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고향인 창녕군 남지읍,
친할머니가 살고 계신 곳임에도 나는 이곳에 몇번 가질 못했다

푸하님이 올려주신 페이퍼에 의하면
창녕군 남지읍에 생태주의자들이 모여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찾아가보고 싶었으나 머물렀던 시간이 1시간이 채 안됐던 관계로
나는 그저 떠올릴 뿐이었다

그 얘기를 떠올리며 차창밖을 보니
아직도 매끈하지 못한 울퉁불퉁한 담이 남아 있고,
잘 조경되지 않은 장미가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논밭에는 곡식이 무르익고, 산등성이는 참 순하고 고운
아빠의 고향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곳은 대운하가 건설될 경우에
물류기지로 쓰이기로 정해진 곳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신다
요즘 대운하 얘기가 쏙 들어간 바람에
스믈스믈 올라가던 땅값이 다시 폭삭 주저앉았지만 하면서 내심 아쉬워하시며

남얘기인 것만 같았던 대운하로 인한 수혜,가
우리집안 얘기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하지만, 역시,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나는 여전히 대운하에 반대한다

(이렇게 쓰고보니 땅이 엄청 많은 것 같지만 얼마 안된다고 들었다 -_-
아, 꼭, 그래서 반대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_-)





그런데 나는 사실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좀 많이 불편했다
시골 냄새도 나고, 할머니댁 화장실은 여전히 푸세식이고
여기저기 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웃고 있어도, 저건 웃는 게 아니었다
가까이 보면 미소가 썩어있다 -_-

이러니, 개발을 반대하는 나는 언제나 이율배반적이다
스스로는 깔끔한 환경에 쏙 얌체같이 가서 살면서
늘 보존되어있는 어딘가는 이 지구를 위하여 보존돼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실은 제일 이기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형제들은 참 우애가 돈독하다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이라 다들 순박해서 그런건지
제 이익 챙기려는 사람 없고
배려할 줄 아는 모습들은 언제나 참 보기 좋다

나는 잘 참여 안하지만, 매년 여름에는 꼭 형제들끼리 휴가를 함께 보낸다
올해는 나도 가볼 생각이다
실은 그간의 시큰둥 모드를 좀 반성

유산 때문에 서로 뒤도 안돌아본다는 집 많다는데
딱히 싸울 유산도 없으니
앞으로도 아빠 형제분들은 계속 사이가 좋을 듯 하다

그리고 그 형제들의 자녀인 우리들도 그런 것들을 보고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나보다

사진 속 똑부러진 아가씨인 사촌동생 민영은
벌써부터 사촌모임을 결성해서는 자신이 총무를 맡겠다고 얘기하고 다닌단다
나는 우리 민영이가 총무를 맡는다면
사촌 모임이 갈라서는 일은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똑부러짐과 싹싹함은 늘 내게
경이롭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내게는 닿을 수 없는 경지이기에 ㅎㅎ

올여름에 그녀가 서울에 오면 무슨 맛있는 걸 사줄까
나는 벌써부터 고민중





가만히 보면 우리들은 다 닮았다
아빠쪽 형상들을 얼굴에 고스란히 담은 채
각기 다른 제 엄마의 모습을 얼굴에 어떻게 반영했는가를
관찰해보는 것도 꽤 재밌는 일

그런데 정말이지, 다들 자신의 엄마를 조금씩 닮았으면서도
또 어찌나 서로들 닮았는지 후후훗

오랜만에 만난 희영언니와 희진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던 거
순전히 다 우리가 닮았기 때문이라고




언니의 다음은 내 차례라고 다들 이야기를 한다
순서상으로는 그렇다는데
나는 도저히 내년 봄에 결혼한다는 희진이를 따라잡을 재간이 없으니
다음 차례가 되기는 그른 것이지


나는 언니와 희진에게서 매우 일상적인 또래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본다
꽂혀 있는 책, 쌓여있는 음반들, 화장대의 화장품, 심지어 언니의 신혼여행 장소까지
모두가 그야말로 평균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잣대가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평범하게 살기가 제일 어렵다고 하니,
그 지극히 평범한 삶의 양태로부터 오는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안다는 것도
어쩌면, 아니 분명히, 행복의 한 모습이겠지


나는 그들과 어떤 다름으로, 또한 어떤 유사성으로 살아가게 될지
문득 궁금해지던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내년 봄 희진이 결혼식 때 또 창원에 내려간다면
그 때는 지금보다 한 3.7배쯤 압박이 심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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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10 0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구 웬디양님 환영~~~ 전국구 순오기가!!
고속버스 미리 알아보시고 예매하세요~~ ^^
사촌모임, 우리 친정형제들은 벌써 12년째 하고 있어요~ 일년에 두번 모이지요.

웽스북스 2008-06-11 02:13   좋아요 0 | URL
아 네네
고속버스를 탈 거면 굳이 미리 예매를 안해도 될 것 같긴 해요
다만 고속버스를 타는 곳으로 새벽에 이동하는 것이 관건 ㅜㅜ

라주미힌 2008-06-10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전국구..

웽스북스 2008-06-11 02:13   좋아요 0 | URL
오늘 불라 필형님께 또 전국구라는 얘기를 들었지요
시위 도중에 불라에 20분동안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맥주마셨다는 ㅋㅋ

전호인 2008-06-1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실 때가 되었으면 가야지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세요. 역행한다면 대재앙이 올 수도 있습니다. ㅋㅋ

웽스북스 2008-06-11 02:14   좋아요 0 | URL
후후 자연의 법칙이라, 제가 좀 동안이긴 한데 ㅋㅋ
자연의 법칙보다는 사회의 법칙인 것 같아요