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어 메일을 보낸지 2주쯤 지났나. 제자들 부르시는 그 글에 콕 찝어 내 이름을 얘기만 안하셨어도 갈까말까를 엄청 고민했을 나를 이미 다 파악하고 계셨을 선생님이기에 그렇게 대놓고 불러주심이 또 감사했다. 조금은 상기된 마음으로 찾아간 대학로. 십여명의 학생들과 선생님. '더 큰 방은 없나요?'라고 민토에서 항의하고 있는 내 뒤로 선생님이 스쳐지나가신다. 으이그. 선아야. 니가 나한테 연락한게 이게 도대체 몇년만이냐. 4년입니다. 그걸 또 세고 있었냐. 아. 그러게요. (당황) 사실 지금 찍은 건데. 4년 맞는 것 같습니다. 하하. 80먹은 노인네한테 환갑먹는 자식은 여전히 아이이듯, 나도 아무리 나이를 서른씩이나 먹어도, 선생님 앞에서는 스물 넷 그시절이다. 나는 그때보다 많이 당당해졌고, 사람들 앞에서 자연스러운 편인데도, 여전히 그렇다. 물론 날 보는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나 애보듯 하시는지. 하하.
여러가지 이유로 다들 선생님을 뵌 건 오랜만이었을게다. 그간 살면서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았을 거다.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나는 사실 딱히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인데, 저런 것들을 물어보는구나 싶어 좀 놀랍기도 하고. 선생님의 강의를 녹음한 파일이 졸업생들 사이에 돌고 있다는 사실 역시 새롭고 놀랍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선생님께도 개인적이고 사변적인 것들만 궁금한 사람인지라, 그래, 너는 질문 없냐, 라는 질문에, '요즘 선생님의 즐거움은 뭔가요?'
이런저런 해주시는 얘기들에, 역시나 나는 위로를 얻는다. 그치. 내가 제일 처음으로 크게 영향 받았던 분이 역시 저분이었지. 다시 한 번 실감도 하고. 그 매이지 않는 자유한 사고. 넓고 다양한 것들을 받아들일 줄 아는 넓은 품,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삶과 학식의 깊이. 그럼에도 절대 놓지 않는 기본. 여전히 하루에 한장 이상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음. 그것이 선생님이 가지신 힘일게다.
선생님, 하나도 늙지 않으셨어요. 그게 말이되냐. 니가 서른살이 되서 날 찾아왔는데. 그러니까요. 말이 안돼요. 그러니까 세월은 참 불공평하게 흘렀나봐요. 정말 그렇다. 선생님이 늙으셨으면 맘껏 속상해할 각오도 하고 있었는데 5년의 세월은 저분을 비껴갔나보다. 5년전 모습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구나. 어쩌면 그래서, 나 역시 얼른 스물 네살 적 그 때의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정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니가 나를 또 언제 보겠냐. 응? 또 5년뒤, 10년뒤에 올테냐? 서른됐다고 메일썼으니, 이제 마흔 되서나 연락할테냐? 아니요. 그럼 언제 볼래. 음. 다음달에 또 뵐까요? 흐흐. 아. 봄이 되면 학교에 한 번 갈까봐요. 점심 사주세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봄에 학교에 가게 되면 선생님 점심 한끼 대접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다. 사실 현재 선생님을 향한 나의 마음은 스물 넷 그 때처럼 절대적인 그 무엇은 아니다. 나도 그간 많은 것을 보았고, 경험했고, 배웠으니까. 하지만 선생님은 내게 항상 첫마음같다. 그리하여 더욱 고맙고, 그리하여 더욱 잊을 수도, 놓아버릴 수도 없는. 이제 귀찮을 정도로 자주 연락드리고, 봄이 오면 훌쩍 한 번 가보기도 할까보다. 정말. 그럴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