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벤트-2】외계인을 웃겨라 !!!
* 이 글의 제목은 N의 신변보호를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김중혁의 단편소설 나와B의 제목을 한번 따라해보고싶어서 쓴 것입니다.
자기가 고른 음악, 읽고 추천해준 책, 심혈을 기울인 유머 등에 대해 즐겁게 호응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심지어 본인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호감도가 올라가기도 한다. 최근 들어 더욱 친해진 N도 그런 친구이다. 늘 미니홈피 배경음악에 내가 깔아놓은 음악을 들으면 호응을 하는 친구. 심혈을 기울인 그 무언가를 알아봐준다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저께 밤과 어제에 걸쳐서 있었던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아마 어제 업무 시간에 컴퓨터 앞에서 웃음을 참던 내 모습을 우리 H씨가 봤더라면, 선배 정말 실없구나,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정말 실없이도 계속 웃음이 나왔다. 참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가히 바람직하지 않은 것 역시 충분히 추측해볼 수 있었지만, 아, 정말 웃긴 걸 어쩌겠는가.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낮에 루시드폴 버전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를 듣다가 마음이 소슬해져 일랑일랑한 봄노래 접고 가을에 맞는 노래로 미니홈피 배경음악을 바꿔놨다. 그 중 하나가 조관우 버전의 님은 먼 곳에, 였는데 2002년쯤 배경음악으로 구입하고는 나도 워낙 오랜만에 들었다. 이 노래는 도입부 부분을 정말 좋아했다. 잘 듣고 있는데, 갑자기 중간에 나오는 내레이션이 귀에 턱 걸린다.
이제 그만해, 원래 여자란 바람같은 거야.
내것인 줄 알지만 그건 우리 남자들의 착각이지
날 떠나 다른 사람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얼굴로 태어나지
뭐랄까, 갑자기 가사 연관도가 툭 떨어지면서 몰입이 휙! 가시는 듯한 느낌이랄까. 으흠, 없는 게 나을 뻔했다, 라고 생각.
그리고 새벽 2시쯤 지잉 문자가 울렸다, N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나의 배경음악에 반응해주고 있었다. 또 또 또 사람 쥑이는 노래들!! 이라며. ㅎㅎ 그래서 나는 웃으며, 그런데 님은 먼곳에 내레이션이 영 에라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 이후 N의 답장이 없었고, 늦은 시간이어서 나도 곧 잠들었다.
다음날, 오후에 메신저에서 말을 건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는 그녀에게, 어제 그녀가 들었을 루시드폴 버전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도 참 좋지 않느냐고 이야기했고, 그녀는 그 노래는 그렇게 집중하지 못했다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도대체 님은 먼곳에 이영애 내레이션은 언제 나와?
응???????
그녀에게 보낸 문자 (휴대폰 디스플레이 버전) --> 나는 띄어쓰기를 잘 하지 않는다
캬ㅎㅎ님은먼곳에
는내레이션이영에
라더라
그 와중에 오지랖 넓은 그녀는 심지어 웬디가 이영애 오타를 냈네 라고 생각하며 도무지 이영애 부분은 언제 나오는 걸까 초집중을 하며 듣느라 다른 노래를 열심히 듣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토지 캐스팅에 열을 올리고 있던 우리는, 서희 역으로 '젊은시절 이영애'를 캐스팅하는 데 동의한지라, 더욱 내레이션이 영 에라더라,가 내레이션 이영에라더라 로 읽힐 수 밖에 없던 상황.
나는 그만 너무 웃겨서 컴퓨터 앞에서 입술을 앙다물고 푸흣, 푸흣, 푸흐흐흣흐흐흣 하면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고심하며 잠들었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리고 지금 나와 연결된 컴퓨터 앞에서 나랑 똑같이, 하지만 웃음소리 절대 참지 못하고 푸하하하하하하 하고 웃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