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서재 친구 hnine 님께서 내소사에 다녀오셨다는 글을 읽고, 퍼뜩 생각나는 잡문이 있었다.  맞아, 나도 내소사에 몇 번 다녀왔고 한 25년 전에 쓴 짧은 기행문도 있어! 그걸 창피하나마 소개한다. 아래 사진 역시 hnine 님의 서재에서 허락도 안 받고 쌔벼온 거다. hnine 님의 하해와 같은 이해심을 바랄 밖에.

 

 

 

 

 

내소사, 시간과 관능의 사이 



  만일, 만에 하나, 절간을 여인네에 비유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내소사는 더할 수 없이 암컷스런 여인이다. 내소사에 들어 절간을 한 번 휘둘러보면, 평소 사모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던 여인이 우연한 기회에 은쟁반 가득 주절이 주절이 달린 청포도 송이를 내 무릎 앞에 내려놓을 때, 단정하지만 풍성한 여름 옷섶 사이로 언뜻 언뜻 내비치는 뽀얀 젖가슴을 슬그머니 쳐다보면서 어뜩하니 휙 돌아가는 어질머리와 가슴의 두방망이질을, 똑 그만큼의 고양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할 만큼 새침해서 그 많은 백야(白夜)를 보내게 만들었던 여인네가 눈을 내리깔고 다소곳이, 그러나 의도적이기 때문에 결코 다소곳하지 않게시리 젖가슴을 슬쩍 제공하는 모습을.
  천왕문에 기대 서서 절마당과 종각과 대웅전을 거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눈길을 찬찬히 돌리면 우선 착 가라앉은 무채(無彩)로 인하여 이 절집이 모시 옷을 잘 차려입은 여인의 모습을 하고 차분하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리를 옮겨 대웅전에 다가가서 유명한 이 절집의 꽃잎 문양 문살, 그 옛스럽게 창연, 아니, 처연한 문살을 쓰다듬다가 문득 천정을 올려다보면, 이 절의 무채는 누백년의 시간이 단청을 거의 벗겨내 이제 알몸의 나무만 남아있어서인 것을 알게된다. 대웅전 내부에는 옛적의 화려했던 금가루 단청이 아직 군데군데 남아 있어 호사했던 지난 날을 짐작하거라 하지만, 어디 옛적의 금가루 호사가 누백년 지난 다음 켜켜이 우려져 나오는 시간의 고즈넉과 비교가 될까.
  아, 세월이 흐르면서 추해지는 것은 사람살이 뿐이구나. 뙤약볕 떨어지는 절마당에 서서 고개를 들어 멀찍하니 바라보면, 절을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들, 바람과 별빛과 안개에 닳고 닳아 이제 부드러운 곡선만 남고, 그것도 모자라 당초에는 땅 속 깊은 곳에 있었던 바위들이 무른 흙이 닳아 없어진 곳으로 군데군데 부드럽게 솟아, 산자락이 마치 꽃잎 모양으로 벌려있는 모습이 시간의 영광을 위해 꽃으로 복무하길 기꺼워하는 듯하다. 산이건 절집이건 시간은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가꾸길 마다하지 않고 그리하여 이 무채의 절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내밀해질 수 있었을 터이다.
  장인의 손길은 여기에도 있다. 큰 목수도 천년 전 변산과 바닷가에서 세월의 부드러운 손길을, 그 내밀함을 알았을 터. 그는 마침내 꽃잎으로 벌어진 산자락 사이에 용의 눈을 그려넣듯 난만한 다산성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 대웅전과 설선당, 절마당의 느티나무와 보리수. 넓은, 그러나 결코 넓어보이지 않는 절터에 적절히 자리잡은 옹기종기함, 큰 목수는 요조하면서도 난만하고, 정숙한 가운데의 다산성이라는 절명의 절창을 하고 세상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는 얼마나 행복한가. 한 번 한 번의 망치질, 대패질을 목숨을 걸고 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천년 후의 나그네가 그의 손길을, 그의 절창을 쓰다듬으면서, 바라보면서 한여름 팔뚝에 소름까지 돋아내며 감동해마지않으니.
  다시 천왕문에 돌아와 앉아 절마당을 바라보노라니 나도 이왕 죽는다면 일생의 절창을 한 번 쏟아내고, ‘내소사 앞마당에 수국으로 피어나 / 꽃잎이 질 때까지 묵언정진 하고나서’¹더 노래할 건덕지 없는 낳고 죽는 고리를 이제는 툭 끊고 싶어진다.
  내소사는 꽃이다. 하필이면 고기압이라서 청명한 하늘이 보장된다면, 그런 날의 내소사는 꽃잎을 한껏 젖히고 흰 꽃잎으로 자신이 요조함을 시위하며, 아무 말 하지 않고 자랑스레 자신의 음부를 활짝 펴보이는 그런 꽃이다. 푸른 공기가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몸냄새를 조금 조금씩 실어보내면서도 결코 그런 태를 내지 않는 꽃, 진하지 않은 몸냄새만으로도 온갖 이야기를 조근조근하게 펼치는 꽃이다.



