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잘 알수가 없다. 어째서 그렇게 서럽게 울어댔는지...

회사에서 이제 막 퇴근하려는 준비를 하려던 차에 전화가 왔다. 같이 일하는 직원이 받아서 무어라고 막 말하는 듯 하더니 나를 바꿔준다. 사업부장이다.(나는 이분을 무척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아했었는데 회식 몇번같이 참석한후 실망하고 계속 부딪치다보니 보이는 모습에 실망했었다.) 전화를 바꾸자 마자 소리소리 지르신다.

우리회사는 작년부터 지사매출입금을 카드로도 받고 있는데 이게 바로 문제다. 이 며칠 나를 괴롭힌것이 바로 이 카드입금이다. 카드라면 이제 치가 떨릴 듯하다. 아무생각없이 그저 영업부가 카드 입금을 가져오면 무조건 다 받아주다가 팀장에게 무척이나 깨졌었다. 지사장명의의 카드만 받으라고. 내 그래서 사업부장님에게 몇번이나 말했었다. 제~발 지사장카드만 넘겨달라고 점장이나 고객카드 받아오지 말아달라고.

그러면 언제나 누가야, 점장카드는 받아도돼.. 하시던 분이다. 그럼 나는 혼자 속으로 끙끙대며 속썩다가 그 후로도 두번이나 팀장에게 깨지고 영업부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제발 점장카드, 고객카드로 입금받아오지 말라고. 울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한 지사의 입금을 잡아달라고 담당이 넣어준 카드는 지사장카드가 아니었다. 누군지는 모르나.. (수기작성되는 카드이기에 이름이 다 나온다.) 어쨌든 나는 잡을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누구맘대로 잡고 안잡고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군. 순간 말 문이 탁 막히고야 말았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팀장이 강.조.한 대로 규정대로 하세요. 라고 했다가 욕먹었다. 그런 규정이 어디 있냐고 한다.(그래, 사실 나도 이러한 규정이 있다는 것은 우리 팀장을 통해서야 알았다만은 사실 문서화 되어있거나 구두로 통보받은 기억은 없다.)

도대체 내가 동네북도 아니고... 이사람 저사람 나를 왜 자꾸 괴롭히려는 건지 모르겠다. 내 그리 만만하고 어리숙하게 보이나....

어찌돼었든, 전화를 끊고 큰소리로 서럽게 울어버리고야 말았다.(다행히 사무실에 여직원 둘밖에 없었기에 망정이다.) 훌쩍훌쩍 울면서 퇴근준비를 하고 평소보다 무려 15분정도 늦게 나오고야 말았고 이대로 가면 지각인것이 눈에 환히 보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전철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야했다.(원래는 전철에서 내려 버스를 탄다.)

거금 3천원이 택시비로 날아갔다. 젠장이다.

더 열받는 일이 있다. 안그래도 서러워(사실 무어가 그리 서러웠는지 지금도 미스테리다.) 눈물이 멈추지도 않고 계속 흐르는 판에- 그것도 전.철에서!-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기가 너무 싫었지만 받았다. 팀장왈, 왜 우냐고 대판 묻더니 병신이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사회생활을 어찌할 것이냐는 둥... 니가 동네북이냐 왜 엉뚱한 사람한테 혼나고 우냐는 둥 니가 내새끼지 사업부장새끼냐는 둥 뭐라 뭐라 해댔다.(우리 팀장은 정말 이렇게 표현했다. 난 묻고 싶었다. 내가 부하직원이지 어찌 당신새끼요 난 울엄마 홍여사의 딸이오.하고 말이다.)

나야말로 성질이 나고야 말았다. 그래, 당신말대로 내가 동네북이야!? 왜 나한테 또 지랄이야! 하고 싶었지만 사회생활을 위해서(더 정확히는 월급을 위해서) 꾹 참고야 말았다. 전화를 끊고 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고 참았지만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어찌하리오..

