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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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광주 태생으로 조선대학 러시아어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는다. 이어 고려대학에서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나 학위를 땄다는 정보는 없다. 웃긴 건, 문예창작을 하는데 무슨 석사가 필요하고 박사가 필요한가, 하는 거. 물론 내가 이 방면에 아는 것이 없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엔 그렇다. 하여튼 정용준은 2009년, 스물아홉 살 때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이후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문학상을 휩쓸더니, 서른아홉 살인 2018년에 문단에 무수한 별을 생산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임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나무위키’를 보면 학생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교수로 이름이 났고, 실제로 생김생김이 귀염성스럽기도 하다, 소위 과잠을 입어보고 싶은 마음에 서울예대 문창과 후드짐업을 입고 다니기도 했으며, 두 딸을 유난히 예뻐하는 딸바보라고도 한다. 교수가 주책없이 수업시간에 자기 딸 자랑한다니 참, 세상 많이 변했다. 아, 문창과라서, 사람과 삶을 다루는 학문이라 그런가?
  정용준, 하면 올해 출간한 단편집 《선릉 산책》만 알고 있었다. 선릉. 나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릉, 당시 이름으로 선정릉 근방은 인적이 교교한 외진 농촌이었다. 아마 11번 버스가 다녔을 거다. 슬슬 강남 개발을 시작해 잠실에 형우네하고 숙명여고 다니다가 뉴욕으로 이민간 숙란이네 살던 주공 5단지가 막 들어설 즈음, 선릉 근방에 새로 멋지게 이층 양옥집을 짓고 살았던 응식이네 집에서 새우깡에 소주도 나눠 마시고 선릉에 몰려가 놀기도 했다. 그러다 동네 논두렁 양아치들을 두드려 패서 응식이 엄마가 대표로 파출소 가서 치료비 물어주고 그랬었나보다. 그땐 몰랐다. 십여 년 후에 길 건너 샹젤리제 센터 빌딩과 옆 동네 공항터미널에 있던 서울사무실에서 공장 완공까지 한두 해 일하게 될지는. 인생이 웃겨서 살다 보니 응식이는 지금 우리 동네 근방의 대학교수로 있고, 살기도 같은 동네 다른 아파트 살고, 당시 연세대에서 제일 예쁜 여학생을 아내로 삼았는데, 내가 그 새끼 휴대전화 차단한 지 삼 년 됐다.

 

  왜 쓸데없는 얘기만 하고 책 읽고 난 소감, 독후감은 쓰지 않느냐고? 뭐 별로 쓸 얘기가 없어서 그렇다. 한 홀어멈이 열네 살 먹은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114 전화번호 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면 한 마흔 살 이쪽저쪽 되겠지. 아범이 죽었는지, 아니면 못살아, 못살아, 하고 이혼을 해버렸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마흔 살이면 한창때라 어찌 여자 홀로 아들 하나만 보고 살기가 쉽겠는가. 그래 솔찮게 연애도 하고 그랬는데, 열네 살 먹은 아들은 기특하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만했지만, 아쉽게도 독한 말더듬이였다. 이 말을 더듬는 아들이 화자 ‘나’이며 주인공이다. 왜소하고 말도 더듬고, 그렇게 좋은 외모도 아니어서 훨씬 더 어렸을 때부터 학교면 학교, 동네면 동네에서 괜한 따돌림과 짓궂은 장난의 대상이 되거나 아예 투명인간이 되어버려 그게 이젠 익숙하게 몸에 배어버린 상태. 대강 짐작하실 듯.
  이 아이, ‘나’가 말더듬이를 위시한 모든 잘못된 언어습관을 대상으로 하는 왕십리 부근 언어교정학원인 “스프링”에 다니는 이야기다. 물론 스프링에서 하루 종일 있는 건 아니니까, 학교, 집이라는 이름의 지옥, 거리, 동네 등등의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집이라는 이름의 지옥’인가 하면, 엄마의 많고 많았던 애인 중, 물론 주로 집 밖에서 연애하는 편이었지만, 가끔은 만나는 남자가 집으로 올 때가 있었고, 이때마다 엄마는 때도 안 된 저녁밥을 잘 차려 얼른 먹이고는 등을 떼밀어 학원으로 보내버리고는 했다. 딱 요즘이 그랬다. 몇 달은 밤마다 술에 절어 철퍼덕 쓰러져 자던 엄마한테 갑자기 생기가 나더니, 한 일 년이나 됐을까, 엄마하고 대판 싸운 다음에 집을 나가버린 키 크고 잘 생기고 무좀이 있는 쓰레기가 다시 집에 들어와 안방이자 엄마 방을 차지하고 누워버린 거였다. 근데 ‘나’가 보기에 정말로 인간쓰레기 가운데서도 쓰레기. ‘나’는 실제로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흔히 하는 말로 “죽었으면 좋겠다. 죽여 버리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스프링 학원의 원장이 말하는 것이 어려우면 글로 써 버릇하라고 준 공책에 그걸 ‘문자로’ 죽이겠다고, 죽여 버리고 싶다고 써버린 것. 아시겠지? 이게 언젠가는 문제가 되리라는 예감도 드시겠지? 이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는 소설작법 2조 3항도 기억하시지?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용준은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출간한 2020년에 동화책 <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를 냈다. 이걸 계기로 동화작가로 데뷔하게 되나? 아니면 소설가가 쓴 동화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동화책을 준비하던 시기에 쓴 소설작품이라서, 아니면 동화를 쓰는 심성을 가진 소설가라서? 하여튼 이랬거나 저랬거나 다른 작품은 별개로 하고, 동화를 쓰던 때에 만든 이 책도 역시 예쁘게 꾸며진 해피엔드가 마련되어 있다는 거. 굳이 억지로 말하자면, 성인이 읽는 동화책 수준의 결말. 그래서 하여튼 따듯하게 마무리한다.
  아주 널럴한(두음법칙) 편집에 160쪽도 안 되는 본문. 그리하여 딱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 좀 빡빡하게 글자들을 모아 비슷한 분량의 작품과 합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라고 하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지 얼마 안 된 민음사가 싫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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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2-02 09: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뉘신지 모르겠사오나 응식님이 잘못하셨네요. 왜 퐐님이 차단하게 만들었대?