 ※  ¹: 정호승 시집 「사랑하다 죽어버려라」가운데 ‘희방폭포’에서 따옴. 원작은 ‘희방사 앞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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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9-20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께서 자그마치 25년전 기록을 찾아 올리신 글을 읽을 수 있으니, 제가 내소사 다녀온 사진 몇장이나마 올린 보람이 더해졌습니다. 이런 글은 맘먹고 쓰신 글 맞죠? 얼마나 공들여 쓰셨는지 한줄 한줄마다 느껴집니다. 서정주 시인의 시가 문득 연상되기도 하고요.
음, 몇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1-09-19 11:07   좋아요 0 | URL
먼저.... 사진 무단 도용, 죄송합니다. ^^;;
사진 보자마자 반가운 김에 덜컥 올리긴 올렸는데 멋만 부린 조잡한 글을 나인 님께서 이리 상찬을 해주시니, 솔직하게 말씀드려, 매우 기분이 좋네요. 하하하....
 

 

  여름 내내 마스크 쓰시느라 참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취미가 하필이면 음악 듣기와 책 읽기라서 움직이는 거하고 거리가 먼 관계로 운동부족,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저도 역시 마스크 때문에 고생했고, 고생하고 있습니다.

  근데, 오늘의 주제는 마스크 쓰는 방법입니다.

  아래 사진은 우연히 본 TV조선, 평생 이 방송 안 보는데요 인터넷 클릭하면 제 의사와 관계없이 뉴스가 뜹니다, 그래서 보게 됐습지요, 아래 그림이 보이더라고요.

  이 양반 요새 중요한 사건을 위임 받은 변호사라고만 아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사진의 변호사가 위임받은 사건의 진위, 황제 탈영이니, 청탁 그니깐 김영란 법 위반이니 하는 걸 얘길 하는 것이 아니고요, 마스크 쓰는 방식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 변호사께서는 정확하게 앞 뒤를 바꿔 착용했습니다. 저런 비말 마스크일 경우에 잘 보시면 주름이 잡혀 있잖아요? 주름을 보시면 위에서 내려오면서 홈, 마디에 덜컥,덜컥, 덜컥, 적어도 세 번 걸리게 생긴 모습으로 착용을 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얼마나 사례를 모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쓰고 다니시는 분이 겁나게 많습니다. 일일히 얘기해드리면요, 특히 여성분한테 말씀을 드리면 진짜 국민 보건을 위해 가르쳐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막 째려보고 그러더라고요. 실화입니다.

  그래 극히 적은 분께서만 보시는 일개 서생의 서재글일지라도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 지금 저 변호사는 앞면과 뒷면, 그러니까 얼굴에 닿는 부위와 바깥을 향하는 부위가 뒤집어 졌습니다.

