 빡침이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2-01 07:31   좋아요 2 | URL
몇십 쪽 읽었는데 본문은 또 괜찮군요.
하여튼 민음사 얘네들, 개구쟁이라니까요. ㅋㅋㅋㅋ

scott 2021-12-02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퐐스타프님 별점 궁금 🖐^^


Falstaff 2021-12-02 08: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12월 7일에 공개합니다. 개봉박두? ㅋㅋㅋㅋ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8년에 발표한 <올리브 키터리지>의 오지랖 넓고 무뚝뚝하게 친절한 올리브 할머니는 2019년, 여태까지 생존해 있어서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로 하여금 올리브 할머니의 74세부터 84세까지 노년의 십년 동안을 독자에게 다시 보고하게 했다. 그동안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이 두 번 연임을 했고, 오렌지 껍질 색깔의 머리카락이 두드러지는 거구의 백인 대통령이 새로 집권을 했다. 전편 마지막쯤에서 올리브가 가슴에 머리를 뉘고 언젠가는 멈출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던 두 개의 하버드 박사 타이틀 소유자이자, 재수없는 공화당 지지자이자, 배불뚝이에다가 매사 조롱조로 말하는 것이 습관이어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별로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부자인 잭 케니슨과의 두 번째 결혼도, 올리브가 입방정을 떤 대로 드디어 심장이 멈춘 순간이 도래해 두 번째 과부가 되었다. 아들 크리스토퍼를 보자 하면, 각기 아비가 다른 큰아들과 큰딸을 데리고 들어온 며느리 앤이 올리브의 친손자 리틀 헨리에 이어 한 번 사산을 하고 딸을 낳았는데, 또다시 임신할 계획을 세우는 중이며, 이번엔 욕조에서 출산할 계획이었지만, 이유는 모르겠고 단산을 하고 만다.
  올리브 키터리지 여사는, 큰 키에 건장한 체구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했던 몸이 나이가 들면서 척추 사이도 좁아지고, 무릎도 뭐 그렇고 그런, 노화현상으로 인해 조금쯤 쪼그라들어가는 것을 스스로도 알았다. 인생이 뭐 다 그런 거지 별거 있나. 근육의 탄력이 없어져 많은 나이든 여성에게 요실금이 찾아와 삶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올리브 할머니는 조금 더 실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지만 사실은 그리 드물지 않은 질병인 변실금 증세가 있어 여든이 넘어서는 일회용 시니어 언더웨어인 디펜더를 착용해야 외출이 가능한 형편이 된다. 노인의 몸으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직접 차를 몰고 다니던 미용실 앞에서 하루는 고개를 푹 수그려 경적을 계속 울리기에 미장원 여사님이 냅다 달려가 봤더니, 졸지에 심장마비가 와서 심 정지, 죽음의 상태를 거쳐, 집중치료실 신세를 지기도 하고,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생활이 매우 불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헨리와 함께 지은 집은 벌써 팔았고, 이제 다시 잭 케니슨의 집도 팔아 실버타운인 메이플트리 아파트에 입주해 노인들의 공동생활로 편입된다. 크리스토퍼만 신났겠지? 잭 케니슨의 집을 판 돈을 포함한 잭의 모든 동산과 부동산은 당연히 법적 배우자인 엄마가 갖고, 엄마 돌아가시면 그게 누구 거? 살아있는 올리브의 아들 크리스겠어, 죽은 잭의 외동딸 캐시겠어. 이런 망할 생각은 하지 말자, 이거다. (나는 그런 복도 읎어요 글쎄.)
  그런데 여기서 스트라우트는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에피소드가 좀 모자란다 싶었나보다. 그래서 그랬는지 올리브 할머니와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도 책에 포함시켰다. 과부 엄마와 함께 사는 8학년 여자아이 케일리 캘러헌의 에피소드 <청소>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남편에게 이실직고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현직 검사 수잰의 이야기를 그린 <도움>은 올리브 이야기와 지극히 독립적이다. 완벽하게 한 작품으로 출간해도 좋은 단편소설이 될 <망명자들>은 2013년 출간한 장편소설 <버지스 형제>를 이어서 쓴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에피소드 <친구>는 1998년 작 <에이미와 이저벨>의 뒷이야기가 상당부분 포함되었을 것이다. 역자 해설을 보고 짐작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올리브>가 품은 열세 가지 에피소드의 공통점은 무대가 메인주의 크로스비 타운에서 벌어진다는 점. 포틀랜드에서 차를 몰고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가상의 공간으로, 스트라우트의 대학시절 룸메이트 엘런 크로스비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 에피소드와 공간을 섞어 제목을 <크로스비의 올리브> 정도로 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했는데, 어디까지나 제목 짓는 건 작가의 권리니까 독자가 왈가왈부하는 것이 마땅하지 못하긴 하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이제 막 노년으로 행사하는 건장한 할머니의 따뜻한 좌충우돌, 그래서 젊은 시절의 찬란했던 사랑과, 불륜과, 열정과, 외로움을(하긴 열거하는 네 단어는 사실 같은 뜻의 말이긴 하지만) 추억하면서, 이제 노년에 이르러 그런 거 다 지나가는 거야, 달래기도 하고, 또는 지금 옆에 누워있는 원수 같은 배우자가 죽은 다음에 도사리고 있는 고독함이라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하면, <다시, 올리브>는 여든을 좌우한 나이에 이르러서 과거의 폭풍 같던 단어들이 이젠 더 이상 상처로 와 닿지 않은 지경에 도달한다. 원수 같은 배우자를 정말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매장하는 경험 끝에 실제로 다가온 외로움이란 지옥을 체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완전히 타인의 경지에 이른 친자식과의 교류는 여전히 모래뿌린 아교 위 같았지만 그래도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최후의 방법이 남아 있었으니, 부모가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는 일이다. 그리하여 자식이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확인하지만, 아쉽게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밖에 없고, 부모의 가슴 속엔 저 먼 예전의 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식에게 행했던 모진 일이 자식의 기억은 물론이고 부모의 심장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되살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올리브 키터리지는 자식이란 부모의 심장의 바늘이라고 정의한다.
  삼십여 년 전에는 학생들을 질리게 만들었던 위풍당당했던 올리브 키터리지는 과거의 학생 앞에서 이제 스스로 질려, 노인이 젊은이를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훨씬 상세하고 정확하게 젊은이가 노인을 해석하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질리게’ 인식한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늙어버린 올리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심장마비, 사실은 심근경색이었겠지만, 심 정지 경험을 통해 죽음 이후의 상태가 생각한 것보다 그리 나쁘지 않으며, 다시 살아난 것이 아쉬울 정도로 나쁘지 않으며, 노화에 이르러 인간이 약해지고, 추레해지고, 보잘 것 없어진다는 것, 심지어 변실금으로 인해 악취를 풍기는 일이 자연스럽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물론 아직 진짜 노년에 이르지 못한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선의에 입각해 묘사를 해서 그렇겠지만 이 조마조마한 늙음의 상태, 언제 죽음이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태를 지극히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 역시 허튼 죽음의 침상이 아니라 지팡이를 짚고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권유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겠지. (독후감을 다 쓰고 보니 역자 정연희도 역자해설을 이 장면으로 끝내고 있다.)
  물론 미국의 부르주아 노인 이야기다. 이 가운데서도 바다가 면한 아름다운 가상의 도시 크로스비 타운의 돈 많은 늙은 과부. 노르웨이 관광을 위해 아낌없이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할 수 있는 재력이라면, 세상 어디서도 주변에 친절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는 한다. 그러나 일반 가정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이가 서른 살이 되자 부엌에서 총으로 자신을 쏘아 자살에 성공한 아버지를 둔 전직 중학교 수학교사 올리브 키터리지는 인생의 거의 모든 시기를 크로스비 타운의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간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는.
  <다시, 올리브>는 처음부터, 아니 앞부분에서 예일을 나와 하버드에서 최연소 테뉴어를 역임한데다 돈도 무척 많은 부르주아 잭 캐니슨과 결혼을 해서인지, 아니면 나이 들어 운동능력이 현저히 떨어서인지, 전작과 비교해 보통의 사람들과 그리 많은 교류를 갖지는 않는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버지가 오늘 내일 하는 바람에 고향에 들른 옛 제자, 미국의 계관시인이란 영광을 딴 앤드리아 르리외와, 실버타운 메이플트리 아파트에 입주한 후 친하게 지내게 되는 ‘바지 입은 쥐 면상’ 이저벨 정도가 스스럼없이 올리브와 대화한다. 이게 전작과 가장 다른 점이다.
  그래도 죽음에 임박한 노인들이 자주 선택하는 형식. 삶의 달관, 초월, 안식. 이딴 것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늙음과 죽음과 죽음의 공포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외로움 같은 실제적 모습에 집중하는 편이, 나는 훨씬, 훨씬, 훨씬 좋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1-11-30 08: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있는데 ^^

