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뮤지컬을 별로 믿지 않는 인간 중 하나이다. 풍족한 볼거리, 들을거리로 빈약한 텍스트를 가리는 뮤지컬이 얼마나 많은가. 하여 나는 비교적 텍스트로 승부하는 정극 쪽에 좀 더 가치를 부여하는 축에 속했고, 오늘 함께 '맨오브라만차'를 본 니나도 비슷한 족속이었다. 나야, 워낙 지금까지 경험해온 뮤지컬의 토양이 척박했기 때문이겠고, 나보다 연극을 서른배쯤 많이 본 니나는 연극의 토양이 풍성했던 데 반해 뮤지컬 쪽에서는 제대로 임자를 못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니까, 나는, 우리의 저 생각이 깨졌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다. 정성화 주연의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를 보면서. 지금까지 봤던 뮤지컬의 대부분이, 노래나 퍼포먼스가 강한 뮤지컬은 스토리가 약하거나, 혹은 다 되는데. 배우가 너무 연기를 못하거나, 하는 등, 뮤지컬에 필요한 요소 중 한두가지가 아쉬운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연기, 배우 실력, 스토리라인, 무대, 등등,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특히 정성화라는 배우를 다시금 보게 됐다. 카이스트 시절 그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었음에도, '개그맨 출신'이라는 이유로 왠지 가볍거나, 웃기는 걸로 승부하거나, 유명세에 기대(뭐, 정성화는 유명 배우는 아니었지만) 실력은 조금 떨어질 것 같다는 편견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주어 고맙다. 내가 이렇게 편견으로 점철된 인간이다. 암튼,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요즘 주변에 거침없이 추천을 날리고 다니는 중. (벌써 몇명 넘어올 것 같다. 나는야, 영업업무는 절대 못하지만 진짜 삶에 있어서는 영업 사원 마인드~)
어떤 글을 보니 이 뮤지컬은 '누군가의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뮤지컬'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공감한다. 물론 한권의 책, 한편의 영화, 하나의 뮤지컬 등으로 자신이 바뀌었다는, 빈약한 삶의 경험과 무게를 가진 사람을 개인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뮤지컬을 보고, 자신의 삶의 자세를 반추해 보거나 다잡지 않는다면, 아마 다음 두 가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매우 '잘' 살고 있거나
매우 '잘~' 살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계속 들었던 물음은 이것이다. 진실을 사는 이에게 현실의 거울을 비추는 것과, 현실을 사는 이에게 진실의 거울을 비추는 것 중, 더 잔인한 것은 어느 쪽일까. 지극히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진실의 거울'이 두려워 계속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진실의 거울을 맞닥뜨려야 할 것인가, 현실의 거울 안쪽에서 달콤한 솜사탕이나 뜯어먹으며 살아갈 것인가. (하하, 그렇다고 내 현실이 꼭 그렇게 달콤한 것만도 아닌데 말이지 -_-)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없던 고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오게 되는 건 이 작품이 가진 힘일 것이다. (하여, 요즘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좀 징징대는 중이다.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지, 하면서...)
생일이 되려면 아직 조금 더 시간이 있지만, 니나는 내게 이 공연을 '생일선물'로 보여줬다. '생일'이 단순히 태어난 날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날,이라는 뜻에서라면, 치열하게 고민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만 같은 무력한 이십대였을지언정, 이십대의 삶을 마무리하고, 삼십대에 접어들고, (아, 징그러) 이제 또, 다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있는 나이기에, 감히 단언컨대, 올해 아마도 이걸 능가하는 선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나보다 며칠 앞서 태어난, 아마도 내년쯤 결혼을 할 것 같은 C에게, 남자친구에게 생일선물로 이 공연을 보여달라고 하라고 마구 강요했다. 이십대의 마지막 생일이자, 결혼하기 전, 마지막 함께 보내는 생일에, 이 공연을 함께 본다는 건 너와 T가 앞으로 함께할 생을 그려 나가고 계획함에 있어서도 매우 소중한 경험이자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 블라, 블라, (아무래도 나는 의미부여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녀는 물론 한마디로 일축했다 - 어쩌지? 선물 벌써 받았는데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