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읽겠다고 도서관을 멀리한지 이주일째. 내 책이란 건, 사두고 안읽는 책을 말한 거였는데...

왜 나는 책을 사들이고 있는가...(-_-).

도서전가면 구매하려고 벼렀던 책들인데, 도서전 관람 이후 동선상 가방의 무게를 고려하느라 구매하지 못했다.

그렇게 돌아와서는 책을 살때까지 눈에 어른거려서 결국 사고야 말았다...는 얘기.

책을 살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책을 사야되는 이유가 도통 마르지 않는다.

이 책은 이래서 사야되고, 또 저 책은 저래서 사야되고...😃 뭐 결국은 책이 좋아서지만.

이번 구매의 핵심은 역시, 꿈꾸는 책들의 미로다. 이건 정말... 내 인생의 연작소설이다.

 하... 신작이 막 출간됐을때는 책을 살 타이밍이 아니어서 못샀는데,

지금 이 책과 함께 소설 2종을 구입하면 꿈꾸는 책들의 미로 아코디언북을 준다기에 닥치고 구매🙊.

최근 받은 굿즈 중에 단연 탑이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김연수 복간 3종세트 중에 스무살과 사랑이라니, 선영아만 구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자음과모음판으로 있어서 두 권만.

글쓰기의 최전선은 리뷰를 읽다가 꽂혀서 구매. 서점 숲의 아카리는 모으다보니 뒷권부터 모으는 중.

오늘은 책 읽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페코로스 씨에게서 만화의 재미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의 치매를 뒷바라지하는 힘겨운 터널을 뚫고 온 자로서 동지와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늙어가는 방식이 있구나, 살아가는 방식이 있구나, 죽어가는 방식이 있구나, 라고요. 그리고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뒷바라지 방식이 있구나, 라고요.
(p.198 이토 히로미의 추천사 중에서) 

-(마주보고 앉아있는 엄니와 유이치)
-엄니, 내가 누군지 알겠어?
-기요노리(엄니의 남동생).
-아니야!
-그럼 히데요시(엄니의 아버지).
-아니야! '그럼'은 또 뭐냐고요. 자아, 누구?
-(zZ)
-잠들었네!
-(어느틈에...)
-(zZ)
-(zZ)
-(흠칫)눈부셔... (아들의 대머리에 반사된 빛을 보고는)
-(zZ)
-유이치, 언제 왔다냐? 머리는 싹 벗어져서는. 네가 와줘서 참말로 좋다야.
(쓰담쓰담) 


라는 내용이 담긴, 이어지는 4컷만화로 시작하는 이 책은 낙향한 무명 만화가 오카노 유이치가 쓰고 그린 책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다.

페코로스는 탁구공만 한 크기의 작은 양파 품종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책의 저자 오카노 유이치 씨의 필명이자 별명이란다. 그런 페코로스가 어머니 만나러 가는 이야기.
아버지의 유족연금을 바탕으로 어머니를 양호시설에 맡겨둔 자신의 처지에 부모를 돌본다는 말은 너무도 염치없는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송구스러운 마음을 담아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라는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의 만화를 보고 글을 읽고 있으면, 이토 히로미의 추천사에 공감하게 된다.

이건 엄니를 뒷바라지 하는 페코로스, 오카노 유이치만의 방식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엄니는 페코로스의 4컷만화 속에는 살아 숨쉰다. 아들의 대머리를 보고서야 유이치 하고 부르는 엄니. 보이지 않는 실과 바늘로 꼼지락 꼼지락 아들의 나들이옷을 기워주는 엄니. "내가 치매에 걸려서 네 아버지가 나타난 거라면 치매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하고 말하는 엄니. 간호사의 예쁜 장난으로 난생 처음 매니큐어를 바른 짤막한 손을 수줍게, 자랑스럽게 아버지(엄니 안에서 살아계시는 아부지)에게 내보이는 엄니.

