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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34세쯤 되어 뵈는 여성만 책을 보고 있었다. 시집 같기도 했다. 저 책이 뭘까? 궁금해졌다.

내가 시인이라서가 아니라, 인생을 알려는 열정과

생의 깊이 추구가 중요하다고 여겨선지 독서하는 사람을 남달리 바라보곤 한다.

거기에 시 읽는 이들은 은은한 향기까지 더하여 예쁜 펜이라도 사 주고 싶어진다.
누구라도 시 읽는 사람은 생각하며 살기에 아름답고, 추구하며 살기에 안심된다.
그 30대 여성 너머 50대 여성 둘은 옷 광고 카탈로그를 보고 있었다. 

"이 코트는 이 색하고 보라색 두 개 있어?" 하며 옷을 고르고 있었다.

도무지 시 한 줄 읽으실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사람의 일은 모른다.

지금 시를 안 읽더라도 어떤 계기가 되어 시를 좋아할지도 모르니까.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란 말을 하면서 말이다.

(p.10-11)



시를 읽는 사람들은 오늘 하루 더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시가 더없이 좋아져서 시를 전도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이 시집을 다 읽고 틀림없이 그렇게 되는 누군가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만큼 이 시집을 위해 편집자와 나는 1년 넘게 좋은 시를 모아 왔으니까. (p.16)



*


나 역시 시를 찾아 읽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떤 계기가 되어 시가 좋아진 사람이라 위 구절에 공감했다.

시를 전도하고 있는 사람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고. 이 책에 담긴 시들도 참 좋다.

한 편 한 편 정성을 담아 고른 느낌이 가득하고, 무엇보다 책 제목이 참 예쁘다.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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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정식 시집을 낸다

달력들의 전투대형은 단순하다

7열 횡대,

붉거나 검은 전투복

지피지기여도 백전백패

이 이상한 전투가 아름답기도 한 것은

내 육체의 텃밭인 턱에

수염이 끈덕지게 자라듯

내 마음의 비탈이 차차

늙어왔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리 아파 다리 펴고 싶은 의자에

다리 아파 앉고 싶은 사람처럼

염치없이

시 의자에 푹신 앉아보았으나

시를 앉혀보지는 못한 미안함 마음 절감하며

삐꺼덕,

시집을 엮는다

 

 

강화에서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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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시드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썩는 것과 마르는 것. 아름다움이 절정을 다한 뒤에도 물기가 남아 있으면 썩기 시작한다. 그것이 꽃이든, 음식이든, 영혼이든. 그러나 썩기 전에 스스로 물기를 줄여나가면 적어도 아름다움의 기억은 보존할 수 있다. 이처럼 건조의 방식은 죽음이 미구에 닥치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선취함으로써 영속성을 얻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게 아름다움은 순간적인 매혹의 대상이 아니다. 어서 네 안의 물기를 말려버리라고, 피와 살을 증발시키라고. 어딘가로 달아나라고, 늘 방부제나 건조제를 서둘러 찾았을 뿐이다. 마른 열매와도 같은 정신에 하루 빨리 도달하려고 젊음을 앞당겨 반납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책상 위의 마른 석류를 들여다보니 주변에 검붉은 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몇 년째 썩지 않는 석류를 보며 '불멸'이라는 말을 떠올리기까지 했는데, 그 단단한 껍질을 뚫고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아, 육체란 얼마나 덧나기 쉬운 것인가. 견고해 보이는 고요와 평화 속에는 얼마나 많은 관능의 벌레들이 오글거리고 있는 것인가. 석류를 손에 들어보니 어느새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삶이란 완벽한 진공 포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차라리 안도했다. 그리고 내 풍장의 습관도 앞으로 몇 번이고 생명의 기습 앞에 무릎 꿇어야 하리라는 걸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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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내 삶이 엉터리라는 것뿐만 아니라,

너의 삶이 엉터리라는 것도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너라도 이 경계를 넘어가주었으면.

그래서 적어도 도달해야 할 무엇이 있다는,

혹은 누군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 어떤 존재 증명과 같은 것이 이루어지길

사람들은 왜 내겐 들을 수 있는 귀만을 허락했냐고

신에게 한바탕 퍼붓는 살리에르의 한탄과 비애를 전하지만,

사실 얼마나 배부른 소린가?

모차르트와 동시대인이라는 거, 그거 축복 아닐까?

돌이 아니라, 쏟아지는 별들에 맞아 죽을 수 있는 행복.

그건 그냥 전설일 뿐인가?

친구, 정말 끝까지 가보자.

우리가 비록 서로를 의심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도록 증오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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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해둔 '김영하 산문 : 보다'가 도착했다기에 시집 12권 중 3권의 시집과 함께 빌려왔습니다 :)


그리고 오늘 배송 온 <미움받을 용기>까지.

얼마나 빨리 받아서 읽겠다고 분리 배송 시킨건지T_T


일단 읽고 있는 <그것도 괜찮겠네>를 마저 읽고 한 권 한 권 읽어봐야겠습니다.


brown_and_con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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