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책을 잠깐 보다가 트위터에서 뉴스타파 업데이트 소식을 접하고 뉴스타파를 봤다 (라는 문장까지 쓰고 나니, 십오년 전이었으면 무슨 말인지도 몰랐을 말들이겠지. 트위터는 무엇이며 왜 뉴스를 업데이트 소식을 듣고 보느냐. 무의식 중에 보낸 평범한 아침이 생각해보니 첨단돋는 21세기 웬디씨의 아침이었구나 ㅎ) 매우 오랜만에 뉴스타파를 챙겨본 것이었는데, 광우병 발생과 정부의 약속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 주의 메인 뉴스로 잡혀 있었다. 그리고, 김미화가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때문에 징계를 받았던 PD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야근을 마치고 요가를 갈 생각이었으나, 요가에 갈 시간을 놓쳐 뭔가 억울한 마음에 집까지 걸어갔다. 무엇을 들을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나는 꼽사리다를 들었다. 나는 꼽사리다는 선대인과 우석훈과 김미화가 함께 하는 경제 관련 방송인데, 문외한인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이 많다. 빗속을 투덕 투덕 걸으며 내려오는데, 오랜만에 셋의 그 어색한 "와아....." 소리가 들려 나는 조금 웃었다.
아래는 김미화의 말
- 이렇게 규제가 풀리면 정말 일부만 좋아져? 다 좋아진다고 생각하니까 사람들이 찍어준 거 아냐. 이렇게 규제를 풀어준다는데...
- 봐봐, 지금 집이 안팔려, 근데 이렇게 깎아주면 사람들이 안팔리는 우리 집을 사줘. 얼마나 좋아?
- 근데 사람들은 지금 부동산 붐이 일어나기 바라잖아. 내 집값이 오를 수 있는 기대감도 있고..
- 살 사람은 그렇다 쳐도 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러면 팔 사람들의 기대감이 채워지는 거 아냐... (팔 사람들은 주택값은 내려야죠) 손해보는데?
- 그럼 우리는 어떡해. 하우스 푸어같은 거 탈출할 수 있어?
- 그건 지금 경제학자니까 냉정하게 얘기하는 거고, 사람들은 내 집 내 재산 올라가는 거 중요해. 근데 집값 떨어지는 거 감수하세요. 이건 너무 냉정하게 느껴지는 말이야. 가슴이 아프잖아...
나는 이 부분을 들으며 김미화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꼽사리다, 는 처음에 녹음을 했다가 너무 재미가 없고 어려워 두 번이나 재녹음을 했다고 하던데, 나는 여기에 김미화가 들어간 건 정말 멋진 한 수라는 생각이다. 이런 바보스러운 물음들을 들으며, 누가 그녀를 바보라고 생각하겠는가. 물론 이런 부분이 너무 억지스럽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그녀가 던지는 질문들은 대부분의 필부필부들이 가지고 있는, 차마 부끄러워서 하지 못하거나, 혹은 속물 소리를 감수하고 하는 평범하고 당연한 질문들이기에, 억지스럽고 바보스러워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물음들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질문들이 있어서, 두 경제학자들은 계속 눈높이를 낮출 수 있고, 그들에게는 너무 어이없다고 생각해서 굳이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들까지 이야기해줄 수가 있게 된다. 누군들, 수많은 사람들이 듣는 방송에 나와 똑똑하고 멋져보이지 않고 싶겠는가. 그런데, 김미화는 그 욕심을 버리고, 자기 자리를 명확하게 하고, 거기에 충실한다. 그리고 느릿느릿, 바보같은 질문들을 계속 던진다. 두 경제학자가 답답해하면서 주는 면박에도 꿋꿋하게 제 목소리로 멍청한 사람들의 입이 되어 말한다. 그게 김미화의 힘이다.
목소리로만 들어서, 김미화의 얼굴을 본 건 오랜만이었다. 뉴스타파를 통해서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이 참 고맙고 예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손석희의 시선 집중>을 들으면 찬물로 머리 감듯 정신이 번쩍 난다. '시사의 신' 앞에 뉴스들이 줄을 서서 품평(?)을 받는 광경이 떠오른다. 인터뷰 대상의 정파를 막론한 손석희의 공평한 '쌀쌀맞음'은 밥벌이 전장으로 나서는 아침 청취자에게 적당한 긴장을 선사한다. 반면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하루치의 노동과 실망을 감당하느라 피곤해진 해질녘의 귀에 살갑게 달라붙는다. 황당무계한 뉴스의 자초지종을 헤아리고 싶지만 생각할 기운조차 달리는 시간, 그래도 피해를 입은 이웃이 우선 안타까운 우리 대신 김미화는 전문가들에게 재우쳐 묻는다. "아니,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대요?" (중략)
- 김미화씨도 5년쯤 진행을 하다 보니 식견이 쌓였잖아요? "이런 견해도 있던데요"라는 인용 대신 '나'를 주어로 반론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 않습니까?
어느 부분에서는 의견을 밝히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해서 패널의 대응을 청취자에게 전달하는 게 더 좋은 방송이라고 생각해요. 또 오늘 우리 프로그램을 처음 듣는 청취자도 있을테니, 제가 아는 부분을 모두들 안다고 치면 무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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