가족의 시간 속에 살아 있다는 말이 참 따뜻했던 책. 엄니의 말을 빌려 마지막 문장을 쓴다.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참말로 좋다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재치 넘치는 글쓰기를 선보여 환영받아온 리베카 솔닛의 신작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전세계에서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신조어 ‘맨스플레인’의 발단이 된 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비롯해 여성의 존재를 침묵시키려는 힘을 고찰한 9편의 산문을 묶었다.

잘난 척하며 가르치기를 일삼는 일부 남성들의 우스꽝스런 일화에서 출발해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성별(남녀), 경제(남북), 인종(흑백), 권력(식민-피식민)으로 양분된 세계의 모습을 단숨에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늘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폭력이 실은 이 양분된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의 씨앗임을 예리하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폭넓은 지식과 힘있는 사유로 버지니아 울프와 수전 손택의 문학, 아나 떼레사 페르난데스의 사진, 프란시스꼬 데 쑤르바란의 그림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여성 대 남성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세계의 화해와 대화의 희망까지 이야기하는 대담하고도 날카로운 에세이다.

 

 

내셔널 북 어워드(NBA) 수상작가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2013년 영국 최대의 체인 서점인 '워터스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도서이다. 1965년 미국에서 발표된 후,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잊힌 <스토너>는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출판계와 평론가,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50년의 시차를 가볍게 뛰어넘어, 작가 존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세상의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농부의 아들 윌리엄 스토너는 열아홉 살에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택했던 길. 그런데,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접한 셰익스피어의 일흔세 번째 소네트가 그의 인생을 온통 바꾸어놓는다. 문학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는 대신 대학에 남아 영문학도의 길을 택한 스토너.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교수가 되어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교내의 정치나 출세보다는 학문에 대한 성취에 더 열중하고 가정을 사랑한 그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학에서도 집에서도 그의 위치는 불안하기만 하다. 가족과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어 슬프고 쓸쓸한 그의 삶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와 다름없다.

그러나 세계대전과 대공황 속에서도, 개인적인 불행과 사랑의 실패에 시달리면서도, 갑작스러운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는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한다. 일생을 바친 그의 연구처럼 자신의 일생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듯.

 

 

아들을 위한 위트 있고, 클래식 하며, 젠틀한 매너를 가르치는 한 아버지의 어록을 사진들과 함께 엮은 어드바이스 컬렉션. '옷차림에 확신이 서지 않는 날은, 타이를 메어라.', '셔츠 소매가 보이지 않는 다면 자켓 소매가 길다는 뜻이다' 같은 사르토리알 어드바이스부터 '잘 모르는 스위치는 누르지 마라.', '맛을 보기 전에는 소금을 치지 마라.' 등의 실용적인 충고들을 담고 있다.

 

 

아마존 일본 사회·정치,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 1위 도서. 일본 변방 가쓰야마의 작은 시골빵집 다루마리에서 일어난 소리없는 경제혁명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부정이 판을 치는 세태가 싫어 ‘바깥’ 세상으로 탈출하려고 제빵 기술을 배웠는데, 그 ‘바깥’ 세상이어야 할 빵집 공방마저 경제 시스템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가혹한 노동과 부조리한 경제구조, 위협받는 먹거리…. 이런 실상을 접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그의 삶의 철학은 더욱 굳건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빵집 ‘다루마리’에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 서툰 작은 정의감을 실천하게 된다.

저자의 빵집 다루마리는 사람들로부터 ‘희한한 빵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카야마 역에서 전철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산 속의 빵집. 고택에 붙어사는 천연균으로 만든 주종으로 발효시킨 빵을 만들며, 그 빵의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다. 게다가 일주일에 사흘은 휴무,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로 문을 닫는다. 이것은 제대로 된 먹거리에 정당한 가격을 붙여서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고, 만드는 사람이 숙련된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로 존경받으려면 만드는 사람이 잘 쉴 수 있어야 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다루마리의 경영 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기’다. 일반적인 경영과 마케팅 성공 잣대를 무시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채 최고의 빵을 만들며, 부패와 순환작용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시골빵집에 찾아낸 ‘부패하여 순환하는 경제’의 핵심은 발효와 순환, 이윤 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 이 4가지로, 다루마리는 이 모든 것을 지향하며 실천하고 있다.

