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가 자살하기 전 남편 레너드 울프에게 남긴 유서에서 발췌한 이 구절을 보면, 따뜻한 보호자로 칭송받다가 어느 순간 억압적인 간수라고 비방당하기를 반복한 남자와 그녀가 공유한 둘만의 깊은 교감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아내의 천부적인 재능을 만개시키기 위해 레너드가 성인聖人 수준으로 헌신하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더라면, 블룸즈버리 그룹의 대사제로 불린 버지니아 울프는 이 정도로 오래 버티며 후대에 길이 남을 모더니즘적인 작품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면, 그건 당신이었을 거예요...... 우리 둘은 세상 어느 커플보다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남편에게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서 버지니아 울프는 옷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워넣고 우즈강으로 휘적휘적 걸어들어갔다. 30년 가까이 이어온 결혼생활에서 레너드는 셀 수 없이 여러 번 신경발작을 일으킨 아내를 매번 극진히 보살펴 회복시켰고, 그중 몇 번은 상태가 너무 심각해 간호사를 네 명이나 고용해야 했다. 그러나 레너드의 그 끝없이 인내하는 사랑과 지칠 줄 모르는 보살핌도 버지니아의 자기파괴적 충동을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략)
악화되는 병세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극치를 느낀 순간도 간간이 있었고, 레너드와 런던에 가서 행복한 하루를 보낸 뒤에는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며 나란히 광장을 산책했다―25년이 지났는데도 서로 떨어져 있기가 힘들다. 누군가가 원하는 존재,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건 이토록 기쁜 일이구나. 우리의 결혼생활은 이보다 온전할 수 없다." 그러나 남편과 나눈 깊은 사랑―그녀에게는 마지막 방어선과 같았던 그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버지니아는 계속 싸워나갈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1941년 3월의 차가운 어느 날, 버지니아는 레너드에게 편지를 써놓고 혼자 집을 나섰다.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그 끔찍한 시간이 또 한번 닥치면 우리는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요. 나는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거예요.

이렇게 끼적인 편지를 남기고 얼마 후, 그녀의 산책용 지팡이가 우즈강 강둑에서 발견되었다. 돌덩이의 무게로 가라앉은 그녀의 사체는 3주 후에나 떠올랐다. 그런 크나큰 비극이 닥칠 줄은 전혀 예상 못하고 있다가 크게 충격을 받은 레너드는, 아내가 영영 가버린 것을 깨닫고 슬픔에 잠겨 이렇게 썼다. "V가 오두막 저편에서 나타나 정원을 가로질러 오는 일은 없으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그쪽만 바라본다. 그녀가 물에 빠져 죽은 걸 알면서도, 언제든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서 귀를 쫑긋 기울인다. 이것이 마지막 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다음 장으로 넘기려고 한다."



*


나는 버지니아와 레너드, 두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쓰여 다음 장으로 넘기는데 한참이 걸렸다. 

버지니아에게 레너드는 삶을 붙드는 유일한 닻이었지만, 영원히 붙들지는 못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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