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의 2022년 목표는 중구난방!


시집도 읽고 싶고

미니멀도 읽고 싶고

한국문학 읽고 싶고

현대로맨스도 읽고 싶은


가지각색의 나와 친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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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아무튼, 술집』에 이런 구절이 있다.

No podemos entender, podemos entender.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어.



그사세 덕후는 여기서 또 그사세 내레이션을 곱씹는다.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4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 지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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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모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정상 연애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상이라는 환상을 강화하는 규범은 애인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곳곳에 스며 있어서, 눈길이 닿는 흐름에 따라 질문을 이어 가다보니 성소수자와 청소년의 욕망과 권리, 가족구성권, 종 차별 문제까지 언급하게 되었다. '두 애인과 살아도 괜찮다'는 비교적 뾰족하던 처음의 메시지는 점점 '누구와 어떤 형태로 함께해도 괜찮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나아갔다. 이 책은 이상한 연애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이상한 세상에서 보고 겪은 다양한 관계의 풍경이다.
(p.13)


타인과 함께 사는 일은 서로의 생활 습관, 집이라는 장소에 대한 인식과 시선의 차이를 알아차리면서 화들짝 놀라는 일이 아닐까. 놀란 뒤 필요한 건 서로에게 맞춰 가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병아리의 말처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정! 말! 사랑해야 한다. 사랑이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노동이라면, 정말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 열심히 노동하겠다는 의지와 같은 말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감정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의 다양한 노동을 어느 한쪽만 감수해선 안 된다.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노동이 서로를 살아 있게 하니까. 제발 함께 사랑(노동)해 주세요.
(p.55)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은 불안을 견디려는 의지인 것 같아요. 제가 작년부터 고양이를 키우는데요, 고양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 사랑과 비슷하다고 느껴요. 고양이를 집에 혼자 두는 시간에 대한 미안함, 온전히 소통할 수 없다는 거리감, 먼저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것들을 견디고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하는 일이요. 서로를 믿기로 선택하고 의지를 갖는 일, 불안을 견디는 일이 사랑 아닐까요. 사랑할 때, 상대와 나는 서로에게 하나의 증상이 되잖아요. 서로에게 깊이 관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그런 면에서 사랑은 서로 소통하며 만들어 가는 협상인 것도 같고요."
(p.94-95)



2021년 올해의 에세이로 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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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일기만큼 펼치기 두려운 장르가 또 있을까. 언젠가 다시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일기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일기들은 분명 내가 쓴 것인데도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 마주한 일기들은 지루하고 진부하게만 느껴지는 오늘의 나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힌트가 되었다. 추억하기에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하나같이 현재에 충실했던 기록들은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얼마나 고유한 나인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해 준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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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감정일수록 더 잘 감춰지고 쉽게 잊힌다. 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안에 작은 요동들은 그다지 중요한 게 못 되니까. 나에게 무심해질 것 같을 때, 어느 소설가의 글을 떠올린다. "우리가 우리를 알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도 일기를 쓴다. 내일의 나를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p.19-20)

1919년의 울프처럼 "일기라는 것이 도달할지도 모를 희미한 형태의 그림자"를 생각해 본다. 눈이 빠지도록 일기를 읽었건만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됐다. 10월의 어느 가을, 케임브리지 강연에서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재치를 번뜩일 필요도 없지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도 없고요."

(p.181-182)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사랑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을 읽으면서 책 여백에다 "일기는 시간을 건너게 한다"라는 문장을 따라 적는다는 게 그만 "시간을 건네게 한다"라고 잘못 써 버렸다. 이것 또한 그럴듯해 보였다. 과연 그동안의 일기 쓰기란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시간을 건네는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읽는 책은 모두 미래의 책이라는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매일의 일기도 하나같이 미래의 일기가 될 것이라면 나는 틀림없이 일기 부자가 돼 있겠지. 그날이 오면 중고서점에 되팔 수도 없는 일기를 몽땅 끌어안고 무해한 일기와 유해한 일기를 셈해 가며 일기 쓰기의 수지타산을 맞춰보리라.

(p.195-196)

요즘은 어디를 접속해도 누군가의 하루를, 누구의 기분이나 생각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글을 쓰고 있고(쓰려 하고) 또 그것이 충분히 공유되기를 바라는 덕분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계정을 '팔로우'하고 피드를 둘러보다 보면 어느 순간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혹시나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게 될까 두렵다.

그럴 때면 정지우 작가의 글을 떠올린다. 그는 작금을 "모두가 작가가 되어 가는 시대"라고 썼는데 그 말이 참 좋았다. "모든 사람이 서로의 작가이자 독자가 되어 주는 시대야말로 그렇지 않은 시대보다 더 인간다운 시대"라고 덧붙인 말에선 어떤 풍경 하나가 그려지기도 했다. 말과 글로 촘촘하게 짜인, 부딪혀도 다치지 않을 만큼 유연하고 넓은 울타리가 세워진 들판. 그곳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작가이자 독자인 셈이라니, 가슴이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p.25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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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책방이 아직 열려있었다면 내가 산 책 코너에서 소개해주셨을 확률이 높은 책을 발견했다. 책 소개만 봐도 동진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기분. 소개해줄 사람이 없으면 내가 찾아 읽는다!

목차를 펼쳐놓고 제일 흥미있는 챕터부터 읽어보기로 했는데, 성차별의 파란만장한 연대기에 '철학에 나타난 여성혐오의 짤막한 연대기'가 재밌어서 기록해둔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단 한 번도 철학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페미니즘 사상 철학가 주느비에브 프레스는 『남녀의 차이』에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최소한 말할 수 있는 것은 철학자 대다수가 2,500년 동안 반페미니즘, 나아가 여성혐오를 통해 오히려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성차별적 입장을 드러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필두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용맹함은 사령관의 미덕이요, 순종은 여성의 미덕"이라고 천명했다.

기독교 성직자들에게서도 페미니스트제 면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기독교 교회는 오랫동안 여성을 악마 같은 창조물로 여겼다. 하기야 「창세기」에서 뱀(악마)의 말을 듣고 가련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것도 이브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모범적 기독교도 페넬롱 신부(전문적 신학 교육을 받은 17세기 프랑스 성직자였다)가 여성의 지성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는 "여성의 지성은 타율적이므로… 마땅히 미덕과 행동규범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계에서 여성혐오로 메달을 수여한다면 평생 동안 여성을 증오하는 말을 쏟아낸 쇼펜하우어에게 금메달이 돌아가야 한다. 그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라고 말했다. 칸트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교양 있는 여성은 책을 마치 시계처럼 사용한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시계를 차고 있을 뿐, 평소에는 그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신경도 쓰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은 모두 여성에게 적대적이었단 말인가?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 철학자들 중 일부는 여성의 종속성을 논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콩도르세, 샤를 푸리에, 오귀스트 콩트,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 존 듀이가 바로 그런 철학자들이다….

(p.2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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