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콰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않던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부릴 실마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바쳐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깨끗한 눈짓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가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손발만에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엉터리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같이 그렇게
신이현의 소설을 읽었다.
살면서, 자신이 가장 예쁜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다면
그 시기를 보내는 나의 자세와 마음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게, 미래의 언젠가, 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보다는,
이미 지나버린 언젠가,는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보다는
항상 '지금'이라고 믿는다면
무디고 텅비지 않은 가슴으로,
덜 불행하고, 덜 얼빠지고, 덜 쓸쓸하게 살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