  먼지 입자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일 밖에서 먼지 입자가 마스크에 걸린다고 가정을 하면, 저렇게 착용할 경우엔, 지구 중력에 의하여, 주름 때문에 생긴 홈에 먼지가 턱, 턱, 턱 걸려서 쌓이게 되는 것이지요. 뒤집어 쓰면, 먼지가 같은 논리로 중력 때문에 마스크 아래로 흐르게 되는 것이고요. 이건 마스크 제조 공장에 직접 전화해 물어본 겁니다. 앞 뒤 재료의 차이는 무관하다는 것이 그들의 이야깁니다.

  작은 것이라도 호기심이 생기면, 그게 저라고요? 흐흐... 쑥쓰럽게도 뭐 그렇게까지.... 하여간 궁금하면 뭐든지 물어봐야 합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타당하면 따라야 하고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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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9-12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덴탈마스크는 잘못 쓰는 분들 정말 많더라고요. 얼마 전 기사에도 나왔는데 저렇게 뒤집어 쓰면 코로나에 그냥 노출되는 거더라고요. 무증상 감염자나 확진자가 저렇게 썼다면 그냥 공기로 비말 뿜뿜.... 며칠 전 부산에서 택시 기사 2명이 마스크 썼는데도 마스크 쓴 확진자에게 감염된 사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아마도 마스크 착용 방식이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의심해봅니다(덴탈 마스크를 저렇게 뒤집어 썼거나, 아니면 천 마스크나 그 연예인마스크인지 뭔지 그런 아무런 보호도 안 되는 마스크 말이지요).

Falstaff 2020-09-12 09:07   좋아요 0 | URL
아하, 저런 걸 보고 덴탈 마스크라고 하는 거군요.
저도 저렇게 거꾸로 하고 다니다가 비교적 초기에 마스크 회사에 전화해보고나서야 제대로 쓰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홍보가 필요할 것 같아요. 눈여겨 보기 시작하니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늘 오후 다섯 시 부터 쐬주 깠습니다. 술꾼들이 대개 그렇듯이 술잔 넘기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 좀 취했군요. 근데 마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다 읽었거든요,.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모두 여섯 권을 다 "해치웠습니다."

  어떻게 생긴 책이냐 하면, 이렇습지요.

 

 

 

  다 읽으면 당연히 즉시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천만의 말씀을. 일단 장광설의 대명사 토마스 만의 여섯 권짜리 장편소설, 무려 3천 쪽에 달하는 소설을 읽어치웠다는 것을 자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내자에게 쇠고기 좀 사와, 하고 일단 공양을 바친 다음, 하여간 정말 있다면 , 분명히 없을 것이지만, 쇠고기 탄 미세먼지를 흠향하신 그분 다음으로 한 판 구워 쐬주 한 병, 만 원에 네 캔하는 맥주 한 캔 깠습지요. 크하하하하..... 누가 있어서 비 기독교인이자 유물론자이기도 한 폴스타프가 이 책을 완주할 줄 알았겠습니까!

  근데, 이거 정말 읽을 만합니다. 구약, 창세기 안에 등장하는 요셉이 유머와 장난끼의 대명사일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또한 그것을 유머로, 장난으로, 짓궂은 하느님의 예견된 순서로 해석하는 토마스 만의 입담이 말씀입지요, 아후, 이 책(들)을 영업할 수밖에 없게 만들더라니까요.

  내친 김에 토마스 만의 소설 올 클리어에 도전해야겠습니다. <대공전하>, <선택된 인간>만 더 읽으면 되는데, 번역한 게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 <대공전하>는 아직 번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택된 인간>이라도 올해 안에 읽어야겠습니다.