 

 

 

본의 유명한 드라마와 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구스미 마사유키의 음식 방랑기. 35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60세 평범한 가장이 음식과 벌이는 한판 승부를 보여준다.

직장생활 하던 시절에는 시간에 쫓겨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하면서,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가스미 다케시는 마치 ‘도장 깨기’하는 방랑 무사처럼 음식과 대결을 벌인다. 음식은 단지 재료와 맛이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식당의 분위기와 그곳에 오는 손님들과 먹는 사람의 상황 등 모든 것이 어우러진 하나의 ‘맥락’임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1995년 출간되어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동화의 개정판. 꿈과 호기심 많은 소년 샘 그리블리가 달랑 주머니칼과 노끈, 도끼, 부싯돌, 약간의 돈만을 가지고 대대로 선조들이 살아온 캐츠킬 산으로 가출을 감행했다. 뉴베리 상, 안데르센 상 수상작.

자연으로 떠난 샘은 처음엔 불도 지피지 못하고, 물고기도 낚지 못한 채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 생존의 절박함 속에 지낸다. 하지만 점차 야생에서 살아나가는 법을 터득해 하나씩 하나씩 산속 터전을 만들어 나간다. 굴을 파서 집을 만들고, 야생 매를 길들여 사냥을 하면서 자연과 친구가 되어간다.

광대한 자연, 야무진 소년의 꿈 그리고 모험이 함께하는 가슴 뛰는 이야기이다.

 

 

미국 문학 최고의 안티히어로, 찰스 부코스키의 장편소설. <우체국>은 부코스키가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쓴 첫 장편으로, 하급 노동자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10년간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에 처음 등장하는 헨리 치나스키는 작가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이후 발표된 일련의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된다.

한편 <여자들>은 세월이 흘러 그가 전업 작가가 된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노동에서 벗어나 글을 쓰고 시 낭독회를 다니며 자유롭고 방탕한 삶을 즐기는 주인공의 일상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품는 솔직한 욕망들을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감 없이 그려 낸 작품이다. 육체적인 욕구와 사랑을 동의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여자에게 충실한 것은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하급 노동자 생활을 이어 가다 마침내 전업 작가로 성공한 헨리. 1년에 3백 일은 술 취한 채 지내며, 경마가 유일한 취미인 그의 낡은 아파트에는 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곁에 있는 여자를 사랑한다 믿으면서도 또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그는 안개처럼 짧은 관계의 본질을 찾는 불가능한 항해를 계속한다.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와 그와 잠자리를 함께한 여성들에 대한 포르노그래피 판타지적 묘사 속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한 남자의 고뇌와 순정 또한 녹아 있다. 부코스키는 음란함과 비천함, 저열함이라는 날것의 감정을 통해 사랑과 관계의 양상을 보다 냉철한 시선으로 비추어 낸다.

 

 

현대 일본의 지(知)를 대표하는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와 오타쿠 출신의 사회비평가 오카다 도시오가 시장경제의 몰락과 대안,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해 나눈 대담을 엮은 책. 무도가(武道家)의 박력을 지닌 우치다와 경쾌한 사회감각을 가진 오카다는 이 책에서 세대론, 교육론, 경제론, 연애론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사회 이슈를 이야기한다.

결이 다른 두 사람의 대담 분위기는 시종 유쾌하고 자유롭다. 하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은 자못 심각하다. 대화의 공통 기반이 사라진 사회, 욕망을 거세해버린 젊은이, 존경을 잃어버린 연장자, 교육을 포기한 학교, 성과주의라는 괴물이 만들어놓은 일본 사회의 참담한 모습은 여기 한국과 다를 바 없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 말해주듯 더 이상의 경제 성장도 없다. 모두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미래를 낙관한다. 국가나 행정 시스템에 기대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그들 스스로 실험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자기 구제와 공생의 삶을 위해 ‘증여’하는 삶을 제안한다.

