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고 살을 뺀다는 것이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도망치는 것인지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인지 자주 헷갈린다. 남의 눈에 들려고 하는 건지 나에게 나를 잘 보이기 위한 건지도 잘 모르겠는 때가 많다. 하긴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도 어차피 타인의 눈을 거치기 마련이다. ‘내 안에 너 있다‘는 대사처럼 타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내 안에 존재한다. 나와 타자의 경계는 명확히 그을 수 없다.
지름신 때문에 행거에 걸린 옷이 늘어날 때마다 나는 누구의 어떤 눈으로 나를 보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자기답다‘라고 한다. 지름신에 들려 산 내 옷, 저 옷들은 나다운 것일까? - P26

다시 운동을 시작한 날, 막 입학한 새내기의 설렘으로 체육관에 들어섰다. 높은 사다리 위에 올라 전구를 갈고 있던 나이스가 활짝 웃었다. 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고 했다. 당분간은 살살 걷기만 하라고도 했다. 나는 트레드밀을 시속 3.5킬로미터로 걷는 달팽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느려도 나는 움직이고 있다.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분홍 신을 신고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처럼, 운동화를 신고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몸에 새긴다! 이 말이 참 좋다. - P34

나는 이걸 내 방식으로 이해했다. 글을 쓸 때 ‘은/는, 이/가‘라는 조사 중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 문장의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조사를 잘못 썼을 때는 내가 전달하려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 전달되곤 한다. 나는 ‘지금 취하려는 자세가 조사 고르기처럼 까다로운 것 같다‘고 했다. 나이스는 맞장구쳤다. "맞아요. 글 쓸 때 조사가 중요한 것처럼 운동할 때도 조사를 중요하게 여기세요." - P51

아틀라스처럼 일로 힘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처럼 쓰는 힘도 필요하다. 일이 아닌 데다 에너지를 들이는 것,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리켜 흔히 사치라 한다. 그러나 어디 삶이 필수품만으로 이루어지는가. 살아가려면 간혹이라도 사치품이 필요하다. 여유와 틈을 ‘사치‘라고 낙인찍은 건 아닐까. 그렇게 사치라는 말은 ‘분수를 지켜라‘ 하는 말로도 바뀌어 우리 삶을 단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요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힘을 쓰는 일이 사치라면, 난 내 힘을 하늘을 들어 올리는 데 쓰는 사치를 마음껏 부릴 것이다. - P60

그런데 그 지루함이 반전이 되기도 한다. 나는 운동신경이 아주 둔한 사람이라 할 줄 아는 운동이라곤 하나도 없다. 미련할 정도로 꾸준히 버티는 건 잘한다. 느리더라도 자기 속도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갈 수 있다는 데 피트니스의 매력이 있다. "어리석은 자가 그 어리석음을 고집하다 보면 현명해진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말이다. - P81

게다가 나이스에게는 열정이 넘친다. 나이스는 이 운동과 이 일이 너무나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던 사람이다. 열정을 연기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표정, 말투였다. 나에게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데 ‘열정노동‘이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이 세상은 자기 일을 아끼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로 돌아가야 건강하다. 열정에 화답하는 건 응원이어야 한다. 그러나 열정에 초를 뿌리기 일쑤다. ‘네가 좋아서 하는 거잖아.‘ ‘네가 원하는 일 하는데 이 정도도 못 버텨?‘ 이런 말들로 악조건을 정당화한다. 이 조건을 달게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버티지 못하면 내 열정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도록, 자기를 학대하도록 내몰기도 한다. 그게 열정노동이다. 버티다보면 괜찮아질까? 감정노동과 열정노동이 과연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근육을 만들어주는 것일까? - P90

피곤에도 맥락이 있다. 내 몸에 안개처럼 뿌연 거미줄이 둘러쳐져 있고, 거기 붙잡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릴수록 더 묶이는 것 같은 기분이 있다. 땅 밑에서 무서운 손이 끌어당기는 기분 같기도 하다. 사우나에서 땀을 빼거나 아무리 오래 깊이 잠을 자도 이런 피곤함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이런 피로가 아니라 노곤하게 노을처럼 스미는 피곤도 있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피곤의 맥락이 달라지니 감정 조절이 쉬워졌다. 내가 뾰족하지 않고 너그러워지면 주변 사람들도 악마에서 요정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악마를 만난다면, 튕기고 반박할 기운이 생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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