가슴이 답답해서 레포트 보충해서 제출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작성한 그래도 제출했다. 하기가 싫어져 버린 탓이다. 수업도 제끼고 싶었지만 출석이 별로 였던 지난 학기 점수가 최악이었던 점을 감안해서 얌전히 출석하기로 했다.

젠장, 그런데 첫번째 수업시간 중간 잠깐 쉬는 시간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들어오니 전화가 오고있다. ... 사업부장이다. 받기가 싫었다. 인상을 쓰면서 1분정도 고민하다가 다시 복도로 나와서 전화를 받는데...

미안하단다..아니, 그전에 그런다. 내가 너한테 화낸거 아닌거 알지? 그럼? 그때당시 사무실엔 있지도 않았고, 사업부장 옆에 있지도 않았던 우리 팀장에게 화를 냈다는 건가, 아님 자기가 쓰는 휴대폰에 화를 냈다는 건가, 것도 아님 나라는 존재가 둘이라도 된다는 건가... 그것도 아님,, 뭐 내가 진짜로 동네북이라도 된다는 건가!!!

더욱더 짜증이 나버리는 바람에 또 찔끔 눈물을 뚝뚝... 아아, 평소엔 이러지 않는데 오늘따라 정말이지 눈에서 눈물이 많이 나오기도 하지...

젠장, 젠장, 젠장, .... 아아, 이럴땐 내가 아는 욕이 몇안되는 것이 한스럽다.

어디 욕설알려주는 책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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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의 인터뷰 사람 향기
박영선 지음 / 나무와숲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박영선을 모른다. 그녀는 꽤 유명인사였던듯 하지만 뉴스에 그닥 관심이 없었던 어린시절과 이제는 TV없는 자취집에서 뉴스는 오로지 인터넷신문을 통해 접하는 나에게 있어 뉴스의 앵커 혹은 기자는 그다지 관심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내가 아는 유일한 여자앵커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백지연하나 뿐이었다.).

이 책은 사실 오래전에 구입하였던 건데 내가 읽기도 전에 아는 사람에게 빌려주었는데 돌려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던 책이다. (나는 주로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는데 배송되어서 온 이 책을 보고 회사 언니가 빌려달라고 했었다. 책 빌려주기 싫어하는 내가 어째서 이 책을 그토록 쉽게 빌려줬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15명, 아니 14명의 인터뷰 혹은 그녀의 기록과 낯선 평양의 풍경. 사실 내가 그 14명중 아는 사람은 3,4명에 불과하였다. 그것도 이름만 아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닥 사회에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아무튼 그녀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펴낸 것인데, 여기에는 새로이 알지 못했던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그녀의 느낌, 혹은 생각 약간. 그리고 인터뷰내용자체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데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의 새로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참 새로운 느낌이다.  예를 들어 김영삼전대통령이 그렇다. 그녀는 그가 낙관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로비스트 린다 김, 그녀는 어쩌면 사랑을 그저 그리워하는 이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린다 김이 구속되었다. 나쁜 사람이다(이땐 어렸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녀에게서 '여성'을 발견한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가 저술한 이책에서는 인터뷰한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일부러 책에 넣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담백한 문체로 서술해간 책에서 사람들의 향기를 조금은 느낄수 있었다.

어쩐지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무어라 설명할 수 없으므로 그냥 넘기기로 하겠다. 조금은 그녀가 따스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구나 느낄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약간은 즐거운 느낌의 글들이기도 했다.

선입관이 있을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그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가 배제되어있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며 사람에겐 누구나 여러가지의 모습이 있다. 그녀, 박영선은 그러한 사람의 여러면들 중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려 했다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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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삭막한 사람이다.

다가가기 힘든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웃고 떠들고 나면 찾아오는 그 어떤 공허감 같은 것을 어떻게 떨쳐야 할지 모른다. 나는 의.외.로 눈치없고 의외로 둔하며 의외로 순진하다.

정확히 말하자. 나는 세상에 무관심이다. 정말 정말 세상과 단절된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다. 어설프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에 비해 얼마안되는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유아기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사춘기는 친구와의 관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하니까..