Falstaff 2021-12-02 09:48   좋아요 4 | URL
맞아요, 맞아. 그 새끼가 잘못 했어요. 이젠 완전히 자기 중심적 공리주의자(속칭 꼰대)로 변한 데다가 특정 종교를 광신하지 않으면 친구도 필요 없는 편벽증 적 쓰레기가 됐답니다. 그래서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몰라요. 다 인생입죠. 지 예쁜 마누라한테 옮았어요. ㅋㅋㅋㅋ

공쟝쟝 2021-12-02 12:22   좋아요 2 | URL
역시 응식님이 잘못하셨네요.. 흥 놀지마요. 우리랑 놀자...ㅋㅋㅋ

새파랑 2021-12-02 0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폴스타프님이 읽은 책이랑 겹치는 군요 ㅋ 성인이 읽는 동화책 결말 평에 공감이 갑니다. 출판사의 소개글과 내용이 좀 괴리가 있더라구요 😅

Falstaff 2021-12-02 09:47   좋아요 4 | URL
출판사 소개글을 읽으셔요? 오호...
그거 읽으면 세상의 모든 책이 명작, 걸작 아녜요? ㅎㅎㅎ

잠자냥 2021-12-02 09: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선릉 산책> 정도만 읽었는데, 그 작품 하나만 읽고도 착한 작가인가 보구나 싶어서 그 후로 손이 안 가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아, 전 그 착한 세계에 물들기에는 너무 악해서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2-02 09:58   좋아요 3 | URL
저요, 저요!!
착한 동화는 읽겠는데요, (너무)착한 소설책은 재미 없고, 이 책이 바로 딱 그래요!

공쟝쟝 2021-12-02 12:52   좋아요 4 | URL
자냥님 착한 사람이잖아… 저한테 1원 주려고 안보는 유튜브도 본… 착한 소설 싫어하는 그대 나에게 착한 사람..*

잠자냥 2021-12-02 14:07   좋아요 1 | URL
아 나 이것참..... 나 사실 아직 쟝쟝 유튜브 5분 넘게 보지 않았어.....; ㅋㅋ 주말에 볼게;; 난 착하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12-02 20:17   좋아요 1 | URL
안봐도 돼… 나쁜 사람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12-02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표지와 소개글에 혹해서 샀는데요???
(정말 멍청한 댓글이군요)

Falstaff 2021-12-02 10:42   좋아요 2 | URL
ㅋㅋㅋ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잘 읽으시기만 했으면 장땡입지요.

물감 2021-12-02 11: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이야기 말고 개인이야기가 더 재밌어요 ㅋㅋㅋㅋ 과거썰 많이 써주세요 ㅋㅋㅋ

Falstaff 2021-12-02 12:09   좋아요 2 | URL
앗, 그렇습니까! ㅋㅋㅋㅋ
하여튼 독후감 틈새가 열렸다 하면 옛 이야기 디밀어 보겠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21-12-02 20:20   좋아요 0 | URL
저두요~~

mini74 2021-12-02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시간을 살려야 합니다. 골든타임안에 ㅎㅎ 예쁜건 중요하지 않다는게 이렇게 또 증명이 되는군요 ㅎㅎㅎ

Falstaff 2021-12-02 12:12   좋아요 3 | URL
잘 생기고 잘 빠지고, 설대 나오고, 좋은 집안 부잣집 출신, 뭐 이런 것들 보면 재수없잖아요. 같은 의미에서 무조건 착하고 예쁜 작품은 별로 땡기지 않는 건가....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몰겄습니다.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12-02 12: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볼일은 없을듯한 책인데 폴스타프님의 글이 더 재밌어요. ㅎㅎ
아 친군데 거기에 종교가 끼어들면 음..... 손절하는게 맞을듯합니다. 이 나이에 남의 종교에 맞춰서 살고싶지는 않잖아요. ㅎㅎ

Falstaff 2021-12-02 12:25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죠, 친구 만나서 정치얘기, 종교얘기 하면 안 되는 거 맞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