  자꾸 읽을 책만 많아집니다. 그게 인생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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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9-05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호! 만리장성을 종주 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ㅎ 기념으로 2차도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완독 축하드리고 즐건 주말되십시요!ㅎ

Falstaff 2020-09-05 19:18   좋아요 1 | URL
음하하하.... 고맙습니다. 일품 안동소주 40도로 집구석에서나마 2차를 즐기겠습니다. ㅋㅋㅋㅋ

초딩 2020-09-05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의산 중 한권을 아름다운 가게에서 업어 왔는데 한권오 무지 두꺼워 모셔만 두고 있습니다.
우헐 6권에 삼천페이지!!!
자축 경축 하셔도 되겠네요,~~~
아 저도 소주로 소독하고 파요 ㅎㅎㅎ
축하드립니다~

Falstaff 2020-09-05 20:14   좋아요 0 | URL
에이, 별거 아니예요. 마의 산, 그냥 해치워버리세요.
기껏해야 소설밖에 더 됩니까. ㅋㅋㅋㅋ
읽으신 다음에 장하게 쐬주 한 잔 하시면 되는 겁지요. ^^

박균호 2020-09-0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네요. 이 책이 대단한 작품이라는 소리만 듣고 감히 읽어 볼 엄두를 못내고 있는 처지라서요.

Falstaff 2020-09-06 06:56   좋아요 0 | URL
대단하긴요, 그저 독자일 뿐인 걸요.
하여튼 대작을 읽은 김에 축배 한 잔 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서요. ㅋㅋㅋㅋ
 

 

커피? 저는, 100 그램에 만 원 넘어가는 건 절대 내 돈 주고 사마시지 않겠다,는 주의입니다. 그래 알라딘이 고맙지요. 저렴하게 다양한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까요.

 

제가 요즘 즐기는 커피 보실래요?

 

  오른쪽부터 보겠습니다. 정확하게 100그램에 만 원짜리, 근데 부가세 별도. 그럼 만천 원짜립니다. 200g 이니까 22,000원. 당연히 제 돈 주고 안 샀습니다. 작은 아이가 뭐 특별 에디션이라나 뭐라나 해서 사다 주더군요. 자세히 따져보니 '예가체프'입니다. 다락방님의 아우님이 예가체프에서 청국장 맛이 난다고 했답니다. 이 예가체프, 상당히 덜 볶은 커피에서 정말로 청국장 냄새가 납니다. 커피도 영어로 하면 coffee bean, 커피 "콩"이잖아요. 적당히 열을 가하면 진짜 청국장, 된장 냄새가 난다고, 마누라가 알려주더군요.

  몇 년 전,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정말 딱 찍어서 이런 이유를 대더라고요) 회사에서 대기발령 받고 인사담당자에게 "들어올 땐 회사에서 뽑았지만 나갈 때는 내가 결정할 테니까 너무 신경들 쓰지 말고 한 6~7년 편안하게 기다려."라고 말했을 당시, 아내가 몇 달 후 허리에 손을 척, 얹고 하는 말이, "오늘부터 나도 바리스타야. 드러워서 회사 다니기 싫으면 당장 때려 치워. 내가 카페라도 해서 먹여 살릴게." 했거든요. 에휴, 젊어서 둘 다 성질머리 드러웠을 때 팍 갈라지지 않기 다행입니다. 그죠?

  오른 쪽에서 두 번 째, 비료푸대 같은 봉지에 담긴 것이 제가 여태까지 커피 사다 마신 이 동네 커피 가게, 야매로 자기들이 볶아 파는 무면허 가게에서 사 온 예가체프입니다. 제 취향을 알아서 하얗게 태운 백탄 숯을 사용해 직화로 볶아주는데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근데 저게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 사람들이 두 명이 동업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끄덩이 잡고, 둘 다 남자들입니다, 말이 그렇다 이거지요, 대판 싸우고 갈라서서 깨졌습니다.

  백숯에 살짝 볶아 산미도 세고, 고소한 맛도 일품이고 그랬는데, 저 커피를 살 당시 아내가 데리고 간 아줌마가, 자기는 쓴 게 좋다고 좀 달달 볶아달라고 해서 그만 마지막 저 봉지 안의 커피는 쓰기만 한, 개떡이 됐습니다. 이젠 살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커피 볶는 이가 일본에 유학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도쿄에서 이름난 커피 집에 취직해 그것만 배우고 온 한량이라고 합니다.