난 정말이지 사람들을 기억하는데 재주가 없다. 자주 얼굴을 본다면 이름까지는 몰라도 얼굴을 기억하지만 아주아주 친하게 지냈던 이들이 아니라면 이름조차도 잊어버린다. 지금 만나지 못하는 초, 중학교 친구들중에 유독 내기억에 남는이는 얼마안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난 참 이기적인 인간이다.(난 사람이라는 단어보다 인간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글쎄, 사람이란 단어에 담겨있는 그 어떤 친밀한 듯한 감정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 그게 싫다.) 친구들에게 조차도 마음을 다 주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태어나길 원래 이렇게 태어난 듯싶다. 나는 엄마도 아빠도 동생들에게도 차갑다는 모질다는 말을 듣고 사는 아이(?)다. 내 어머니는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딸이 안쓰러워 뭐든 해주고 싶어하시지만 난 그걸 받기를 싫어한다.  가족에게조차도 이러는 내가 친구들에게는 오죽하랴. 다른 점은 집엔 절대 내가 무슨일이 있었는데 상처를 받고 많이 아프고 울었다...등등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게 서운하다 하시지만... 엇나가는 우리집 장남으로 인해 엄마는 내가 어린시절부터 나에게 많이 기대셨고(감정적으로) 나는 첫딸은 살림밑천이란 말과 엄마의 그런 기대옴에 말을 잃어만 가야했다.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사실은 자세히 모른다. 정말 그런것인지 아닌 것인지...

어찌돼었든 그나마 친구들에겐 이러이러한 일들이 있었다 정도는 말하지만.. 그것도 진짜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꾹꾹 눌러 담아놓은 뿐이다. 어떻게 털어내야 하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 쌓여만 가는 중이다. 내가 스스로 쌓아놓은 세상과의 담이 너무 높아서.. 나는 이 벽을 어떻게 뚤고 나가야 하는지 아직도 먹먹하기만 할뿐이다.

예전에 교회에 다시 나갔을때 그 사람들은 정말 나를 많이 좋아해주고 좋아해주려 노력했다. 그리고 나도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내 일부만 주었다. 그것도 너무 작은 조각으로만... 노력이라 칭했지만 나는 울고 기도하면서도 내 마음의 전부를 그들에게 주지 못했다. 그들이 나에게 한것처럼 하지 못해서 나는 그들을 떠났다. 그것도 아무말없이. 어느날 연락도 없이. 전화가 와도 무시하고. 교회에 다니지 말라는 부모님과 친척들의 성화에도 다녔던 교회이지만 힘들고 아프게 다녀야했던 교회이지만 그런것들보다도 나를 힘들게 하고 떠나게 했던 것은 그들이 준 것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나 자신때문이었다. 그로인해 그들이 상처받을 것을 알고 있지만 난 그렇게 해야만 했다. 주지못하고 준척하기만 하는 나로인해 난 또 상처받고 경멸하면서 토악질을 해대야 하는 것이 싫어서......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그런 나를 알지 못하게 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가끔 날아오는 연락에 어찌할지를 모른채 입술을 깨물고만 있을 따름이지만... 난 그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힘들어서 떠난 것은 내 자신이 너무 모자랐기 때문임을...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었음을... 그래도 그때 조금이나마 행복했다는 것을... 이것도 이기심이지만...

그냥 그렇게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말하지 못하고 길에서 마주쳐도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것이다. 그저 그렇게 울음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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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언제적 사진이려나...

 아마도.. 그래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해 20살에 찍은 사진이다. 기억에 아마 이날 우리 셋은 우정반지-그때당시 우정반지가 유행이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 를 맞추고 나누어 끼웠다.

