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된장찌개
내가 대학을 들어가던 해(95년). 그 전후를 기해서 곱게 자란 여자들의 표상이 '전 밥 못해요'였다. 그 전에는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서 집에서 밥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빨래도 하여 준 가정부 정도였던 딸들의 위치가 급부상한 시기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집에서 공부시키고 귀하게 키운 딸들은 밖에서도 그런 대우를 받기를 바랬고 그것의 간접적인 표현이 난 요리라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였었다. 처음에는 밥으로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라면도 못끓여요로 발전했다가 요즘에는 좀 뜨악해 졌다. 물론 아직까지도 시대착오적인 몇몇 여성동지들은 자신이 밥을 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곱게 자란것의 표시인양 떠벌떠벌 하고 다닌다. 허나 밥을 못하는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지는 않을망정 그렇다고 해서 '어머 너 참 귀하게 자랐구나'하는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것도 사실이다.
예전에는 밥을 한다는 것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봉사였지만 갈수록 부모로 부터 독립하는 연령및 퍼센테이지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에 와서 밥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종전과는 달라졌다. 가족 혹은 기타 등등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밥을 한다는 것이다. 내 입에 들어갈 일용할 양식인 밥 말이다.
나는 대학교 2학년때 독립을 해서 여태까지 혼자 살고 있다. 처음에는 거의 밥을 해 먹지 않고 각종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로 연맹했지만 곧 식당밥을 찾게 되었고, 식당밥을 오래 먹으니 그것도 물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밥을 해 먹다가 포기하다가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지금은 밥 해먹는 것으로 완전하게 정착했다. 식당밥이 물려서도(물리긴 하지만 밥하기의 귀찮음에 비할바는 아니다.) 돈이 아까워서도 아닌 맛과 질을 위해서 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여기다가 간단하게 집에서 밥 해먹는 것에 대해 적어보기로 했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뭔가 거창한 요리는 내 정도 실력으로 한참 부족하겠지만 혼자 해먹는 것에는 나름대로 도가 텄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 첫 메뉴로 된장찌개를 준비했다.
나는 된장찌개와 된장국. 그 사이의 어디 즈음엔가 경계를 두고 있는 무언가를 좋아한다. 따라서 좀 오래 끓여서 물이 적으면 찌개고 후딱 끓여 후딱 먹으면 된장국이라고 생각한다. 사설이 길었다. 재료부터 알아보자 (모든 재료는 1인분 기준이다.)
재료 : 된장(요즘 파는 된장도 맛있으나 엄마의 음식솜씨가 좋으면 집에서 퍼오는 것이 좋다. 물론 나는 사먹는다.). 큰 멸치 두 마리. 양파, 대파, 청고추(청량고추가 좋다.), 홍고추, 홍합 3개, 소금, 진육수(쇠고기 다시다로 대체 가능하나 진육수가 맛있다. 좀 비싸서 그렇지) 고춧가루. 두부.무순.형편상 사라져도 괜찮은 재료 : 홍고추, 홍합, 두부, 무순
만들기 : 먼저 쌀드물을 준비한다. 쌀을 씻으면 나오는 물이 쌀드물 인데 없으면 그냥 수도물을 쓴다.(참고로 내 요리는 절대 깔끔을 떨거나 위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먹어야 면역이 생겨 잘 아프지도 않으며, 또 건강식으로 천년만년 살고픈 욕심도 없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어, 생수를 쓰지 않나요? 따위의 말은 집어치우기 바란다.) 뚝배기(뚝배기여야 맛있는데 없으면 아무 남비나 좋다.) 에 쌀드물을 넣는데 뚝배기는 제일 작은걸로 사서 한번 먹을만큼만 물을 붓는다. 물에다가 멸치 두마리를 동 띄우고 홍합도 대강 씻어서 넣는다. 냉동 홍합도 좋고 말린 홍합도 상관없다. 물이 끓을동안 대파를 썰고 양파도 썰고 고추도 썬다. 무순은 뿌리를 자르고 씻는다. 두부도 썰어준다.대파는 파란 잎 부분보다는 흰쪽 뿌리 부분이 국물음식에는 적당하다. 물이 끓으면 시체(멸치와 홍합)를 건져낸다. 아깝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그것들은 물에 자신의 모든것을 넘겨주었으므로 남아있는건 말 그대로 시체다. 물 위에 쌀드물 때문에 흰것이 둥둥 뜨면 숫가락으로 대충 걷어낸다. 알뜰하게 걷어내려면 국물이 한참 줄어드므로 선택 잘 하길 바란다. 다음 썬 재료들을 무순과 두부를 제외하고 집어넣는다. 그리고 된장을 푸는데 그냥 넣어도 되지만 조그만한 채를 준비해서 된장을 살살 풀어주는게 좋다. 그 다음 간을 보면서 소금좀 넣고 진육수를 조금만 넣는다. (내 요리에 양은 표기되지 않으므로 끊임없이 간을 보는것이 관건임을 잊지 말자) 적당하게 끓었다 싶으면 두부를 넣고 고춧가루를 넣어 끓이고 마지막에 무순을 집어넣으면 된다.
응용편 : 냉이를 넣어도 좋고 감자를 넣어도 된다. 감자는 두부보다 좀 빨리 넣고 냉이는 두부보다는 늦게 무순보다 빠른 시기에 넣는다. 단 재료의 남발은 니맛 내맛도 안나게 하므로 유의하자. 저걸 오래 푹푹 끓이면 좀 진한 된장찌개가 되고 얼른 끓여 먹으면 그냥 된장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