개인에게 적용해보면 이렇다. 무언가 받았으니까 되돌려준다는 생각으로 내가 가진 자원과 능력을 남에게 패스해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확장해보면 이렇다. 세대간의 고립과 단절, 사회 안전망의 붕괴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고, 잘 곳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약자들의 상호부조 네트워크로 극복하고, 복구해낼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에서 제안하는 증여경제론의 핵심이다.

 

 

민음의 시 211권. 시와 기하학을 접목한 '시각 시'로 독자적 시 세계를 추구해 온 시인 함기석 시집. 전작 <오렌지 기하학> 이후 3년 만에 나온 이번 시집은 4부로 구성, 15편씩 모두 60편의 시로 이루어졌다.

파격적인 해체와 실험이 등장했던 <오렌지 기하학>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번 시집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받을 것이다. 충격과 난해함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익숙하지만 '죽음'이라는 풍경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며 자아내는 정서적인 느낌은 생소함을 주기 때문이다.

<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는 사물을 지칭하지 않는 탈언어적 언어라는 전위의 바탕 위에서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가장 명징한 질서, 죽음의 풍경을 그린다. 낯선 언어와 익숙한 풍경 사이에서 독자들은 전에 느껴 보지 못한 초현실을 감각할 수 있다. 시집 해설은 고봉준 평론가가 맡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일본 문학계의 거장인 오에 겐자부로가 읽은 ‘내 인생의 책’을 소개한다. 1957년에 등단한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매번 탁월한 작품을 집필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평생에 걸쳐 읽어온 보물 같은 책’들을 회고하며, 오직 책으로 살아온 인생을 강렬하게 담아냈다. 그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한 구절을 삶의 지표로 설정했던 소년 시절의 이야기, 엘리엇과 오든, 포의 시집을 읽으며 언어에 대한 감각을 훈련했던 기억, <신곡>과 <오디세이아> 같은 고전 및 수많은 문학작품을 통해 생의 고뇌를 승화시켰던 여정들을 이 책에 가득 펼쳐놓는다.

여든의 노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죽마고우였던 오랜 친구의 갑작스러운 자살, 장남 히카리의 장애, 본인 작품에 대한 비판 등을 오롯이 감내해야 했고, 소설 집필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시련을 포함한 그의 모든 삶의 순간들엔 ‘책’이 있었다. 책은 그가 인생의 문제들로부터 버틸 수 있도록 해주었고 더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저자가 일생동안 그토록 치열하게 읽어왔던 이유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박 꼬박 챙겨서 포스팅하진 못했지만, 16기부터는 챙겨서 포스팅 하고 싶다.

첫번째 도서, 분야별로 구경하기.

 

 

 

 

[소설 분야]

 

 

펴내는 작품마다 다수의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한 세라 워터스의 다섯번째 작품이자 국내에 소개되는 네번째 작품이다. 세라 워터스는 매 작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플롯은 물론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탁월한 묘사까지 더해져, 읽는 즐거움과 함께 문학적 가치도 충분한 소설을 쓰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맨 부커 상 후보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2차대전 직후 서서히 몰락하는 영국 귀족 가문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소재로 한 <리틀 스트레인저> 역시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기이한 스토리에 예민한 사회 관찰과 날카로운 비판을 적절히 더해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히 재현해냄으로써 세라 워터스의 역사 스릴러 거장다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힘입어 공포소설로는 드물게 맨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스티븐 킹이 '2009 최고의 소설'로 선택하기도 했다.

작품마다 레즈비언과 성性에 관한 농밀한 스토리와 묘사를 선보이며 '레즈비언 소설의 총아'로 불리는 세라 워터스가 <리틀 스트레인저>에서는 유일하게 레즈비언 이야기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하다.

