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다음날 친구는 대한문으로 달려갔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밥차 봉사를 해야겠다며. 대선 결과에 절망하셨겠지만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출근을 해야하는 관계로 함께 가지 못했다. 그러다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대한문 앞에서 크리스마스 예배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적어도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3년 전에는 남일당 앞에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렸었다. 시대의 가장 아픈 곳을 잊지 않고, 그 곳에서의 예배를 기획해주는 이가 있어 감사하다. 나는 기꺼이 머릿수 하나를 보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
정작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의 크리스마스 예배는 늦잠을 핑계로 땡땡이치고, 대한문으로 달려갔다. 성탄의 의미를 잊지 않고 이 자리를 찾은 사람이 오백명을 좀 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정말 추웠다. 사진 속 사람들의 자세만 봐도 오늘이 얼마나 추웠는지가 보일 거다. 이런 추위에 무방비상태로 이렇게 오래도록 떨었던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몸과 마음이 저절로 붕괴되는 추위였다. 나름 따뜻하게 입고 나간다고 목도리도 칭칭 감고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고 털부츠도 신었으나 역부족.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그야말로 공포였고, 나는 고작 30분 만에 추위 앞에 넉다운됐다. 발이 너무 시려워서 발가락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나 수면양말이랑 핫팩좀 사러 갔다올게" 라고 친구에게 말하고 제일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가 정말 간절한 얼굴로 "수면양말이나 핫팩 있나요?" 라고 물었다. "수면양말은 없고 핫팩은 다 떨어졌습니다." 라는 말이 들려왔으나 절망할 여유가 없었다. 지체하지 않고 큰길 건너편 올리브영으로 다시 달렸다. 달리는 동안은 발이 시렵지 않았다. 핫팩 한세트와 수면 양말을 샀다. "저 구석에서 좀 신어도 될까요?" 추위 앞에 부끄러움이 웬말이냐. 나는 나 하나의 온기를 위해 발바닥에 핫팩을 붙이고 그 위로 수면양말을 신고 다시 부츠를 신고 대한문으로 달려갔다.
오늘 새롭게 깨닫게 된 것. 아. 언발에는 핫팩을 붙여도 소용이 없구나. 땅도 차고, 발도 찬 상태에서,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져 있는 핫팩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온기도 누군가 전할 수 있어야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거구나. 결국 핫팩은 땅과 나의 거리를 1mm 띄웠을 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계속 시린 발을 어쩔 줄 몰라하며 그렇게 두시간동안 바깥에서 예배를 드렸다.
결국 예배보다 뼈에 남은 건 이 추위다. 추위로부터 피할 길이 없었던 그 두시간을 "이 시간이 끝나면 따뜻한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자, 따뜻한 저녁을 먹자" 라는 희망으로 버텼다. 집에 가면 보일러를 올리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매트에 폭 들어가 몸을 녹여야지, 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희망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을 내내 떠올렸다. 스물 여섯겹의 옷을 껴입고, 철탑위에서 농성하는 이들은 이런 작은 희망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희망없이 이 추위를 견뎌야 한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내겐 단 두시간의, 끝이 보이는 추위였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온기조차 없이 추위 속에서 싸워야 하는 이들. 그들에게 이 겨울은 얼마나 가혹할까.
나는 오늘 그 곳에서 단 두시간의 추위도 견디지 못한 패잔병이고, 루저였다. 예배를 마치기가 무섭게 카페로 뛰어가 카푸치노 한잔으로 추위를 삭이고, 식당의 따뜻한 온돌에서 몸을 녹이고 따뜻한 저녁을 먹고, 뜨거운 커피 한잔에 달콤한 도넛을 입에 물고 행복해하는. 그런 주제에 집에 오는 길에는 진이 빠지기까지 했다. 이 추위를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지독하게 추운 크리스마스였다.
얼마전, 광화문의 김소연 후보의 유세 차량에서는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 작고 고요한 노래를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선곡했을까.
http://www.youtube.com/watch?v=pjbASf0vSwg
너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쓸데없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들을 같이 볼 수만 있다면 좋겠네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
너의 미소를 오늘도 볼 수가 있다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수 있다면 좋겠네
네가 꿈을 계속 꾼다면 좋겠네 황당한 꿈이라고 해도 꿀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나는 얼굴은 모른다 하여도 그래도 같이 달콤한 꿈을 꾼다면 좋겠네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기를
지금 나는 먼 하늘 아래 있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네가 조금 더 행복하길
지금 나는 먼 하늘 아래 있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네가 조금 더 행복하길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