  왼쪽에서 두 번 째가 이번에 알라딘에서 산 "엘살바도르 엘 보르보욘" 8월 24일 볶은 겁니다. 100자 평에도 쓴 적 있듯이, 그저 씁니다. 쓰기만 합니다. 좀 덜 볶은 게 있으면 한 번 더 시도해보겠지만 알라딘 커피공장에 대중이 제일 좋아할 로스팅 방식으로 레시피가 있어서 제가 원하는 건 나오지 않을 거 같습니다. 앞으론 선택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맨 왼쪽이 "시다모 난세보." 알라딘에서 산 제일 맛난 커피였습니다. 적당히 시고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쓴 커피. 가격대비 만족도 최고였습니다. 근데 잘 보시면 볶은 날짜가 7월 2일. 이상하지요?

  속에 든 커피는 정작 시다모가 아니고, 100g에 무려 9만9천원 하는 '블루 마운틴'입니다. 당연히 제 돈 주고 산 거 아니고요, 마누라가 어디서 한 50그램 얻어온 겁니다. 맛이요? 개떡이더군요. 왜 그런고 하면, 만일 저한테 100g에 10만 원 짜리 커피가 있다고 쳐보세요. 그거 함부로 마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사실 있기는 있지만 그저 장식용이 되고 마는 겁니다. 저것도 커피 볶고 아무리 짧게 잡아도 1년은 넘었을 겁니다. 아끼고 아끼고 또 아끼다가, 똥 된 겁니다. 그러니 맛이 있을 턱이 없지요. 비싼 몸으로 제 집에 굴러와서도 겨우 한 번 갈리고, 이후 다시는 손도 대지 않으니 나중엔 갈려서 삼겹살 먹은 다음에 프라이 팬 세척용으로나 쓰일 거 같습니다.

  하여간 제 주의는, 100g 당 만 원 넘는 커피는 안 마시겠다, 하는 겁니다.

 

 

  이 커피가 젤 좋은데, 계속 판매하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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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04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동생은 청국장, 저는 된장 혹은 간장 향을 느꼈는데 그 커피에 대해 그런 평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제 동생과 저 밖에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시다모 난세보 좋아서 몇 번 사 마셨어요. 그게 일등이다가 지금은 엘 보르보욘하고 막상막하에요. 저는 엘 보르보욘도 너무 좋았어요!
시다모 난세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지금은 이번달의 커피인 코스타리카 라스 로마스 마시고 있는데, 이거 다 마시면 시다모 난세보 마셔야겠어요.

Falstaff 2020-09-04 09:50   좋아요 0 | URL
저는 사진처럼 한 번에 보통 세 종류의 커피를 장만해서 이것 저것 마시는 게 좋더라고요. 아내가 몰래 타서, 이게 무슨 커피? 하고 맞추기 장난, 만 원 내기도 합니다. ㅋㅋㅋ
저도 라스 로마스도 한 번 마셔봐야겠네요.
근데 솔직히, 인스턴트도 좋아요. 특히 맥심 부드러운 블랙. ㅋㅋㅋㅋ

잠자냥 2020-09-0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시다모 난세보는 정작 안 마셔봤네요. 판매 중지되기 전에 한 번 마셔봐야겠어요.
두 번째 그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커피 맛 궁금합니다. 백탄 숯을 사용해 직화로 볶는 커피콩이라.... 생각만 해도 기막힌 맛일 거 같네요.