 이아이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야 만난 친구들이다. 고딩시절 나는 상설부서 활동을 했었다. - 내가 알아서 면접보고 들어간 것은 아니었고 입학당시에 전교 7등(!)으로 장학금까지 타먹은 나를 비롯한 몇몇아이들의 리스트를 뽑아서 선배들이 가입을 권유하고 다닐때 나와 한 친구는 냉큼 그러마 하고 입부하게 된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부를 잘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입학 이후로 나는 장학금을 타본적이 없으며.. 성적은 중상정도였다.  - 그렇게 여기 있는 둘을 제외하고도 4명의 친구들을 사귈수 있게 되었다. 내성적인 내 성격상 분명히 반애들과만 어울렸었을 것이다.

이녀석들과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최모양과는 티격태격 많이 싸웠고 - 아마도 또 다른 김모양이 아니고 우리가 같은 부원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우정이 지속되진 못했을 것이다. - 김모양과는 성격이 많이 비슷했다. 귀밑 5센티의 단말머리가 교칙이었던 - 당시 목포의 고등학교 특히나 상업고등학교에서 머리길이가지고 교칙 세운건 우리학교 뿐이었다. - 그당시 최모양은 항상 컷트였으며 나와 김모양은 항상 단발이었는데 그머리를 묶고 다녔다. 그때는 안경을 꼈었고 김모양과 똑같이 은테 안경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니들 쌍둥이냐? 하고 묻고 다녔다. 당시 우리학교 우리학년에 쌍둥이가 2쌍이 있었기에 그런것 같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성격의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우정이 아직까지...(이렇게 말하니까 오래 살아온 사람같다...) 이어지고 있고 아마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내가 아직까지도 먼저 연락하면서 같이 노는 사람들은 이녀석들과 고딩때의 친구 몇명. 그리고 소꼽친구까지 두손에 꼽힐뿐이다. 난 친구가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

아무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내 친구들의 사진을 더 올리고 싶긴 하다. 그런데 스캔하기가 귀찮은 내가 언제 그런일을 벌일지 알 수 없다. 스캔을 하려면 학교 멀티미디어실로 가야하니 말이다.

 

이 둘중에서도 최모양은 얼굴본지가 오래됐다. 김모양은 그나마 수원에 살고있어서 한달에 두세번이라도 보거나 최소한 한번이라도 보지만 지난해 광주로 내려간 최모양은 그닥 보기가 쉽지 않다. 물론 그녀의 얼굴한번보고자 광주까지 간게 두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그녀가 올라오지 않는한은 힘들다.

요새 남자친구와 잘 지내는 듯해서 마음이 놓이는 광주의 최양..   김모양이 현재 그런 최모양의 결혼프로젝트를 발동중인데... 이유는 단순하다. 어서 빨리 조카를 얻고 싶다는 거다. (물론 그녀에게는 결혼안한 언니가 없는게 아니라 셋이나 있다. 그녀말로는 포기란다.) 23살의 나이에 결혼한 선배가 한명있으며 이제 5월에 23살의 나이로 유부녀가 될 예정인 한기수위의 선배가 있어서 인지... 김모양은 요새 어서 결혼해! 24살이나 25살에 하는 거야 ... 하면서 최모양을 꼬시는 중이다.

글쎄.. 결과야 어찌돼든 두고보아야 겠지만...^^

아무튼 얼굴자주보는 김모양은 그렇다 치고 얼굴보기 힘든 최모양과... 우리 부서의 6기애들이 다 보고 싶다... 물론, 선배님들과.. 후배님들도...^^

 

 

언젠가는 스캔해서 고딩때의 사진을 올려보련다...ㅎㅎㅎ

그런데... 과연 저 셋중에 내가 누구일지... 짐작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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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염세주의자가 아닐까?

-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염세주의란 '세상이나 인생에 실망하여, 이를 싫어하는 생각. 곧 세상이나 인셍에는 살아갈 만한 값어치가 없다고 하는 생각'이라고 정의된다.

정말 정말 모르겠다. 세상은 과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내 자신이 더욱 더 싫어지는 날이다.

 

나는 그닥 사랑을 믿지 못한다. 아니.. 알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가만히 스스로를 느끼다보면 스스로가 역겨워진다.

 

춥고... 서글픈 우울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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