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마코토는 이곳에서 날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전기톱을 잡았을까, 라고 기도는 상상에 잠겼다.

한 그루의 삼나무가 성장하는 50년이라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거기서 그다음 또 다른 50년이라는, 조금 전에 이토가 말해준 그런 이야기를 하라 마코토도 의식했을까. 그 나무를 심은 것은 몇 대 이전의 사람이고, 그가 심은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다시 몇 대 후의 누군가다.

그러한 시간의 한복판에서 그는 출생 후 이곳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어떤 식으로 회상했을까. 아니, 그의 마음속을 차지한 것은 단순히 얼른 일을 끝내고 리에와 두 아이를 보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 그도 온종일 혹사한 몸을 잠자리에 눕히고 곁의 두 아이를 재우면서 자신은 지금 행복하다, 라고 진심으로 곱씹었던 것은 아닐까.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불행이 심상치 않았던 만큼 그건 강렬한 실감이었으리라.

-히라노 게이치로, 한 남자 p.362



영화에서 생략된 키도의 서사를 좀 더 파보고 싶어서 원작소설을 빌려 읽었다.

그런데 나는 소설에서도 저 남자의 이야기가 자꾸 마음이 쓰였다.

두 번의 자살 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기 위해 다시 살았던 남자.

소설을 읽으니 키도가 왜 그리도 저 남자의 그늘을 읽으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지 않고서는 결코 지날 수 없는 계절이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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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가락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곤 강물 속으로 흘러갔다. 고향 생각을 하는 이와 지나온 뱃길을 돌이켜 보는 이, 앞으로 어찌 될지 전혀 가늠할 길 없는 우리 인생의 여정까지… 저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모두의 마음속에 바라는 것은 하나일 것이다. 나의 조국, 조선을 당당하게 우리의 손으로 찾아내는 것. 일본의 어거지 같은 강점에서 고향을 되찾아 자랑스레 고향에서 살아 나가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되어 버린 일, 조국에서 살기 위해서 먼 타국을 전전하면서도 우리에겐 그 소망과 과제가 있기에 고개를 들고 산다.

나라 잃은 민족이 아니라 나라를 되찾으려는 열정의 민족으로 살고 있기에 낯선 중국인의 눈짓 한번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p.52-53)

제시가 언젠가 인생의 좌절에 부딪힐 때 우리에게 제시가 지녔던 소중한 의미를 기억해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언젠가 제시가 이 일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제시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부모된 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를 느낄 수 있기 바란다. 그리고 그 기쁨을 계속 전하는 사람이 되어 가기 바란다. 제시의 작은 몸짓과 표정이 우리에게 주었던 그 의미만큼 제시 자신의 행동과 표정이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무한한 의미를 깨닫기 바란다.

(p.89-90)

달음질을 하기 시작하면서 넘어져서 다치기가 예사다. 넘어지고 울다가, 다시 뛰고 노래하고, 넘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뛰놀기를 시작한다. 지치지도 않는다. 넘어지는 걸 겁내하지도 않고, 넘어졌다고 낙심하지도 않는다. 한 번 울고 나면 그뿐이다. 그리고 다시 걷고 뛴다. 지금 우리 동포들에게도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면서 제시는 튼튼한 다리와 건강한 몸과 맘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도 잘 놀고 있다.

(p.101)

할아버지의 유언 중 일부

”과거를 회고하건대, 좋게 말해서 나의 인생은 국가와 민족이 사람다운 생을 살기 위하여 희생된 인생 중 일 인이었다고 하련다. 이 몸은 이제 세상사와 멀리 하였거니와 생전 함께한 가족은 부디 명심하여 고인의 미진한 애국애족정신, 즉 전체 동포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시에 개인의 일도 잊지 말아라. 개인은 전체의 일분자요, 일분자가 모여 대체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비겁은 취하지 말고, 절대 자존심을 굽히지 말아라.”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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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아, 너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 자유가 있단다." 당신의 말이 내게 던졌던 파문.

고백하자면 나는 그후로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주문처럼 당신의 말을 떠올리곤 했어요.

-백수린, 여름의 빌라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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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런던국제도서전의 어느 장소에서 이승우 소설가와 제가 낭독회를 했는데, 사회자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당신에게 쓰기를 멈추라고 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때 저는 뭐라고 대답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이승우 소설가는 대답했습니다."읽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대답한 것은 '문학 읽기'와 '문학 쓰기'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는 아마도 문학 읽기로 다시 가야겠습니다. 다시 사막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경험을 해야겠습니다.

김혜순의 말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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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행성세계에서 겪은 지난 일들 또한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퇴적시킨 말과 행동과 기억들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의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시간과 함께 깎이고 잘려나가 소멸하는 게 필연적인 운명일 수도 있겠다. 내 기억뿐 아니라 이은하, 네 기억과 삶 역시 해부되고 빛바래고 덧칠되어 가까운 미래엔 전혀 다른 모습의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부딪힌 일들이 전부 아무 의미 없는 난수 암호에 불과하고, 내 마지막 임무는 운 나쁜 사고였을 뿐이며, ‘비파’에게 이양한 긴급명령은 사실 해마가 관여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모든 게 시시한 장난과 다름없고 그저 상처받은 인간과 미쳐가는 해마가 작당해 벌인 실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문목하 장편소설, 유령해마 p.349-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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