Falstaff 2020-09-04 10:11   좋아요 0 | URL
판매 중지는 한참 있다가나 되지 않을까요? ㅋㅋㅋㅋ 제가 오버가 좀 심했던 모양입니다.
그 사람들 다시 화해하거나(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세상일을 누가 압니까?), 커피 볶는 남자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 전화번호 가르쳐드릴께요. 일 시작하면 분명히 저한테도 연락이 올 거니까요. ^^

hnine 2020-09-04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기엔 아쉽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개성 뚝뚝 드러나게 글을 잘 쓰시는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커피라면 전 그저 맥심 모카이니, 할 말 없고요.

Falstaff 2020-09-04 10:5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개성은 모르겠는데, 잘 쓰는 글은.... 아닌 거 같습니다..... 창피한 일입니다만, 제가 쓴 콩트도 하나 올린 적 있답니다.
https://blog.aladin.co.kr/729554277/10737554
저도 맥심 부드러운 블랙 봉지 커피 좋아해서 회사에서 마시고요, 집에는 인스턴트 테이스터스 초이스도 있습니다! 간편해서 좋아요.

단발머리 2020-09-04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시던 맛난 커피숍 없어지게 되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둘이 싸운 이야기 자세히 듣고 싶은데 말이지요. 극적힌 화해를 기대하면.... 너무 늦었나요?
전 알라딘 커피 하나씩 먹어보고 있는데 아직 맛을 감별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제 먹은 코스타리카가 너무 신선하고 고소해서 알라딘 다시 봤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9-04 12:30   좋아요 0 | URL
아, 거기는 커피숍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상가 2층 구석에서 커피만 볶는 야매집이었습니다. ㅋㅋㅋㅋ 아닌게 아니라 커피 집하다가 말아 먹었기도 했고요.
이 양반들이 다른 먹는 장사를 하느라 한 명은 자본을, 다른 한 명은 노동을 대기로 했는데 때를 제대로 맞춰 그 때가 코로나 창궐 1주일도 아니고 3일 전, 2월 말이었습지요. 쫄딱 망하면, 부부도 이혼을 하는게 요즘 세월인 바에 동업이야 뭐 저절로 깨지게 된 것입지요.
게다가 둘 다 어려서부터 부잣집 도련님 출신이라 지금이야 쫄딱 망해서 벌어 먹을 걱정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참을성들이 없어요. 에휴, 진작 강남에 건물이나 하나 사지들 말입니다.

coolcat329 2020-09-04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떡‘ ‘똥‘ ㅋㅋ 이런 묘사 참 제가 폴스타프님 글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ㅋㅋ
저는 알라딘도 비싼듯 하여 더 싼곳에 정착했는데 주변에 추천하니 모두들 좋아합니다. 비싸다고 맛있는게 아니더라구요.

잠자냥 2020-09-04 14:18   좋아요 1 | URL
알라딘은 어떻게 생각하면 비싸지 않은 게, 커피 사고 100자평 올리면 담달에 천 원 적립금으로 돌려주고, 플래티넘 회원은 다달이 커피 3천원 할인권 주고, 커피 스탬프 10개 모으면(새로 나온 커피 사면 무려 스탬프 4개 줍니다. 그러니까 10개 모으는 건 금방이죠) 적립금 4천원 또는 5천원 할인권 주니까요. (알라딘 무슨 영업사원 같네요;;)

Falstaff 2020-09-04 14:44   좋아요 1 | URL
쿨캣님: 에구... 저런, 저런. 저는 그런 단어 좀 안 쓰려고 나름 애쓰는데 불쑥 튀어나오는 건데요. ㅋㅋㅋㅋ 그래도 흉하다 하지 않고 좋아하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잠자냥님: 억, 100자 평이 그렇습니까? 레알 몰랐는 걸요! 다달이 커피 3천원 할인권은 또 뭐예요? 이런 것도 알아야 챙겨 먹지 모르니깐 영... ㅋㅋㅋㅋ 근데 정말 커피 할인권은 어떻게 받는 거예요? 저도 플랫 등급입니다만....

