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요하네스 브라우어르, 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세계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별하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에 천착했고, 정도가 좀 과했습니다. <죄와 벌>에서 사고치고 유배 가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제대로 필이 꽂혔습니다. 이蝨 같은 노파와 노파의 여동생 유로지비를 도끼로 찍어 죽인 것을 읽으며 청소년기를 막 벗어났을까 말까 한 브라우어르는 자신이 무슨 나폴레옹 정도의 위대한 인물인 것으로 잠깐 착각을 했는지 하숙집 여주인을 살해합니다. 틀림없는 범죄자. 그래 교도소에서 오랜 세월을 썩은 다음에 다시 사회로 복귀합니다. 아직도 브라우어르는 문학을 좋아하고, 그리 많지는 않은 나이라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합니다만 이게 보통 공부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세월이 흘러 학위를 따더니 또 따고, 한 번 더 따서 박사가 되고, 교수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모자라 누구나 인정하는 네덜란드의 최고 스페인 문학 전문가가 됩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군요. 네덜란드가 순식간에 독일의 점령지로 떨어지자 브라우러르는 고민하지 않고 레지스탕스에 가입해 용감하게 활동하다가 영웅적인 죽음을 맞습니다. 이이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살인자? 학자? 반독일 영웅?
  이제부터 가명만 쓰겠습니다.
  청년 박복동은 무려 경기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합니다만, 세월을 잘못 만났습니다. 하필이면 군인 출신의 독재자가 전국을 군화발로 밟아 조질 때였습니다. 그걸 참을 수 없어 유신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당시에 그런 청년들은 의례 그랬듯이 학교에서 제적을 당합니다. 이후 ㄷ대학에 다시 입학해 열공을 거듭해 졸업하기도 전에 법원사무관 시험에 합격하고, 1980년 우울한 시절에 사법고시에 또 합격해 3년 후 검사가 됩니다. 그러나 곧 직을 때려치우고 변호사 개업을 한 다음에 주로 NGO 활동에 매진하며 동시에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립니다. 자신이 한 시절 다니기도 했던 서울대에서 여자 조교에 대한 성희롱 사건을 수임한 이후 자칭 타칭 페미니스트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정통 NGO 출신으로 한 번도 정부기관이나 정치기관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가 한 꺼벙한 한성판윤이 급식 문제 때문에 사직을 하자 선거판에 나가 내리 세 번 한성판윤을 지냅니다. 그런데 자기 비서에 대한 성희롱 또는 성폭력 등으로 피소를 당하자, 누군가가 그날로 박복동에게 피소 사실을 알렸고, 순수하고, 일 잘하고, ‘주님께서 안아줄 바보’이자 낡은 구두의 박복동은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남긴 재산은 마이너스 7억 원이지만 아들은 장사를 모시기 위해 유학중인 영국에서 급거 귀국했습니다.
  백복동은 1920년 출생입니다. 어렵게 자랐다고 하지만 당시에 진짜 어려운 사람들에 비하면, 평양사범을 졸업한 것으로 볼 때 그래도 살만한 환경이었던 거 같습니다. 군인이 소원이라서 결국 스물두 살인 1941년 12월에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들어가 스물네 살, 1943년 12월에 졸업해 1945년까지 1년 9개월 동안 숱한 동포들과 독립군들과 기타 애국지사들을 잡아 죽이거나 가둬두는데 혁혁한 전공을 올리는 부대에 배속되어 활동합니다. 해방이 된 이후 잠시 북쪽에 있다가 남으로 내려와 국군에 소속되어 제대로 군사교육이 없던 해방 군대에서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당시에 대령 계급장을 어깨에 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터져, 내용은 잘 모르지만 전쟁 영웅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아 탁월한 지휘관이었던 듯합니다. 대통령이 서울에서 인천까지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길목에 이이의 땅이 있는 걸 알고, 돌려, 돌아서 가, 한 마디에 경인 고속도로가 휘어졌다는 야사에도 등장합니다. 그 대통령이 사형당할 수도 있을 때 백복동이 살려주었다나요. 하여간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잘 먹고 잘 살다가 백수를 누리고 죽었습니다.
  참 사람들 가지가집니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건지 말입니다. 그저 저처럼 평생 봉급쟁이로 상사들 욕이나 해대면서 소주잔 깨나 비우면서 한 세상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거 같군요. 누가 제 평전을 쓰면, 간단할 겁니다.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집안에서 출생해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학력으로,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회사를 네 군데 다니면서 평생 상사들 욕이나 하는 야당질에, 술 마시고, 음악 듣고, 책 읽으면서도 아이들 둘 만들어 자기들 먹고 살 만하게 키웠다. 전과도 없고, 훈장도 없다. 과속 운전으로 세 번, 추월 위반으로 한 번 벌금을 냈고, 평생 수술이라고는 포경수술, 정관수술 말고는 해본 적 없다. 휴양지 야자수 밑에서 낮잠을 즐기다가 때마침 떨어진 야자열매에 머리를 맞아 뇌출혈로 즉사하다. 크하하하.......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해변가의 야자수 아래. 생각함 해도 므흣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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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0-07-15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팔스타프의 가상 엔딩(?)은 저에겐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는 삶으로 느껴집니다. 저희 집안에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는 환자가 있다보니, 이젠 돈도 명예도 다 소용없단 생각이 듭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끝이니까요. 부디 팔스타프님은 이 생애 끝날 때까지도 위에 적으신 수술 두번을 유지하시길 기원합니다.

2020-07-15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