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구판절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러니까 그녀가 아프던 동안, 내가 간절히 바랐던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그러나 이제 성취될 수가 없다. 만일 그것들이 성취된다면, 그녀의 죽음은, 이 욕구들을 실현시켜주는 만족스러운 일이 되고 마니까. -28쪽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33쪽

나의 어떤 부분들은 절망으로 잠들 줄 모른다 ; 그런데 그와 동시에 나의 또 다른 부분은 생각을 하면서 끊임없이 하잘것없는 일들을 정리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건 병이라는 느낌. -35쪽

아주 자주 나를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것 : 딱딱하게 굳어버린 슬픔 - 경화증에 걸린 것처럼.
[경화증에 걸린 슬픔은 깊이가 없어진 슬픔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표면만이 있는 슬픔-아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단단하게 둘러싸서 덮고 있는 각질층들 : 그런 각질층들의 커다란 덩어리들]-38쪽

- 지금 내게 용기는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51쪽

완전히 망가져버린 느낌 또는 불편한 느낌
그러다가 때때로 발작처럼 갑작스럽게 습격하는 활기-61쪽

슬픔은 잔인한 영역이다. 그 안에서 나는 불안마저 느끼지 못한다. -64쪽

슬픔을 내보이지 말기 (혹은 적어도 슬픔에 흔들리지 않기). 그 대신 슬픔 안에 내포되어 있는 사랑의 관계와 그것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거리낌없이 주장하기. -65쪽

"어딜 가나 지루할 뿐"-73쪽

정신분석학적인 슬픔은 결국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변증법적으로 느슨해지고, 조금씩 사라지면서 마침내 "화해에 이른다" 하지만 나의 슬픔은 그렇게 즉시 정화되지 않는다. 나의 슬픔은, 그와는 반대로, 물러가지 않는다. (중략)
나의 슬픔이 수렴되는 것, 일반화되는 것을 나는 참을 수 없다. 그건 마치 사람들이 나의 슬픔을 훔쳐 가버리는 것 같아서다. -81쪽

애도: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90쪽

나는 외롭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외로움이 필요하다. -101쪽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123쪽

마망의 죽음에 대한 생각 : 갑작스러운 그리고 금방 사라져버리는 빛의 깜빡임, 아주 빠르게 밝았다가 어두워지는 빛, 고통스러운,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찌름, 이 찌름이 결정적으로 알려주는 궁극적인 것의 자명함. -126쪽

이런 애도의 슬픔은 래디컬하게 그러니까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 길들이는 일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의식이 예전에는 그저 남에게서 빌려온 (졸렬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철학에서 얻어낸) 것이었다면, 지금 그것은 나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129쪽

이제 나는 안다. 노이로제를 안 갖는 일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옳은 일이 아니라는 걸. -138쪽

사람들은 슬픔의 이유를 아주 당연한 것처럼 일상적인 현상들로부터 찾으려고 하는 광적인 경향성을 갖고 있다. -155쪽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중략) 우리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65쪽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172쪽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잘 측정된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기, 혼자 있음에 허락되지 않는 세상(나의 일상이 그런 세상이다)에서 벗어나 있기다. -174쪽

내가 거주하는 곳은 나의 무거운 마음 안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행복하다.

무거운 마음 안에서 사는 걸 방해하는 모든 일을 견딜 수가 없다. -183쪽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견딜 수 있는 건, 그 무거운 마음을 어느 정도는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닌 채로) 입으로 발설하고, 문장들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악귀를 추방하는 능력, 이 통합의 힘을 내게 부여하는 건 그동안 내가 쌓아온 교양, 글쓰기에 대한 나의 즐거움이다. : 나는 통합한다. 언어를 수행하면서. -185쪽

애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선은 급성의 나르시시즘이 뒤를 잇는다 : 일단은 병으로부터, 간호로부터 벗어나게 되니까.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차츰 빛이 바래고, 절망감이 점점 확산되다가, 나르시시즘은 사라지고 가엾은 에고이즘, 너그러움이 없어진 에고이즘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89쪽

이 두려움을 쫓아버리자면 두려움이 있는 바로 그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214쪽

나를 마망으로붜 떼어놓는 것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나의 슬픔으로부터 떼어놓는 것), 그것은 시간의 지층이다 (점점 더 자라나는, 점점 더 두꺼워가는). 그녀의 죽음 이후 나는 이 시간의 지층 안에서 그녀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었고, 그녀가 살았던 아파트에서 살고 일하고 외출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이리라. -238쪽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각오가 되어 있고 "기념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 그러나 마망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견딜 수가 없다(그건 아마도 그녀가 글을 쓴 적이 없고, 그래서 내가 없으면 그녀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244쪽

생활의 예의감각들:
자기의 일들을 스스로 처리하기, 남들이 대신하게 만들지 않기
생활을 자기 힘으로 꾸려나가기
마음의 연대 맺기-263쪽

사랑의 대상은 바르트에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이 상실되었으므로 그 상실이 남긴 부재의 공간 또한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패인 고랑'으로만 남는다. -2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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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3-01-09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려서 내일 계속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웽스북스 2013-01-09 23:55   좋아요 0 | URL
바로 쓰러져 잤어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13-01-0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 잠 깼으면 이제 마저 쓰세요...!

웽스북스 2013-01-09 23:56   좋아요 0 | URL
잠깨고 저거 쓸 시간이 어딨나효. 회사 가기도 빠듯해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