잠자냥 2020-09-04 16:02   좋아요 1 | URL
알라딘 pc화면에서 마이페이지 눌러보면.... 오른쪽 상단에 영화할인권/커피원두 할인쿠폰 있어요. 그거 클릭해보세요. 이걸 아직 모르셨다니.. ㅠㅠ 전 다달이 3천원 할인 쿠폰 받았는데... (좀 더 쉽게 보자면... 멤버십 등급 : 플래티넘 --- 자세히 보기 이거 클릭해보세요. 그럼 바로 ‘영화/커피원두 할인쿠폰 받기‘떠요)

100자평 이벤트는 새로 나오는 원두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코스타리카 라스 로마스‘ 평 남기면 담달 초반에 적립금 천원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다락방 2020-09-04 16:04   좋아요 0 | URL
헉.. 다달이 커피 할인권 언제부터 제가 안쓰고 있었을까요..까맣게 잊었어요. 아 밥통 ㅠㅠ

잠자냥 2020-09-04 16:05   좋아요 0 | URL
100자평 이벤트 페이지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09725

잠자냥 2020-09-04 16:06   좋아요 0 | URL
캭.... 이분들이... ㅠㅠ 아, 아깝다... 내가 왜 아깝지;;; 다락방 님 커피도 많이 사셨으면서... ㅠㅠ

다락방 2020-09-04 16:07   좋아요 0 | URL
아 저는 그 존재도 알고 사용한 적도 있는데 언제부터 잊었을까요? 아 억울해서 속쓰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요 며칠간도 드립백이랑 원두랑 엄청 샀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속쓰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억울해서 지금 또 커피 사야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20-09-04 16:1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탬프 10개 금방 모으시겠네 ㅋㅋㅋㅋㅋㅋ 그땐 또 꼭 잊지말고 적립금 4천원이나 5천원 쿠폰으로 교환하세요!!

Falstaff 2020-09-04 16:17   좋아요 0 | URL
아... 이런, 이런 참 나 원, 아주 똥을 쌌네요 그동안. 으 척척해... ㅋㅋㅋㅋㅋ
앗참. 고맙다는 말씀을 안 드렸네요.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겨. ^^

초딩 2020-09-04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잠시 쉰다고 북플 스크롤 하다 몸을 기울였는데, 이렇게 댓글 달고 있습니다
ㅎㅎㅎㅎ 너무 잼있어요~~~!!!!
봉다리들의 사연 잼있어요 ㅋㅋㅋ