< 리틀 스트레인저>의 배경이 된 20세기 중반은 두 차례의 전쟁 이후 영국 사회의 가치관이 전체적으로 변한 시기이다. 노동자계급이었던 사람들은 더이상 귀족들의 집사나 하녀 노릇을 하길 원치 않았고, 귀족들 역시 자신들이 선조의 유산을 유지할 재정적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울며 겨자 먹기로 저택을 처분하거나 이사를 떠났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사회 변화와 '쇠락한 대저택'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기괴한 스토리를 펼쳐 보인다.

 

 

 

가즈오 이시구로가 10년 만에 출간한 일곱 번째 장편소설. 이시구로는 등단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섯 편의 장편과 한 편의 단편집만을 발표할 만큼 매 작품마다 완벽을 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결과 모든 작품이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고 부커상에만 네 번이나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역시 10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일곱 번째 장편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평단과 대중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고, 2015년 3월 <파묻힌 거인>은 발표되자마자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주요 언론들은 "올해 이보다 더 중요한 소설은 출간되지 않을 것", "걸작", "놀라움 그 자체", "이전작과 전혀 다르면서도 가장 이시구로다운 작품", "올해의 문학적 사건" 같은 말로 격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에 부응하듯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시구로는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더 타임스」 선정)에 들 만큼 현대 영미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명성보다는 동양과 서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시구로만의 낯설고 깊은 상실의 정서다.

이번 작품에서 역시 망각의 안개가 내린 고대 잉글랜드의 평원을 무대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또한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차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판타지 모험담의 틀을 빌려 그 놀라움과 흥미진진함을 더하고 있다.

 

 

[에세이 분야]

 

 

소설가 김훈 산문집.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걸어본다 6권.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가 알타이를 걸어본 이야기이다. 쉼표와 쉼표로 이어지는 만연체 문장과 입술에 미소를 살짝 머금게 하다가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하는 유머러스한 상황들이 면면에 펼쳐진다. 여행지에서의 일상들을 너무나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지만 작가가 이 책을 두고 여행기라 일컫지 않는 데는 이 기록들이 "여행과 함께 시작하거나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름난 명승지를 둘러보고 인상적인 자연풍광을 사진으로 남기는 데 급급한 관광객이 아니라 "추위에 떨면서 유르테에 불을 피울 야크똥을 모으는 것"을 주 임무로 하여 자연 속에 제 생을 던짐으로 그렇게 자연이 되어보는 사연의 주인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얼굴들로 이루어진 나의 또다른 장소로 향하는 여행이자 동시에 한때 나의 육신을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돌과 쇠를 찾아가는 여행"의 동반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읽고 싶었던 <라면을 끓이며>와

걸어본다 시리즈 6권! 배수아 작가님의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이 선정되었다.

 

오호+_+

이로써 걸어본다 시리즈는 3권을 소장하게 되었다.

 

 

 

[유아/어린이/가정/실용 분야]

 

 

익사이팅 북스 시리즈 53권. <화장실에서 3년>, <도서관에서 3년>에 이은 ‘3년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로, 폭풍우 때문에 갑자기 멈춰 선 기차에 갇힌 주인공 상아의 이야기이다. 부산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사촌인 별아 언니와 둘이 올라오는 길에 갇힌 것이다. 천둥번개가 치고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자, 기차 안은 금세 전쟁터나 다름없이 변한다. 또다시 찾아온 위기의 상황에서 상아는 전 편들보다 사뭇 여유롭다.

< 기차에서 3년>에서는 제한된 공간에 갇힌 순간, 배려하는 모습은커녕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마음을 다잡고 꿋꿋하게 주위를 돌보며 음악으로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상아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내 속에 있는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꿈을 향해 한발 나아가던 상아가, 이제 주변을 돌보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느새 상아는 주위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 주위까지도 변화시키는 성숙한 아이로 자란 것이다. 이와 같이 색다른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 가는 상아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시리즈가 가진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이다.