Falstaff 2021-11-30 08:52   좋아요 3 | URL
얼른 읽고 올려주셔요. ^^

다락방 2021-11-30 0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는 이 리뷰 읽는데 왜 자꾼 눈물이 나려고 할까요. 저는 아시다시피 올리브 키터리지를 좋아햇지만 다시 올리브는 훨씬 더 좋았습니다. 특히나 요양원에서 다른 노인과 함께 서로의 무사함을 들여다보아주는 것도 와닿았고요. 어휴 왜케 눈물이 나죠 ㅠㅠ

Falstaff 2021-11-30 10:24   좋아요 3 | URL
전 키터리지와는 차이가 그리 많지 않아서 좀 냉정하게 읽었던 거 같아요.
다시 올리브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세계더라고요. 장수 집안이 아니라 나이 많은 분들을 가까이 해본 적도 없고 해서, 이게 오히려 더 감정을 이끌었던 거 같습니다.
하여튼 노인들도 다시 밥을 먹고 힘을 내야 합니다!!!

잠자냥 2021-11-30 09: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얼, 이건 별 다섯이네요?! 폴님 리뷰나 다부장님 댓글 반응을 보니 저도 이쪽을 더 좋아할 것 같기는 합니다. ㅎㅎㅎ

Falstaff 2021-11-30 10:24   좋아요 3 | URL
착 감기는 건 키터리지가 더 감기고, 다시 올리브는 거 뭐라 그래야 하나, 하여튼 한숨을 폭 쉬어야할 때가 잦더라고요. ㅎㅎㅎ 재미나게 읽으셔요!!

coolcat329 2021-11-30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 책 ㅠㅠ 벌써부터 슬퍼집니다. 사야겠습니다.

Falstaff 2021-12-01 07:30   좋아요 1 | URL
이 책 좋습니다. 즐기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