Falstaff 2020-09-04 14:5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네덜란드에 요하네스 브라우어르, 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세계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별하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에 천착했고, 정도가 좀 과했습니다. <죄와 벌>에서 사고치고 유배 가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제대로 필이 꽂혔습니다. 이蝨 같은 노파와 노파의 여동생 유로지비를 도끼로 찍어 죽인 것을 읽으며 청소년기를 막 벗어났을까 말까 한 브라우어르는 자신이 무슨 나폴레옹 정도의 위대한 인물인 것으로 잠깐 착각을 했는지 하숙집 여주인을 살해합니다. 틀림없는 범죄자. 그래 교도소에서 오랜 세월을 썩은 다음에 다시 사회로 복귀합니다. 아직도 브라우어르는 문학을 좋아하고, 그리 많지는 않은 나이라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만 이게 보통 공부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 학위를 따더니 또 따고, 한 번 더 따서 박사가 되고, 교수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누구나 인정하는 네덜란드의 최고 스페인 문학 전문가가 됩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군요. 네덜란드가 순식간에 독일의 점령지로 떨어지자 브라우러르는 고민하지 않고 레지스탕스에 가입해 용감하게 활동하다가 영웅적인 죽음을 맞습니다. 이이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살인자? 학자? 반독일 영웅?
  이제부터 가명만 쓰겠습니다.
  청년 박복동은 무려 경기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합니다만, 세월을 잘못 만났습니다. 하필이면 군인 출신의 독재자가 전국을 군화발로 밟아 조질 때였습니다. 그걸 참을 수 없어 유신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당시에 그런 청년들은 의례 그랬듯이 학교에서 제적을 당합니다. 이후 ㄷ대학에 다시 입학해 열공을 거듭해 졸업하기도 전에 법원사무관 시험에 합격하고, 1980년 우울한 시절에 사법고시에 또 합격해 3년 후 검사가 됩니다. 그러나 곧 직을 때려치우고 변호사 개업을 한 다음에 주로 NGO 활동에 매진하며 동시에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립니다. 자신이 한 시절 다니기도 했던 서울대에서 여자 조교에 대한 성희롱 사건을 수임한 이후 자칭 타칭 페미니스트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정통 NGO 출신으로 한 번도 정부기관이나 정치기관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가 한 꺼벙한 한성판윤이 급식 문제 때문에 사직을 하자 선거판에 나가 내리 세 번 한성판윤을 지냅니다. 그런데 자기 비서에 대한 성희롱 또는 성폭력 등으로 피소를 당하자, 누군가가 그날로 박복동에게 피소 사실을 알렸고, 순수하고, 일 잘하고, ‘주님께서 안아줄 바보’이자 낡은 구두의 박복동은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남긴 재산은 마이너스 7억 원이지만 아들은 장사를 모시기 위해 유학중인 영국에서 급거 귀국했습니다.
  백복동은 1920년 출생입니다. 어렵게 자랐다고 하지만 당시에 진짜 어려운 사람들에 비하면, 평양사범을 졸업한 것으로 볼 때 그래도 살만한 환경이었던 거 같습니다. 군인이 소원이라서 결국 스물두 살인 1941년 12월에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들어가 스물네 살, 1943년 12월에 졸업해 1945년까지 1년 9개월 동안 숱한 동포들과 독립군들과 기타 애국지사들을 잡아 죽이거나 가둬두는데 혁혁한 전공을 올리는 부대에 배속되어 활동합니다. 해방이 된 이후 잠시 북쪽에 있다가 남으로 내려와 국군에 소속되어 제대로 군사교육이 없던 해방 군대에서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당시에 대령 계급장을 어깨에 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터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전쟁 영웅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아 탁월한 지휘관이었던 듯합니다. 대통령이 서울에서 인천까지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길목에 이이의 땅이 있는 걸 알고, 돌려, 돌아서 가, 한 마디에 경인 고속도로가 휘어졌다는 야사에도 등장합니다. 그 대통령이 사형당할 수도 있을 때 백복동이 살려주었다나요. 하여간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잘 먹고 잘 살다가 백수를 누리고 죽었습니다.
  참 사람들 가지가집니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건지 말입니다. 그저 저처럼 평생 봉급쟁이로 상사들 욕이나 해대면서 소주잔 깨나 비우면서 한 세상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거 같군요. 누가 제 평전을 쓰면, 간단할 겁니다.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집안에서 출생해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학력으로,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회사를 네 군데 다니면서 평생 상사들 욕이나 하는 야당질에, 술 마시고, 음악 듣고, 책 읽으면서도 아이들 둘 만들어 자기들 먹고 살 만하게 키웠다. 전과도 없고, 훈장도 없다. 과속 운전으로 세 번, 추월 위반으로 한 번 벌금을 냈고, 평생 수술이라고는 포경수술, 정관수술 말고는 해본 적 없다. 휴양지 야자수 밑에서 낮잠을 즐기다가 때마침 떨어진 야자열매에 머리를 맞아 뇌출혈로 즉사하다. 크하하하.......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해변가의 야자수 아래. 생각함 해도 므흣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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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0-07-15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팔스타프의 가상 엔딩(?)은 저에겐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는 삶으로 느껴집니다. 저희 집안에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는 환자가 있다보니, 이젠 돈도 명예도 다 소용없단 생각이 듭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끝이니까요. 부디 팔스타프님은 이 생애 끝날 때까지도 위에 적으신 수술 두번을 유지하시길 기원합니다.

2020-07-15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