 

 

21가지 채소를 남김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110가지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이다. 가정요리를 테마로, 잡지와 텔레비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의 요리연구가 이치세 에쓰코의 레시피를 담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신선한 채소 요리법이나 보관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쓰고 남은 채소를 섞거나 양념해 저장성을 높이면서 그대로 꺼내 요리할 수 있는 보관법을 알려준다는 데 있다. 보관한 재료로 짧게는 5분, 길어도 15분이면 완성하는 그럴싸한 채소요리는 바쁜 아침 반찬거리로도, 맛깔스러운 도시락 반찬으로도, 저녁 식탁 주요리로도 손색없다.

마지막으로 채소마다 보관법과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기간을 표기했고, 상세한 재료별 찾아보기를 실어 요리 초보자뿐 아니라 노련한 주부들도 참고하기 편리하게 구성했다.

 

*

 

<기차에서 3년>의 책 소개를 읽어보니, '3년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란다.

이 책도 그렇지만, <도서관에서 3년>이 어떤 책일지 궁금.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불안증과 평생 싸워온 환자이자 저널리스트 스콧 스토셀의 에세이. 거의 모든 분야와 시대의 불안에 관한 지식을 강박적일 만큼 완벽하게 망라한다. 철두철미한 정보 수집과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저널리스트의 미덕을 발휘하는 동시에 30여 년 넘게 불안과 싸워온 당사자의 균형 잡힌 시선이 담겨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불안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이 책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불안과 싸우는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인 저자의 이야기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불안의 근원을 파악하려는 지적 노력의 역사를 전방위로 파고든다. 학술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을 동반해 이 광범위한 탐구의 면면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오늘날 신경과학과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불안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불안을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저자는 이런 상충하는 견해를 차례로 다루며 불안장애에 관한 우리의 의문점들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현장의 정신과 상담의가 소셜미디어의 심리적 영향을 연구.분석한 디지털 시대를 위한 새로운 심리 치유서. 미국 임상심리학자 수재나 E.플로레스 박사는 지난 3년 동안 전 연령대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을 인터뷰하고, 수집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페이스북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연구했다. 소셜네트워크 등장 이후 나타난 사회 변화는 물론이고 개개인의 세계관이나 정서적 변화를 보여준다.

플로레스 박사는 소셜미디어에 중독된 많은 사람들의 경우, 실제로는 페이스북이 문제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거의 모든 중독 행동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일에 몰두하면서 위안을 찾을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접속하게 만드는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온라인 세계가 현실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플로레스 박사는 우리의 내면에는 새로운 기술 문명과 소셜미디어가 제공하는 기능들을 신중하게 즐기면서도 자신에게 솔직하고 다른 사람들과 긴밀히 관계 맺을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 이용과 현실 생활의 균형을 찾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방법들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

 

<페이스북 심리학>의 책 소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역시

'실제로는 페이스북이 문제가 아니라고 역설한다.'다.

페이스북에 대해 생각이 많은 요즘, 내게도 도움이 될만한 책.

 

 

[경제/경영/자기계발 분야]

 

 

샤오미의 공동창업자이자 마케팅 책임자인 리완창의 책. 이 책은 회사 설립에서 제품 개발과 브랜딩까지, 마케팅의 일상적인 운영에서 유통까지, 서비스 이념에서 회사 이념까지, 창업 초부터 지금까지의 내부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며 외부에서 불가사의하게 여겨온 샤오미 성공의 원동력 “참여감 3.3법칙”을 상세하게 공개한다.

