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모든 책을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김연수가 좋은 건
그의 글들을 읽을 때마다 계속 나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거다.

다시 꺼내든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여전히 나는 울컹 울컹 하고 있는 중이다..


   

 

그 때 도서관에서 아빠는 뭘 하셨던 거에요? 왜 그렇게 신문만 들여다보신 거에요?
그게 다 기억이 나니?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어떻게 기억나지 않을 수가 있으까. 그 여름과 플라타너스와 매미 소리와 발을 굴릴 때마다 마루에서 피어나던 마른 장작 냄새와 신문 철을 넘기던 아버지의 굳은 표정이 (중략)
"그러니까, 용서하려고 그랬단 말이다. 그 사람들을 용서하려고 그해 5월 신문만 들여다봤어. 매일 같은 신문을... 어린이 세계 문학을 읽는 너와 나란히 앉아서 말이다"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인생의 본 뜻이었다.

뉴욕제과점은 우리 삼남매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필요한 돈과 어머니 수술비와 병원비와 약값만을 만들어내고는 그 생명을 마감할 처지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팔지 못해서 상한 빵들을 검은색 봉투에 넣어 쓰레기와 함께 내다버리고는 했다. 예전에는 막내아들에게도 빵을 주지 않던 분이었는데. 기레빠시도 버리지 않고 다 먹었던 분이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은 매우 처참했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었던가? 어머니의 자존심은 빵을 팔지 못해서 버린다는 사실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닐봉투에 꽁꽁담아서 버리는 정도로만 남아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는 동안 뉴욕제과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뉴욕제과점이 내게 만들어준 추억으로 나는 살아가는 셈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뭔가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 괴로운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없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삶에서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엇다는 사실을. 그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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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3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4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8-12-24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자식을 낳는 이유 중의 하나가 죽으면서 내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분신이 여전히 살아숨쉰다는 안도감을 위해서라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요.
추억으로 누군가에게 남을 수 있으려면, 부지런해야겠군요 ^^
뉴욕제과, 독일빵집, 빠리제과 ㅋㅋㅋ 예전엔 이런 이름의 베이커리가 많았지요. 웬디양님도 아시나요?

웽스북스 2008-12-26 03:26   좋아요 0 | URL
일단 hnine님은 든든하고도 똘똘한 분신이 있지 않으신가요? ^_^

추억의 빵집
뉴욕제과 (아직도 ABC라는 알파벳이 붙은채 존재하는 뉴욕제과) 파리제과는 모르겠고, 독일빵집은 몇군데 본것 같아요. 저도 안다구요. ㅎㅎ 그리고 또있어요. 웬디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