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다.
직장에서 있었던 좋고 나쁜 일의 기억 보따리를 안고 가긴 하지만 걸음의 속도를 줄이니 그것도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왜 진작 이러지 못했을까. 하루 중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다. 직장과 가정은 모두 공동체 생활이다. 퇴근길만큼 혼자임을 만끽할 시간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조급함도 사라졌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은 일상처럼 하라고 했던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그 사이사이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여행지의 어딘가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감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주변이 어떠하든 결국 잠시 눈을 감는 것은 나다. 애써 푸른 바다를 연상하지 않는다. 그냥 나 자신을 느끼고, 심호흡을 크게 해본다.
오늘이라는 여행을 잘 마쳤다.
잘 해냈다.
그것으로 족하다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천천히 걸어간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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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자살하기 전 남편 레너드 울프에게 남긴 유서에서 발췌한 이 구절을 보면, 따뜻한 보호자로 칭송받다가 어느 순간 억압적인 간수라고 비방당하기를 반복한 남자와 그녀가 공유한 둘만의 깊은 교감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아내의 천부적인 재능을 만개시키기 위해 레너드가 성인聖人 수준으로 헌신하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더라면, 블룸즈버리 그룹의 대사제로 불린 버지니아 울프는 이 정도로 오래 버티며 후대에 길이 남을 모더니즘적인 작품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면, 그건 당신이었을 거예요...... 우리 둘은 세상 어느 커플보다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남편에게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서 버지니아 울프는 옷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워넣고 우즈강으로 휘적휘적 걸어들어갔다. 30년 가까이 이어온 결혼생활에서 레너드는 셀 수 없이 여러 번 신경발작을 일으킨 아내를 매번 극진히 보살펴 회복시켰고, 그중 몇 번은 상태가 너무 심각해 간호사를 네 명이나 고용해야 했다. 그러나 레너드의 그 끝없이 인내하는 사랑과 지칠 줄 모르는 보살핌도 버지니아의 자기파괴적 충동을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략)
악화되는 병세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극치를 느낀 순간도 간간이 있었고, 레너드와 런던에 가서 행복한 하루를 보낸 뒤에는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며 나란히 광장을 산책했다―25년이 지났는데도 서로 떨어져 있기가 힘들다. 누군가가 원하는 존재,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건 이토록 기쁜 일이구나. 우리의 결혼생활은 이보다 온전할 수 없다." 그러나 남편과 나눈 깊은 사랑―그녀에게는 마지막 방어선과 같았던 그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버지니아는 계속 싸워나갈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1941년 3월의 차가운 어느 날, 버지니아는 레너드에게 편지를 써놓고 혼자 집을 나섰다.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그 끔찍한 시간이 또 한번 닥치면 우리는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요. 나는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거예요.

이렇게 끼적인 편지를 남기고 얼마 후, 그녀의 산책용 지팡이가 우즈강 강둑에서 발견되었다. 돌덩이의 무게로 가라앉은 그녀의 사체는 3주 후에나 떠올랐다. 그런 크나큰 비극이 닥칠 줄은 전혀 예상 못하고 있다가 크게 충격을 받은 레너드는, 아내가 영영 가버린 것을 깨닫고 슬픔에 잠겨 이렇게 썼다. "V가 오두막 저편에서 나타나 정원을 가로질러 오는 일은 없으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그쪽만 바라본다. 그녀가 물에 빠져 죽은 걸 알면서도, 언제든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서 귀를 쫑긋 기울인다. 이것이 마지막 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다음 장으로 넘기려고 한다."



*


나는 버지니아와 레너드, 두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쓰여 다음 장으로 넘기는데 한참이 걸렸다. 

버지니아에게 레너드는 삶을 붙드는 유일한 닻이었지만, 영원히 붙들지는 못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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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놓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일일까. 오랜 시간 무심한 표정으로, 하지만 애정만큼은 꾹꾹 눌러 담아 한 땀 한 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 여러모로 비효율적이고 기성 제품처럼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애초에 효율이나 세련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수 만들어서 주고 싶은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일 테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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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주변을 정리하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지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관 속에 넣어 매장되고 싶어합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 생각할 거리는 많습니다. 친지들에게 이 어려운 결정들을 떠넘기지 않으려면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본인의 바람을 이야기하거나 서류로 작성해두는 것이지요. 데스클리닝이란 이렇게 그냥 실용적인 행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데스클리닝을 시작하고, 이 행위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벌어줄 시간을 생각하며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데스클리닝을 하면 그들은 원하지 않은 물건을 처리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나는 내 데스클리닝을 얼추 마치고 나면 대단히 흡족하고 행복할 것 같습니다. 여력이 된다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도 좋고, 나 자신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친구들을 몇 명 초대해 근사한 저녁밥을 대접하며 임무 완수를 축하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도 죽지 않는다면 쇼핑을 나갈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말이에요!
(p.18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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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고 살을 뺀다는 것이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도망치는 것인지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인지 자주 헷갈린다. 남의 눈에 들려고 하는 건지 나에게 나를 잘 보이기 위한 건지도 잘 모르겠는 때가 많다. 하긴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도 어차피 타인의 눈을 거치기 마련이다. ‘내 안에 너 있다‘는 대사처럼 타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내 안에 존재한다. 나와 타자의 경계는 명확히 그을 수 없다.
지름신 때문에 행거에 걸린 옷이 늘어날 때마다 나는 누구의 어떤 눈으로 나를 보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자기답다‘라고 한다. 지름신에 들려 산 내 옷, 저 옷들은 나다운 것일까? - P26