이 책은 원색의 대담한 일러스트들과 각종 사진들을 한껏 수록하고, 무협소설의 영향인 것으로 보이는 직설적인 문체와 전투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일반 경제경영서에 비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그렇게 읽다 보면 이러한 참여감이 샤오미의 제품, 서비스, 판매, SNS 활동 전반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 자체가 바로 참여감의 결정체이다.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맨 앞에는 그 책의 기반이 된 연구를 수행한 수십 명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어떤 독자는 그 책을 만든 프로젝트 팀 자체가 바로 위대한 조직의 본보기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리완창은 이 책에 그림을 그려주고 자료를 제공하고 원고에 피드백을 준 샤오미 동료들을 ‘'참여감' 의 꿈의 후원자들’이라 명명하며 사진을 게재하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장하준이 추천한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필독서. 소액 금융은 세계의 빈곤을 종식시킨다는 미명하에 개발 도상국에 선진국의 자금을 끌어와 빈곤층이 소규모 사업을 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저리에 소액을 대출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소액 금융 업계에 10년 이상 몸담았던 저자 휴 싱클레어는 많은 소액 대출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한 투자라는 외양만 덧입었을 뿐, 실상은 가난한 이들을 약탈하는 대부 사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특히 대형 은행들이 개입되면서 이 시스템이 점차 이윤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액 금융이 장기적으로 빈곤 완화에 기여한다는 분명한 증거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며, 소액 금융계에 부주의와 부패, 착취에 가까운 수단이 만연하다는 증거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개혁 없이 소액 금융은 계속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허한 약속과 빈 주머니만을 안겨 주는 투자 기회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두 권 모두 궁금하다.

<참여감>은

'그렇게 읽다 보면 이러한 참여감이 샤오미의 제품, 서비스, 판매, SNS 활동 전반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라는 구절이 이 책을 읽고 싶게 하고,

 

<빈곤을 착취하다>는

'소액 금융 업계에 10년 이상 몸담았던 저자 휴 싱클레어는 많은 소액 대출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한 투자라는

 외양만 덧입었을 뿐, 실상은 가난한 이들을 약탈하는 대부 사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라는 구절에서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아니스트가 되는 데 실패하고 음악원 피아노 선생으로 남게 된 에리카는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어머니에게 ‘내 귀여운 회오리바람’이라고 불린다. 어머니에게 있어 딸은 남편(남근)의 부재를 채워주고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줄 유일한 존재이다. 어머니는 에리카의 생활 전체를 통제하고, 딸에게 ‘유일하고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것을 역설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한다. 자신과 딸 사이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에리카가 옷, 구두, 장신구 따위를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도 딸이 예쁘게 꾸미고 다녀 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딸이 오로지 ‘자신만의 에리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어머니의 통제는 어려서부터 에리카에게 남들이 가진 물건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했고, 그것은 곧 자신이 갖지 못한 물건들을 파괴하고 그 소유자들을 학대하려는 사디즘 성향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지배로 인해 에리카는 사디즘뿐 아니라 자신을 학대하는 마조히즘 성향도 갖게 된다.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아버지가 쓰던 면도칼로 자기 몸을 베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 그녀는 자해를 하는 권력자와 그 고통을 감수하는 순종적인 피지배자라는 두 가지 자아를 연출하며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드러낸다. 이런 에리카에게, 어느 날 제자인 대학생 클레머가 남성으로서 접근해오기 시작하는데……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정한아(소설가)가 읽은 <피아노 치는 여자>라는 글 때문이었다.

 

 

*

 

20대의 어느 날, 이 책을 읽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입속에는 침묵이 가득찼다.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고, 나 자신조차 무서워 들여다본 적 없는 스스로의 심연을 보아보린 느낌이었다.

 

어떤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험이 된다.

감당할 힘 없이 진실을 마주했다가, 우리는 자멸해버릴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미쳐버린 사람들도 알고 있다.

경고하건대 이 소설은 함부로 첫 장을 넘길 책이 아니다.

 

*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입속으로 침묵이 가득차게 만들었던 책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알아서 선뜻 도전하기 어렵지만

그런데 또,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알기에 궁금하다.

 

과연 나는 함부로 첫 장을 넘길 책이 아니라는, 경고를 뒤로하고 시험에 빠져들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