다시 운동을 시작한 날, 막 입학한 새내기의 설렘으로 체육관에 들어섰다. 높은 사다리 위에 올라 전구를 갈고 있던 나이스가 활짝 웃었다. 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고 했다. 당분간은 살살 걷기만 하라고도 했다. 나는 트레드밀을 시속 3.5킬로미터로 걷는 달팽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느려도 나는 움직이고 있다.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분홍 신을 신고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처럼, 운동화를 신고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몸에 새긴다! 이 말이 참 좋다. - P34

나는 이걸 내 방식으로 이해했다. 글을 쓸 때 ‘은/는, 이/가‘라는 조사 중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 문장의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조사를 잘못 썼을 때는 내가 전달하려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 전달되곤 한다. 나는 ‘지금 취하려는 자세가 조사 고르기처럼 까다로운 것 같다‘고 했다. 나이스는 맞장구쳤다. "맞아요. 글 쓸 때 조사가 중요한 것처럼 운동할 때도 조사를 중요하게 여기세요." - P51

아틀라스처럼 일로 힘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처럼 쓰는 힘도 필요하다. 일이 아닌 데다 에너지를 들이는 것,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리켜 흔히 사치라 한다. 그러나 어디 삶이 필수품만으로 이루어지는가. 살아가려면 간혹이라도 사치품이 필요하다. 여유와 틈을 ‘사치‘라고 낙인찍은 건 아닐까. 그렇게 사치라는 말은 ‘분수를 지켜라‘ 하는 말로도 바뀌어 우리 삶을 단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요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힘을 쓰는 일이 사치라면, 난 내 힘을 하늘을 들어 올리는 데 쓰는 사치를 마음껏 부릴 것이다. - P60

그런데 그 지루함이 반전이 되기도 한다. 나는 운동신경이 아주 둔한 사람이라 할 줄 아는 운동이라곤 하나도 없다. 미련할 정도로 꾸준히 버티는 건 잘한다. 느리더라도 자기 속도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갈 수 있다는 데 피트니스의 매력이 있다. "어리석은 자가 그 어리석음을 고집하다 보면 현명해진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말이다. - P81

게다가 나이스에게는 열정이 넘친다. 나이스는 이 운동과 이 일이 너무나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던 사람이다. 열정을 연기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표정, 말투였다. 나에게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데 ‘열정노동‘이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이 세상은 자기 일을 아끼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로 돌아가야 건강하다. 열정에 화답하는 건 응원이어야 한다. 그러나 열정에 초를 뿌리기 일쑤다. ‘네가 좋아서 하는 거잖아.‘ ‘네가 원하는 일 하는데 이 정도도 못 버텨?‘ 이런 말들로 악조건을 정당화한다. 이 조건을 달게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버티지 못하면 내 열정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도록, 자기를 학대하도록 내몰기도 한다. 그게 열정노동이다. 버티다보면 괜찮아질까? 감정노동과 열정노동이 과연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근육을 만들어주는 것일까? - P90

피곤에도 맥락이 있다. 내 몸에 안개처럼 뿌연 거미줄이 둘러쳐져 있고, 거기 붙잡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릴수록 더 묶이는 것 같은 기분이 있다. 땅 밑에서 무서운 손이 끌어당기는 기분 같기도 하다. 사우나에서 땀을 빼거나 아무리 오래 깊이 잠을 자도 이런 피곤함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이런 피로가 아니라 노곤하게 노을처럼 스미는 피곤도 있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피곤의 맥락이 달라지니 감정 조절이 쉬워졌다. 내가 뾰족하지 않고 너그러워지면 주변 사람들도 악마에서 요정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악마를 만난다면, 튕기고 반박할 기운이 생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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